30. 지옥품(地獄品)
30. 지옥품[1], 부란가섭과 원숭이의 이야기
옛날 사위국에 부란가섭(富蘭迦葉)이라는 바라문 스승이 있었다. 5백 명의 제자들이 그를 따랐고 국왕과 시민들이 모두 그를 받들어 섬겼다.
부처님께서 처음 도를 얻으시고 제자들과 함께 나열기성(羅閱祇城)에서 사위국으로 가실 때 몸과 모습이 환히 밝고 도에 대한 가르치심이 넓고 훌륭하셨으므로, 국왕과 궁중 그리고 온 나라 백성들이 모두 받들고 공경하였다.
그때 부란가섭은 질투하는 마음이 일어나 세존을 헐뜯고 혼자서만 존경을 받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제자들을 거느리고 바사닉왕(波斯匿王)에게 가서 호소하였다.
“우리 장로들은 먼저 오랫동안 공부한 이 나라의 옛 스승입니다.
그런데 저 사문 구담은 나중에 나와서 도를 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실은 아무런 신통력도 없으면서 스스로 부처가 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대왕께서는 우리를 버리고 오로지 그를 받들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저 부처와 도력을 겨루어 누가 이기는가를 판가름하려 합니다.
왕께서는 이기는 이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그리고 수레를 장식하여 부처님께 나아가 예배하고 아뢰었다.
“부란가섭은 세존과 도력을 겨루어 그 신통 변화를 보이려고 합니다.
세존께서 들어주시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매우 좋은 일입니다. 이레 뒤에 장차 신통변화를 겨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왕은 성 동쪽 편편하며 넓고 좋은 땅에 높은 자리 두 개를 만들었다. 높이는 40장(丈)이고. 일곱 가지 보배로 얽어 장식하였으며, 번기와 당기를 세우고 좌석을 정돈하였다.
두 자리의 사이는 2리(里)쯤 떨어졌고 양쪽 제자들은 각각 그 밑에 앉기로 하였다.
국왕과 신하와 대중들은 두 사람이 신통변화를 겨루는 것을 보려고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때 가섭은 모든 제자들과 함께 먼저 그 장소에 와서 사다리를 밟고 올라갔다.
그때 반사(般師)라는 귀신 왕이 있었는데, 그는 가섭 등이 허망하게 질투하는 것을 보고 큰 바람을 일으켜 그 높은 자리를 쳤다. 좌구(坐具)들은 넘어지고 번기와 당기들은 휘날리고 모래와 자갈이 쏟아져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존의 높은 자리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부처님께서 대중과 함께 질서정연하게 걸어오셔서 막 높은 자리로 향하자, 어느새 올라가셨고 제자들도 모두 잠자코 차례대로 앉았다.
왕과 신하들은 더욱 공경하여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하옵건대 신통변화를 나타내시어 저 삿된 견해를 가진 무리들을 억눌러 항복받으시고 또 이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바르고 진실한 법을 깊이 믿게 하소서.”
그때 세존께서 자리에서 갑자기 사라지더니 곧 허공에 올라 큰 광명을 떨치셨다.
동쪽에서 사라져서는 서쪽에 나타나고, 이와 같이 4방에서도 또한 사라졌다가는 나타나곤 하는 것이었다.
몸에서는 물과 불을 내니 아래ㆍ위로 교차하고 공중에서 앉고 누우시는 등 열두 가지 신통변화를 하시다가 공중에서 몸이 사라져 다시 자리로 돌아오셨다.
하늘ㆍ용ㆍ귀신들은 꽃과 향으로 공양하면서 찬양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부란가섭은 스스로 도가 없음을 깨닫고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워하면서 감히 눈을 들지 못하였다.
그때 금강역사(金剛力士)가 금강저(金剛杵)를 들었는데, 그 금강저 끝에서 불이 나와 가섭을 겨누면서 말했다.
“왜 그대는 신통을 나타내지 않는가?”
그러자 가섭은 두렵고 무서워서 자리를 내던지고 달아났다. 5백 제자들도 물결처럼 내달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세존의 위의와 얼굴에는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기색이 없이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으로 돌아가셨다.
국왕과 신하들도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하직하고 모두 물러갔다.
이에 부란가섭과 그 제자들은 곤욕을 치르고 가다가 길에서 마니(摩尼)라는 한 늙은 우바이(優婆夷)를 만났는데, 그 우바이가 꾸짖어 말하였다.
“그대 미련한 사람들은 자기 재주는 헤아리지 못하고 부처님과 도덕(道德)을 겨루려 하였다. 어리석은 것들이 세상을 속이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구나.
그런 면목을 해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돌아다니는가?”
부란가섭은 제자들 보기가 창피하여 어느 강가에 이르러 제자들을 속여 말하였다.
“내가 지금 물에 몸을 던지면 틀림없이 범천에 태어날 것이다.
만일 내가 돌아오지 않거든 거기서 즐기는 줄로 알라.”
그리하여 제자들은 기다렸으나 그가 돌아오지 않자 저희들끼리 의논하여 말하였다.
“스승은 틀림없이 천상으로 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는 한 명씩 물에 몸을 던지면서 스승을 뒤따르려고 할 뿐 저들 자신이 지은 죄에 이끌려 지옥에 떨어질 줄은 알지 못하였다.
그 뒤 국왕은 그 소문을 듣고 매우 놀랍고도 이상하게 여겨져 부처님께 가서 아뢰었다.
“부란가섭의 무리들은 무슨 인연으로 그처럼 어리석고 미혹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부란가섭의 무리들은 두 가지 막중한 죄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세 가지 독이 불꽃처럼 왕성한데도 도를 얻었다고 자칭한 일이요,
다른 하나는 여래를 비방하여 헐뜯고 사람들의 공경과 섬김을 받으려 한 것이니,
이 두 가지죄로 인해 지옥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앙과 허물이 재촉하고 핍박하여 그들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지게 한 것일 뿐, 몸은 죽었어도 정신은 그곳을 떠나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 마음을 거두어 잡아 안에서 악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밖에서 죄가 이르지 않게 합니다.
비유하면 마치 국경에 있는 성이 적국과 맞닿아 있을 때, 수비를 튼튼히 하면 아무런 두려움이 없어, 안으로는 사람들이 편안하고 밖으로는 도적이 침입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제 자신을 보호하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세존께서 이어 게송을 말씀하셨다.
거짓으로 깨달았다 하며 재물을 구하고
그 행실이 이미 바르지 못해
선량한 사람을 미워하고 모함하며
억울하게 세상 사람들을 다스리면
죄가 그 사람을 결박하여
스스로 구덩이에 빠지게 되리라.
마치 국경의 성을 지킬 때
안팎을 모두 튼튼히 하는 것처럼
그 마음을 스스로 잘 지키면
나쁜 법이 거기서 생기지 않지만
행에 틈이 있으면 근심이 생겨
그를 지옥에 떨어지게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마치시고 거듭 왕에게 말씀하셨다.
“먼 옛날 세상에 두 마리 원숭이 왕이 있었는데, 각기 5백 마리의 원숭이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왕이 질투하는 마음을 일으켜 다른 왕을 죽이고 저 혼자 다스리고 싶어 여러 번 가서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창피만 당한 채 후퇴하여 큰 해변으로 갔습니다.
바다가 굽이치는 가운데 바람이 불어 물거품이 쌓여 있었는데, 그 왕은 어리석어 그것을 설산(雪山)이라 생각하고 무리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오래 전부터 듣기로는 바다 가운데 설산이 있는데, 그 곳은 아주 유쾌하고 즐거우며 입에 맞는 감미로운 과일도 많다고 하더니, 오늘에야 비로소 보게 되었구나.
지금 내가 먼저 가서 살펴보고 과연 즐거우면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테고, 만일 즐겁지 않으면 다시 와서 너희들에게 말해주겠다.’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나무에 올라가 힘껏 뛰어 거품 속으로 들어갔다가 그대로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나머지 무리들은 그가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다가 틀림없이 크게 즐거운 일이 있는 모양이라 생각하고는, 한 마리씩 모두 몸을 던져 제각기 빠져 죽어 종자가 끓어졌습니다.”
부처님께서 이어 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질투한 원숭이왕은 바로 지금의 저 부란가섭이고, 그 무리들은 바로 지금 가섭의 5백 제자들이며, 그리고 다른 원숭이 왕은 바로 지금의 나였습니다.
부란가섭은 전생에서도 나를 질투하다가 죄에 끄달려 스스로 물거품 더미에 몸을 던져 그 종자가 끓어졌는데, 지금 또 나를 비방하다가 모두 강물에 몸을 던진 것입니다.
그것은 다 죄의 대가로 그렇게 된 것으로서 한량없는 겁을 지내야 할 것입니다.”
왕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믿고 깨달아 예배하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