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 하는 자의 복(3월 8일 금요기도회 설교)
성경 : 이사야 44:1-5(구약 1020)
미국 기독교계의 탁월한 지도자 John Maxwell 은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점을 이렇게 간단하게 대비시켜 정의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있고 비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재만 보고 지금만 보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목표(꿈)가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했답니다. 지능지수, 학력, 성장배경 등이 비슷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7%는 목표가 없고, 60%는 목표가 희미하며, 10%는 단기 목표를 갖고 있고, 3%의 사람만이 명확한 장기 목표를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장기목표를 갖고 있던 3%는 25년 후 사회 각계의 최고 인사가 되었고, 단기 목표를 갖고 있던 10%는 사회의 중상위층이 되었답니다. 목표가 희미했던 60%는 중하위 층이 되고, 목표가 없었던 27%는 모두 최하위 생활을 하고 있었답니다.
목표를 가지느냐 가지지 않느냐는 이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목표가 어떠냐에 따라 큰 사람도 작은 사람도 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도 목표가 분명한 신앙과 목표가 없는 신앙은 그 결과가 분명하게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바라보는 것이 없는 사람은 도전하지도 않고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꿈이 없고 목표가 없고 도전하지 않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꿈과 목표가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도전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가운데서도 장기적인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과 능력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더 많은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삶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에 대한 갈망함이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선민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1절에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종 야곱이란 말과 내가 택한 이스라엘이란 말입니다. 야곱이란 말과 이스라엘이란 말은 같은 의미입니다.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천사와 씨름을 해서 얻어낸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이란 사람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길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같은 뜻을 가진 두 개의 단어를 사용하시는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나의 종 야곱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이란 이름은 이삭과 리브가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쌍둥이로 잉태해서 태어날 때 형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나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야곱입니다.
야곱은 어릴 때 아버지 이삭에게 차별대우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형의 장자 명분을 붉은 죽 한 그릇으로 빼앗았으며 거짓으로 형 대신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일로 인해서 형의 미움을 받아서 밧단아람으로 도망을 가야만 했습니다. 밧단아람의 외삼촌에게서 10번이나 속았고 외삼촌의 종노릇을 하며 20년을 살았습니다.
야곱이란 이름으로 산 그의 삶은 고난과 역경의 삶이었습니다. 야곱 자신도 거짓과 술수를 부리며 살았고 형의 미움을 받아 살해 위협을 받으며 밧단아람으로 도망을 갔는데 그곳에서도 고생고생하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야곱이란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삶의 여정으로 인해서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고난의 시절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그는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얍복강의 밤을 새워 씨름을 한 결과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야곱은 그를 두렵게 만들었던 문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의 형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20년을 기다렸지만 이스라엘이라 불리운 뒤에 그의 형 에서의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야곱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자기 동생 야곱을 위해서 가나안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고 가나안을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물론 가나안에서 정착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야곱이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게 된 뒤로부터 그를 두렵게 하던 것들이 사라지고 그는 가나안에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야곱을 종이라고 표현하고 이스라엘은 내가 택한 이스라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표현은 일반적인 표현으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 야곱이란 이름으로 산 세월은 종과 같은 삶을 산 세월인 반면에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은 뒤에는 하나님의 택한 자로서 야곱으로 산 세월과는 다른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과 같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이제는 택한 자 이스라엘이 되는 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선민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셨고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2절에 보면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첫째로 나의 창조주 이십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고 창조하시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시고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시고 여기 존재하게 하신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 가운데 아무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시고 여기 존재하게 하신 분명한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 나를 존재하게 하신 것은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필요한 존재로 여기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곳에 참빛교회 성도로서 나를 필요로 하시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서 하실 일이 있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존재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실 일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도와주실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시고 여기 존재하게 하신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실 목적을 위해 우리를 이곳에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분이십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잊고 살아가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에 있게 하셨고 그리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나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도우시는 하나님을 이 저녁 기도하는 가운데 만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1절에서 “들으라”고 말씀하고 2절에서 “여호와가 이 같이 말하노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입니다.
여수룬이란 ‘의로운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여수룬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야곱은 결코 의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향해서 여수룬 즉 의로운 자라고 불러주셨습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은 여수룬이라고 불러주십니다. 우리는 의로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깨끗하게 씻겨 주시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두려움에 쌓여 사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언제나 투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여수룬이라고 부르시면서 이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곳에 나를 존재하게 하시고 그리고 나를 통해서 이루실 놀라운 일들이 있음을 암시하시면서 너는 이제 야곱과 같이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너를 그리스도의 피로 여수룬이라고 부르리니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밤에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함으로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갈망하는 자가 받을 복
3절에 보면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목마른 자란 말은 갈망하는 심령을 가진 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심령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첫째로 새 힘을 주십니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르게 말하면 새 힘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4절에 보면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의 의미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함으로써 풀처럼 시냇가에 버들이 물을 머금고 싹을 내고 힘차게 자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역사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갈급한 심령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생수를 주셔서 지치고 피곤한 사람들에게 새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피곤하고 마음이 지쳐있는 원인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힘들고 지칠 때 더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개 그 반대로 살아갑니다. 피곤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못하고 피곤하기 때문에 쉬어야 하고 그러나 피곤할수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기 위해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피곤하고 지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게 되면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듯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성령을 사모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함으로써 새 힘을 얻어서 피곤함을 이기고 연약함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요엘2:21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일을 행하셨음이로다.” 라고 말씀하고 나서 28-29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망하는 심령을 가진 성도들을 통해서 큰일을 행하시는 분이시고 갈급한 심령들에게 성령을 부으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셋째로 복을 주십니다. 미국의 한 사업가가 25년 동안이나 해오던 카페 사업에서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커넬 샌더스는 사업이 완전히 망하고 난 뒤 정신병까지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기의 아내도 자기를 버리고 떠나 버렸고 그 때 나이가 65세였는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절망 가운데 있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노랫소리를 듣는 순간 마치 그 소리에 취한 듯이 그 소리를 따라 갔습니다.
그래서 다다른 곳은 어느 조그마한 예배당이었고 그 예배당 앞에 어떤 한 여자가 앉아서 너무나 평화롭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바로 그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노래는 지금의 찬송가382장이라고 합니다.
382장의 찬송 소리를 듣고 커넬 샌더스는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주님, 이곳에도 주님이 계시는군요. 제가 평생 예수 없이 돈만 벌려고 하다가 이렇게 되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그 후, 그는 닭고기를 양념하여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것이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시작이었습니다.
커넬 샌더스는 성공적인 사업을 이끌면서도 자신의 수익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며 다양한 사회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끊임없는 노력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예시로 여겨집니다
갈급한 심령을 가지고 기도한 커널 샌더스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닭들이 날아가는 환상을 보았고 그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아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밤에 갈급한 심령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보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쓰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