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08일
극도의 불안·막차 심리에 ‘영끌’…‘배아픔 해소 주택정책’ 피해자는 취약층
정부, 주택은 ‘사는(live)’ 곳이기보다 ‘사는(buy)’ 것이라는 관념 만들어… 서울·지방 주택가격 비동조화도 영끌 원인
주택시장을 계층·지역별로 차등화해 갈등 조장… ‘규제 부르는 규제’ 덜어내는 출구전략이 유일한 해결책
30대 젊은 세대의 ‘영끌’ 현상을 가리키며 “차라리 신도시 청약을 기다리라”고 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이 청년층의 분노를 사면서 영끌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젊은층의 영끌 행위 이유를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고 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국회 답변은 그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정부와 청와대의 이런 인식은 영끌 행위 본질에 대한 몰이해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세대가 어떻게든 신용대출을 해서라도 재테크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내 집에 대한 기대가 고문(拷問)이 되면서 일어나는 심리다. 즉 투자심리라기보다는 지금 아니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극도의 불안감이 부른 ‘막차’ 심리다.
◇ 투자 심리와 불안 심리
김 장관은 30대를 영끌 구매로 내몬 당사자다. 그의 말처럼 지금은 주택시장의 가격 상승세가 언제 경착륙으로 바뀔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현 정부의 왜곡된 부동산정책이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강남의 특정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이라는 가장 강력한 규제수단으로 묶었음에도 거래량은 급감했지만, 소수의 거래는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장관의 바람과는 다르게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아직도 안정세를 예감하기 어렵게 한다.
그런 와중에 언제 입주할지도 모를, 30대가 배정받기도 힘든 신도시 분양아파트를, 얼마 되지 않을 서울 시내 분양아파트를, 구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급등하는 전세주택을 전전하며 기다리라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깝다. 역시 가격이 급락하지만 않는다면 부족한 담보대출을 대신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재고주택을 구입하는 것이 지금 여건에서는 최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저금리 상황까지 겹치면서 신용대출이 지난 8월 한 달 사이 4조 원이나 급증한 것 등이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로 영끌이 발생한다는 노 비서실장의 발언도 어찌 보면 당연한 시장의 작동 기제를 말한 것이다. 주택가격은 자산가치인 동시에 주거비용이다. 그래서 가격이 더 오를 것이기 때문에 사야겠다는 ‘투자 심리’와 더 비싸지기 전에 사야겠다는 ‘불안 심리’는 시장에서 동전의 양면이다. 하지만 현 정부 정책은 결과적으로는 ‘주택은 사는(live) 곳이기보다 사는(buy) 것’이라는 관념을 심어 왔다. 정부의 공언과는 다른 잇따른 가격 급등과 주택 구입 기회를 점점 앗아가는 정책이 투자 심리보다는 불안 심리를 자극해 30대의 ‘ 패닉 바잉(공황 구매)’ 현상을 이끄는 것으로 분석된다.
◇ 서울-지방의 비동조화
이번 논란의 핵심은 결국 향후 주택시장에 대한 전망이다. 정부의 정책 담당자들은 주택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는 바람을 편향된 통계에 얹어 전달하려고 하지만, 요즘처럼 주택시장에 대한 전망이 어려운 시기도 많지 않았다. 특히 하나의 연결된 시장이어야 하는 수도권 주택시장이 서울은 50% 이상 올랐는데 경기도는 10% 남짓 상승에 그친 채 4년 가까이 ‘비동조화’ 상태로,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시장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과 인근 경기도는 하나의 주택시장이어서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강남 지역에 대한 수요 압력이 주거이동의 연쇄 고리를 통해 경기도로 파급되면서 연속적인 가격 조정과 함께 시장 균형을 찾아가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이것이 서울 지역 영끌 구매를 이끈 요인이 됐다.
거시적으로도 시장 안정세를 논하기에는 불확실한 요인이 많다. 무엇보다 넘쳐나는 유동성 문제가 크다. 수도권 주택 수요도 꺾일 기미가 안 보인다(‘2019 인구주택 총조사’). 오히려 주택 소비의 단위가 되는 전국 총가구 수의 연 증가율은 역주행해 2016년 1.4%에서 2019년 1.9%로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도권에서도 2016년 연간 13만 가구 증가에서 2019년 무려 25만 가구 증가로 역주행하고 있다.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주택 수요의 급격한 감소가 현실화하지 않는 것이다.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수도권 전체에 있어서도 충분한 주택 공급이 있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앞으로도 상당한 주택 공급 확대 노력이 필요함을 말해주는 통계다.
◇ 계층·지역 차등화와 갈등 조장
김 장관이 말한 “서울과 신도시 분양 물량을 기다리라”는 발언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비판을 받았다. 일단 서울에 청약할 수 있는 물량이 거의 없고, 청약가점제로 젊은층은 우선순위가 떨어진다. 허둥대며 계획된 주택 공급물량은 현실적으로 현 정부의 몫이 아니라 다음 정부의 몫이 될 것이다. 결국 공급 계획에 따른 입주가 대량으로 실현되는 때는 지금의 30대가 40대가 된 시점일 것이다. 그때까지 뭔가 다른 대안을 찾고자 하는 것이 지금 청년층에서 나타나는 ‘영끌’이다.
전통적으로 전세시장은 임차 가구에서 자가 가구로 이전하기 위한 과도기적인 자산 축적과 주거 소비를 함께 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현 정부의 다주택자와 전·월세 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는 단기적인 전세물건의 급감과 전세가의 급등을 넘어서 ‘전세의 소멸’에 대한 논란을 발생시킬 만큼 장기적인 추세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30대는 분양주택을 기다리며 40대까지 전세 임차인으로 살기도, 부족한 자산을 충당하기 위해 갭투자로 주택을 구입하기도 힘들어졌다.
이번 정부의 분양가상한제는 주요 지역 신규 아파트를 ‘로또’로 만들었고, 이를 배분하기 위한 제도로 청약가점제와 특별공급제도가 적용되고 있다. 현 제도하에서 30대의 우선순위는 무주택기간 등의 기준에서 40∼50대에 밀린다. 그렇다고 30대에 우선권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노년 가구들을 추적 분석해보면 중년 시기에 주택을 보유하지 못하고 임차가구로 남을 경우 노년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년층에 배정될 물량을 무리하게 30대로 돌리면 결국 그 30대가 향후 짊어질 노년 빈곤층을 위한 사회적 부담은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 규제를 부르는 규제
이런 갈등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은 신규 주택을 로또로 만들고 이를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하는 분양가상한제 규제다. 이 규제가 아니었다면 서울의 재건축을 통한 신규 아파트 공급량도 늘었을 것이고, 중년층의 신규 아파트 청약 경쟁률도 낮았을 것이고, 도심 접근성이 절실한 30대에게 돌아갈 몫도 많았을 것이다. 결국 이번 ‘영끌’ 논란은 주택시장을 계층별로 쪼개고 지역별로 차등화해 갈등을 조장하는 선택으로 ‘배 아픔’을 해소하다 보면 피해는 경쟁력이 약한 계층에 전가된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가장 바람직한 시장은 임차 가구로 살든 자가 가구로 살든, 혹은 신규 주택을 분양받든 재고 주택을 구매하든 큰 차이가 없는 주택시장이다. 비합리적인 제도로 그 균형을 깨는 선택은 사회적인 비용과 부담을 발생시키게 된다는 게 시장의 생리다. 더 이상 ‘규제를 부르는 규제’를 더하지 말고 다시 덜어내는 출구전략이 필요한 곳에 충분한 주택공급을 만들어내고 합리적인 배분을 유도하며 영끌 현상의 우려와 부작용을 해소할 돌파구다.
이창무 /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 전 아시아부동산학회장
문화일보
■ 세줄 요약
투자 심리와 불안 심리 : 젊은 세대가 ‘영끌’로 재테크 시장에 뛰어드는 건 투자심리라기보다는 지금 아니면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부른 ‘막차’ 심리. 이는 ‘주택은 사는(live) 곳이기보다 사는(buy) 것’이라는 관념을 만든 정책이 부른 결과.
서울-지방의 비동조화 : 서울 주택가격이 50% 이상 올랐는데 경기도는 10% 상승에 그치는 ‘비동조화’가 수년간 계속됨. 규제는 강화하고 주택 수요는 꺾일 기미가 안 보이며 총가구 수의 증가율은 역주행하고 있음. 이는 서울 지역 ‘패닉 바잉’의 원인으로 작용.
규제를 부르는 규제 : 영끌 논란은 주택시장을 계층·지역별로 쪼개 갈등을 조장한 정책이 낳은 결과. 정부의 다주택자와 전·월세 시장 규제 강화는 ‘전세 소멸’ 논란을 발생시킬 만큼 장기적인 추세로 나타날 가능성 큼. 해결책은 ‘규제를 부르는 규제’를 줄이는 것임.
■ 용어 설명
‘패닉 바잉(panic buying)’이란 가격 상승이나 물량 소진 등에 대한 불안으로 이를 무조건 사들이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 정부는 우리말 사용 차원에서 패닉 바잉 대신 ‘공황 구매’를 쓸 것을 권장.
‘영끌’이란 ‘영혼까지 끌어모으다’를 줄인 신조어. 최근 청년층이 주택·주식 구입을 위해 신용대출을 해서라도 자금을 마련하는 행위를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는다’는 뜻의 ‘영끌 대출’이라 부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