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1950년대 후반 4월 보릿고개 장르: 동화 줄거리: 시골국민학교에 다니는 가난한 아린이(정자)가 배가 고파하자 엄마는 쌀밥을 준비하게 되는데…
초아국민학교(초등학교) 4교시 국어시간이다. 선생님은 진청록색 칠판에 하얀 분필로 하아얀분필가루를 날리며 열심히 뭔가를 판서하고 있다. 쥐 죽은듯 조용한 교실에선 사각사각거리는 분필소리만 가득하다. 이따금씩 하얀 분필이 진청록 칠판과 마찰음을 일으킬 때면 아이들이 귀를 막거나 어깨를 들썩이며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자기들끼리 키득키득 거릴 뿐 교실은 조용하기만 하다. 아린이(정자)는 몽땅해져도 너무 몽땅해져버린 몽땅연필을 놓치지 않으려고 고사리같은 손으로 몽땅연필을 꼭 쥐고 칠판의 글씨를 받아적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따금씩 손가락이 아팠는지 연필을 놓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 칠판에 열심히 판서만 하던 선생님이 고개를 잠시 뒤로 돌아 교실을 둘러보다가 손을 조물거리고 있는 아린이를 발견한다. “김아린! 공책에 필기 안하고 왜 장난치고 있어? 손에 가지고 있는거 이리 가지고 나와!” 깜짝 놀란 아린이는 의자를 뒤로 밀치며 벌떡 일어나 몽땅연필을 손에 쥐고 허리 뒤로 숨긴다. “얼른 이리 가지고 나오래두!” 앞머리와 정수리가 벗겨진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듯해 보이는 남자 담임선생님은 뭐가 그리 귀찮고 뭐가 그리 짜증이 나는지 빨리 나오라고 아린이를 재촉한다. 아린이는 교단까지 몇 발짝 안되는 교실이 운동장만큼이나 넓게 느껴질 만큼 마지못해 꾸물거리며 교단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빨리 손 펴어어…” 아린이가 교단 앞에 나가서 뒤춤에 숨기고 있던 몽땅연필을 선생님 앞에 펴보이자 담임은 말끝을 흐리며 민망한 표정을 짓는다. “김아린, 자리로 돌아가서 마저 필기해” 선생님의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판서를 마친 선생님은 교실을 한바퀴 돌며 아이들이 필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아린이 책상 옆에서 멈춰서서 공책과 필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공책은 다른 친구들처럼 줄이 쳐진 공장표 공책이 아니고 16절 갱지를 하얀 목화실로 묶어 놓은 것이다. 필통은 나무각에 누가 쓰다가 버린 연필을 주워놓은 듯한 몽땅연필만 여러 자루 들어있는데 그 마저도 연필심이 깨져있는게 반이다.
“땡땡땡” 학교 수업 마치는 종소리가 들리고 친구들은 저마다 도시락을 꺼낸다. 학교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가득하다. 아린이는 혼자 운동장 뒤편 개수대에 수도꼭지를 틀고 입을 대고 물을 마신다. 배에서 “꼬르륵”하고 소리가 난다. 아린이는 한번 더 수도꼭지를 틀고 입에 수돗물을 마셔댄다. 이내 배가 볼록하다. 아이들이 도시락을 까 먹고 운동장에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운동장 귀퉁이 나무 그늘 아래 여자친구들이 모여 고무줄놀이 하는 무리도 있고, 조약돌로 공기놀이를 하는 무리도 있다. 아린이는 고무줄놀이를 하는 무리로 가서 슬며시 어울려 고무줄 놀이를 한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노래를 부르며 고무줄을 뛰다 보니 수돗물로 가득채운 배가 출령거려서 뛰기가 힘들어 진다. 배도 슬슬 아파오는것 같기도 하다. 아린이는 옆에 공기놀이하는 친구들 무리에 끼어서 공기놀이를 한다. “땡땡땡” 점심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이 저마다 교실로 뛰어가기 시작한다. 아린이는 뱃속에 수돗물이 출렁거려서 뛰지는 못하고 천천히 걸어서 교실로 향한다.
교실로 들어서자 담임선생님이 아린이를 부른다. “김아린 이리 와봐라” 아린이가 선생님 책상으로 가자 선생님은 흰우유를 아린이에게 건넨다. “니 밥은 묵었나? 못 먹었제?” 아린이는 고개를 숙이고 얼떨결에 흰우유를 받아들고 자기 자리로 와서 앉는다. 손으로 우유를 만지작만지작 하다가 우유를 얼룩덜룩 보자기로 된 책보 안에 넣는다.
학교수업이 끝나고 터덜터덜 걸어서 아린이가 집으로 걸어가고 있다. 아침과 점심을 수돗물로 채운 아린이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수돗물로 그렇게 배를 채웠는데도 위는 비었다고 계속해서 신호를 보낸다. 집에 도착한 아린이는 책보에서 흰우유를 꺼내 부엌에 있는 엄마에게 건넨다. “어디서 났노?” “학교선생님이 주셨어” “아침도 못먹고 배 고팠을낀데 니 먹지 뭐하러 가지고 왔노?” “엄마도 아침 못먹었잖아. 같이 마실라꼬 갖고 왔지” 스댄 밥그릇에 우유를 따라서 엄마와 아린이는 사이좋게 나눠 마신다. “니 배고프제? 오늘 저녁은 우리 쌀밥 묵자” “쌀? 지금 보릿고개인데 쌀이 어디서 났노? 보리도 없을낀데?” 엄마가 손가락으로 마당 위 평상을 가리킨다. 아린이는 엄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마당 중앙에 놓여져 있는 평상으로 다가간다. 정말이지 평상 위에는 물로 씻어서 축축해 보이는 하얀 쌀톨들이 햇살을 받으며 말려지고 있었다. 아린이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져 간다. “엄마, 이 쌀들은 어디서 구했어?” 엄마는 아린이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아린이는 부엌에 있는 엄마한테 다가간다. 엄마는 아린이를 허벅지 위에 앉히면서 얘기를 한다. “와 궁금하나?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쌀밥 맛있게 먹으며 됐지 뭐가 그리 궁금하노?” “지금 쌀이 한톨도 없을 때인데 쌀을 저리 구했으니 궁금해서 그렇지” 엄마는 아린이 손을 잡고 논두렁으로 향한다. 논두렁 구석에 작은 쥐구멍이 있고 그 쥐구멍이 파헤쳐져 있다. 그 쥐구멍 안에는 작은 방들이 구멍으로 여러 개 나눠져 있었다. 작년 가을 추수 즈음에 쥐들이 열심히 물어다 날라놓은 쌀톨들이 그 안에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쥐구멍을 파헤쳐 쥐들이 물어다 놓은 쌀톨들을 한톨한톨씩 주워모아서 깨끗히 씻어서 햇볕에 말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 모은 쌀톨은 제법 한주먹이 되었고 그 쌀로 밥을 하면 밥 한공기는 나올 법한 양이었다.
다음날 아린이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면서 논두렁 쥐구멍을 찾아다니느라 어둑어둑해져서야 집에 도착했다. “엄마아~~~이것 봐” 고사리같은 아린이의 손에는 쌀톨들이 쥐어져 있었다.
첫댓글 남희경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50년대의 시골풍경 이네요
그 시절이 한 눈에 그려집니다
이번 기수에
새로 오신분들 글을 참 잘 쓰시네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린이의 맑은 얼굴 위로 팔레스타인의 아이들이 오버랩되네요.
따뜻한 모녀의 사랑에 아릿한 아픔이 묻어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찡하네요.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6.25의 상흔이 미처 아물지 못한 50녇대 후반 힘들게 보리고개를 너머가는 농촌마을과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하여 소녀와 선생님, 어머니 간의 따뜻한 인간애를 그리신 글이
우리의 소시적 모습을 되돌려 그린 한 폭의 수채화로 아련하게 다가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아이들이 경험하기 힘든 가난, 배고픔, 눈물을 그리면서도 지금보다 더 풍요로운 사제 간의 이해, 친구들과의 우정, 어머니와의 사랑을 그린 글이 인상적입니다. 동화로 출간되어 아이들이 진짜 읽어야 할 듯 싶어요, 딱 맞는 삽화와 함께 말이죠.
근데, 진짜 쥐가 쌀을 구멍에 모아두나요? 서울 촌사람이라 궁금하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글이 쉽게 잘 읽히는 유려함은 여전하시네요.
계속 건필하시길... 기대합니다!
파란 색이라서 괜스레 슬퍼지는 하늘처럼
하얀색이라서 더 아리도록 아름다운 쌀밥이 사랑 동화로 승화되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역시 시인이시네요👍
실력도 부족하고 시간과 정성도 부족한 글응 시간 내서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합평시간에 코맨트해 주셨던 것들 잘 참고해서 수정해 보갰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