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이기어시(以氣馭矢)
- 천하제일살수, 그거 꼭 해야 합니까?
흑칠랑과 야한의 몸은 굳어 있었다.
다시 보아도 아운의 무자비함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저 무식한 새끼. 도끼 자루로 사람을 패다니. 염라대왕은 뭐 하냐? 저런
놈 안 잡아 가고. 혹시 벼락 같은 건 안 떨어지나.'
흑칠랑은 쉬지 않고 투덜거리며 아운을 보다가 옆에 서 있는 야한을
보았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아운을 보고 있는 야한의 눈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저러다 눈 빠질라!'
흑칠랑은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만약 정말 눈이라도 빠지면 좋은 협력자 한 명이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적의 적은 동지다.
그런 면에서 흑칠랑은 야한에게 동지 비슷한 감정을 느기고 있었다.
하지만 흑칠랑이 야한의 심정을 왜 모르겠는가?
누구보다도 잘 안다.
복수는 해야겠지, 이미 청부도 받았겠다.
어떻게 하던 아운을 죽여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난다.
제일 무서운 것은 아운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그에게 잡히는 순간이리라.
그건 정말이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흑칠랑은 그 심정을 이해하기에 좋은 말로 덕담이라도 한 마디하려고
했다.
뿌드득.
그런데 갑자기 이빨 가는 소리가 들린다.
흑칠랑이 놀라서 야한의 얼굴을 더욱 자세히 본다.
"죽인다. 이 개자식, 결코 용서할 수 없다."
흑칠랑의 눈이 등잔만 해졌다.
'헉! 이 자식이 미쳤구나. 아무리 살수의 도도 중요하지만 저런 무식한
놈을 죽이려고 하다니. 그래도 정말 대단한 놈이다.'
흑칠랑은 야한의 결심이 내심 부러웠다.
못 박힌 몽둥이에 맞아 죽기 싫다고 하던 것이 조금 전인데,
이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 모양이었다.
아운의 무식함을 보았으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은 것은 참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흑칠랑은 경험(?)과 의지의 판단으로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야한이
대단해 보였다.
"으음, 정말 대한 하이, 후배. 그런 굉장한 결심을 하다니. 꼭 성공해서
저 무식하고 무자비한 개자식을 꼬옥 죽여주게. 혹시 잘못되면 시체는
내가 잘 거두어 주겠네."
흑칠랑의 다정한 말이었다.
그러나 야한은 흑칠랑을 보고 있지 않았다.
"무림맹의 그 개자식, 뭐? 나라면 충분히 죽일 수 있다고? 쌍 놈의
새끼,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 저런 괴물 같은 놈을 시켜 나를 차도
살인 하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만나기만 해봐라! 기필코 따져서 물은
다음, 가죽을 벗겨 죽이고 말겠다."
이게 무슨 사막에 원숭이 울고 지나가는 소리냐?
흑칠랑의 표정이 멍해졌다.
야한은 분을 못 참고 씩씩거린다.
생각할수록 울화통이 터지고 수족이 떨렸다.
만약 흑칠랑의 방해가 없었다면 자신의 멋모르고 아운을 공격했을 것이다.
그 다음 결과는…
야한의 머릿속으로 아운의 무식한 주먹과 도끼 자루가 날아다니더니,
급기야는 대못 박힌 몽둥이가 머리를 찍는 광경이 떠오른다.
철푸덕.
야한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개 같은 놈, 나를 지옥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니. 죽일 새끼, 만나기만
해봐라! 으드득. 내가 보고 배운 대로 해 주마!"
야한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맹세를 하고 있었다.
흑칠랑은 허탈한 표정으로 야한을 보고 있었다.
어쩐지 동지애는 사막을 건너 천축까지 날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부! 천하제일살수, 그거 꼭 해야 합니까?'
흑칠랑은 울고 싶었다.
자신의 의지로 반드시…
이렇게 전의를 불태우던 흑칠랑이었지만, 이젠 은근슬쩍 사부를 찾는다.
'그래도 반드시.'
흑칠랑은 꺾이려는 마음을 다시금 고쳐 잡았다.
의지의 살수 흑칠랑.
그는 과연 천하제이살수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천하제삼살수인 야한은 포기해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二)와 삼(三)의 차이는 그렇게 큰 것이다.
***
사막을 가로질러 십벽진으로 오는 길.
열한 명의 인물들이 말을 몰아 달리고 있었다.
모두 말 안장에 창 한 자루씩을 걸고 있는 그들은 언가의 무리들이었다.
"자, 조금만 더 가면 십벽진에 도착한다.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우리는
곧 아운이란 잡종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언행의 말에 소운십절창을 이루는 언가의 젊은 고수들은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아운 일행을 보았다는 말을 듣고 그 뒤를 쫓기 시작한지 벌써 열흘이었다.
이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모두 힘이 났으며,
눈에 흉흉한 기색들이 감돈다.
그들에게 있어서 아운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로 인해서 몇 달간이나 감숙성의 사막을 맴돌아야 했고,
그 동안 고생한 걸 생각하면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급하게 사막을 가로질러 쫓아오다 보니,
물 준비가 충분하지 않아 아침에 물이 다 떨어졌다.
물론 반나절 정도야 물이 없다고 큰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목이 마르고 입이 타는 고통도 다 아운이란 인간 때문이 아닌가?
그들로서는 아운에 대한 원망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목마름을 견디며 일행의 선두에 달리던 언행이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소운십절창의 열 명도 덩달아 그의 뒤에 나란히 말을 멈추었다.
언행의 시선은 십벽진을 향해 가는 사막의 길에서 대각선으로 우측을
보고 있었다.
멀리서 다가오는 세 개의 점이 보였다.
"사람이군."
언행의 말에 십절창 중의 청면호 언벽이 메마른 입술을 혀로 한번
훑어내곤 무엇인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얻어 마실 수 있겠군."
언행은 부드럽게 말을 했지만, 그의 시선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얻지 못하면 빼앗으면 된다.
그들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면서 그들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검은 색의 몸집이 유난히 크고 튼튼한 대완구를 탄 세 명의 몽고족
병사들이었다.
가벼운 가슴 보호대와 꼭 필요한 부분만 갑옷으로 몸을 가린 경장 차림
이었고, 나이는 삼십대였다.
한 명은 허리에 대검을 차고 장창을 들고 있었으며,
또 한 명은 손에 방패를 들고 허리에 두 개의 도끼를 차고 있었다.
그는 말에도 다섯 개의 조그만 도끼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마지막 한 명은 허리에 길게 휘어진 곡도를 찼고,
조그만 각궁을 손에 들고 있었다.
등에 메어진 전통에는 수십 개의 화살이 가지런하게 꽂혀 있었으며,
말에도 두 개의 전통을 달고 있었다.
언행이 보기에 그들이 탄 검은 색의 말은 한 눈에 보아도 찾아보기 힘든
명마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들도 결코 만만치 않은 명기들임이 분명했다.
세 명의 몽고 병사들, 각자의 말에는 물이 가득 들은 가죽 주머니가 걸려
있었는데, 그것을 본 소운십절창들의 눈이 번들거린다.
언행은 기분이 안좋았다.
세 명의 몽고병은 처음부터 자신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지들끼리 무엇인가
말을 주고받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거침이 없다.
대사막에서 무장을 한 장정들을 만나면 당연히 경계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에게선 그 어떤 긴장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몽고의 오랑캐들이 감히!'
언행의 눈에 한광(寒光)이 어렸다.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에 들고 있던 창을 움켜쥐고 그들 앞으로 다가서려
할 때였다.
이십 장 밖까지 다가온 몽고병들이 갑자기 말을 멈추었고,
그들 중에 장창을 든 자가 앞으로 천천히 말을 몰아 나왔다.
언행은 무엇인가 주도권을 빼앗긴 것 같아 더욱 기분이 안좋았다.
"너희는 중원의 무사들이냐?"
발음까지도 정확한 한어였다.
몽고병의 복장만 아니면 한인이라고 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다.
언행의 미간이 다시 좁혀졌다.
"그렇다."
"네놈들은 혹시 십벽진으로 가는 것이냐?"
"그렇다."
몽고병은 언행이 들고 있는 창을 보더니 눈을 빛냈다.
"좋은 창이군. 창법을 익혔나?"
"무식한 오랑캐 놈이 보는 눈은 있군. 내가 진주 언가의 언행이다."
몽고 병사의 눈에 비웃음이 어렸다.
"진주 언가 라! 조잡한 실력을 믿고 기고만장이군. 중원의 하찮은 무공을
너무 믿지 마라, 늙은이."
언행은 끓어오르는 울화를 참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언행은 어차피 잘 되었지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냥 보내지 않을 참이었다.
몽고군이 아니라도 물을 얻어내야 할 판인데 상대는 몽고군이었다.
살려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더군다나 알아서 시비까지 걸어 주니 오히려 고맙다.
언행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장창을 든 몽고군은 천천히 돌아갔다.
언행을 완전히 무시한 행동이었다.
"쳐라!"
언행의 고함과 함께 이미 기다리던 소운십절창의 십여 명이 쏘아진
화살처럼 몽고병들을 향해 말을 몰아갔다.
그렇지 않아도 오만한 몽고병에게 배알이 뒤틀려 있던 그들은 언행의
명령만 기다리던 참이었다.
창이란 전쟁터에서 말을 타고 쓰기에 좋은 무기였다.
언가는 창법이 유명한 만큼 말에서 창을 다루는 기술에도 뛰어났다.
누런 모래 먼지를 일며 말을 몰아 달려가는 십여 명의 젊은 기재들은
단숨에 몽고병을 죽일 것만 같았다.
세 명의 몽고병 중에 방패를 들고 있던 기마병이 손에 든 방패를
말 안장에 걸더니 고함을 질렀다.
"내가 광풍사의 순부(盾斧) 대군령(大軍令) 누루치다."
고함과 함께 말을 몰아 달려 나오며, 말 안장에 걸려 있던 한 개의 작은
도끼를 꺼내어 들곤 달려오는 언가의 소운십절창들을 향해 던졌다.
위잉!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작은 손도끼가 맨 앞에 달려오던 십절장 중
한 명을 향해 날아갔다.
그 속도와 대기를 가르며 밀려오는 위력에 놀란 언가의 소운십절창 중
한 명은 급한 대로 단창을 들어 도끼를 후려쳤다.
땅! 하는 소리와 함께 단창은 두 동강이 났고,
손도끼는 그대로 방어했던 소운창의 머리에 들어가 박혔다.
두 다리를 하늘로 들어 올리며 말에서 굴러 떨어진 언가의 제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모두 놀라서 주춤하는 순간이었다.
검은 대완구를 몰고 달려온 누루치는 어느 틈에 허리에 차고 있던
두 자루의 도끼를 각각 한 자루씩 손에 나누어 들고 있었다.
슈우욱!
바람소리와 함께 쌍도끼가 가로 세로로 호선을 그렸다.
시퍼런 부기(斧氣)가 햇살에 반짝이며 잘게 산란을 일으킨다.
막고 어쩌고 할 시간도 없었고, 막아 보았자 소용도 없을 것 같았다.
한 명의 소운창은 머리부터 가랑이까지 두 쪽으로 갈라져 버렸고,
덤으로 말까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또 한 명의 소운창은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허공으로 튀어 올라갔다.
몸만 있는 주인을 태운 말은 무려 이십여 장이나 달리고서야 멈추었다.
"광풍사! 아, 악마의 도끼다!"
소운창 중의 한 명이 놀라서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의 그 말은 살아서 한 마지막 말이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대의 화살이 날아와 중얼거린 소운창의 머리를
관통하고 바로 그 뒤에 있던 또 한 명의 소운창을 관통하고서야 멈추었다.
한 개의 화살에 두 명이 죽었다.
언행은 입이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이건 상대가 안 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노옴!"
고함과 함께 언행이 말을 몰아 세 명의 몽고병을 향해 달려갔다.
언행이 공격해 오자 처음 언행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장창의 몽고병이
창을 꼬나들고 달려오며 고함을 질렀다.
"내가 창검(槍劍) 소군령(少軍令) 다르하다. 어디 중원의 창법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자."
역시 유창한 한어였다.
"개 같은 오랑캐 놈!"
고함과 함께 언행은 언가창의 절기인 벽월금(劈月錦)의 초식으로 소군령
다르하를 공격해 갔다.
벼락처럼 호선을 그린 언행의 창에서 초승달 모양의 기운의 쏘아져
몽고병을 쓸어갔다.
다르하 역시 자신의 창을 직선으로 찌르며 공격해온다.
마치 전장에서 일기토로 싸우는 병법과 흡사했다.
차장!
두 사람이 서로 엇갈렸다가 십여 장을 달리고 멈추었다.
두 살마은 천천히 돌아섰다.
기대 어린 시선으로 언행과 몽고병을 보던 소운십절창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 눈에 보아도 언행이 불리함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겨우 피하긴 했지만, 그의 가슴은 창에 찔린 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소군령이라고 했던 다르하는 숨소리조차 거칠어지지 않았다.
'이럴 수가! 광풍사의 이름이 높긴 하지만 이 정도란 말인가?'
언행은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상대는 너무 강하다.
***
네 명의 말이 사막을 달린다.
달리면서도 진성현은 계속 아운을 보고 있었다.
묻고 싶은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지만,
감히 물어볼 생각도 못하고 그저 흠모의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갑자기 아운이 말을 멈추었다.
모두 말을 멈추었을 때, 아운은 사막의 지평선을 보고 있었다.
"큰 싸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십여 명의 인물들이 죽어 있군요."
아운의 말에 모두 놀란 표정으로 지평선을 보았지만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지평선 뿐이었다.
단지 편일학만은 얼굴이 굳어 있었다.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네."
"빨리 가보죠."
아운은 대답을 함과 동시에 말에 박차를 가했다.
잠시 후 일행이 도착한 곳에는 정확하게 열한 구의 시신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그들은 아운도 아는 자들이었다.
"언가의 장로인 언행과 소운십절창입니다."
아운의 말에 이미 짐작을 하고 있던 을목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언행이라면 자신보다 한 수 위의 고수로 언가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였다.
그런데 어떻게?
시체들을 살피던 편일학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광풍사다. 가짜가 아닌 진짜 광풍사."
을목진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편일학은 숨을 몰아쉬었다.
정말 오랫동안 그들로 인해 방황했었다.
이제 다시 그들의 흔적을 보자, 그 동안 쌓이고 쌓인 감정이 가슴속에서
회오리치고 있었다.
잠시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혔을 때,
결투한 흔적을 살피던 아운이 말했다.
"단 세 명이군요. 더군다나 마지막으로 죽었을 것 같은 저 소운창
말입니다."
아운은 약 백여 장 정도 떨어진 곳에 화살을 맞고 죽은 한 명의 소운창을
가리켰다.
모두 그 쪽으로 시선을 모으자, 아운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약 백여 장 밖에서 활을 쏘았습니다."
모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단 세 명으로 소운십절창과 언행을 일방적으로 도륙하였다니,
그저 할 말이 없었다.
더군다나 백 장 밖에 있는 무림의 고수를 활로 쏘아 죽였다면
어느 정도의 실력을 지녀야 가능한 일인가?
"백 장 밖이라니? 정말 그 정도 거리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무림의 고수라면, 화살이 날아오는 시간에 보법이나 몸을 틀어 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진성현이 의문스런 목소리로 말하며 아운을 보았다.
그의 의문은 당연했다.
제 아무리 화살이 빠르다 해도 한계는 있게 마련이다.
거리가 백 장이면 아무리 빠르고 강한 화살이라고 해도,
어지간한 무림의 고수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날아오는 화살의 거리가 백 장이라면 피하는 사람은 단 몇 치만 움직여도
그 화살을 피할 수 있다.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백 장 정도의 거리에서 화살을 쏜 것은
분명하다. 여기 흔적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아운은 하나의 말발굽 자국을 가리켰다.
진성현은 아운이 가리킨 말발자국을 보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그 말발굽 자국에서 죽은 언가의 소운창이 있는 곳까지는 단 한 마리의
말발굽 자국이 있을 뿐이었다.
발자국의 방향으로 보아도 가는 말발자국은 있어도 돌아온 흔적은 없다.
그리고 지금 아운이 가리킨 곳에는 상당히 큰 말발자국이 또렷하게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말이 멈추어 선 흔적.
더 이상 전진한 흔적은 없었다.
결국 백 장 밖의 무사는 도망가다가 이 자리에서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언행은 십 초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네. 그리고 창강(槍?)에 심장을 관통
당한 채 죽었어. 흔적으로 보아 이들을 죽인 세 사람은 광풍사의 소군령
급 이상의 실력자들이 분명하네."
언행의 시체를 살피던 편일학의 말에 을목진이 놀라서 물었다.
"창강? 검강과 같은 창의 강기(?氣) 말입니까?"
을목진의 물음에 편일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게나. 창에 직접 관통 당했다면 그것을 뽑은 흔적이 있어야 하네.
그런데 관통상이 너무 깨끗하네."
을목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창강이라니, 대체 검으로 강기를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 그와 같은 경지인 창강에 죽었다고 한다.
을목진은 아직 꿈도 꾸어 보지 못한 먼 세상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일을 몽고군의 십부장이 했다고 하자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광풍사의 명성이 높아도 이건 도가 지나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선배님. 창강이 아니라 창기에 죽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언행이 누군가? 창기 정도에 반항도 제대로 못해 보고 죽을 정도로
약자가 아닐세. 그리고 기(氣)와 강기(?氣)는 다르네. 내가 알기로,
기로 언가의 창을 저렇게 반듯하게 잘라 놓지는 못할 것일세."
편일학은 바닥에 두 동강으로 갈라진 채 떨어져 있는 언행의 창을
가리켰다.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명기였다.
더군다나 그것을 들고 있는 것은 언행이었다.
을목진은 할 말이 없었다.
"노 선배님, 이들을 공격한 광풍사의 소군령들은 어느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습니까?"
아운의 물음에 편일학은 잠시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소군령은 광풍사의 십부장을 말하는데, 그들의 실력을 어떻다고 말하긴
어렵네. 그렇지만 내가 오 년 전 싸운 자가 광풍사의 소군령 중에 한 명
일세. 난 삼십 초를 견디고 졌네."
을목진과 진성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아운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다.
"물론 지금은 편 노 선배님이 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을목진과 진성현이 편일학을 본다.
편일학이 조금 멋쩍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 동안 약간의 깨달음이 있었지만, 광풍사의 소군령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문제는 이곳에 이들이 왜 나타났느냐 하는
점일세."
편일학의 말은 정말 핵심적인 문제였다.
십벽진은 감숙의 전쟁터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으로 몽고군이 나타날
장소가 아니었다.
물론 십벽진 근처에서 마적단이 나타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마적단이야 특별히 장소를 정해 놓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고,
또한 가짜 광풍사의 경우는 이미 노리는 인물들이 있었기에 이해가
되었지만, 이들이 나타난 이유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왜 언가의 고수들과 싸웠는지도 의문이었다.
"그것이야 알 도리가 없겠지요. 그보다도 광풍사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습니다."
아운의 물음에 편일학은 자신이 알고 있는 광풍사에 대해서 정리하는 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광풍사 십부장의 지위는 일반 몽고군의 만부장보다 위네. 물론 무력으로
따진다면 만부장 따위와 비교하기는 더욱 어렵다고 할 수 있지. 그래서
그들을 따로 소군령이라고 부른다네."
"모두 삼백 명이들 들었습니다."
"맞네. 총 인원이 삼백 명이고, 그들은 다시 창검(槍劍) 백 명, 궁도(弓刀)
백 명, 순부(盾斧) 백 명의 인원으로 나뉘어 지는데, 모두 십 개조로
나뉘어져 있고 각조는 창검 열 명, 궁도 열명, 순부 열 명으로 이루어져
있네. 모두 삼십 명이 한 조를 이룬 셈이지. 각 조엔 창검, 궁도, 순부의
열 명 단위로 십부장격인 소군령이 있고, 각 조에 속한 세 명의 십부장
중에 무공이 가장 강하고 연륜이 있는 자가 다시 각 조의 조장을 맡고
있는데, 이 조장을 대군령(대군령)이라고 하네."
잠시 숨을 고른 편일학이 말을 이었다.
"광풍사의 일반 병사는 그 직급이 일반 병사들의 천부장 급 이상이네.
그들을 따로 병사가 아니라 전사(戰士)라고 부르는 이유가 그 때문이지."
편일학의 말에 을목진이 끼어들었다.
"선배님. 창검, 궁도, 순부라면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 그들은 모두 몇 가지씩의 무공을 철저하게 익히고 있는데,
그 중에서 창검은 창술과 검법을, 궁도는 궁술과 도법을, 그리고
순부의 경우는 방패를 사용하는 무공과 부법을 완벽하게 익히고 있네."
편일학의 말을 들으면서 아운은 그들이 익힌 두 가지씩의 무공이 상호
보완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창과 방패, 그리고 활은 단체로 싸울 때 서로 유기적으로 보완하며 싸울
수 있는 무공들이었고, 그 외에 각자 익히고 있는 검과 도 그리고 도끼를
사용하는 무공들은 각개 전투를 할 때 유용한 무공들이었다.
결국 그들은 흩어져도 강하고, 모여 있으면 더 강하다는 결론에 도달
할 수 있었다.
을목진이 가볍게 심호흡을 하면서 물었다.
"대체 그들이 익힌 무공이 무엇이기에 언가의 정예 중 일부인 소운십절창
과 언행이 이토록 무참하게 당한 것입니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원이 망할 때 빼돌린 무공을 연구하여 새로 만들
어진 무공이라고 들었네. 그리고 그때 빼돌린 각종 영약들이 이들에게
투입된 것으로 알고 있네."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엔 진성현이 물었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어떤 궁술이기에 백 장 밖의 무림 고수를 화살
하나로 죽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내 생각엔 이기어시(以氣馭矢)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네."
"이기어시!"
을목진과 진성현이 놀라서 편일학을 보았다.
이기어검술이 아니고 이기어시술(以氣馭矢術)이라니.
"이기어시라고 말한 것은 원리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세.
활을 쏘고 그 활을 기로 조절하기 때문에 피해도 소용없지. 어검술
처럼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화살이 마음대로 휘어져 날아가고,
자신이 정한 목표가 피하면 날아가던 화살을 조종해서 피한 곳으로
이동시켜 맞추는 방식일세."
을목진과 진성현은 놀란 눈으로 다시 한번 백 장 밖에 쓰러져 있는
소운십절창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날아가는 화살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기에 피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군요."
"맞네."
"잘 알고 계시는 군요."
지금까지 듣기만 하던 아운이 편일학을 보면서 말하자,
편일학의 얼굴에 잠깐이지만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다가 사라진다.
"내 제자 셋이 그 화살에 죽었네. 그리고 그들로 인해 한동안 검을
꺾었었네. 그 동안 그들에 대해서 많이 연구를 했었지."
한이 느껴진다.
그 동안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 한 마디에 느껴진다.
반드시 그들과 다시 한번 겨루어, 죽은 제자들의 복수와 무너진 명예를
회복하고 말겠다는 굳은 결심이 느껴지는 말이기도 했다.
제자가 그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편일학의 말에 놀란 을목진과 진성현이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편일학이 평온한 표정이자, 그들도 조금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을목진이 다시 물었다.
"그럼 궁도병 백 명리 모두 이기어시술을 쓴다는 것입니까?"
"그렇긴 하지만, 이기어시술을 완벽하게 쓸 수 있는 자들은 소군령 이상의
광풍사들 뿐이네. 그 외에 광풍사의 전사들은 같은 궁술이지만 위력에서도
차이가 있고, 이기어시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네."
"유효 사거리는 백 장 입니까?"
아운이 갑자기 끼어들며 물었다.
"소군령급 이상은 약 백여 장 정도. 일반 병사들은 칠십 장에서 팔십 장
정도라네. 화살이 날아갈 수 있는 거리도 그 정도 전부일세. 좀 놀라운
것은 화살이 유효 사거리가 다 되어도 그 위력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일세. 그 위력은 정말로 생각하기조차 싫을 정도네. 아마도 화살에
강기를 실어 날리기 때문에 그러한 위력이 나오는 것 같네. 그들은
궁술을 위해서 어떤 특수한 무공을 익히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을목진과 진성현은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했다.
편일학의 말대로라면 그들이야 말로 무적의 군사들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단순히 강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온 전사들일세. 같은 무공의 수준이라도 그들이 강한 것은 그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지. 대명(大明)은 그들을 뿌리 뽑지 못한다면 절대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일세."
세 사람은 모두 편일학의 말을 수긍했다.
광풍사는 그들이 알고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더욱 강하고 무서운
자들이었다.
편일학은 세 사람을 잠시 훑어본 후에 지금까지 한 말의 마침표를 찍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들을 총 지휘하고 있는 사막의 제왕이라 불리는 몽고의 영웅
대부령(大部令) 타미르일세. 그 외에 광풍사의 백부장 격인 두 명의 광사
(光獅)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네."
"광사? 타미르?"
진성현이 질린 표정으로 한 말이었다.
"광사와 대부령이라고 불리는 타미르의 무공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더군.
듣기로 대부령의 경우, 칠사나 신주오기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고 들었네."
편일학의 말을 듣고 을목진이나 진성현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반대로 아운의 표정은 더욱 냉정해졌다.
네 사람은 잠시 동안 말없이 말 위에 앉아서 죽은 언가의 십절창과
언행을 바라보았다.
광풍사의 무서움이 뼈저리게 다가온다.
조금 시간이 흘렀을 때,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 아운이 말했다.
"여기 말발굽 자국을 보면 유난히 큰 말의 흔적이 있습니다. 대충
살펴보니 모두 세 마리 정도입니다. 이 세 마리의 말을 탄 자들이
광풍사의 소군령들이면, 일개조의 십부장들이 모두 나타났다는 말고
같습니다. 수하들도 없이 말입니다."
편일학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그들이 간 방향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일치한 것이 우연이길
바랍니다."
아운은 말을 하며 한 쪽으로 나란히 나 있는 대완구의 발자국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