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식의 시 세계 한생의 애환과 서정시학의 진실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외로움’과 ‘그리움’과의 교성곡(交聲曲) 현대시에 있어서 소재나 주제의 투영(投影)은 대체로 인간의 문제와 자연의 문제로 대별할 수 있다. 보편적으로 그 시인의 초기 작품들은 감상적(sentimental)인 정서의 범주(範疇)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을 대하게 되는데 이는 현실적인 ‘나’의 상황이 직관의 시적인 정황(情況-situation)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정영식 시인이 상재하는 첫 시집『바람에게 전하리』를 일독(一讀)하면서 이러한 정황을 먼저 살필 수 있는 것은 스스로 간직한 체험이 어쩔 수 없이 분사(噴射)하는 감상적인 요소의 언어가 형태소(形態素)로 작용하고 있어서 다소 진솔하고 경미(輕微)한 형상화를 간과(看過)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첫 시집이라는 절대적인 여건에서 아직 미숙성(未熟性)된 언어로 창출(創出)된 가치관이나 인생관의 표출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발현(發現)하고자 하는 내면의 사유(思惟)가 실생활(real life)과 동류의 접점에서 그의 시적 진실을 구현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정영식 시인은 우선 ‘외로움’에 익숙하다. 그것은 현실적인 요소가 직접적인 상관성을 갖겠지만, 지나간 그의 체험에서 절감(節減)하는 ‘그대’라는 시적 화자(話者-persona)의 ‘흔적’에서 그 동기와 발상을 찾을 수 있게 한다. 그대와 함께 했던 날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외로움만 남아 돕니다 그대 떠난 자리 아직도 서러움만 돋아나고 비빌 언덕이 없어진 나의 날은 나날이 가랑비에 젖어 웁니다 --「흔적」전문 그의 사유에는 이와 같이 ‘그대’가 ‘흔적 없이 사라’진 후에 ‘외로움만 남아’서 돌고 있는 상황에서 유추하면 ‘나의 날은’ 보편성을 초월하는 고독감에 당혹하고 있다. 그가 ‘그대 떠난 자리’라는 실재적(實在的) 사실 앞에서 ‘그 사람’을 두고 그의 심연(深淵)에 흐르는 의식(stream of consciousness)은 ‘과거의 시간’과 대칭을 이루면서 더욱 그의 정서의 중심축(中心軸)은 흔들리고 있다. 먼길 떠난 그 사람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이 땅을 버려두고 저 혼자 갔습니다 하염없는 외로움이 너무 아파서 내 눈물 산더미되어 밀려 옵니다 그대 없는 세상 기쁨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슬픔이 강이 되어 흐릅니다 끝없는 이별 과거의 시간들이 허공만 쓸쓸히 채웁니다. 정영식 시인은 이처럼 작품「눈물」에서 명징(明澄)하게 읽을 수 있듯이 ‘먼길 떠난 그 사람’과 ‘그대 없는 세상’에서 추출하는 이미지는 그가 절감하는 ‘그대’에 대한 그리움을 내포하고 있다. 그가 ‘허공만 쓸쓸히 채’우는 정서의 원류에는 ‘외로움’과 ‘서러움’ 그리고 그리움의 대칭적 이미지가 전신을 관류(灌流)하고 있어서 ‘가는 세월따라 / 이제 한사람 두 사람 / 야속하게 내 곁을 떠난다 / 소중했던 내 사람 / 속절없이 떠나가고 / 애지중지 사랑으로 품어 왔던 / 아이들도 어느새 어른이 되어 / 저희들 삶을 찾아 내 둥지를 떠났다 / 섭리로 오는 이별 어쩔 수 없지만 / 나의 빈 마음 그 무엇으로 / 채울 수 없어 / 혼자서 마시는 외로움 한 컵(「떠난 사람」전문)’이라는 내공(內空)의 진실을 투영하고 있다. 이러한 그리움의 형태는 다시 ‘겨울 지나 새봄이 오면 / 키 낮은 풀잎들도 저마다 / 새 생명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 먼 길 떠난 그대 / 왜 돌아 올 줄 모르시나요 / 그대 기다림은 / 아무도 내리지 않는 / 간이역에서 처럼 마냥 / 서성이고 있습니다 (「그대여」전문)’라는 화자의 잔잔한 음성이 우리들을 감응(感應)케 유로(流露)하고 있다. 이러한 그리움의 저변에는 ‘그대’라는 화자에게의 절규로 작품「외로움」에서 ‘붉은 노을 서쪽 하늘 곱게 물들이는 시간 / 강물위의 물새는 화목한 가족 이루고 / 밀려오는 어둠에 숨어버린 서울 / 한강 다리위의 불빛은 / 강물을 밝히네 / 적요하게 깊어지는 밤 / 추위에 강물은 얼어만 가고 / 내일은 또 변함없이 밝아 올 것이다’라고 적시함으로써 ‘외로움’에 대한 단정이 그리움으로 전환하고 있다. 대체로 그의 그리움에 대한 양상은 고향과 과거 유년시절 또는 가족들의 애환이 중요 소재로 등장해서 ‘그리움’의 주제를 창출하고 있다. ‘그리움이여 고향아 앞강변 뒷강변 / 버들밭 실개천 흐르고 종달새 노래하며 / 고기잡고 다슬기 잡아 그릇에 담고 / 옛동산 노래하며 / 철없이 뛰어놀던 그곳(「유년시절」중에서)’이거나 ‘사랑으로 뭉쳤던 / 우리들의 옛추억이 / 맨발로 벌떡 일어서(「여고시절」중에서)’는 등의 회상에서 이미지를 재생하고 있다. 이 밖에도 고향과 ‘친구’, ‘어머니’, ‘아들’, ‘사위’ ‘손주’ 등 그들에게서 풍기는 애정이 ‘외로움’과 ‘그리움의 교성곡(칸타타)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어조는 다음 작품「그리움 . 2」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서 우리들을 더욱 감동케 하고 있다. 산마루 저 너머에 내 유년의 향기 풍기는 고향이 보이네 아지랑이 흐르는 평화로운 길이 보이네 함께 놀던 친구들 아직도 저기에 있을까 초가가 웅기종기 모여 앉아 정이 흐르는 내고향 앞개울 냇물은 아직도 유연한데 날 낳으신 부모님은 어느 별에서 돌아오실지 소식이 감감하고 목청 좋은 강아지만 나를 반겨 짖어댄다 2. ‘내 인생의 삶’과 ‘세월’의 조화 정영식 시인은 스스로 ‘인생’문제와 ‘세월(시간성)’과 융합(融合)한 조화를 탐색하는 존재 혹은 자아(自我)에 대한 근원문제를 심도 있게 천착(穿鑿)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의 다양한 형태의 삶을 통해서 획득한 체험의 중심에서 발현하는 인생의 소중한 가치관을 창출하기 위한 그의 지향적인 사유를 이해하게 한다. 총총히 세워진 집 그 안에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생길 행복 가득히 비는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앞산엔 하얀 눈, 밝은 마음으로 솟아나네 손주와의 대화 고사리같은 손 그것이 인생의 보람인가 내 인생의 삶 내 자신 사랑하라 표현하며 살아가고 싶은데 난 글로서 말하고 있네 --「인생」전문 이것이 그가 여망하는 ‘인생’이다. 그는 ‘내 인생의 삶’이 결론적으로 ‘내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잠언(箴言) 같은 언술로 시적 진실을 구현함으로써 그의 내면에 잠재(潛在)한 인생관으로 승화시키면서 자아의 성찰이 곧 존재의 진정한 의미임을 지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또 한해가 훌쩍 지나 간다 금년 한해에도 기필코 이 땅에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는 삶 어디까지 걸어가야 할까 끝없는 인생길 동정하는 마음으로 세월만은 나를 안아주네 --「지나가는 해」전문 이러한 인생의 의미가 바로 ‘세월’과 동류의 개념으로 형용(形容-modiflation)되는 보편적인 사유의 행방이지만, 정영식 시인이 갈구(渴求)하는 인생과 세월은 시간성에 따른 인간의 변화가 ‘끝없는 인생길’로 ‘이 땅에 필요한 존재로 /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그의 긍정적 현실이 현현되고 있다. 정영식 시인은 이처럼 ‘세월’과의 동행을 통해서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다변적(多變的)인 메시지의 유형(類型)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 아무리 인간의 삶이 세월따라 변하는 것이라 해도 / 인간이 살다가는 진리는 같다는 것을 / 육십이 되어서야 겨우 알아지네.(「이별」중에서) - 지나간 50여년 시간을 / 가슴 깊이 동심을 묻어 놓고 / 세월을 이기지 못해 / 자꾸만 변해가는 우리 모습(「동심」중에서) - 저 꽃이 피기까진 / 四苦의 고통을 인고하며 / 많은 세월 기다려 왔겠지(「지나가는 삶」중에서) - 모든 것이 사라지고 흘러가는 안타까움에 / 마음 조려 매달리지만 / 삶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고 / 세월도 같이 흘러만 가는데(「옛것이 그리워」중에서) - 기다리라고 처연히 절규해도 / 돌아오지 않는 과거로 가서 / 시들지 않는 욕망은 / 지나간 것에 몸부림 치네(「시계」중에서) 그러나 그의 삶(혹은 인생)이 세월과 용해(溶解)되어 진실로 정립된 그의 가치관은 막연한 자아에 대한 정관(靜觀)이나 자적(自適)으로 그냥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자각을 초월해서 그 섭리(攝理)에 순응하고 동화(同化)하는 지적 혜안(慧眼)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 오늘도 쓸쓸하여 하늘을 바라보네 마음이 멀어 저 멀리 있네 어떻게 할지 묻고 있는 마음 나 자신을 내려 놓아야지 깨달아 가네 --「내려 놓아야지」전문 보라. 정영식 시인은 그 ‘깨달’음에서 ‘나 자신을 내려 놓아야지’라는 어조로 인생과 세월 등 만유(萬有) 순리를 긍정하고 수용하면서 자각의 여유를 탐색하고 있다. 그는 ‘그냥 그렇게 무겁게 지고 있던 욕심 내려 놓고 / 사랑하며 용서하며 살고 싶은 이 마음.(「바람에게 전하리」중에서)’이라거나 ‘아아 인생의 마지막 길은 어디인가 / 덕으로 / 인격으로 / 사랑이 많은 자로 / 웃음을 주는 자로 / 오직 인내로 다듬어져 가네(「다듬어 가는 삶」중에서)’라는 등의 어조와 같이 자성(自省)과 자숙(自肅)의 자정적(自淨的)인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어령 평론가가 ‘인생의 골짜구니는 혼자 넘을 수밖에 없다는데에 그 고독이 있다. 그러기에 어떤 알피니스트의 등산보다도 그것은 어렵고 또 외롭다(「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중에서)’는 명언에서 인생의 진실이 적나라(赤裸裸)하게 제시되어 있다. 3. ‘하나님의 사랑’과 기원의 해법 정영식 시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또 다른 지각(知覺)을 소유하고 있다. 그의 자성적인 인생학에는 이와 같은 기독교의 염원인 박애주의가 그의 내적인 순수정서로 본류(本流)에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찍이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그의 글 「격언과 반성」에서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에의 사랑, 불가능이 있는 것 같지 않는 것에 대한 신뢰라고 말했다. 어쩌면 정영식 시인이 구가하려는 인생의 진실문제 또는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문제들을 절대적인 신앙으로 극복하거나 치유하는 하나의 철학으로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어리석은 자 궁휼히 여겨 성심 깊은 사랑으로 안으시고 모든 단점도 용서하시는 하나님 내 자신 부족함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 항상 필요하신 것도 주시며 기쁨도 주시고 감사하는 마음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도 주신다 그리고도 멈추지 않으시고 내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도 주신다 이 모든 것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전문 하늘을 바라보며 부족한 인격 다듬어 가리다 하늘은 무엇을 원할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부끄럼 없이 살아가는 존재로 매일매일 성령으로 다듬어 가리라 하늘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리라 슬프거나 즐거우나 하늘에 감사하리라 깨달아 가리라 --「하늘이 원하는 대로」전문 정영식 시인의 신앙적인 신심(信心)이나 정서에는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귀의와 더불어 강렬한 기도로서의 삶의 기원을 간구(懇求)하고 있어서 그가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는 고뇌와 갈등의식들을 조화롭게 해소하고 융화하는 해법을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단점도 용서하’고 ‘내 자신 부족함을 알게 하’며 ‘내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도 주’는 거룩한 신앙적 대상으로서 인생의 지표를 견고하게 세우는 지주(支柱)이다. 이러한 시적 대상이 경외(敬畏)하는 ‘하나님’이니까 다양한 기원의 의식도 발현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다듬어 가리라’, ‘원하는대로 살아 가리라’, ‘감사하리라 / 깨달아 가리라’라는 신앙의 중심에서 인생의 기도로 정리하고 있다. 한편 그는 ‘생명의 젖줄로 시원된 강물에 / 고이 접은 종이배 띄우며 / 사랑하고 웃으며 살고 싶다 / 줄기 줄기 흐르는 맑은 물 /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 안고 / 님의 향기 내품으며 / 그대 사랑안에서 / 세상 끝날 그 순간까지 / 기도하며 살고 싶다(「말씀」전문)’거나 ‘이 세상 끝날 때 까지 참을 줄 알며 / 그 말씀 고이 붙잡고 살아가는 나이고 싶다(「사람의 마음」중에서)’라는 ‘.......싶다’와 같이 그의 순응(順應)의 진실이 기원으로 강렬하게 분사(噴射)하고 있다. 이러한 기도나 기원의 의식은 대체로 ‘낮고 낮은 마음으로 / 세상 오게 하소서 / 오직 님의 뜻따라 / 걸음 걷게 하옵시고 / 저의 모난 성격 / 그대 원안대로 / 다듬어 주소서 / 말씀에 순종하며 / 만물을 사랑하는 / 사람되게 하소서(「님이여」전문)’라거나 ‘새벽이 아침을 / 깨웁니다 / 하나님 바라보며 / 숨쉬는 저의 삶을 / 어여삐 여기시고 / 오직 사랑으로 살아가게 / 하옵소서 /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 눈이 오나 비가 오나 / 정해진 저의 길 / 하나님 품안에서 / 걸어가게 하옵소서(「새벽 기도」전문)’에서와 같이 화자의 어조가 ‘하소서’ 혹은 ‘하옵소서’로 간절한 여망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그가 진정으로 기원하는 신앙의 의지가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다. 4. 자연 서정과 순응적 미학 마지막으로 정영식 시인에게서 그의 시적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을 음미(吟味)하는 서정성의 탐구이다. 그는 꽃과 황금들판, 파도, 밤이슬 등 다양한 시각적인 사물을 소재로 하여 아름다운 서정을 직시하고 있다. 녹음방초 우거진 짙푸른 산에는 밤꽃향기 고요히 흘러 나오고 그 향기 그윽하여 가슴속 깊이 파고드네 한여름 더위 피해 강가에 내려앉은 수양버들 강물위에 떠내려 가고 강물은 조용히 조용히 흘러 가네 끝없이 고향으로 싣고 가네 아름다운 자연 춘하추동 이어지는 자연의 섭리에 감사하고 노송 등걸에서 우는 매미소리 감미로운 음악으로 퍼져 나오네 잠자리떼 하늘 높이 날고 허공에 새겨지는 세월 깊은 자연의 소리 가슴 깊이 들려오네 여기 작품 「자연」전문에서 알 수 있듯이 ‘녹음방초 우거진 짙푸른 산’, ‘강가에 내려앉은 수양버들’, ‘노송 등걸’, ‘잠자리떼’ 등의 시각적 이미지와 ‘밤꽃향기’ 의 후각적 이미지, ‘우는 매미소리’, ‘감미로운 음악’, ‘허공에 새겨지는 세월 깊은 자연의 소리’ 등 청각적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이미저리(imgery)로 이루어져서 시의 묘미를 더욱 상승시키는 효과에 부응하고 있다. 현대시에서 서정성을 중시하는 것도 자유자재로 이미지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하나의 감각으로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감각과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제시하여 공감각적(共感覺的-synesthetic image) 이미지를 구사하는 시법을 많이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영식 시인도 이와 같이 시각, 후각, 청각을 활용해서 우리들의 시적 정취를 배가하고 있는데 다시 ‘살랑 살랑 바람이 일고 / 산은 푸르러 / 아카시아 향기 속으로 / 숨어드네 // 푸른 한강은 고요하게 / 흘러만 가고 / 새들은 평화롭게 노래하며 / 춤추네 // 강물따라 흐르는 마음 / 자연에 취하고 / 자연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잠재워 주네(「자연의 섭리」전문)’와 같이 자연과의 동화(assimilation-시인이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고와서 그것을 내적 인격화하는 원리)를 염원하고 있다. 우리 현대시법에는 이와 반대로 투사(投射-project)라는 것도 있어서 시인이란 정체가 없기 때문에 그가 계속해서 어떤 다른 존재를 채우는 것, 곧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는 원리를 말하는데 이것을 우리는 낭만적 자연관의 두 가지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높디 높은 푸른 하늘 해맑은 소녀의 웃음처럼 반갑게 손짓하네 아름다운 마음으로 소녀의 밝은 웃음으로 하늘하늘 허리 흔들며 춤추는 들국화 해맑은 웃음으로 알싸한 가을향기 풍기며 방긋 웃으며 손짓하네 --「들국화」전문 바스락이는 가을길을 나선다 슬픔도 아픔도 잊혀져 간 나를 겨울 억새숲에 숨겨두고 거친 바람을 소통하고 싶다 기다리지 않아도 돌아오는 계절 --「겨울을 알리네」전문 그의 서정은 소박하다 못해서 순진하다. 그의 순정성이 작품 속에서 발효(醱酵)되고 숙성되는 연유는 아마도 그가 농촌 자연이 바로 그의 오감(五感)을 통해서 이미 일상화한 체험의 결과라고 단정할 수 있다. 그는 ‘해맑은 소녀의 웃음’과 ‘허리 흔들며 춤추는 들국화’의 대칭적인 이미지의 창출은 그의 순박한 한 여인의 감성이 그대로 흐르고 있으며 ‘나를 겨울 억새숲에 숨겨’둔 ‘겨울’의 ‘소통’은 그가 보편화한 시간 개념이 아니라, 자연관에서 반추(反芻)하는 계절의 시간성이 우리 인간과의 상관을 현현하고 있다. 정영식 시인은 이밖에도 ‘쏟아지는 물소리를 저 홀로 듣고 섰다(「소나무」중에서)’거나 ‘나 또한 서서히 / 갈잎으로 물들어 가겠지(「가을 단풍」중에서)’, ‘가을은 소리 없이 / 내 발 아래로 다가선다(「황금들판」중에서)’ 그리고 ‘그대 손 꼭잡고 / 풍향기 짙은 뚝길을 걸었네(「안개」중에서)’ 등 헤아릴 수 없는 자연을 만끽하고 있다. 이제까지 정영식 시집『바람에게 전하리』의 작품세계를 살펴보면서 그가 평소에 간직한 시적 감응이 무엇인가를 짚어보았다. 대체로 인생과 세월의 동시적 흐름과 여기에서 획득하는 고독감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 고백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는 최상의 마음이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으로서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라는 어떤 명언이 투영되는 작품의 창작에 더욱 열정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