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를 가던 나만의 나침판이 필요하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을 떨친다면
나침판은 가장 정확한 방향을 가르쳐 줄것이나
두려움을 느낀다면 나침판은 제멋대로 움직일것이다.
율곡리 습지
우리나라 3대 습지 하나인 경남 창녕의 우포늪처럼 엄청 큰 줄았는데 시골동네 조그만 연못처럼 작은 습지며
습지 주변으로는 외래종 꽃들과 드넓은 청보리밭이 조화를 이루게 잘꾸며 놓았다.
습지에는 부들이란 물풀이 자라며
오래된 밤나무가 한곳에 줄지어 서있는 풍경은 전형적인 시골 동네 어귀를 지날때 모습처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것 같고
가을에 온다면 떨어진 밤알 몇개 덤으로 주워 갈수 있겠다.
습지 주변으로는 초여름 따사로운 햇살처럼 누렇게 익어가는 청보리가 한창이며
간혹 시원한 바람이 불때마다 눈이 시원하고 마음까지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넓은 땅에 청보리를 심어 마음을 즐겁게 하는 연천군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할배님은 도장하나 찍으시고
둘레길은 한적한 산길로 돌아가지만
우리는 일광욕도 해야하고 지나가는 자동차 구경도 할겸 잠시 도로 갓길로 진행하며
자동차 굉음소리를 벗삼아 걷게된다.
자동차 소리가 듣기 싫을쯤 임진강이 보이는 적벽 산책 나무테크길로 걸으며
그렇게 많이 보이던 철책은 어디서 부터인가 보이지 않았고 임진강 물이 흐르는 곳을 보고
여유롭게 진행한다.
장파리로 와서
장파리에서 누리길로 진행 하지만
철책 인근으로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들고 5만분의1 지도를 가지고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진행하는 동안 지도 생각만 연신한다.
후답자분들은 꼭 지도를 가지고 오시기 바라고 누리길 지도는 그저 앞만 보고 가는것이기에
가급적 지도를 가지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농로따라 오다가 밭 옆길로 돌고 돌아 올라와 개미 허리인양 짤록한 고갯마루에 도착해
잠시 그늘에 누워 쉬었다 가기로 한다.
그늘좋고 바람좋고
자장리 쉼터에서
원두막 마루 한쪽이 부서져 있어 누군가를 위해 임시 처방으로 손봐 드리고
(대못 하나만 있으면 원상 복구 해드릴텐데...)
이곳에서 쉬는 동안 장파리 중국집에 전화를 해서 짬뽕 시켜서 먹게된다.
누가보면 모심기하고 먹는줄 알겠지만 짬뽕에 공기밥까지
자장리 마을 회관
마을회관을 지나니 농로 배수로 따라 맑은 물이 흐른다
장자리에서 돌고 돌아 올라오니 다시 도로가 나와 도로 갓길로 잠시
누리길은 다시 도로길을 벗어나
솔농원 입구
도로갓길 임도길로
이런길은 무지막지 더운곳이다.
길가를 접령하려 길게 내려오는 칡덩쿨
한여름 장마가 끝날 무렵이면 이곳을 모두 접령할것 같이
기세등등 내려온다.
장남교를 건너야 하니
황포돛대 입구 느티나무 그늘에서
김포에서 이곳까지 101km지점
이곳에서 함께 걸어주신 노송님. 노대장님 그리고 지원해주신 알프스님은 댁으로 돌아 가시고
내일까지 혼자 걸음하기로 한다.
세분 더운날 고생 많이 하셨구요
다음구간은 강원도 철원에서 어디까지 이어갈지 모르겠으나
조금은 남겨 두어 마지막은 노송할배와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황포돛대 나루터
멀리서 보는 임진강은 깨끗해 보이지만 국내 여느 강 처럼 그런색이다.
지금까지 봐오던 녹조물,흙탕물,간장색을 닮은 물
이곳에 서 있으니 영주에서 예천으로 흐르는 국내최고의 아름다운강 내성천이 다시 생각나는건 왜일까
4대강 삽질 하면서 온통 직선으로 만든 전직 대통령이 생각난다
인생이란 굽이 돌고 돌아 한모퉁이 더 돌아가면 뭐가 나올지 알듯 모를듯 궁금해야 살맛나지 않을까?
직선으로 펼쳐놓은 많큼 멀리 보이겠지만 전직 대통령으로써 누구보다 멀리 인생을 볼듯 했지만
처신을 잘못 했으니 지금은 수감되어 변명에 변명만 일삼아 흙탕물보다 못한 사람이라 여겨진다.
그저 말없이 흐르는 물을 생각한다. 막히면 돌아가고
돌아가다 막히며 또 기다릴줄 알고
세상 모든 사물에 생명을 주고 흘러 지나가는 물이지만 정작 물 자신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장단교에서본 임진강
물은 깨끗해 보이지만 그렇게 깨끗해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주위 풍경은
한강의 지류답게 한강을 내려오는 충주-원주 부론면-섬강 인근의 풍경과 너무나 흡사한 모습이다.
4대강을 하기전까지 국내를 대표하는 강은 모두 이런 모습이었을텐데...
이런 풍경 어디서나 구경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해보며
맑거나 흐리거나 유유히 흘러 한강 품에안겨 서해바다로 흘러들기까지
모든 사물에 생명을 주고 흐르는 물이 부러울뿐이다.
이제 경기도 파주땅을 벗어나 경기도 연천땅으로 들어오게 된다.
도로가에 대형 경찰 버스가 한대 서있고 검문하던 경찰분이 "어디까지 가냐"며 시원한 물한잔 하라고 주셨고
잠시 빨간 파라솔 아래에 쉬면서 이야기 나누다 경찰분께 "수고 하시라"고 인사하고 ...
다음 갈길로 가는동안 그늘없는 아스팔트길의 열기는 더 뜨겁게 다가온다.
아직 갈길은 멀고 이제 겨우 104km지점이다.
저녁에 왕징면에 도착할듯
장남면 사무소
아스팔트 도로가에서 우측길로 들어오다 어느마을에서 떨어트린건지 모자가 없다.찾으러 가고 싶지만
왔던길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덥다 덥다"하며 걷는다.
찾으러 갈걸 그랫나!
숭의전 20,5km
경순왕릉이 인근에 있다는데
경순왕은 신라의 제 56대 왕이며, 935년 고려를 건국한 왕건에게 나라를 바친 신라의 마지막 왕 이다.
그리고 신라의 왕들중 유일하게 경기도 땅에 무덤이 있으며 고려 왕실에서 왕의 예로써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한많은 마의태자에게 망국(亡國)의 한(恨)을 느끼지 못하게 왕위라도 물러주고 그만 두시던가 하시지...
경순왕릉을 찾아가보고 싶었으나 ...
지금은 내 갈길도 바쁘니 경순왕과 금강으로 들어간 마의태자와 월악산 덕주골의 덕주공주를 생각하며 걷는다.
동동마을 방향
사미천교을 건너며
깨끗하고 시원한 물에 잠시 발이라도 식혀 본다.
사미천교를 건너 강가 비포장 임도길로 진행후
전동천을 한번 더 지나게된다.
강속에 트랙터 타이어가 있어 꺼내 볼까 했지만
무거워 엄두가 안나서 포기하고
임진강으로 합류하는 사미천과 장천 합류지점으로 갈대가 무성하고
멀리 임진강가의 번지 점프대가 보인다.
강이란 바로 이런게 강이라
습지가 보이고 모래가 보이는 맑은강
한강에는 강원도 정선 임계면 부터 단양까지 180km가 가장 멋지고
충주-원주 부론면 섬강이 합류하는곳까지 이런 모습이다.
낙동강에는 봉화-안동댐 상류인 도산서원까지 가장 멋스런곳이며
안동댐 하류-예천 삼강주막 아래까지 이런 모습
영산강에는 담양 -광주 인근으로 조금 비슷한 풍경이 나온다
섬진강 구례 이후로 많이 닮은듯 하지만 섬진강이 더 멋지고
금강에는 용담댐 하류-금강 휴게소 상류까지 가장 아름답다.
개인적인 생각이니 괜히 딴지 걸지 마시라
멀리 감악산이 보이고 비룡대교와 바로 앞에 원두막이 보여 잠시 누웠다가 가기로 한다.
비룡대교는 연천군 노곡리와 파주군 적성면을 연결해 주는 다리
임진강으로 낚시꾼들이 많이 보이고
대부분 루어 낚시를 하시는듯
백학면 학곡마을로 가는길에
도로따라 오다보니 비룡대교 초입에 식당이 줄지어 있어
그중에 거북이 한식부페에 들어가 밥먹고 음료수 몇병 사서 나온다.
식당의 주인 아주머니가 무척 친절하고 인심이 좋은듯
감악산과 강가 절벽이 멋스런 임진강
둘레길은 강가 모래길로 이어지다
학곡마을로 올라와서
오래된 물건을 수집하는듯 사랑방 쉼터로써 자리 잡은건지 알길 없으나 대문이 열려있어 기웃거려 본다.
마침 주인장이 없어 다행이지 지나가던 마을 분이 보면 뭐라 그럴까?
"거 누구요"라며 한마디 하고 갈듯하다
백학면 학곡리마을 고인돌
제주도에서 건너온 돌인듯 한데
이곳 주위에서 구할수 있는 현무암이란다.
도로따라 오다가 오르막 오르기 싫어 강가 우측으로 가는 임도길로 걸어 들어가니
텅빈듯한 소키우는 우사에 작은 당나귀 두마리만 보인다.
당나귀 구경삼아 임도 길따라 더 들어가니 끝부분에서 집이 한채있고 길이 막혀 있다
산으로 오르면 둘레길과 이어질듯 하지만 괜히 고생하기 싫어 다시 돌아나가니 조금전에 본 당나귀란 녀석들이
웃으며 반긴다.
당나귀만 구경하고 돌아나와 다시 도로따라 올라오니 마아리 동네 나홀로 집이 있는곳으로 와서 산으로 다시 올라와 둘레길만난다
이곳까지 120km지점
이제 해는 넘어가고 어둠이 찾아 올 무렵
한적한 산길이 너무 좋고
발 걸음이 빨라진다.
어둠이 오기전에 많은걸 기억하고 보려면
감악산과 보일듯 말듯 휘어져 흐르는 임진강
세월이 흐를수록 물은 간장색으로 변하는데 왜그럴까
숭의전 가는길에 본 임진강가의 낚시꾼들 모습
지나온 산길 아래 커피숍이 보이나 불빛도 없고 조용하다
강이 내려다 보이는 좋은곳에서 커피한잔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정작 분위기 좋은곳은 모두 지나친다.
언제나 길을 걸을때면 "여유가 묻어나는 길을 만들어야지" 생각은 하는데
뭐가 그리 급한지 좀처럼 뒤 돌아볼 여유조차 없어진다
평화누리 11코스
숭의전은 조선시대에 전왕조인 고려의 태조 왕건을 비롯하여 나라를 부흥시킨 4명의 왕들과
고려 충신 16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 사당이다.
조선초기에 건립 되었으며 1,451년 문종이 숭의전이라 이름 지었고 이후로 숭의전의 관리와 전례는
고려왕조의 후손에게 맡겨졌다.
숭의전
왕들이 죽어서 어디로 가나
고려 왕실을 지키는 나무(느티나무)
나무는 550년 조선 문종 2년때 왕씨 자손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숭의전은 조선시대에 고려 태조.현종.문종.원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사당으로
이성계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숭의전을 둘러보고 나오는길에 능선따라 오면 아미타사란 작은 굿당을 지나게 되는데
저녁 무렵이라 음침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능선길은 더이상 오를 수 없고 도로따라 돌아 가야한다.
어둠이 찾아오는 임진강
이곳 강가 게스트 하우스에서 보는 강은 참좋다.
사진 한장 찍다보니 주인 분께서 어디서 오냐고 하신다.
숭의전 아미2리
이곳에서 어둠이 찾아오고 평화 누리길로 이어갈까 하다, 왕징면에 가서 저녁 밥이라도 먹을겸 도로따라 왕징면으로
찾아간다.
초저녁이지만 시골 도로가로는 차량 이동이 거의없고 조용하기만 하다
혹시 모르니 배낭에 달아둔 작은 파란 깜빡이등 두개 켜고, 한강을 지나오며 주운 렌턴을 켜보니 이건 자동차 쌍라이트
수준으로 밝다
연천군 왕징면
왕징면에 오니 식당은 없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하나 사고 우유 몇개 사들고 나와
어디서건 잠시라도 쉬어갈곳을 찾아 돌아 다니다 파출소까지 들어온다.
왕징 파출소 경찰관께 양해를 구하고
파출소 구석에 보이는 마루에 은박지 깔고 조금전에 사온 맥주 한잔하며
시골 모기 밥 줄겸 침냥 속에 들어가 머리만 빼꼼히 내민체 운기조식 겸 잠을 청한다.
임진강이 자리하는 시골 파출소
검은 밤 하늘위에 달빛과 그곁으로 목성이 반짝이고
별빛 구경삼아 있으니 잠이 소리없이 찾아온다
얼마나 잤을까 차가운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이슬이 소리없이 내린다.
이리뒤척 저리 뒤척이다 앉았다가 누웠다가 밤이 길긴 길구나
이런날은 바늘로 허벅지라도 찔러야 하나
왕징면 임진교
새벽녘까지 모기 밥 주다가 일어나 군남댐 방향으로 가는길에 임진교를 건너고
달빛좋고 한적한 강가길로 이어간다.
조용하니 걷기좋고
이 밤에 언놈한놈 자빠져도 모를판이다.
북삼교 다리에 불빛이 보이지만 어둠이 거의 물러나는 시간이다.
북삼교는 임진강 건널 수 있는 마지막 다리
멀리 밝음이 찾아오는 시간
군남 홍수 조절댐
북삼교 허브비리지 방향
군남 홍수 조절댐
임진강 유역의 근원적 홍수피해 방지 목적과 북측 황강댐에 의한 하류 하천의 불규칙한 물 흐름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었다
북한의 황강댐에서 많은물을 방류하면 이곳댐은...
유역면적 남한측 108km제곱
북한측 4,083km제곱
군남댐 저수용량 7,106만톤
댐높이 26m
댐길이 658m
군남댐 두루미 조형물이며
임진강가로 천연 기념물 202호로 보호받고 있는종이다.
임진강을 연강이라고 불렀던때가 있었나 보다.
북에서 흘러오는 임진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옥녀봉으로 한번 가봐야지 하고
두루미의 화려한 비상
군남댐
남,북한 임진강 댐 저수량 비교
북한 황강댐 총 3억 5천만톤
남한 군남댐 총 7,106만톤
남,북한 댐을 비교한다면 비교가 안되는 용량이다
북한에서 무단 방류하게 된다면...임진강 하류지역은
실제로 인명피해가 크게 발생하기도 했다.
사업개요 설명
옥녀봉 3km금방 갈듯
이른 아침시간이라 조용하니 참좋다
옥녀봉 오르는길에 본 임진강 군남댐
멀리 옥녀봉이 보이지만 조금 돌아가야한다.
임진강 건너는 가지 못하는곳 이며 인근 태풍 부대에서 지키는곳
신탄리 역방향
가야할 임도길
옥녀봉 고랭지 배추밭인듯 하지만
지금은 텅빈 들녘으로 조망에 방해되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나온길
멀리 한북정맥길이 보이고 그 앞으로는 왕재 지맥길이 자리한다.
앞은 옥녀봉
물안개 가득한 임진강과 높은곳은 태풍 전망대가 있는곳이다.
이곳까지 왔으니 저곳 전망대에 한번 가봐야 할듯 방향을 저곳 태풍 전망대로 설정해서 가기로 한다
임진강이 휘돌아 가는길에 물안개가 자욱하지만
저곳은 민통선이기에 들어갈 수 없고
그저 평화로운 강가 모습만 눈에 들어 온다.
옥녀봉 205m 전망대의 거인상
하늘에서 황제의 딸인 옥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봉우리에는 거대한 그리팅맨이 허리굽혀
어서 오라며 인사를 한다
옥녀봉 정상
옥녀봉 전망대에서 본 태풍 전망대와 연천군 중면이 보인다.
멀리 감악산 방향
지나온 군남댐
이곳 옥녀봉은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한 곳이지만 삼국시대때는 고구려가 전략적 요충지인 이곳 백제땅을 차지하기 위해
남하 하던곳이고
6,25전쟁때는 동족간의 치열한 접전을 벌린곳이다.
가야할 방향으로는 잡풀이 무성하다.
삼국시대때 축조된 옥녀산성과 옥녀봉 정상 주변으로는 온통 군부대시설 관련이고
옥녀봉에서 잠시 왔던길로 내려와 로하스 파크 방향으로 이동하게 되며
로하스 방향으로 가면 둘레길이나 중면 사무소 방향으로 옮겨 태풍 전망대에 갈 수 있을것 같아
전망대 방향으로 가보기로 한다.
옥녀봉 삼곶리 전망대
전망대는 좋으나 내려 가는길은 인적이 드물어 그런가 잡풀이 너무 무성해
지난밤에 내린 이슬이 가득하고 축축한 풀밭으로 조심해서 내려와도신발과 양말이 다 젖어든다.
지나온 산 마루길
작은 개울을 지나서
중면 삼곶리 행정 마을에서
도로따라 조금 들어가니 태풍 부대 초소가 나온다.
부대 초소에서 군인분들이 출입 금지라고 한다.이곳 전방 초소에서 태풍전망대까지 지척이며
태풍 전망대에서 휴전선까지 800m 북한군 초소까지 1,6km떨어진 곳이다
휴전선 155마일중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로 유명한곳이기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아직 관람 시간이 아니라며 9시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두시간 가량 어디서 기다리나
부대 방향으로는 사진일 찍을 수 없다고 해서 반대 방향으로 한장 찍어도 되냐고 하니 그건 괜찮다고
이곳 전망대는 볼수 없을것 같아 쓸쓸한 발길을 돌리지만
그것보다 아스길로 돌아가려니 답답하기만 하다.
태풍 전망대는 한참 기다려야 하고 부대를 돌아나와 다시 도로따라 하염없이 걷는다.
40분정도 걸어 나오니 이곳 도로 언덕에서부터 평화누리길은 다시 이어진다.
최전방이다 보니 북으로부터 침략을 받았을때를 대비 콘크리트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유사시에 장애물을 폭파하여 적 탱크를 저지하는 방어물이다.
로하스 파크길에 자리하는 습지
이곳 습지는 마을에서 농사짓던 논을 습지로 만들어 보호하는중
옥계 마을을 내려오니 나이든 木장승 두분이 배꼽빠져라 웃으며 반기시고
잠시 둘레길을 버리고 도로따라 가며 신망리로 넘어 가기로 한다.
누리길을 뒤로하고 도로따라 오면 왕재지맥 미래고개을 지나게 되며
고갯마루 넘어 길가 어딘가에 있을 식당 찾아본다.
신망역 인근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아이스 크림 하나 사서 입에 물고 도로따라 진행
둘레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나 길가에 줄지어 기다리는 은행나무가 좋아
이길로 곧장 가보기로 한다
신서면 도착
신서면을 지나며 열쇠 전망대가 있지만 왕복하는 거리가 만만찮아 그대로...
동해로 가는길에 휴전선 인근으로 전망대가 몇개나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곳이라도 가봐야 할텐데...
이러다가 한곳도 못가보고 끝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신서면 도착해서 아이스크림 몇개사고
도로가로는 온통 오디가 가득 하지만
두손으로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어
도로길이 지겨울 무렵에 누리길로 가보기로 한다.
신탄리역의 철마는 달리고 싶다 안내판이 보이고
꼭 와보고 싶었던곳을 찾게되니 기분은 좋지만
너무 덥다.
평화누리길 경기도 땅을 거의 벗어날 무렵
따가운 햇살에 도로는 이글 거리고
발바닥의 물집은 그만 두고 집으로 가자고 야단이다.
발목 통증에 물집까지...
역고드름 동굴
겨울에 오면 뭐좀 볼것 있으려나
지금은 아무것도 볼게 없고 천정에서 물방울만 몇개씩 뚝뚝 떨어진다.
역고드름 동굴
별로 권하고 싶은곳이 아니다.
동굴 천정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나 바람도 없고
역고드름 동굴에서 다시 돌아나와
차탄천 구경원선
경원선은 서울 원산간 223km를 잇는 철도이며 1899년 6월 17일 국내 철도 용달회사가 철도 부설권을 얻었으나
자금 사정으로 착공하지 못하던때 중,러,일 전쟁으로 군사상의 피요성을 느낀 일본이 강압적으로 철도 부설권을
대한재국 정부로부터 이관받아 경술국치 직후인 1910년 10월에 착공하여 1914년도 8월에 완공하게 된다.
지루하던 경기도 땅을 벗어나 이제 강원도 땅으로 들어 온다.
이곳에 오니 말투부터 달라지는듯
강원도 평화누리길이 이어진다.
가야할길에는 온통 군인들이 참호 작업과 삐삐선 작업중이다.
배낭에 든게 있어야 뭐하나 내어 줄텐데...
먹을게 있어도 군인들이 한둘도 아니고
철원군 백마고지 역으로 올라와
인증 사진만 담고 곧바로 백마고지 전투 전적비가 있는곳으로 향한다
백마고지역에도 철마가 달리고 싶다는군요
까만 피부
자작나무를 뒤로하고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
누구나 그렇지만 태극기만 보면 가슴이 뛰고 숙연해진다.
그동안 호국산행을 통해서 6,25전쟁 낙동강 방어전투 격전지는 모두 찾아봤는데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의 지평리 전투 격전지,한북정맥길의 광덕산도 그렇고
백마고지 위령비
백마고지 위령비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희생된 아군과 중공군 등 17,535명(아군 3,146명.공군 14,389명)의 영혼을 진혼하기
위해 건립한것이다.
백마고지 전투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백마고지를 확보하고 있던 한국군 9사단이 중공군 제 38군의 공격을 받고 거의 열흘동안
혈전을 수행하며 12차례의 쟁탈전을 반복하며 24회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벌인끝에 결국 적을 물리치고 방어에
성공한 전투다.
열흘 동안 이곳 백마고지에서 싸운 전사자는
중공군 전사자:8천 234명
아군 전사자:3천 396명 이다.
고지 쟁탈전이었던 백마고지 전투
1952년 철원평야의 무명고지였던 백마고지에서 벌인 전투로서 6,25전쟁중 가장 치열했던 낙동강 방어 전투지 몇몇곳이 생각난다.
이곳 백마고지 역시 많은 전사자를 내며 하루 2번 많게는 5번 이상 주인이 바뀌는 혈전이 이어진다.
10일간 24회 고지의 주인이 바뀐곳이다.
철원평야 넘어 보이는 산은 군국 9사단이 지키는 최전방 백마고지 전투의 전설을 간직한 그곳 백마고지
10일간 저곳에 집중된 포탄수 27만발이라고 하니 어느것 하나 남아 있지 않았으리라...
백마고지 전투 명칭
백마고지는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 위치한 해발 395m의 낮은 야산으로 전쟁전에는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무명고지로써 전선이 고착 되면서부터 철의 삼각지 좌측부를 감시하는 중요 지형지물로 유명해진다.
명칭의 유래는 전쟁중 포격에 이해 수목이 모두 쓰러지고 그형상이 누워있는 백마처럼 보였기 때문에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였으며 이 전투를 계기로 전투를 수행한 제9보병사단을 백마부대라고 부르게 된다.
백마고지 전적비에서 많은걸 느끼며 마음을 가라 앉히고 자리를 옮겨간다.
도로길따라 가며 좌측이나 우측은 온통 지뢰지역이라며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철원평야 넘어 보이는곳은 북한땅이다.
도로 양쪽모두 지뢰지대라며 통제보호구역이다.
군인들이 지키는곳은 사진으로 담지 못하고
전망대 방향은 신원 확인하고 가면 될것 같은데
왕복 14km
노동당사
지상 3층 규모의 노동당사는 한국전쟁 전에 북한이 노동당사로 이용하던 건물이며
이곳 지역주민들의 돈과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해 만든것으로 무철근 콘크리트 방식으로 지었다
그당시 반공 활동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잡혀와 죽었으며 불에 그을린 흔적과 총과 포탄자욱 탱크가 지나가며
부순 외벽 전체적인 건물 뼈대만 남아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안내 글씨가 잘 안보이죠
노동당사 앞에서 트럭으로 간단한 먹거리 장사하시는 분을 만나
걸어온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대단한분을 만나서 반갑다며 막걸리와 음식값은 안받겠다고 하신다.
감사한 마음 전해 드리며
구)철원 제일교회
읽어 보시죠
읽어 보시고
이곳을 지나 도로길을 따라 철원군 동송면까지 나와
다음 갈길이 야간이고 군인들이 통제하는곳이 있어 그만 두기로 한다.
무엇보다 전자 지도로는 도통 모를길
다음에 갈때는 5만분의1지도를 가지고 가야 마음편하게 이어 갈것 같다.
이번 판보다 늘 다음판이 기다려지는건
아직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두려움과 설레임이 있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