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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문학관 아카데미 18기-7차시 (3월 28일 월)
습작품 합평(4)
1. 자서전/남택수
1)사회복지관에서 전화가 왔다. 어르신들의 생애를 기록하는 자서전 쓰기를 도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대부분 스스로 살기 어려워 도움 받으며 지내는 홀몸 노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이란다.
2)자서전은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 누구나 자기가 살아온 삶의 희로애락이 담긴 굽이를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직접 쓰던지, 누구에게 맡기던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써 남기고 싶어 한다.
3)자서전은 옛날부터 많이 쓰였다. 고려 시대 이규보가 백운거사전白雲居士傳을 남겼고, 조선 시대 혜경궁홍씨의 한중록閑中錄이 유명하다. 근세의 대표작은 김구의 백범일지라 할 수 있으며, 현대에는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을 비롯한 여러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 많다. 더러는 필력이 모자라는 부자들이 전문 작가에게 맡겨 그럴듯하게 만든 자서전도 여럿 보았다.
4)고향 집 벽장 속에 한문책 한 권이 있다. 한지에 세필로 써서 노끈으로 묶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이다. 할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버지 만오공晩悟公의 일생을 기록한 유사遺事이다. 이 책에는 유사를 바탕으로 다른 분이 기록한 행략行略과 묘비명墓碑銘, 제기齊記, 편액扁額등이 실려 있다. 유사와 행략은 증조부의 생애를 기록한 것이니 일종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5)자서전은 유명한 인사나 성공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전문작가나 문인만이 쓸 수 있는 책은 더욱 아니다. 책의 분량이 제한되거나 이야기의 방식에도 별다른 기준이 없다. 사람마다 자신의 삶과 겪은 일이 다르니 그 내용도 같을 수가 없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솔직하게 거짓 없이 나타내면 될 것이다.
6)복지관 어르신들에게 자서전 한 권은 그 가치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이 귀한 존재이었다. 힘든 삶을 살아온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남은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큰 역할을 하였다. 이들 가운데 어떤 이는 글씨를 읽을 수는 있으나 쓰는 것이 서툴렀다. 또 삶의 질이 낮고 우울하고 외로우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자서전 활동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고 기록해주는 과정에서 마음의 위로를 받고 자신감을 회복하기도 하였다.
7)실제 자서전 만들기에 참여한 어른들이 말하기를 “보잘것없는 내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어 고맙습니다. 오장육부를 씻어낸 것 같이 속 시원합니다.” “내 인생은 험난하고 자랑할 것 하나 없는데, 자서전을 완성하고 보니 내가 주인공이고, 나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은 것 같아 너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내가 이런 책의 주인공이 되다니 너무 영광이고 보람됩니다. 내가 그동안 살아온 노력의 보상을 받는 기분입니다.”라고 하였다.
8)아카시아 꽃향기가 바람에 날리는 때부터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는 계절까지 두 분의 할머니를 여러 차례 만났다. 이들은 홀 노인으로 장애아들과 함께 사는 것이 같았고, 또 가슴 속에 배우자에게 받은 상처가 깊숙이 크게 남아 있는 점이 통하였다. 그럼에도 이야기 마지막에는 원수 같은 남편을 용서하고 잊어버리겠다고 하였다.
9)먼저 농촌에서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나 스물두 살에 결혼 후, 온갖 고초를 다 겪은 여든아홉 살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내 몸은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 거동이 자유롭지 못해 실버카를 의지하여 겨 우 출입하는 형편이지만, 지나간 일들은 영화처럼 똑똑하게 기억나는 것이 신기하다. 작가 선생님에게 나의 과거를 말하는 것이 부끄러워 처음에는 주저되고 망설여졌지만, 몇 차례 만나다 보니 조금씩 미더워지고 먼 거리에서 나를 위하여 봉사하러 오는 것이 고맙기도 하여 마음속에 꽁꽁 묻혀있던 과거를 명주 타래 풀 듯 술술 뱉어내니 속이 후련하다.
살아보니 길지도 않은 세상, 원망하지도 말고 원망받을 짓도 말아야지.
섭섭한 일 있으면 그때그때 풀어버리자. 가슴에 묻어 두면 병밖에 더 되겠는가.
죽기 전에 남편 원망 그만하고 다 잊어버리자. 지난 세월 고생한 것 다시 생각하 기 싫고, 남 원망도 하지 말자. 원망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나. 마카 다 용서하고 잊어버리자.
생각해보면 모두 내 탓이 많다. 저세상 가서 남편 만나도 원망할 것 없이 모두 용서하고 “ 마카 다 내 탓입니다.”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남 욕하기 전에, “다 내 탓이요.” 하면 얼마나 좋겠나.
10)다음은 대도시에서 맏딸로 태어나 학창 시절에 운동선수를 지낸 일흔다섯 된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는 것으로 생각된다.
누구도 나의 짐을 대신 져 주지 못하고, 나도 남의 짐을 맡아질 수 없었다.
나는 이제 나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다.
이 짐을 더는 나 혼자 지고 가기는 불가능하다. 남은 인생에 큰 욕심은 없다.
인생이 내 마음 내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무거운 삶의 짐을 내려놓고 싶다. 내 욕심, 내 자존심, 내 근심과 걱정, 내 고집, 나의 죄, 미안함.
무거운 짐을 나 혼자 지고 가기 힘들고 어려우니 모두 그분에게 맡기면 내 마음 도 가벼워지겠지.
11)자서전 쓰기는 나의 가슴 속에 깊이 묻힌 이야기를 쏟아내는 일이다. 이는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이를 부끄러워 선뜻 나서지 못하고 망설인다. 하지만 자서전에는 그 모든 것을 달갑게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넉넉하다. 비록 지금은 늙은 몸으로 어렵게 살고 있지만, 눈 감으면 남부럽지 않게 잘살던 아름다운 추억이 생생하니 마음이 행복해진다.
12)그러나 자서전을 쓰고 싶어도 혼자는 도저히 이를 완성할 수 없는 이웃이 많다. 몸으로 하는 노동은 돕지 못해도, 조그마한 손으로 남을 대신하여 글은 쓸 수 있으니 감사하다. 누구의 인생도 아름답지 않은 삶은 없다. 평생 자식과 가족을 위해 힘들게 살아온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엮고 꿰면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보석같이 아름다운 이웃의 삶을 자서전에 담으면서 나 자신을 성찰한다.
2. 곤룡포 / 변미순
1)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22년 동계올림픽은 여러 가지 흥분된 이야기가 많았다. 도핑반응 양성이 밝혀진 러시아의 어린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마지막 경기에서 5번이나 넘어지는 모습은 오히려 보는 우리의 가슴이 아팠다. 그녀에게 약물 거부권이 있었을까? 코치가 국가가 강조한 것은 아닐까? 한계를 극복하려는 인간 노력의 결과보다 화학약품에 중독된 기계로 만들고자 했다면 우리는 굳이 올림픽을 할 필요가 없다.
2) 쇼트트랙 출전 선수중 가장 나이가 많은 분홍 단발머리 곽윤기가 예쁜 일을 했다. 후배들에게 곤룡포 무늬가 있는 집업에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새겨 전달하였단다. 이런 것이 큰 형님이고 좋은 발상이다. 그의 멋진 모습을 칭찬해 본다. 뭉클한 감동이었다. 이런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3) 곤룡포의 문양을 선택한 것은 한복을 소수민족의 옷이라 우기는 개최국 중국에 대한 항의를 담았다. 부정판정으로 마음이 아팠던 후배들에겐 위로의 약이 되었을 것이기에 그 의미가 깊었다.
4) 개막식 하고 있는 도중에 뜨거워진 sns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인터넷 소통이 엄청 빠름에 놀랐다. 한복을 중국의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에 분개한 우리나라의 비판 글을 보면서 또 모두 뜨거운 애국자가 되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줄 잠시 착각도 한다.
5) 아니다. 평소 우리가 한복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며 지내는지 자문해 보라. 우리나라의 전통을 얼마나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며 지내는지 대답해 보라. 한글대신 영어를 더 사랑하는 것처럼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동짓날 팥죽을 끓어 붉은 기운으로 악기운을 쫒아내던 풍습은 깡그리 잊고, 할로윈데이에 호박탈에 온갖 귀신스러운 분장을 하고 흥청거렸던 모습은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묻고 싶다.
6) 반대로 접근해 보자. 한복을 저렇게 탐내는구나 하는 위기감은 안 생기는지? 앞으로 우리 문화를 어떻게 지켜가야할지 논의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어처구니 없는 편파 판정을 보면서 욕하면서 스스로의 품위를 깎아 내리지 말고, 아직 중국은 나라만 클뿐, 인구만 많을 뿐 비리가 통하는, 부정이 통하는 일을 저렇게 버젖이 행하는 구나 혀를 한번 차면 어떨까. 아직 후진국에서 벗어나려면 멀었구나. 이때 우리는 선진국 대열에 확실이 들어설 문화, 정의, 위상을 더 키워갈 기회라는 생각은 또 안드는지.
7) 몇 해 전 일본의 상품 불매운동을 하던 일이 있기는 했었나싶다. 외국에서조차 한국은 한순간 잠시 와글와글 끓고 바로 식어버릴 것이니 크게, 오래 염려치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이런 냄비 근성을 언제까지 이어갈 것인지 묻고 싶다. 끓이기 전에 진심으로 오래 관심가져야 하고 기초부터 우리 것으로 놓아 쌓아가도록 고민해야한다. 뜨거웠다 금방 잊고마는 이슈들을 볼 때마다 상처가 생기듯 아파온다. 대한민국의 국위를 높여갈 심도 있는 고민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8) 주절주절 말이 많아지는 것을 보니 나도 확실히 나이가 들어가는가 보다. 한글을 디자인 요소에 넣거나, 우리의 전통문양을 살려 고민하는 상품을 보면 괜히 힘이 생긴다. 훈민정음을 디자인한 가죽 파우치를 구입했다. 일부러라도 사주고 응원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신을 지켜가고 싶다. 세계대회를 나가는 선수들에게 가장 한국적인 소재, 주제를 가지고 가라고 권하기도 한다.
9) 작게는 이런 일부터 동참해 가면서 우리가 우리의 전통을 먼저 사랑하는 바닥을 깔고 가보자. 분명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족도리, 상모놀이, 하회탈, 복조리, 떡이나 과자에 새긴 기하문의 아름다움 등을 우리가 먼저 사랑해 주어야 한다.
10) 한 나라가 진짜 선진국이냐 아니냐를 경제적으로 보지 않고 국민 1인당 책을 구입 또는 읽는 권수, 꽃을 사는 금액, 그리고 기본윤리 및 예절에 대한 평가, 그 나라의 전통의식과 전통을 지켜나가는 방법에 대한 것으로 잣대를 잰다. 책이 년 1권이 안되고 꽃이 연 1만원이 안되며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의 전통이 무엇인지 오히려 외국인보다 더 답을 못하는 지경인데 어쩔 것인가?
11) 지금부터라도 하면 된다. 저 젊은 스포츠 선수의 행동처럼 우리의 것을 사랑하고 실천하고 공부하면 된다. 시험점수를 위해 무조건적인 암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저절로 알아가는 길을 찾아갈 것이다. 그런 능력들이 충분한 우리의 젊은이들을 한번 믿어보려 한다.
12) 곤룡포 무늬가 있을 붉은 항공점퍼를 입고 나가면 사람들의 눈에 잘 띈다. 독특한 개성을 가졌다고 한번 더 쳐다본다. 낯설게 보면서도 한편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이게 바로 곤룡포 무늬이다. 우리나라에서 왕의 옷에 수 놓은 용문양으로 다섯발톱을 가진 오조룡보를 둥근 모양으로 마무리 한 것이다. 나는 이런 문양이 너무 좋다. 이렇게라도 애국해 보려한다.
3. 코로나 슈퍼면역자 / 오수미
딸아이는 코로나19 PCR 검사결과 양성을, 나는 음성을 통보받았다. 상반된 알림 문자다.
하루에 수차례 딸아이의 볼에 입을 맞춘다. 열두 번은 포옹한다. 딸아이가 먹던 수저를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딸아이가 먹다 남긴 음식은 먹어치운다. 같은 침대에서 마주보고 숨을 나누며 잠을 잔다. 그런데, 검사결과가 다르다. 우려했던 일이다.
석 달 전, 친구의 남편이 코로나19확진이 되었다. 확진되기 이틀 전 남편과 잠자리를 했던 친구는 PCR검사를 받았다. 음성이었다.
아연했다. 잠자리까지 했다면서 어찌 음성이란 말인가? 그 후 3번의 검사에서도 진단키트는 한 줄이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일찌감치 접종한 3차 백신의 힘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잠자리까지 했다면서,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음성이란 말인가!
친구는 “아마도 키스를 하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라고 멋쩍게 말했다. 사레들린 듯 웃음을 토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3차 백신의 면역력에 대한 의심보도가 쏟아졌다. 급격하게 확진자가 늘었다. 대부분 3차 접종을 마친 경우였다. 3차의 효력이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는 둥, 어살버살 말이 많았다.
최근에는 ‘코로나슈퍼면역자’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슈퍼면역을 가진 사람은 코로나19 확진자와 함께 있어도 감염되지 않는다고 했다. 듣는 순간 친구는 코로나슈퍼면역자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슈퍼면역을 들먹이며 친구를 놀렸다. 부럽다며 쏘삭거렸다.
딸아이가 확진을 받고, 나의 검사결과를 기다리면서 친구를 떠올렸다. 코로나슈퍼면역자인 친구를 생각했다. 나도 혹시 슈퍼면역자가 아닐까를 상상했다. 혼자 격리될까 두려워하는 딸아이에게 엄마가 곧 너와 함께 할지니 걱정 말라고, 입은 떠들었다. 도리질을 하면서도 마음은 그편으로 쏠렸다. 코로나슈퍼면역이 내 안에 있기를 기대했다. 솔직히 그랬다. 그렇게 우려 아닌 우려했던 일이다.
휴대폰 벨이 울린다. 친구다. 결과를 묻는다. 딸아이는 양성, 나는 음성을 알린다.
“야! 딸내미 물고 빨고 하는 너도 슈퍼면역자였구나!“
비아냥 걸친 친구의 말에 함박웃음이 나온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는다.
4. 감기와 재난지원금/이성규
1) 그저께 일이다. 오전에 서실나가 글씨 쓰는데 약간의 한기를 느꼈다. 아침저녁 심한 기온차이로 얇은 옷을 성급하게 입은 탓일까? 그 때 생각났다. '주말에 친구들과 구룡포가서 과음과 늦도록 놀았으니 감기 몸살이 오려나?' 오전을 보내고 오후가 되니 감기 기운이 온 몸을 덮친다.
2) 그 날 오후에 퇴근 해 온 아내도 감기 기운이 있단다. 지금 이 시국에 우리 스스로 감기라 단정 짓는 것은 무리다. 미리 사다 둔 자가진단키트를 두 개 꺼내 사용설명서를 펴두고 따라한다. 다행히 둘 다 음성이다. 약간의 의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일 병원 가서 전문가 신속항원검사를 해야 하나?
3) 어제 아침 눈을 뜨니 감기가 좀 더 심한 것 같다. 아침에 아내랑 다시 자가검진키트로 검사 해 본다. 결과는 또 음성이다. 생강차를 마시고, 감기약을 먹기도 했다.
2년전 코로나가 발생 하고부터 감기는 하지 않았다. 물론 마스크를 계속 끼고 살았고, 극도의 조심을 한 탓이 아닐까싶다.
4) 어릴 때 어쩌다 감기를 앓으면 엄마는 어디다 감춰둔 흑설탕으로 뜨겁게 설탕물해서 한 대접 주셨다. 입맛 없는 아들을 위해 노란 콩고물로 밥을 비벼 주시던 것도 감기 걸렸을 때였다. 어른이 된 지금도 감기 걸리니까 입맛은 여전히 없다. 나도 나지만 아내마저 같이 감기를 앓으니 걱정이다.
5) 나는 자식으로 남매를 두었다. 평소 카톡을 자주하는 편인데, 감기 걸리고 나서
서울사는 아들한테도 미국 가 있는 딸한테도 카톡했다. 둘 다 답은 같았다. 잘 먹고 푹 좀 쉬라고. 그 말은 병원가면 늘 듣는 답이다. 오늘 오후에 아들한테 카톡을 다시했다.
'엄마 아빠 감기로 골골 하니까 복어탕 사먹게 재난지원금 3만원 보내도고'
늘 바쁘다던 아들이 어찌 답을 보더니 금방 카카오페이로 3만원 보내왔다.
6) 오늘 퇴근해 온 아내랑 동촌 가서 복어 지리탕으로 저녁을 먹었다.
뜨거운 국물로 간지러운 목을 좀 지지고 나니 훨씬 좋다. 단돈 3만원의 힘이라서 일까, 아들이 보내준 돈이라서 일까, 한결 기분도 좋고 몸도 좀 좋아진 듯하다. 보내준 재난지원금으로 저녁먹고 만원 남았다.
7) 자식도 키우기 나름이지만 지금은 우리 클 때와는 달리 자식보다 어른이 더 잘 해야 하는 세월이다. 자식의 형편 따라 다르긴 하지만 몸이 안좋거나 필요한 것 있으면 지체 없이 말해야 옳을 듯 하다. 물론 소통의 폭과 공감대가 형성 되어야겠지만 말이다. 부모가 말 하지 않으면 정확히 알아줄리 만무하다.
8) 감기 3일째인데 아직 머리는 무겁고, 기침이 가끔 난다. 사람은 평생 수백번의 감기를 앓아야 한단다. 어릴 때 일이다. 잊을만하면 불쑥 나타나 며칠씩 묵고 가던 먼 친척 할아버지가 계셨다. 엄마는 밥해대느라 얼마나 귀찮았을까? 힘들고 귀찮아도 참고 견뎌야 하는, 감기 또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9) 건강이란 지킨다고 해도 가끔 소홀할 때가 있다. 감기는 피곤하고 지쳐있으니 좀 쉬라는 신호다. 내 몸이 말하는데 귀 기울이며 살 일이다. 종일 촉촉한 단비가 내리다 말다 했다. 힘들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감기가 어서 지나가고, 내 몸도 개운해져서 화창한 봄기운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5. A-를 잡으려면 일단 K-삼성에서 G-삼성으로 /이정렬
1.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미국 정부가 해결책 마련에 분주하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공급망 비상 대책 회의에 초대한 반도체 제조 회사 중, 미국 이외 국가의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요즘 주가가 약세다. 최근 GOS(Game Optimization System, 이하 GOS) 이슈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GOS는 스마트폰의 온도를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AP(Application Processor)의 성능을 낮추고 화면의 해상도를 떨어뜨리는 기능을 하는 소프트웨어이다.
2. 이 소프트웨어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스마트폰의 단순 성능 척도인 벤치마크 점수에서는 이 소프트웨어의 활동이 감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성능 시험을 하면 높은 점수를 기록한다. 하지만 사용자가 사용할 때는 광고에서 기대한 성능을 오롯이 누릴 수 없다. 이는 시속 280km로 달릴 수 있는 스포츠카 구매자가 법적인 제약 혹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규정 속도로 운전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소비자가 사전에 그 사실을 인지하고 고지 받은 상태와는 상이하다.
3. 최초의 스마트폰 등장 이래, 많은 제조사들이 그 각축전에 뛰어들었다. 2013년 삼성전자는 대만에서 벌금을 납부했다. 그 이유는 삼성전자가 고용한 협력업체 직원의 직무에 있었다. 그 직원은 인터넷에 자국 스마트폰 제조사인 HTC의 스마트폰을 폄하하는 댓글을 반복적으로 작성하였다. 반대로 자사의 제품에 대해서는 좋은 점을 언급하는 등의 행위였다. 이는 해당 직원의 양심선언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삼성전자는 다시 한번 대만의 혐한 감정에 불쏘시개를 넣는 역할을 했다. (이 나라에는 국정원, 국방부, 경남도청 뿐만 아니라 제일의 기업에도 여론 조작 세력이 있다.)
4. 2013년 대만에 벌금을 납부한 삼성전자는 매해 개최되는 다보스 포럼의 특별 행사에서 3위에 올랐다. 퍼블릭 아이즈(Public Eyes)라는 프랑스의 비영리 기관이 주최하는 세계 악덕 기업 투표가 그 특별행사이다. 왜 3위에 올랐는가는 차치하고, 이 투표를 주관한 퍼블릭 아이즈 관리자는 투표 종료 하루 전, 대한민국의 한 지역으로 표기된 인터넷 주소 사용자가 당시 3위였던 TEPCO(도쿄전력회사)에 8,000여 표를 몰아주었다고 했다. 하루 만에 삼성전자는 3위로 내려갔다. 그리고 6만여 명이 투표한 작년 투표 전체 인원과 비교했을 때, 당해는 투표 전체 인원이 9만 명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1위와 2위는 약 26,000표, 24,000표 그리고 3위인 삼성전자는 18,000표를 획득하였다. 퍼블릭 아이즈가 주최한 이 행사는 매년 2위까지만 불명예 전당에 올려 기록하고 있다.
5. 2020년 2월 삼성전자는 미국 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정확히는 카이스트의 특허 관리 법인에게 패소했다. 상세히는 한때 카이스트 교수였고, 지금은 경북대학교 교수인 이종호 교수가 최초 등록한 특허 소유권에 대한 재판에 패소했다. 이종호 교수는 2011년 비 메모리 분야(시스템 반도체) 절대적 갑의 위치에 있는 인텔보다 앞서 ‘핀펫 기술’ 특허를 등록하였다. 이 때문에 인텔은 이 교수에게 특허 사용 로열티를 100억 지급하고 자사의 기술 발전에 활용하였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삼성전자는 자사의 직원들에게 해당 기술을 교육하기 위해 이 교수를 초빙한 적이 있었다. 삼성전자는 이 교수가 연구개발비를 국가에서 지원받았기 때문에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삼성전자 직원이 경북대학교와 산업통상자원부에 특수 임무를 부여받고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이 교수가 현재 몸담고 있는 경북대학교가 특허 소유권 주장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여 재판에 끼어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에는 특허 기술 유출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다. 감람한 송사에 지쳤는지 이 교수는 자신의 특허권을 카이스트 특허 관리 법인에 양도하였다. 이 재판에서 피고는 약 230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 법원에 제소하였다면 승소할 수 있었을까?
6. 같은 해인 2020년 9월, 아이폰11이 발매되며 애플은 지금부터 모든 스마트폰 판매에 충전기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였다. 애플이 주장하는 이유인즉슨 스마트폰 충전기는 이미 가정에 많이 공급되어 있고, 이 충전기를 계속해서 모든 고객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자원낭비라는 것이었다. 또한 충전기를 아이폰 포장에서 제외할 경우, 이전과 비교했을 때 부피를 반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모든 운송수단의 탄소 발생량을 비교하였을 때, 비행기가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반도체 등 부피는 작으나 고가의 물품은 보통 항공 운송을 통하여 물류가 이루어진다. 반으로 줄어든 스마트폰 포장 덕분에 운송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반으로 줄 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7. 삼성전자는 애플의 이 발표가 있자마자 SNS 계정으로 애플의 행보에 냉소를 보냈다. 정확하게 6개월 후, 삼성전자는 자사의 신제품 발표회에서 충전기 동봉을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SNS로 COOL하게 애플을 조롱했던 발자취는 슬그머니 지워졌다. 한 가지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 이후의 중국 샤오미의 행보였다. 샤오미는 신제품 발표 때 앞의 두 회사와 같이 충전기 무조건 무상 공급 중단 발표를 하였다. ‘우리는 이미 많은 사용자의 가정에 스마트폰 충전기가 보급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충전기가 없는 소비자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때문에 우리와 함께 환경보호에 참여하고 싶은 소비자는 충전기 미포함 구성을 선택할 수도 있고, 여전히 충전기가 필요한 소비자는 충전기 동봉 구성을 동일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고 말이다.
8. 2020년 여의도의 300명이 벼락치기한 것을 뽐내는 기간인 국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협력업체의 장비를 탈취해 다른 협력업체에 제공한 후 해당 설비를 복제하도록 주문했다. DMT라는 회사의 설비는 경쟁사에 넘겨졌고, 경쟁사가 해당 설비를 복제한 후 DMT는 삼성전자에게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모서리가 둥글게 마감된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이 장비는 둥근 끄트머리에 보호필름을 부착하기 어렵다는 소비자의 반응에 따라 DMT의 대표가 경일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함께 개발한 장비였다. 통상 하청업체라 할지라도 원청업체에서 장비나 장비에 대한 도면을 요구받을 때는 서면으로 증거를 남기도록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그런 절차를 무시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해당 장비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합의금을 제시하며 특허권 사용권을 넘겨받는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종용했던 정황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갤럭시S22 모델부터는 기본으로 부착되어 출고되던 액정 보호 필름이 사라졌다. 또 서비스 센터에서 제공하던 액정 필름 부착 서비스도 사라졌다.
9. 태평양 건너 국가인 미국이 외로운 제국이 된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건강한 시장을 조성하는데 성공했고 지속적으로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또 미국에서 끊임없이 세계 최고의 신생 기업이 탄생하는 이유는 조직폭력배 같은 행동을 좌시하지 않고 처벌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방팔방 야로나 찔러주고 약자를 입맛대로 주무르려는 행동을 할 때 벌금과 추징금이라는 이름이 아로새겨진 몽둥이로 두들겨팼기 때문이다. 그 몽둥이의 법적 용어가 바로 징벌적 배상(Punitive Damage)이다. 앞서 언급한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와 손꼽는 대기업들은 수오지심부터 갖추어야 한다. 이들은 건강한 경제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앞장서야하는 주체이다.
10. 위 열거한 사실들에 불평불만하는 것은 삼성전자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그저 며칠 내내 푸르죽죽한 내 주식계좌를 바라보는 것이 속상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GOS사태와 관련하여 아직까지 소비자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다. 수요 폭발로 두 달 후에나 받아볼 수 있었던 최신제품 갤럭시S22 배송은 GOS사태 이후 내일 도착으로 바뀌었다, 삼성전자는 유야무야 사태를 뭉뜽그리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전자기기 벤치마크 사이트에서 벤치마크 점수 속이기에 앞장섰던 중국기업과 함께 이번 GOS사태로 벤치마크 정보 제공 제외 스마트폰 제조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아무래도 삼성전자 주식이 있는 내 증권계좌에 새빨간 불이 들어오려면, 일단 삼성전자는 K(Korean)-삼성전자가 아니라 G(Global)-삼성전자가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대한민국에서 먹혔던 K(Korea) 경영스타일이 아니라, 일단은 G(Global) 경영스타일을 지향해야할 것이다. A까지는 갈 길이 멀다.
A B C D E F G H I J K—
6. 엄마의 낙담/김도형
오늘은 내자와 같이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왔다. 새벽7시경에 도착해서 여느 때처럼 피뽑고, 소변검사와 훙부사진 ,심전도 검사를 마치고 9시반이 돼서야 의사선생님 진료를 받았다.
엄마의 병명은 다발성 골수종이다.
엄마는 주치의선생님의 치료계획에 잘 따라주신 덕분에 오늘 항암치료로 4주기(1주기 4회차)를 성공적으로 잘 마치게 되었다. 골수종과 더불어 신장기능도 많이 떨어졌는데, 왼쪽팔은 혈액투석에 대비해서 오른팔에만 각종 주사를 맞은 까닭에 손등에서 팔 전체가 성한 곳이 하나 없었다. 얼굴이 붓고 발이 저리고 뼈 마디마디가 아프셨을테지만 자식들 걱정할까봐 내색하나없이 견뎌오심이 내심 대견하셨을터다.
엄마는 기대에 가득찬 눈으로 수녀과장님을 바라보고 계셨다. 4주기 더 치료를 하셔야 됩니다라는 주치의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엄마의 고개는 의사선생 반대편으로 돌려지셨다.
낙담하셨음을 온몸으로 표현하셨다. 할머니 이정도까지 치료된 걸 감사하셔아 됩니다 라는 의사의 말은 엄마껜 별무소용이었다. 병원을 나서시기 전까지 혼잣말을 섞어 내내 마땅찮음을 내비치셨다.
지난 9월 다발성 골수종 첫 진단 받았을 때 엄마는 털썩 주저앉으셨다. 큰병에 대한 첫번째의 낙담이셨다. 한동안 피곤했던 것이 피가 절반밖에 없는 까닭이고, 신장이 혈액투석할 정도로 나빠지신 것을 아시게 된 것이었다. 고혈압 약을 드시는 것 이외에는 건강하셨던 당신이니 믿기 어려우셨을테다.
암은 아니제? 암 아닌 것 맞제? 암이 아니라면서 항암주사 왜 맞노? 크게 낙담하실까 저어 암은 아니지만 치료방법은 유사하니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병명에 암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아 미심쩍어 하시면서도 자식들 말을 곧이 들으시고 치료에 적극 임하셨다.
자식,며느리들과 두 여동생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응원과 따뜻한 간호에 엄마는 주위에 자랑히시며 치료과정에 의지를 보이셨다. 병원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들도 가족들의 따뜻한 캐어에 따른 칭찬이 엄마께는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2~3주에 한번씩 수혈을 해야했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헌혈량이 태부족이어서 수혈처방이 나고도 3일이 지나도 수혈절차가 없어서 온가족과 그 친구들이 지정헌혈에 적극 참여한 덕에 필요시 마다 제 때 꼬박꼬박 수혈이되어 엄마가 대견해 하시고 계심을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주위의 모든 것에서의 도움과 응원이 엄마의 의지를 이끌어 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나의 걱정은 앞으로 4주기가 끝나는 6월말의 상황이다.
85세라는 엄마의 연세와 골수이식을 하지않은 다발성골수종의 예후가 안좋음을 카페를 통해 익히 알고있는 까닭이다.
그 때 또다시 몇차례 치료를 더해야한다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신다면, 신장이 더 망가져 혈액투석을 해야한다면, 병세가 악화되어 여명이 얼마남지 않았다 하면....
엄마의 낙담은 또 얼마나 크실까?
계속 병원에 다니시면서 암환자인 아주머니들이 눈치없게 암이시지요? 라고 자꾸 묻는 바람에 엄마도 암이란 걸 알아차리신 거 같았다. 큰병이 와서 라는 말을 형제들에게 자주 하곤 하시니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요즈음 틈만 나면 나 어렸을 때 어땠어, 엄마가 제일 기뻤을 때는 언제야, 아버지 돌아가실 때 어땠어 등등을 묻곤 한다.
여러 대답 끝에 지나가는말로 마지막엔 엄마도 아버지처럼 곡기를 끊으시고 병원이 아닌 가족의 품속에서 생을 마감하겠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가슴이 아린다.
멀지않은 어느날 엄마의 또 한번의 낙담에도 스스로 포기하시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보살펴 드려야지. 많은 시간 함께 하면서 엄마가 더 많이 웃고 즐거워하시도록 노력해야지 하고 오늘도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7. 우리 부부가 사는 법 /이지연
1)“물하고 불이라서 마이 자그락댄단다.”
결혼 전에 사주를 보고 오신 엄마의 전언이었다.
2)남편은 가부장적이고 남아 선호 사상이 팽배한 집안의 장손이다. 위로 딸이 셋이나 있는 가운데 태어난 아들이니 어떤 대접을 받았을지 알만하다. 자기주장이 강하며 고집도 세고 성질까지 불같다. 나 또한 5남매 막내딸로 양보나 헌신을 미덕으로 여기며 성장하지는 않았으며 남편과 서열 다툼 할 정도의 고집을 지니고 있다.
3)결혼을 하고보니 여섯 살 위인 남편은 매사에 나를 가르치려 들었다. 나도 가르치기를 즐기는 성향이라 그의 입장에서는 나의 언행이 무례하기 짝이 없었으리라. 그와는 가치관은 물론 이상도 달라 부딪히는 일이 많았지만 내가 좋아 맺은 인연이었기에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4)남편의 가장 큰 목표는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종친회 일에 매여 집안 경제는 등한시 한 부친의 영향이 컸으리라. 결혼 초 사업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한차례 겪은 후로는 ‘돈’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한 나는 욕심은 있을지언정 돈만을 좇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현재의 행복이 중요한데 남편은 ‘현재는 일하는 시기, 노년은 보상 받는 시기’로 규정해 놓고 앞만 보고 달렸다. 심지어 아내는 ‘현모양처 형’이 가장 좋은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나의 사회생활을 막으려고 애를 썼다.
5)엄마가 전한 말이 헛말은 아니었는지 물과 불은 요란하게 10년 세월을 살아왔다. 살다보니 서로에게 동화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우리는 아주 벽창호는 아니었던지 상대 본연의 모습을 인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6)20여 년 전, 프리랜서로 아이들에게 그룹 지도를 하다가 현재는 가족지원센터 방문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일이 좋고 재미있다. 집안일을 할 때보다 신난다. 현모양처가 되어 집안일에 빈틈없기를 바라던 남편은 내가 일하는 것이 오히려 집안 경제에 마이너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의 말처럼 얼마 안 되는 내 월급으로 자동차 유지비에 화장품값, 밥값 빼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일을 놓을 수 없는 건 맏며느리의 무거운 짐을 잊게 해주는 숨구멍이기 때문이다.
7)남편은 일을 하게 해 준 자신에게 고마워하라는 너스레를 떤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에 발끈하지 않는 것은 그의 내면에 나를 인정하는 믿음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음주와는 거리가 먼 내가 남편의 술친구들과 동석하여 안줏발을 세울 때가 있다. 술이 거하게 취하면 말발 센 그는 적당한 타이밍에 내 사사로운 이야기를 노출시킨다.
“이 사람이 다문화 전문가잖아.”
“이번 달에 팔공메아리에 나온 기업 있잖아. 그 기사 우리 애 엄마가 썼다 아이가.”
은근슬쩍 치켜세우는 그 말에서 남편의 마음을 읽는다.
8)학창시절, 이웃집으로 돈을 빌리러 가시는 어머니 모습이 일생 남편의 생채기로 남아 있다. 아이들한테만큼은 빈곤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9)딸아이가 중3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 살다보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이 돈은 우리 딸 대학교 등록금으로 쓰게 따로 통장을 만들어 놓는 게 좋겠어.”
하며 거금을 내놓았다. 그 후 2년. 아들의 학자금 통장도 생겼다. IMF를 혹독하게 겪은 남편의 준비성이며 가장의 책임감이었다. 이 일은 지인들에게 두고두고 칭찬거리로 내놓는 일이 되고 있다. 그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정말로 놀랄 일이 일어났다. 장모님이 연로하시니 돈 필요할 때 내 눈치 보지 말고 쓰라며 제법 묵직한 비상금을 만들어 주었다. 아, 참말로 이 사람이 진국이구나! 싶었다. 이 일은 남의 부부싸움을 부추길까 봐 믿을 만한 자리에서만 조심조심 꺼낸다. 가슴 뿌듯한 그 일화를 들려주면 누구라도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남편이라 칭찬하며 부러워한다. 비상금이 생긴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원금은 그대로 있다. 아무래도 남편이 나보다 한 수 위가 분명하다.
10)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다. 성실한 남편이기에 어지간히 마뜩찮은 일 말고는 눈감아 주게 된다. 예컨대 술을 사거나 밥을 사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지만, 커피 값은 아까워한다. 그러기에 우리 가족은 외식을 하더라도 2차로 커피숍에 가자는 제안은 할 수 없다. 같은 책을 나눠 읽고 싶고, 주말이면 함께 영화도 보고 싶은 로망이 있지만 TV를 더 좋아하는 남편 그대로를 존중해주는 것이 내 몫임을 받아들인다.
11)작은아이가 취직만 하면 편하게 여행하며 살겠다던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 남편이다. 생각은 시시각각 변하는 모양이다. 아이가 중요한 시험을 치고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는 시점에 남편이 말을 바꾸었다. 멋진 차를 사는 목표를 추가한 것이다. 찻값을 다 모으면 그때는 정말로 모든 일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12)남편의 목표가 달라진들 어떠랴. 이해하며 한평생 살아가는 게 부부가 아닐까 싶다. 장점이 많은 남편이다. 집안의 웬만한 고장은 A/S를 신청하지 않아도 될 만큼 눈썰미 좋은 재주꾼이다, 뉴스나 스포츠를 보면서도 내 상식을 뛰어넘는 박학다식함이 드러난다. 독서 좀 안 하는 게 무슨 대수인가 싶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소신껏 살아가는 남편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처럼 곧 다가올 노년에는 여행하며 누리는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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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교수님 ! 18기의 글이 우루루 쏟아져서 정신없이 바쁜 시기 더 바쁘실듯....한편 든든 하시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