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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새가 되어
우주에서 신호라고 보낸 것일까? 온 세상의 장미들이 담장마다 빨갛게 피어올랐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꽃의 웃음은 모두 젊고 어리다. 쉬폰 치마처럼 보드라운 꽃잎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온 몸이 간질거려 내 몸에도 깃털이 돋아날 것만 같다. 곳곳에 피어오른 줄장미의 인사를 받으며 황성공원으로 향했다. 요즘 나는 맨발걷기에 푹 빠져 산다. 혼란스런 정신이 들어올 새도 없이 잠을 푹 잘 수 있어 좋다. 친구와 함께 일주일에 한번은 경주의 아름다운 곳에서 맨발걷기를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는데 이번 주 장소가 황성공원이다.
오래된 소나무의 자태는 금방이라도 신라시대로 되돌아 갈 수도 있을 것처럼 신령스럽고, 그 아래 같은 크기로 총총히 자라나는 맥문동이 싱그러움을 더하고 있다. 맨발로 걷는 길은 포근포근하다. 그동안 떨어진 소나무잎들이 폭닥한 카펫을 만들어 놓은 것만 같다. 길을 걷다보니 전문적인 장비까지 갖추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진작가들이 보였다. 이곳엔 늦은 봄과 초여름까지 후투티라는 새를 찍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고 한다.
머리 깃털이 인디언 장식처럼 생긴 후투티(Hoopoe)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에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여름철에만 찾아오는 철새라고 한다. 소나무에 구멍을 파고 둥지를 튼 어미 후투티는 먹이를 물고와 새끼에게 먹이곤 한다. 특이한 이 새 덕분에 황성공원은 관광객이 몰릴 정도라고 한다.
우리도 조심스레 사진작가들 틈에 끼었다. 카메라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높다란 소나무 한 켠에 정말 후투티 한 마리가 보인다. ‘차라락차라락’ 연속으로 울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후투티는 ‘탁탁탁탁’소리를 내며 나무를 쪼고 있었다. 어미새의 행동은 단호하다. 가끔은 새끼들이 들어있는 둥지 안으로 몸을 들어 밀기도 하였다. 제법 오랫동안 나무를 쪼던 새는 ‘휘리릭’ 하고 날아가 버렸다. 사진을 찍던 작가들이 “히야‘ 하고 일제히 아쉬움의 탄성을 질러댔다. 어미 후투티는 어디로 날아갔을까? ‘아마도 새끼들의 먹이를 구하러 가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나희덕의 시 ‘못 위의 잠’이 떠올랐다.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이 세상의 어미아비의 고단한 삶은 저 나무위의 후투티나 시 속의 제비나 우리의 어미아비나 매 한가지다. 그들에겐 새끼를 보듬고 먹이고 재우고 키우는 소망이 있었기에 고단한 일상이 고되지 않을 수 있었다. 나의 어매아배는 우리들을 먹여 살리려 연탄리어카를 끌고 수도 없이 언덕배기를 올랐고, 양 손에 연탄을 집게로 찝고 수도 없이 계단을 오르내렸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그뭄은 지하에 뜬 만월(滿月),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둠이 빛을 밝히는 고귀한 시간이 되듯 이 땅의 모든 어미아비의 고난은 또 다른 기쁨이요 즐거움이 아니던가.
새들이 날아가 버린 숲에선 또 다른 새가 올 것을 기다리는 사진작가들로 빼곡하고, 나는 발끝을 곳 추세우고 마치 발레리나가 된 듯 춤을 추어본다. 나의 귀엔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인 ‘인생의 회전목마’가 흐른다. 숨어있던 작은 흥들이 일제히 일어난다. 마음속으로 담장마다 피어오른 장미들과 교신을 하여 빨간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에 오른 듯 ‘라라 라라라, 딴 따다다 딴 따다다’ 온 몸을 흔들며 발끝에 힘을 주어본다. 힘찬 바이올린 소리가 모세혈관의 감각을 깨운다. 울컥 눈물이 올라온다. 내 속에 살아 숨 쉬는 어미아비의 숨결이 춤 위에 올려지고, 나도 한 마리 새가 되어 그들 곁으로 날아가고 있다.
* 위의 사진은 사진작가인 남동생(엄경섭)의 작품입니다. (후투티새)
첫댓글 항상 좋은글 감동적인 교훈 잘 읽고 잘배우고 있습니다. 풍부한 어휘력에 또한번 존경을 표합니다.
살포시 발도장 꾸욱 누르고 갑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을 되돌아 봅니다. 참 오랜 세월을 알고 지냈네요. 때론 삶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전경이 되기도 했을 우리들의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응원에 힘입어 더 분발하겠습니다.
아름답고 멋진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힘들었던 과거가 있었음에도 어떻게 이렇게도 긍정적이고 고운 심성을 가지셨는지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예전에 함께 근무할 때 아주 유복하고 부유한 유년시절을 보내신 줄 알았습니다.
자신을 승화시킬수 있는 따뜻한 마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힘과 용기를 주신 글을 잘 읽고 제마음에도 긍정의 씨앗이 피어나기를 바래봅니다^^
공감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늘 모든 것에 온 정성을 쏟으시고 사랑을 다하시던 그 모습이 떠오릅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