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52)
십자가를 쥔 손
할머니는 의식이 거의 없었고 얼굴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눈은 부어 있었고 전신에 피멍이 들어 군데군데 붕대를 감고 있었다. 말을 걸어도 전혀 반응이 없었고, 의식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꼬집어도 전혀 반응을 하지 못했다.
혼수(coma)상태였다. 복부는 팽창되어 있어 무엇인가 암덩어리가 가득 퍼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밀검사가 필요했지만 보호자들이 환자를 아예 포기한 상태였다. 종합병원에서 가망이 없다고 모시고 가라고 하니 집으로는 모시지 못하고 요양병원 중환자실에 모시고 온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왼손에 검은색의 나무 십자가가 꼭 쥐어져 있었다. 뇌경색으로 오른손은 마비가 있었지만 왼손은 살아있어 십자가를 쥘 힘이 남아 있었다. 마치 할머니는 이 십자가를 천국 문 앞에서 내밀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 십자가는 아마도 아주 오랫동안 할머니의 손안에서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병 상태가 이 정도로 되는 데 몇 년이 걸렸는지 모른다.
신체 중에서 시각, 청각, 후각 등 감각이 모두 사라져도 고통을 느끼는 감각은 죽는 순간까지 남아있다고 배웠다. 할머니가 의식이 없어 표현을 하지 못하지만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손에 꼭 쥔 그 십자가가 마지막 고통을 덜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십자가가 없었다면 할머니는 이 자리에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 할머니는 경험 많은 선생님이 담당했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간밤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십자가를 손에 쥐고 천국 문 앞에 도착하여 미소를 짓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할머니, 이제 고통 없이 건강한 몸으로 천국에서 평안히 사십시오.
종교와 신앙심이 환자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이곳에서는 뼈저리게 느낀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보다 훨씬 고통을 잘 이겨내고 병을 잘 극복한다. 종교에 의지하여 자신을 다스리며 더 좋은 세상, 더 좋은 곳으로 자신을 인도해 줄 것을 믿는 것이 환자를 얼마나 든든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고통받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남편이나 어린 자녀를 생각하며 자기치료에 전념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여성이 있었다. 어느 날부터 아주 편한 얼굴이 되어 물어보니 친구의 도움으로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간절히 기도를 하며 절실히 도움을 요청하고 결국 자기를 구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병을 잘 이겨나가는 사례를 보면 종교의 힘이 얼마나 큰지 느낀다.
운이 좋으면 교회에서 병을 고치기도 한다. 우리 병원 간호사 중 한 분은 허리디스크병으로 아주 오랫동안 고생했다. 이 병원 저 병원 유명한 병원을 다 찾아다녀도 완치가 되지 않았는데 교회에서 안수기도를 받은 후 씻은 듯이 통증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 분은 신앙의 힘으로 병을 고쳤다는 나름대로의 확신이 생겨 열심히 전도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동료 의사 중에 교회 장로로 봉직하는 분이 있다. 이 분은 만날 때마다 같은 교회 교우들에게 자주 상담전화를 받는다. 여러 증세를 호소하는 교우에게 ‘그 병은 어떤 의사가 전문이고 제가 전화를 해놓을 테니 언제 방문하십시오’, ‘그런 병은 집 근처 병원에서 치료해도 됩니다’, ‘그런 병은 구태여 서울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증세는 휴식하면 저절로 낫습니다’ 등등 진료상담을 충실히 해주는 것을 본다.
한 신앙공동체 안에서는 모두 형제, 자매처럼 대하기 때문에 아플 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는다. 젊고 바쁠 때는 종교생활을 못할 경우가 흔하다. 은퇴를 하고 시간적 여유가 많을 때 종교생활을 하는 것도 건강하게 노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나는 특정 종교가 없지만 주위의 많은 분들이 종교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의지하며 평안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 어머니는 나이 들어 성당에 나가셨는데 돌아가시자 성당에서 사람들이 나와 매일 기도해 주고 장례를 잘 치러주어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신앙공동체 안에서 좋은 말씀 많이 듣고 교우들과 주기적으로 만나 좋은 시간을 가지며 외로울 때 서로 의지하면 노년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