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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江寒 第16章
<16-1>
갑자기 선실 밖에서 호리호리한 체격의 일곱 흑의복면인이 들어왔는데, 얼굴을 가렸던 검은 천을 벗자 아리따운 소녀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녀들은 당몽주를 살며시 훔쳐보며 별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추파를 던지곤 했지만, 당몽주는 못 본 척하며 향명(香茗)을 들어 입술을 축일 뿐이었다.
축미화(祝薇华)가,
"너희는 선실로 가서 쉬도록 해라!"
라고 지시하자, 일곱 소녀는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일제히 안쪽에 있는 선실로 들어갔다.
축미화는 당몽주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협(少侠)께서는 이제 사승내력(师承来历)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당몽주가 말했다.
"저는 당몽주(唐梦周)라 하고 집안은 대대로 경성(京城)에 적(籍)을 두고 있습니다만, 사승에 관해서는 말씀 드리기 곤란합니다."
축미화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으신지요?"
라고 이어서 물었다.
여검양(吕剑阳)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부인, 제가 대신 노제에 대해 몇 가지 더 소개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축미화는 어리둥절해 하였다.
"여 소협, 말씀해 보세요."
여검양은 당몽주의 혁혁한 가문 내력을 상세히 고했고, 내정(内廷=궁정)에서 무림의 고수들인 대내시위(大内侍卫)들과 어울리면서 다양한 무공을 배우게 되었으며, 황하(黄河) 나루터에서 비봉표국(飞凤镖局)의 암표(暗镖) 분실 사건으로 인하여 생각지도 않게 강호의 시비에 휘말리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여검양은 토설해서 안 될 비밀들은 언급하지 않았다.
축미화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공자셨군요. 이몸이 실례를 범했네요. 당 공자께서 암표 분실 사건에 대해 아시는 것이 많을 것 같은데,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당몽주는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천 갈래 만 갈래 얽히고설켜 복잡하기 그지없고 궤계(诡计)가 판을 쳐 진실로 통하는 단서를 찾을 수 없습니다. 비봉표국이 잃은 암표가 건곤독수(乾坤独叟)의 유물들 중 일부일 가능성은 높지만, 표물을 의뢰한 사람이 누군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유물들 중 보다 귀중한 물건들이 무엇이고 누가 탈취해 갔는지 역시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축미화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화제를 돌렸다.
"공자께서는 지혜와 계략이 뛰어나고 심계가 탁월하며 담령(谈灵)으로 위장까지 해 보셨으니 백의흉사(白衣凶邪)에 대해 아는 것이 적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당몽주가 말했다.
"백의흉사의 행적은 종잡을 수 없어 아직 그를 가까이할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안홍경은 담령을 굳게 믿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기에 그를 통해 많은 것을 새로 알아 가고 있었습니다만, 부인께서 개입하시는 통에 일을 다소 그르친 듯합니다."
축미화가 미간을 찌푸리며 버들잎 같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공자께서는 이몸이 어떻게 대사를 그르쳤는지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당몽주가 말했다.
"안홍경은 심계가 교활하고 독하며 비록 당장은 백의흉사에 몸을 맡기고 있지만 내심 스스로 무림의 웅주(雄主)가 되고자 하는 야심을 품고 있습니다. 한편 제가 위장하고 있는 담령은 무공과 심계에서 모두 안홍경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자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빨리 뽑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작정하고 있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 부인의 출현을 이용하여 담령을 제거할 기회를 얻었던 것입니다."
축미화가 웃으며 말했다.
"일리가 있군요. 그리고 안홍경에 대해서는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자의 심성은 정말 악독하기 짝이 없어요."
당몽주가 축미화를 잠시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두 번째로 무우곡(无忧谷)에 들어갔을 때, 부영지(傅灵芝)와 부축청(符竹青)이 기이한 수법에 의해 경맥(经脉)이 손상되었음을 발견했지만, 사용된 손속에 인정을 두어 내부 장기는 다치지 않게 하였더군요. 그래서 이는 반드시 백 아가씨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의 소행이라고 짐작했습니다."
축미화는 말했다.
"그가 누구인지 짐작하실 수 있나요?"
당몽주는 미소를 지었다.
"오늘에야 비로소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부인입니다."
축미화는 매우 탄복하는 눈길로 당몽주를 바라보았다.
"맞습니다. 공자는 노신(老身)이 무슨 이유로 수법에 인정을 두었는지 아십니까?"
당몽주가 머뭇거렸다.
"말이 실수가 될까 두렵습니다."
축미화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렇다고 이 몸이 공자를 이상하게 볼 리 있겠습니까?"
당몽주가 입을 열었다.
"제가 잘못 말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부인은 필히 백월하(柏月霞)의 생모(生身之母)일 것입니다."
축미화는 벼락 맞은 사람처럼 몸을 떨며 안색이 급변했고, 그녀의 봉목(凤目)에는 경악함을 물론 심지어 일말 분노의 빛마저 떠올랐다.
잠시 후 그녀가 처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공자는 정말 신(神)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드네요. 노신은 공자가 어떻게 사실을 알았는지 정말 모르겠군요. 설마 누군가가..."
"저에게 말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몽주의 음성은 매우 부드러웠다.
"부인께서 필히 말하기 어려운 고충이 있음이 분명하니 저는 더이상 언급하지 않겠고, 더더욱 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노완령과 여검양 역시 크게 놀랐다.
그들에게 축미화가 백월하의 친어머니라는 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축미화가 무우곡의 여주인인 셈인데 어찌하여 원수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단지 그중의 인과관계가 무척 미묘하고 복잡할 거라 짐작할 뿐이었다.
축미화의 봉목이 빨개지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녀는 잠시 후 한 장의 비단 손수건을 꺼내 깨끗이 닦고 처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 맺힌 사연은 무림에서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데, 건곤독수(乾坤独叟)가 그중 한 사람이었죠. 공자께서는 워낙 총명하시니 제가 더이상 말씀 드리지 않아도 조만간 알게 되실 거예요."
당몽주가 미소를 머금었다.
"저는 응당 여쭙지 않을 거라고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축미화가 두 눈에 깊은 뜻을 담아 잠시 당몽주를 바라보더니 결심한 듯,
"사실을 말하자면..."
하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당몽주는 이를 드러내 환하게 웃으며 그녀의 말을 중단시켰다.
"부인께서는 꺼내기 힘든 말은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말했다.
"당부 드리건대 앞으로 담령의 생사에 대해 외부에 언급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해야 안홍경의 마음속에 응어리가 계속 남게 되고, 그 꺼림칙함이 그의 악행에 다소라도 제동을 걸 수 있을 겁니다."
축미화가 말했다.
"공자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당몽주가 말했다.
"지금쯤 배가 황하(黄河) 강심에 이르렀을 텐데, 작은 배 한 척을 내어 주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축미화는 자신도 모르게 당황해 말했다.
"공자께서 떠나시려는 건가요? 설마 이 몸이 백월하의 어미라서 불편한 거라도...?"
"어찌 감히!"
당몽주가 말했다.
"일신상의 약속 때문에 더 머물 수 없으니 부인께서는 양해해 주십시오."
축미화가 물었다.
"세 분이 동행하실 건가요?"
노완령(卢琬玲)이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려고 막 입을 여는 순간 당몽주가 먼저 대답했다.
"아니, 가는 길이 다릅니다!"
노완령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쓰리고 아파왔다.
당몽주가 여검양과 노완령을 향해 정색을 하고,
"늦으면 대사를 그르칠 일이 있어 서둘러야 하니 나중 다시 뵙겠습니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검미를 살짝 찌푸리며 축미화에게 말했다.
"부인께서 은인자중(隐忍自重), 오랜 기간을 참고 지내시다가 최근 행동을 취하신 것을 보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신 것 같은데, 부인의 지혜와 무공이라면 어렵지 않게 대처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외부인이라 불편함이 있을 수 있어 도와드리지 못하고, 단지 부인께서 원하시는 바가 순조롭고 뜻대로 되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당몽주는 걸음을 옮겨 선실 밖으로 나갔다.
축미화가 버들눈썹을 쫑긋하며 소리쳤다.
"소견(小鹃), 나 대신 손님을 배웅해 드려라."
선창 밖에서 아리따운 목소리가 대답했다.
"비녀(婢子)는 이미 준비를 끝냈습니다!"
축미화는 동행을 거절 당해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노, 여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고 웃으며 말했다.
"당공자는 성정(性情)이 대단한 사람 같아요. 일말의 불편함이 있으면 바로 자리를 뜨는군요."
그녀는 이어서 주안상을 마련하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노완령과 여검양 역시 더 머물 기분이 아니라서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도 이만 작별을 고하겠습니다."
축미화가 잠시 침묵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노신도 굳이 붙잡을 수 없군요."
두 사람이 몸을 굽혀 인사를 하고 갑판 밖으로 나가니, 당몽주가 탄 작은 배는 이미 수십 장 밖에서 파도에 일렁이고 있었다.
그들이 타고 있는 거선(巨舟) 옆에는 화살 모양의 작은 배(小舟)가 묶여 있었고, 한 명의 건장한 사내가 노를 잡고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나무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소주(小舟)에 올랐고, 건장한 사내는 밧줄을 풀고 두 개의 노를 저어 거선에서 멀어졌다.
약 반 시진이 지나자 두 사람은 뭍으로 올라섰고, 오는 내내 속을 끓이던 노완령이 즉시 입을 열려 했지만 여검양이 웃으며 먼저 말을 꺼냈다.
"노소저가 궁금해하시 게 무엇인지 짐작이 되니 제가 설명을 드리죠. 축미화와 무우곡 사이의 문제는 순전히 개인적인 은원관계이며, 당 노제는 그 속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서 서둘러 작별을 고한 것입니다."
노완령이 투덜댔다.
"그래도 어떻게 우리 둘만 두고 혼자 떠날 수 있죠?"
여검양이 미소를 지었다.
"노 소저는 그리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 노제는 원래 행동이 예측하기 어렵고 사고가 심오하며 성격상 독행(独行)을 좋아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오히려 곳곳에서 방해가 될 뿐이죠. 그가 우리더러 잠시 화음(华阴)에 머물라고 당부했음에도 우리가 멋대로 찾아와서 이미 불쾌함이 가득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동행하자고 말할 리가 있겠습니까?"
노완령은 그 말을 듣고 멍해져 물었다.
"그의 성격이 그리도 고집스럽나요?"
여검양이 하하 크게 웃어댔다.
"당 노제처럼 부귀한 집안 자제들은 평소에 턱으로 사람을 부립니다. 그가 의도치 않게 강호에 몸을 담게 되었지만 여전히 몸에 밴 습관은 고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나마 당 노제 같은 사람은 드문 셈입니다."
노완령은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그림자가 빠르게 날며 멀리 사라졌다.
당몽주는 뭍에 오른 뒤 사람의 발길이 뜸한 소로(小路)를 택했는데, 심사가 어지러워 생각에 깊이 잠기다 보니 얼마나 멀리 왔는지도 모른 채 마냥 걷고 있었다.
갑자기 교태로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당 공자님, 잠시 걸음을 멈추세요!"
당몽주가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앞길 멀지 않은 곳에 청의경장(青衣劲装) 차림에 검을 등에 멘 소녀 하나가, 살구꽃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두 마리의 청총마(青鬃马)를 끌고 길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배에 태워주며 배웅했던 소견(小鹃)이란 비녀임을 알아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아가씨가 나를 앞질러 이곳에 있을 수가 있지?"
소견이 웃으며 말했다.
"공자님의 배가 강가에 닿기 전, 저는 이미 다른 쾌속선을 타고 먼저 뭍에 올랐습니다."
당몽주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부인의 심기가 대단하여 탄복할 따름이오."
소견이 대꾸했다.
"공자님도 만만치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당몽주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가씨가 이곳에서 기다린 이유가 설마 나에게 손을 쓰고자 하는 것은 아니겠지?"
소견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제가 어찌 감히 공자님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릴 수 있겠어요. 제 목숨이 몇 개라도 공자님의 적수가 될 수 없는데요."
"아가씨의 무공도 약하지 않더군!"
소견의 두 볼에 홍조가 피어났다.
"백천애(百泉崖) 부로의 처소에서 공자님은 고의로 무공이 전혀 없는 척 하신 거였죠. 공자님이 광세절학(旷世绝学)을 지닌 몸으로 천비가 혈도를 짚게끔 고의로 틈을 허용했을 줄을 어찌 상상이나 했겠어요?"
당몽주가 고개를 흔들었다.
"나의 무공은 광절(旷绝)이란 말과는 어울리지 않소."
소견이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자님, 말에 오르세요. 부인께서 기다리십니다."
"어디로 가는 거요?"
소견이 교태로운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어쨌든 저를 따라오시면 돼요."
당몽주가 웃었다.
"좋소! 아가씨께서 길을 안내하시오."
두 사람은 말에 올라 채찍을 휘두르며 나는 듯이 달려갔다.
가는 길 내내 당몽주는 마음이 무거웠다.
축미화를 다시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문득 소견이 웃으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 왔습니다. 공자님!"
당몽주가 고삐를 늦추며 고개를 들어보니 앞에 거대한 저택이 보였다.
힐끗 주위를 둘러보니 거대한 저택 왼편으로 인가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는데, 그중 몇몇 집은 크고 웅장하며 호화로운 저택들로, 처음 온 사람이라면 축미화가 사는 집이 어딘지 짐작할 수 없게 구성되어 있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축미화의 심계가 깊어서 이곳에 은거하고 있지만 외부인은 실상을 알 방법이 없겠구나.'
말에서 내린 후 소견을 따라 눈앞에 있는 저택 안으로 들어가, 두 번째 대청 앞에 있는 정원에 이르니 축미화가 웃으며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당공자, 와 주셨군요!"
당몽주가 몸을 굽혀 인사했다.
"부인께서 다시 부르셨는데, 아직 무슨 가르침이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축미화는 당몽주를 대청 안으로 안내하여 앉게 한 후 긴 한숨을 내쉬었다.
"노 낭자와 여 소협이 있다 보니....대단한 비밀이라 할 수는 없지만 외부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당몽주가 말했다.
"저도 외부인입니다."
"공자님은 외부인이 아니에요!"
축미화의 말이 이어졌다.
"이몸은 공자와 딸아이가 깊은 우정을 맺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몽주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인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
축미화가 말했다.
"먼저, 백천애는 딸아이가 사는 곳으로 경비가 삼엄하여 외부인이 출입하기 어렵고, 게다가 이곡주 안홍경(颜鸿庆)이 암중 엄밀하게 출입자들은 감시하고 통제하고 있는데, 담령으로 역용한 공자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으니 어찌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당몽주는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축미화가 이어서 말했다.
"두 번째로, 부마마와 부죽청은 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는데, 악명이 자자한 담령을 부죽청이 공경하는 것을 보면 딸아이의 뜻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이것이 안홍경이 잘못 판단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당몽주는 놀랐다.
"부인께서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어 보시니 저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듯합니다."
축미화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 몸은 예전에 백춘언과 함께 무우곡에 가본 적이 있어 지세를 잘 알고 있었기에, 사람을 백천애로 들여보내 딸아이의 안위(安危)를 알아보게 했죠. 그 아이는 친어미가 살아있다는 것을 몰랐지만, 어미로서 어찌 자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행스럽게도 아이가 매우 총명하고 신중하여 안홍경이 사람을 백천애에 심어 놓았지만 아직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몽주는 여러 차례 축미화와 백춘언 부부 사이에 무슨 은원이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축미화(祝薇华)는 당몽주가 묵묵히 듣고만 있자, 그윽한 눈길로 당몽주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공자께서는 어떻게 딸애와 알게 되셨나요?"
당몽주가 대답했다.
"대명부(大名府) 객사(客舍)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축미화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거짓말을 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 공자의 인품과 재능이라면 그 아이가 처첩(妻妾)이 되어 시중을 들어도 아깝지 않지만, 그 이전에 딸아이는 스스로를 매우 높이 여기며 낯선 남자에게 얼굴을 가볍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 몸의 짐작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공자로부터 구명대은(救命大恩)을 입었을 것이고, 그 일은 자전검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당몽주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인께서는 일을 귀신처럼 예측하시는군요. 바로 그랬습니다."
축미화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당몽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공자께서는 지금의 황상(皇上)께서 어떻게 대통(大统)을 계승하셨는지 알고 계십니까?"
당몽주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알기로는 4년 전 선대(先代) 황제가 승하했을 때 후사(后嗣)를 이을 동궁(东宫=태자)이 없어, 적계(嫡系), 방친(旁亲), 외번(外藩)*⑴의 대통 승계 순서에 따라 당금(当今=지금의 황제)께서 보위에 오르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대답했지만 축미화가 왜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지 의도를 짐작할 길이 없었다.
(16-1 마침)
[註]
*⑴嫡系旁亲外藩
적계(嫡系)는 祖-父-子-孫 직계를,
방친(旁亲)은 같은 조상 아래 형제들로 갈라진 친척을 의미합니다.
외번(外藩)은, 변방에 어느 정도 자치권을 지닌 왕이나 제후가 다스리는 속지(屬地)를 의미하는데, 많은 경우 외번의 왕 직위는 황제의 형제나 태자로 책봉되지 않은 아들들이 차지했고, 변방을 지키기 위해 상당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대통 승계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세하거나 직접 보위를 노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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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정을 어 >인정을 두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