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구름 하늘을 가리고 / 이별의 날은 왔도다
다시 만날 날 기대하고 / 서로 작별하여 떠나가리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 꽃피는 시절에 다시 만나-리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 다시 만날 날 까지
들려오는 저 물새 소리도 / 이별을 서러워하고
날마다 가는 갈매기 떼들 / 우리의 작별을 슬퍼하니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 꽃피는 시절에 다시 만나-리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 다시 만날 날 까지.. 전세계적으로 불리는 하와이 민요 알로하오에(Aloha'Oe)는 하와이 왕국의 마지막 여왕인
릴리우오칼라니(1838~1917)가 1878년에 작사 작곡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와이어로
'알로하'는 사랑, 안녕이란 뜻이며 '오에'는 당신에게라는 뜻이 담겨있다.
즉 '알로하오에'는 안녕, 당신이 함축된 언어이다.
어느날 승마를 즐기던 여왕 릴리우오칼라니는 작은 언덕을 넘다가 언덕 아래서 이별을 아쉬워
하는 두 연인이 포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아쉬운 사랑이야기로 이 음악을 작곡하였는데,
처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만든 이 노래가 오에(Oe); 당신이란 말과 알로하(Aloha); 사랑,
안녕 이란 단어의 오해로 장례식장에서 까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아쉬워하는 노래로
불리는 것을 보고 여왕 본인도 놀랬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진다.
릴리우오칼라니는 국왕 칼라카우아의 여동생으로 사교계에서 명성을 날리다가 미국 본토 남자와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사망하자 귀국하였으며 오빠가 사망함에 따라 국왕에 즉위했다.
릴리우오칼라니는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정책을 펼쳤는데, 이런 정책의 일환으로 1893년 1월
새 헌법을 제정하여 외국인(주로 미국 본토인) 소유의 농장을 몰수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미국인들의 반감을 산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 끝내 왕좌에서 물러나고 1898년 하와이는
하와이의 섬나라에 왕국이 있었는데 릴리오칼라니(Lilliuokallani)라고 여왕은
1893년 미국의 해병대의 도움을 받은 토착민이 아닌 친미 백인 세력의 협박과 강요에 의해서
왕권 포기에 서명을 하게 되었다. 왕위에서 강제 축출당한 여왕은 고국을 등지고 타국의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여왕을 축출한 세력은 백인 주류의 하와이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검은 구름 하늘을 가리고 이별의 날은 왔도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서로 작별하며...”라고
흥얼거렸던 노래는 학교에서 배웠던 ‘알로하오에“는 여왕이 다스리던 왕국을 두고 떠나는 것을
애잔한 가락에 노래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왕의 한이 아직도 남아 있었던 하와이는 미국에 의한 합병을 통해서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미국의 주로 편입된 것은 아닌 상태로 있는 중에 일본이 하와의 진주만을 공격을 하게 되었다.
미국의 영토(territory)에서 알라스카에 이어서 미국의 50번째로 주(state)로 된 것은 1959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하와이가 미국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로 자리 잡은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은 아니다.
남의 영토를 군대를 동원해서 자기의 영토로 만들었던 시절에서 흔히 일어났던 일이었다. 하와이가
미국에 의해서 병합되고 있었을 무렵 일본도 조선에 그 손을 뻗쳐 일본의 영토를 확장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이전의 강대국의 식민지로 있었던 나라들이 독립을 하게 되었다.
패전국인 일본은 한국을 비롯한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을 포기하면서 전범이라는 멍에를 지고 가야 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이 난후에 세상은 변해서 제국주의로 인해서 남의 식민지로 있었던 나라들은
줄지어 독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도를 비롯해서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과 여러 곳에 식민지를 두고
있었던 영국도 차례로 자기네의 속국으로 있었던 여러 나라들의 독립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국주의가 종말을 고하게 됨에 따라 강제로 강대국의 영토(領土)로 편입되었던 나라들의
독립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세계의 추세라면 하와이의 독립도 이우러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며 하와이를 자국의 주(state)로 승격시켜 버렸다.
이와 같은 영토문제는 결국엔 힘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할 수 있거나,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전쟁에서 이겼기에 자기들이 원하는 데로 할 수 있었지만,
일본은 패전(敗戰)을 하였기에 전승국(戰勝國)의 처분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과거청산이라는 말을 할 때 강자는 자기의 입장은 합리화시키면서
약자의 과거만을 바로잡자는 논리를 전개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전쟁 중에 일본군의 특수 부대인 731부대는 북만주에서 생체실험(生體實驗)을 하였다.
이러한 실험에 가담한 지휘관들은 1급 전범(戰犯)들이다. 그런데 미국은 일본이 미국에 항복을 한 후에
이 부대에서 근무했던 요원들을 미국으로 데리고 와서는 미국 시민권과 갖가지의 혜택을 주어가면서
실험을 통해서 얻어진 결과를 얻어내어 자기들의 목적에 사용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편으로는 일본군에 의해서 저질러진 만행(蠻行)을 공개적으로 비판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만행의
결과로 얻어진 의학적 정보는 자기들의 국익을 위해서 사용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땅 따먹기의 일인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은 아직도 괌과 사이판 등의 태평양의 섬들을 자국의 영토로 삼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보면서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현재를 생각해보자.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착취한 것에 대해서 사죄하는 태도는 일부 양심 있는 일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일본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주장하기를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었던 기간에 한국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을 준 일본에게 감사해야한다고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통치를 합리화 하고 있는 것이
일본의 과거(역사)에 대한 태도라고 하면, 현재는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이 간접적으로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New York Times등 미국의 언론들은 일본의 역사관이 중국이나 한국의 역사관보다
편파적이 아니라고 보도를 하면서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영토 문제에 있어서는 승전국(강대국)이나 패전국(약소국) 할 것 없이 겸허한 마음으로 원래의 상태로
복원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마음이 있을 때에만이 평화는 우리에게 다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