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꿈이있는교회는 내 편” | ||||||
이웃 위한 열린사역 5년, 진실한 마음을 얻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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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훈 목사가 개인적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익산 땅에 개척을 시작한 것은 2006년 1월 1일의 일이다. 꿈이있는교회가 자리 잡은 익산시 남중동은 성장이 멈춘 구도심인데다, 교회당 주변의 대다수 주민들이 60대를 넘긴, 노후한 주택가였다. 인근에 변변한 상가도 없고, 좁은 골목길 한 귀퉁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더욱이 교회에 대한 이웃들의 시선조차 좋지 않아, 그야말로 개척교회로서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노 목사는 일단 이웃들의 생각을 알아보고자 설문조사에 착수했다. 사람들이 의지하고 싶어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교회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이유 그리고 바라는 부분들은 어떤 것인지 꼼꼼히 알아보았다. 그 결과 교회의 사역방향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개척 후 형편이 나아지면 신도심 쪽으로 옮겨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사역을 펼치고, 공부를 계속하면서 사람들이 안 된다고 말하는 지역, 희망 없다고 생각하는 동네가 변화되는 것을 하나님이 더욱 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굿네이버스가 추진하는 굿미션네트워크에 참여한 것은 젊은 목회자에게 새로운 지평을 제공해주었다. 선교지 빈민가에서 펼치는 지역사회 보건·교육 프로젝트인 ‘CHE’를 바로 자신의 목회지에서 응용해보자는 아이디어가 생겨난 것이다. 모기가 유난히 많은 동네를 위해 방역기를 구입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아무 설명도, 홍보도 없이 손수 이곳저곳 방역활동을 하고 다닌지 며칠 째, 드디어 한 주민이 그를 불렀다. 자기 집에도 약을 뿌려달라는 것이었다. 공무원 아니면 용역업체 직원 정도로 생각했던 그 주민은 허름한 차림에다, 땀에 젖은 모습을 한 젊은이의 신분이 새로 생긴 동네교회의 목사라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이후 시작된 골목길 청소활동에도 비슷한 반응이 일어났다. 무심한 척, 외면하는 척해도 사람들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고, 작은 선행들이 완고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성공했다. CHE사역은 점차 더 많은 계층을 품게 됐다. 엄청난 비용과 인력이 소모되는 대단한 규모의 사업들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노래를 들려주고, 청소년들에게 흡연의 위험성을 알려주며, 주부들에게는 천연세제를 만들어 사용하는 방법을 전수하는 식이었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컴퓨터 사용습관을 키워주는 일, 아빠가 집에서 자녀들과 놀아주는 방법을 소개하는 일 등등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끝이 없었다. 사소한듯해도 그 위력들은 대단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를 이해하고 살펴주는 교회를 통해, 누군가 자신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 후 일어난 작지만 특별한 사건 하나. “한 번은 교회에 중요한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교회 주차장을 차지한 차량 때문에 곤란했어요. 차 주인에게 연락해 양해를 구하려는데,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 통에 난감했지요. 그런데 바로 그 때 동네 분들이 나서서 저희를 두둔하며, 차 주인을 대신 나무라주시는 바람에 손쉽게 일이 해결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꿈이있는교회는 이웃들에게 ‘내 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CHE는 이제 쌀 나누기 운동 등을 통한 마을공동체 형성, 청소년들을 위한 레인보우스쿨 운영, 지역사회 전역을 대상으로 한 친절프로젝트 추진 등으로 확대되었다. 사역이 커지면서 이웃교회들과 자치단체까지 동역자로 삼을 수 있었다. 그 사이 괄목할 수준의 양적 성장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꿈이있는교회는 섣부른 성장을 스스로 경계한다. 성장에는 명확한 이유와 정당한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수평이동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고,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교회’라는 지금까지의 목회철학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고자 한다. 작은 교회들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고, 종말의 시대에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공동체가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는 이 교회의 꿈은 아름답고도 야무지다. 다시 5년 후, 그리고 또 10년 후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