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이 처가인 소월 경암
박 혜 숙
소월과 경암의 문학관을 나의 고향에다 세운다. 예부터 느티나무 괴 자에 뫼 산 괴산군槐山郡이라고 이름을 지었고, 산자수명해서 인물이 많이 나는 고장이었다. 서울서부터 차를 타고가면 소백산맥의 험준한 골짜기로 빨려 들어가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키는 고향집에 닿았다. 이곳의 지명이 전에는 괴산군 도안면이었다가 증평군으로 행정 구역이 개편되었다.
소월 시인의 부인은 『임꺽정』을 쓴 홍명희 딸로 괴산이 처가이다. 경암 교수님의 처가도 증평으로 지금도 이 지방의 유지로 문학관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남편의 처가는 감물면에서 양조업을 하던 집안으로 가장 한미하다. 괴산 산골여자를 택했던 남자들의 인연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경암 교수님과 나의 인연은 2010년 봄에 시작되었다. 25년 간 몸담았던 교직을 마치고 어찌 지내야할지 막막했는데 우리 동네 ‘이철호 문학관’에서 글쓰기를 배운지 1년 되었다고, 여고 동창 박신숙이 데려갔다. 국문학을 전공했고 1999년 소설로 등단하였지만, 막연하게 쓰는 글이 어딘가 문제가 있는데 국어 선생이란 직책 때문인지 아무도 지적해주지 않아 답보 상태에 있었다.
첫 날부터 야단맞기 시작했는데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지적 받은 부분을 고치고 나니, 글이 조금씩 나아졌다. 칭찬 받는 날은 고치지 않고 덮어두니 내 글이 발전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했다. 한 때는 여고 동창 3명과 은사님까지 같이 공부를 했는데, 돌아가며 혼나서 벌금으로 밥을 사라고 했다. 은사님이 너무 길게 써서 듣는 사람이 힘 들었다고 밥값을 내시곤 민망한지 금요반에서 수요반으로 수업을 옮기셨다.
글을 쓰면 왜 그리 고칠 게 많은 지, 명함 같은 제목을 산뜻하게 못쓰느냐? 가시적인 제목을 붙여야지. 단어 선택을 잘하고 첫 문장은 간결하게 시작하라. 도입부가 지리멸렬해선 이 글을 끝까지 읽고 싶지가 않다. 깊은 사색에서 나온 문학성이 있는 글을 써야지. 주제가 일관되게 표현되어야 하는데 두 개의 글이 엉켜 있다. 현재· 과거· 미래 복합 구성을 해야지 일어난 순서대로 써서 글이 엉성하다. 자랑하는 글은 거부감을 준다. 인용은 짧게 하라. 등등.
한 번 읽는 글을 듣고 그 자리에서 일언지하 내리꽂는 송곳 평 때문에 문하생들이 몰려오고, 오래된 제자들 중엔 베스트셀러 작가들도 많다. 하지만 무료로 운영되는 수·금·토 아카데미 수강생들에게는 더 공부가 필요한가보다. ‘제자 기르는데 경암 만큼 성공한 사람이 없다.’고 문단에 정평이 나 있고, 나도 제자라고 큰소리치며 산다.
현재는 문학관 이전 준비위원으로 소월·경암 문학관의 향기가 온 누리에 퍼지는데 무언가를 기여해보겠다고 고민 중이다. 그 동안 김소월백일장대회 사회와 심사, 수필분과 위원장, 연수원 교수를 지냈고, 요즈음은 ‘한국문인’ 편집 실무위원, 새한국문학회 운영상임위원으로 있으면서 카자흐스탄 국제세미나에 ‘소설을 통한 남북문학 교류는 가능한가’ 발표를 위해 준비 중이다. 2018년 시무식 겸 교수님 생신 축하 편지를 문하생 대표로 읽기도 했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은데 교수님이 건강 지키며 오래오래 우리를 지도해주시길 빌고 있다. 50여 년 문단의 거목으로 활약하고 70여 권의 저서를 쓰며 강의하시니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글쓰기 기법을 배운다. 평생을 명의로 쌓아온 노하우, 정치가로 활약하며 얻은 삶의 지혜를 전수해주는 말씀들은 금과옥조가 되어 우리들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이제 증평 문학관은 교수님이 거금을 출자하여 세워졌다. 모쪼록 문학을 사랑하는 열정이 모여 소중한 문화재로 길이길이 명성을 드높여 전국에서 문학의 메카로 융성해가길 우리 모두는 기원하고 있다. 고향의 명소로 누구나 찾아가서 체험하고 싶은 문학관이 완성되는 것을 교수님과 함께 지켜볼 것이다.
더구나 이곳은 충청도를 가로 지르는 기차가 지나는 교통요충지이다. 도안에 오자 ‘이불 보퉁이’가 기억 저편에서 솟아오른다. 괴산군 감물면 이담리. 지금은 ‘괴산서원’이 있는 지대미에 살던 나와 남동생은 청주로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을 한다. 남의 집에 살면 기죽는다고 무리를 하여 우암동에 집을 지어서 외삼촌 내외와 살게 되었다.
엄마는 여름 방학하여 올 때 이불을 가져오라고 했다. 솜을 손질하고 호청을 바꿔야 한다. 강에서 방망이로 두들겨 시원하게 빨아줄 테니 꼭 가져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외숙모에게 이불빨래까지 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풀을 먹이고 다듬질을 하여 반질반질한 이불을 자식한테 덮어주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우리 남매가 들고 가기에 짐이 무겁다고 시내버스 타고 먼저 가 있으면 외삼촌이 자전거로 실어다주겠다고 우겨서 우린 시외버스 터미널로 먼저 왔다. 방학식을 마치고 오다보니 고향으로 가는 막차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외삼촌이 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다 막차는 떠나고, 이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다.
외삼촌은 집에 돌아갔다가 내일 가라고 달랬지만 집에 너무 가고 싶었다. 극장을 운영하는 언니 네서 자고 첫차로 집에 가겠다고 괴산까지 가는 차를 탔다. 청주에서 율량을 지나 도안삼거리까지 왔는데, 트럭에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을 싣고, 청주로 향하는 차들이 여러 대 보였다.
괴산에 와서 큰집언니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영화보고 놀다 내일 가라고 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오니 우리 남매를 택시에 태웠다. 우리가 놓쳤던 막차가 도안에서 기차와 부딪혀 승객이 거의 다 죽었다. 이불보따리가 너희를 살렸는데, 뉴스 들으면 부모님 밤새 못 주무신다고 서둘러 보냈다.
엄마가 깜깜한 밤에 나타난 우리를 보고 막차에도 안와 내일 오는 줄 알았다고 하였다. 교통사고 얘기를 했더니, 우리 새끼들 다 죽일 뻔 했다며 외아들을 끌어안고 통곡을 하셨다. 청주 외삼촌도 사고 소문이 나서 괴산 가던 차라니까 우리가 탄 차인지 알고 부상자가 입원했다는 병원마다 다 확인하러 다녔다. 우리 집에 전화도 자가용도 없이 가난하던 때라 더욱 애를 태웠다.
‘이불 보퉁이’가 없었다면 나는 어찌 되었을까?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나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이곳에 오니, 너는 ‘무엇을 위해 사느냐’고 머리를 띵하게 때리며 물어온다. 너도 소월처럼 경암처럼 문학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라고 그 때 너를 살렸다고 말을 걸어온다. 괴산 여자의 자존감을 찾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다.
문학관 이전을 위해 공사 관계자들과 정기적으로 회의를 했는데, 최근 개관한 문학관을 언급하기에 가 보았다. 광명시에서 세운 기형도 문학관은 29살에 요절한 작가의 삶이 빈집을 채우는 영원한 청춘의 언어로 남아 흔적을 찾아가는 우리에게 386세대의 아픔이 전해 왔다. 문학 교과서에서 많이 다루는 작가로 작품이 해외에 번역되고 있었다.
개인으로 세운 문학관은 조병화 문학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널찍하게 고향에 자리 잡은 그곳으로 문학기행을 가서 거닐었다. 문학의 세계에 푹 잠기며 그의 삶이 보여주는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사후 작가는 작품으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왔다.
우리는 소월· 경암 문학관을 찾아오는 관람객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어야 할까? 문화재로 등록된 『진달래꽃』을 쓴 국민 시인 소월에게서 정처를 잃은 현대인들이 마음의 고향을 찾길 바란다. 세계 3대 시인에 들었던 그만의 시세계를 온몸으로 느끼며 서정의 세계에 푹 잠기게 해야 한다.
전국의 문학관 중 작가로 정치가로 한의사로 치열하게 살아온 자료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경암 문학관이다. 한 사람이 이루어낸 위대한 삶을 살펴보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꿈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태양인 이제마 원작자가 만든 사상체질 체험도 하고 문학이 어떻게 질병을 고치는지도 체험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빈다.
이곳을 찾아온 관람객들이 문학을 통해 삶이 아름다워지고,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름다운 글을 쓰며 문학의 향기가 퍼지도록 혼신을 다해 준비하고 운영해야 할 것이다.
박혜숙 약력
‧ 중 ‧ 고등학교 국어교사(25년)
‧ 1999년 문예사조 신인상 수상 (소설) 등단
‧ 2011년 한국문인 신인상 수상 (수필) 등단
‧ 2012년 성호문학상 수상, 2016년 소월문학상 수상
‧ (사)한국문인협회 안산지부 회장 역임, 우먼 피플 논설위원장
‧ 현) (사)한국문인협회 회원, 새한국문학회 운영상임위원, 『한국문인』 편집 실무위원
소월·경암 문학관 이전 추진위원, 소월문학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 저서 : 『보랏빛 향기』 수필집
박혜숙(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