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문화 탐방-한국문인협회 세미나
일시:2008년 9월 18일 목요일~9월 26일 금요일 8박 9일
탐방지:인도 델리, 바라나시, 카주라호, 오차, 잔시, 아그라, 파테뿌르 쉬크리, 자이
푸르
2008년 9월 18일 목요일 인천 출발, 인도 도착
*인천 국제공항 출발
한국문인협회에서 인도 세미나를 위해 출발하는 여정이다. 아시아나 OZ 767 항공 19:30분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공항 3층 출국장 M 카운터 테이블에서 4:30분 미팅이다. 나는 신세계 백화점에서 충전 건전지를 사고 모임 장소로 갔다. 문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었다.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마친 후 탑승 게이트로 이동했다. 남자 문인 14명, 여자 문인 18명 총 32명이다.
해가 진 후 서늘하여진 날씨에 옷을 하나 더 꺼내 입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는 밤 12시 도착예정이며, 총 비행 시간은 7시간 30분, 현재 델리 온도는 26도다.
* 인도 델리행 비행기 길
인천에서 우리나라 영토를 따라 제주도까지 내려가서 중국 쪽으로 간다. 황해를 건너 상하이를 바라보며 날아간다. 안내 모니터가 등받이 의자에 있어 보기 편하다. 8시 SBS 한국 뉴스가 나온다.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며 간다.
중국 상공으로 진입한다. 캄캄한 창밖은 별이 뜨고 있다. 아래로는 하얀 구름 무리가 깔려 있다. '1박 2일 백두산 가다' 프로그램 상영을 보고 잠을 청했다. 일행 중 힘드신 분이 있어 잠시 놀라기도 했다. 회복되어 다행이다. 아직도 2시간 남았다.
* 뉴 델리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공항의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9월 18일 11시 40분에 도착했다. 종교 그림이 벽면에 많이 붙여 있다. LG광고판도 있다. 머리에 터반을 두른 인도인들이 보인다. 내가 생각했던 어두운 인도가 아니다. 밝고 우람한 인상이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물도 잘 나온다.
현지 인도 가이드를 만났다. 비가 온다. 호텔로 가며 인도에 대하여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인구 11억명으로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큰 나라다. 델리는 인구가 1300만명이다. GNP 500불 아주 가난한 나라다. 힌두교 85%, 회교11%, 시크교 3%다. 시크교인들이 터반을 쓰고 다닌다. 가이드 라즈는 한국어를 홀로 공부했으며 10년 경력이란다.
1947년까지 200년간 지배당한 나라다. 한국과 비슷한 민족주의 국가다. 한국의 16배 크기 나라이며, 시차는 3시간 30분 한국보다 늦다. 9월까지는 우기로 비가 종종 온다. 오늘은 많이 왔단다. 델리, 자이푸르, 아그라, 세 도시를 이으면 삼각형이다. 그래서 트라이앵글 여행 코스라 한다. 아그라에는 36개의 문화유산이 있다. 내일은 델리만 관광한다.
차가 우선인 국가다. 급브레이크를 밟아 놀랐다. 사람은 차보다 다음이어서 그렇다. 후진국일수록 그런 현상이다. 인도에서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아주 조심해야 한다. 호텔까지는 30분 소요된다. 거리의 조명은 밝은 편이다. 잘 보이진 않지만 야자수가 곳곳에서 남국의 향기를 발한다.
* 인도 뉴 델리 메트로폴리탄 호텔 투숙
직원들이 나와서 반가이 맞는다. 밤 늦은 시간인데 이곳은 먼데서 온 한국의 손님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가방을 날라 주고, 문을 여닫아 주고 친절함이 그 어느 나라의 호텔보다 대단하다.
깊은 역사의 향기가 난다. 엘리베이터가 로비에서부터 0층, 1층, 2층으로 영국식이다. 나는 229호다. 깨끗하고 시설이 좋다. 직원들이 룸서비스까지 다 해주며 아주 친절하다. 내일은 8시 모닝콜, 8시부터 식사, 10시 출발이다. 인도의 첫밤은 그렇게 행복한 호텔에서 편안히 잠을 잤다.
2008년 9월 19일 금요일 뉴 델리, 올드 델리, 간디 화장터
* 뉴 델리 메트로폴리탄 호텔
웅장한 호텔이다. 룸의 창박은 수영장과 델리의 푸른 풍경이 물결친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허름하지만 연륜 깊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곳곳에 직원이 배치되어 있다. 요청하면 함께 기념사진도 찍어준다. 출입문도 열어준다. 크고 울창한 나무들이 정원 가득하다.
도로에는 출근하는 차량들이 질주한다. 그 사이에 인도의 택시인 세발 자동차 릭샤도 끼어 달린다. 매우 번잡한 아침 출근 풍경이다. 오늘은 델리 시내 관광이다. 오전 10시 출말한다. 27도, 구름 낀 날씨로 좋다. 관광 버스가 다 비슷하여 차 번호 7991을 외우란다. 오늘 오후에는 바라나시로 간다.
* 뉴 델리 시가지
버스 안에서 문인들 소개 시간을 갖었다. 김년균 이사장님, 성기조 명예 이사장님, 김송배 시분과 회장님의 말씀이 있었다. 인도에서의 한국문인 세미나에 참여한 모든 문인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인도를 보아야 세계를 다 본다는 말씀을 하신다. 모자라고, 아프고, 그래서 문학적인 나라라는 것이다. 개인 소개도 하며 문우의 정을 더 깊이 나누었다.
델리는 뉴 델리와 올드 데리로 나뉜다. 그 중에서 먼저 본 곳은 뉴 델리다. 델리 중에서도 가장 깨끗한 곳이다. 서울의 강남이다. 거리가 잘 정비되어 있다. 글씨도 낯설고, 의상도 낯설다. 여인의 정갈한 옷차람이 돋보인다. 건물도 우람하고 자동차도 많다. 넓은 도로와 화려한 풍경이 인도라는 느낌을 지운다.
* 올드 델리 시가지
이렇게 다를까. 같은 인도인데, 같은 델리인데 뉴 델리와 올드 델리의 차이는 엄청나다. 거리에서 얻어온 밥을 먹는 아이들, 노변에서 집처럼 사는 가족들, 방뇨자들이 거침없이 드러난다. 거리에는 자동차보다는 3륜 자동차와 오토릭샤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질서는 실종되고 상당히 복잡한 거리다. 좁고 불결한 풍경이다. 올드 델리의 재래시장은 더욱 복잡하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그리고 그곳을 지나는 차량들로 엉켜 있다. 우리의 버스도 간신히 빠져 나왔다.
* 델리 이슬람 사원
입장할 때 반팔, 반바지는 안된다. 사진촬영도 금지구역이다. 사진 찍으려면 인도 화폐로 200루피, 달러로는 5불을 내야한다. 1불은 43루피다. 350년 전에 세운 아시아에서 제일 큰 회교사원이다. 140m 탑이 두개 있고 초생달, 별 모양의 문이 3개, 돔지붕 등 이슬람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이곳에는 왕 접견실도 있다. 사쟌왕도 여기 와서 기도했다. 1만 5천명 동시 기도가 가능한 큰 사원이다.
이슬람교인은 하루 5번 기도한다. 흰모자를 쓴 사람은 모두 이슬람교인이다. 올드 델리에서 만난 사원이다. 사이클 릭샤, 오토 릭샤, 자동차, 거리 상인들, 그리고 관광객들로 엉키고 설킨 도로변에 차를 주차하기도 어렵고, 입장도 까다로워 관람에 힘들었다.
긴 계단을 따라 안에 들어 갔을 때 놀라운 모습이 보였다. 마당에 네모진 연못이 있고 그 물가에서 인도인들이 손을 닦는다. 세수도 하고 발도 닦는다. 성스러운 예식이다. 이방인인 우리도 물가에 앉아 그들처럼 손을 씻었다. 붉은 사암, 즉 샌디 스톤 으로 지어 붉은 색 건물이다. 인도 서편에 돌산이 많은데 그곳에서 채취한 돌로 지었다. 안에는 거룩한 자세로 기도하는 자들이 앉아 있다. 성스런 걸음으로 한바퀴 돌고 나왔다. 버스로 주변을 돌 때 이 사원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알았다. 돌고 돌아도 끝없이 이어지는 담장이다.
* 델리 도심의 가정집
도로변에서 버스가 정차하는 바람에 운 좋게도 인도의 가정집을 자세히 보았다. 마당에 불화덕을 놓고 남자들이 요리를 한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중인 것 같다. 델리 도심의 주택이니 그래도 살만한 집이다. 제법 모양새를 갖춘 집이다. 우거진 나무와 쇠창살 담장이 깊은 연륜을 드러내며 운치를 더해준다. 행복이 도란거린다.
* 간디 화장터 가는 길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갔다. 인도인들도 많이 그곳을 향해 간다. 인도에서 한국의 LG, 삼성 전자는 최고 인기다. 한국인들을 무척 좋아한다. 한국인들은 '빨리 빨리' 문화인데 인도인들은 느림의 문화다. 걸음도 우리는 종종 걷는데 그들은 여유있게 걷는다. 나무가 주변에 가득하고, 인도의 아버지 간디 화장터를 찾는 인도인들의 가족도 많이 만났다.
여자 중에는 가르마 부분에 붉은 칠은 한 자도 있다. 그것은 결혼했다는 의미다. 또 남자나 여자의 이마에 붉은 칠을 한 것은 종교의식이다. 긴옷을 입은 여인들이 참 아름답다. 시크교인들은 턱수염을 기르고, 터반을 두르고 작은 칼을 소지한다. 독특한 문화다.
* 간디 화장터
간디를 화장한 곳이다. 1948년 여기서 그의 시신을 태워 갠지스강에 버렸다. 연중 가스불을 피우며 그의 넋을 기리고 있다. 높은 외국인 및 내국인 모두 간디 화장에는 꼭 간다. 1월 31일은 간디가 살 당한 날이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싸움으로 힌두교 쪽에서 화가 나서 총살한 것이다. 10월 2일은 간디 생일이다. 매년 생일과 사망일에는 이곳에서 큰 행사가 열린다. 간디는 수상은 아니고 인도에서 가장 높은 자다. 현재 여자 간디가 인도 수상이다. 즉 대통령이다.
우리의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간디의 화장터는 대단했다. 죽어서도 이리 아름다운 곳에 머물면 죽음이 서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잔디 공원에 직사각형의 담장 아래 고즈넉히 그의 화장터가 있다. 나무 울타리가 곡선으로 예술이다. 어느 한곳 허술함이 없다. 얼마나 인도인의 높은 추앙을 받는지 짐작케 한다.
* 인도 거리 아이의 묘기
어찌할까. 바라보기조차 안타까운 일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버스가 지나가며 잠시 보았지만 슬픈 묘기가 가슴을 적신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인 두 남매가 도로변에서 묘기를 부린다. 오빠는 장구를 치고, 여동생은 재주넘기를 한다. 그리고는 지나는 사람에게 돈을 요구한다. 살기 위한 방법인데 너무나 애처롭다.
* 델리 간디 박물관 내경
생시의 간디 사용 물품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그의 활동 사진과 함께 질서 있게 정열해 두었다. 사진 촬영이 가능하여 기념 사진을 찍었다. 1, 2, 3층까지 오르며 자세히 보았다. 옷, 안경, 물레, 도서관, 그의 마지막 총살 당한 혈흔까지, 그가 총살당하여 부축하고 걸어가는 뒷모습까지 모두 보았다. 아직도 붉은 피 앞에서는 가슴이 서늘하였다.
내가 아는 간디는 성적으로 초월한 분이라고 들었다. 인도의 선적 문란을 타파하기 위해 발가벗은 여인을 침실에 들여 보냈는데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잤다는 것이다. 위대한 분의 삶을 보며 고고한 인품을 배웠다.
* 델리 간디 박물관 외경
입구에 독립 운동 군상이 시선을 이끈다. 간디가 앞장 서고 영국인을 추방하는 시위 조각 동상이다. 키 작은 사람들이 대충 보면 어떤 의미인지 모르도록 붙어 있지만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다. 규모가 그리 큰 것은 아닌데 붉은 건물이 우람하고 주변의 나무들도 울창하여 아름답다. 개 한마리가 사람을 따라 다니다가 누워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 평화로운 정경이다.
* 델리 도로변 당나귀들
인도에서 말이나, 당나귀는 교통수단이다. 인도는 고속도로가 없다. 그래서 동물을 이용하여 이동한다. 길가에 당나귀가 많다. 소는 도시의 발전으로 시골로 귀향하여 델리 시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올드 델리와 뉴 델리의 거리 차이는 크다. 올드 델리는 지저분 하고 뉴 델리는 깨끗하다. 동물도 올드 델리에 많다. 쓰레기 더미에 당나귀 무리가 먹이를 찾고 있다. 사람도 함께 섞여 있다.
* 델리 도심 거리
점심 식사 후 시간이 좀 있어 주변을 둘러 보았다. 맨발로 다니는 사람도 있고 고운 글씨 간판의 상점도 있고, 약국은 한국과 동일한 영문 표기다. 여전히 우거진 나무들이 인도의 향기다. 버스로 다시 이동하며 본 델리는 아파트가 거의 없다 있어도 저층이다. 외곽의 민가는 천막집이다. 신도시 주택은 비싸다. 1억 정도란다. 빈부의 차이가 육안으로도 심하게 보인다. 1947년 8월 15일은 영국이 떠난 인도의 해방일이다. 간디는 영국에서 공부했고 남아프리카에 가서 변호사로 종사했다. 간디로 인해 인도가 해방된 것이다. 인도의 영웅이며 아버지다.
농업이 1위인 나라다. 그러나 젊은 이는 도시로 모이고 노인만 시골에서 농사 짓는다. 젊은이들이 델리 시내에 많이 나돈다. 좋은 직업은 의사, 약사다. 여자는 지참금을 많이 가지고 시집 온다. 아들 선호이며 아들 1명 나면 끝이다. '잘 먹고 잘 살자. 1명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로 산다. 그러나 50대에 비실거린다. 한국은 60대도 정정한데 말이다. 한국인은 김치를 먹어서 그렇다는 말에 웃었다. 기후의 영향이 크다. 늙은이들이 애처롭다.
데모 장면도 보았다. 경찰이 막대기로 막고 있고, 델리 도심에서 젊은이들이 직업을 잃은 것에 대한 분노로 난리다. 컴퓨터의 발달로 직장에서 해고당한 것이란다. 공학이 발달한 나라다. 자동차와 핸드폰을 생산하다. 여러면에서 델리의 모습을 보았다.
* 델리 지하철 공사
델리에 지하철이 있다. 공사도 한창 진행 중이다. 3년 전부터 시작된 공사다. 한국도 지원하고 있다. 올드 델리와 뉴 델리를 왕래하는 지하철선이다. 허름한 민가 앞의 길을 파 헤치고 도심 가운데에 중장비 차들이 들어차 있다. 활발한 움직임이다. 이미 운행되는 구간에는 지하철 역도 보인다. 잘 발달된 거리에는 한국의 어느 지하철 역과 같은 지하철 타는 입구가 있다. 인도의 큰 발전의 함성으로 다가온다.
* 델리 국회의사당
내리지 못하는 곳이라서 지나면서 보았다. 가까이 접근할 때 건물은 우람했고, 첨탑과 돔 지붕이 빼어난 아름다움이다. 비가 온다. 차창으로 보이는 정경은 눈부신 낭만이다. 나무와 잔디 위의 고운 건물이 인도라는 인상으로 지우며 비경이다. 크고 웅장한 주변을 자동차들이 분주히 돌고 있다.
* 델리 대통령궁
국회의사당과 나란히 있다. 국회의사당과 마찬가지로 역시 사람이 내리지 못한 영역이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 돌며 외관만 보았다. 그것도 빠른 차들의 흐름으로, 빗속이라서 자세히 보진 못했다. 분명한 것은 둥근 건물로 웅장하다는 것, 아름답고 빼어난 건물이라는 점이다. 꽃과 잔디가 돋보이고, 차와 드넓은 거리, 확 트인 정경이 잘 발달된 나라의 한 블럭 같다.
* 델리 인디아 게이트
델리의 개선문인양, 파리의 개선문 연상케 한다. 건물이 상당히 아름답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불을 피우고 경비가 지키고 있다. 이 문을 거쳐서 긴 대로 끝에 국회의사당과 대통령궁이 아련히 보인다. 맞은 편에는 높은 분수대가 있다. 사람과 상인, 자국인과 외국인으로 가득하다. 델리 도심을 빛내는 웅장한 문이다.
* 델리 인디아 게이트 주변 풍경
어느 잘 가꾸어진 공원처름 아름답다. 울창한 나무와 파란 잔디가 정취를 더욱 빛낸다. 비가 그쳐서일까 상큼하다. 도로인데 차량 통행을 막아 사람만 자유로이 왕래한다. 문을 지나 멀리 대통령과 국회의사당 건물이 보이고 주변은 대사관 거리로 온통 나무 물결이다. 호수도 꾸며 놓고, 평화가 그윽하다. 자유 속에서 상인과 민간인이 활기차다. 인도의 주인 없는 개들이 함께 떠돈다. 우리 버스기사는 시크교인이다. 휴식 중에 보니 턱수염과 하얀 터반을 두르고 있다. 인도의 진풍경을 이곳에서 다 본다.
* 델리 기차역 주변 풍경
바라나시로 가는 침대기차를 타기 위해 왔다. 기차역 주변은 상당히 발달된 모습인데 무언가 허술한 느낌이다. 그것은 무질서함으로 인한 외인이 받는 인상이다. 그들에게는 화려한 번화가이리라. 사람들로 만원이다. 빨간 자켓을 걸친 짐꾼들이 분주하다. 팔뚝에 쇠붙이로 된 인증패를 두르고 있다. 그렇게 차린 사람에게만 짐을 맡겨야 한다. 우리들의 짐도 그들에게 맡겼다. 그들은 돈을 받고 기차 타는 플랫홈까지 날라준다. 모두가 신기한 풍경이다.
* 델리 기차역
매우 큰 기차역이다. 인도만큼 큰 품으로 오가는 행인들을 보듬는다. 기차 한대가 끝없이 길다. 청색과 적색이 있는데 우리가 타는 침대열차는 청색이다. 양쪽으로 들어와 있다. 뉴델리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야간 기차다. 경찰이 순찰하며 둘러본다. 어두워지고 있다. 음식을 파는 가건물도 있고, 그 밑으로 쥐 한마리가 들락날락해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사는 인도를 본다.
* 바라나시행 야간 침대열차 탑승
긴 기차의 여정이다. 뉴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 약 12시간 걸린다. 오늘 밤을 기차 침대에서 자면서 간다. 나는 이런 여행을 참 좋아한다. 얼마나 큰 낭만인가. 도시락으로 저녁밥을 먹었다. 창가의 2층 침대좌석 윗층에는 남편 유기섭 수필가님이, 아랫층에는 내가 잘 것이다. 옆좌석은 4층이다. 인도 현지인과 섞여 있어 그편은 좀 불편했다. 1층이 특석이라서 인도인들이 미리 예약했기 때문에 우리 일행은 2,3층에 배정되었는데 고맙게도 인도인들이 바꾸어 주었다.
신기하여서 기차안을 돌아보았다. 종교의식르오 손뼉치며 노래부르는 단체도 있고, 간간이 철도직원이 순회하기도 한다. 새벽에 눈을 떠 화장실 앞 수돗물 앞에서 인도의 한국가이드를 만났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4명을 데리고 온 인도 현지 가이드다. 그의 이름은 '라카'라고 했다. 한국인을 좋아한다며 인도에 대하여 묻는 것을 자세한 설명해주었다.
인도의 4계급은 1-승려, 2-무사, 3.-상인, 4-농민이다. 라카는 가장 높은 신분인 승려 계급이란다. 요일별로 기도하는 대상이 있는데 월요일은 시바, 화요일은 원숭이 등이다. 인도 국조는 공작이다. 들녘에 암수 공작이 있다. 인도에서는 절대로 잡으면 안되는 새다. 한국의 공원에서 보호받는 새가 여기저기 많이 앉아 있다. 죽으면 깃만 뽑아서 팔고 고기는 먹지 않는다. 인도 국화는 연꽃이다. 여자 수명은 70~75세, 남자 수명은 60~65세란다. 남자는 더운 환경에서 일을 많이 해서 그렇고, 여자는 힘든 바깥일을 하지 않아서 수명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라카로 인해 많은 것을 배웠다. 아름다운 만남이다.
* 야간 침대열차 내경
한국의 기차와 유사한 점이 많다. 수도시설, 화장실, 커피 파는 사람, 승무원 순찰, 등이 그렇다. 그런데 이 열차는 침대에서 잠을 자며 뉴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 750Km를 가야하므로 그것에 맞게 조립되어 있다. 침대 위주로 구성된 내경이다. 나의 좌석은 B3-15, 남편은 B3-16이다. 아래 윗층, 좌석이다. 문간에 홀로 자는 인도 남자도 있다. 화장실에 물이 비치된 것은 좋은 문화다. 환풍기까지 있다. 잠자는 것보다 내경을 보는 것이 더 유익하여 종종 살펴보곤 했다.
2008년 9월 20일 토요일 바라나시, 갠지스강
* 인도의 철로변 풍경
새벽 3시, 일찍 눈을 떠서 창문의 커튼을 여니 동트고 있다. 어스름 불빛에 인도의 들녘이 보인다. 피난민 이동 열차 같은 느낌이다. 침대만 가득하여 좁은 창문에 여럿이 모여 밖을 보았다. 간이역도 지나고, 소와 돼지들이 철로변에서 먹이를 찾는 풍경도 지나간다. 동물만 아니라 사람들도 기차에서 버려진 더미를 뒤져 먹을 것을 찾는다. 기차안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안내원이 창문 밖으로 던지기 때문이다. 대소변도 아무데서나 보는 진풍경도 보인다. 철로변은 아주 지저분하지만, 그곳에서 생을 엮는 가난한 자들에게는 충분한 낙원이다.
* 야간 침대열차에서 본 인도
철저하게 드러나는 인도의 생활상이다. 도시를 떠난 전원의 인도, 그것은 차라리 원시의 귀향이라 부르고 싶다. 한국의 50~60년대를 재현하는 것과 같다고 누군가 말한다. 내 생각으로는 이곳이 그보다 더 순수한 천연생활이다.
여명에 드러나는 인도, 우스운 일들이 벌어지는데도 당연한 일상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인도의 저 대책 없는 행정을 어찌할까. 모두들 난감한 표정이다. 이곳 대통령이 된다고 가정해 보며 깊은 눈시울로 바라볼 때 나는 못한다고 다들 고개를 젓는다. 철로변에서 먹을 것을 줍는 것은 이해하자. 그런데 철로변에서 왜 대소변을 보는 걸까. 왜 들녘 아무 곳에서나 대소변을 보는 걸까. 아예 민가에는 화장실이 없는 듯하다.
농토와 잡초지도 보이고 부지런한 자는 물을 길어 나르고 출근하는 사람도 있다. 큰 나무가 인도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드넓은 땅자락이 서서히 전개된다. 한국인에게 저 영토를 준다면 알뜰히도 운영할 텐데, 나는 부러운 시선으로 커다란 대륙의 인도를 바라보기도 했다. 많은 것을 생생하게 본 뜻깊은 여정이다.
* 바라나시 기차역 도착
아침 시간에 정확히 도착했다. 바라나시 기차역은 플랫홈에서부터 복잡하다. 데모 진압 경찰도 나와 있고 인도의 수많은 사람들의 이동으로 혼잡하다. 계단 아래에서 사는 사람도 있고, 아기를 안은 젊은 여인도 있다. 큰 짐은 포터가 이동하기로 하고, 작은 짐만 챙겨서 내려 기차역사 밖으로 이동했다.
* 바라나시 기차역 풍경
기차역 건물이 예술이다. 사원 모양으로 첨탑이고 색상도 아름답다. 역전 광장은 온갖 풍경으로 가득하다. 흰천을 파는 상인들, 노숙자들, 누운 가족들, 소, 사람, 오토 럭샤, 자동차 등으로 인도의 집합체다. 벽에는 인도 글자의 낙서가 있어 유럽을 연상케 한다. 그 담벽 아래 아버지와 아들이 다정하다. 우리의 짐을 머리에 이고 날라 버스에 실어주는 모습이 애처롭다. 많은 것은 보여준 커다란 바라나시 기차역,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 바라나시의 거리의 생활상
바라나시인들은 델리보다 가난함이 보인다. 길가에서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장사를 하기도 하고, 모여서 휴식하기도 한다. 더위로 지친 사람들은 무척 처져 있다. 거리가 도심이라는 인상을 지운다. 더러는 꺠끗하지만 많이 지저분하다. 소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델리와는 다른 생활상으로 인도의 진솔한 풍경이다.
* 바라나시 클락 호텔
매우 크고 웅장하다. 외객을 반가이 맞는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을 분무하고, 잘 가꾸어진 잔디 정원이 평화롭다. 내경은 더욱 아름답다. 바깥에 있는 인도와는 천지 차이다. 이곳에 머무는 것 조차 부끄러울 만큼 화려한 인도다. 클락 호텔은 인도에서도 아주 좋은 호텔이어서 더욱 그렇다.
* 바라나시 클락 호텔 앞의 자전거 택시
경계선 밖의 아우성이다. 무심코 호텔 바깥 풍경을 보기 위해 거리로 나갔는데 어디서 그렇게 알고 많이도 다가오는 지, 자전거 럭샤가 떼지어 다가온다. 요점은 자기 택시로 바라나시를 일주하라는 것이다. 무서움이 앞서 호텔 안으로 들어왔다. 인도말을 모르니 영어로 우리는 시간이 없다고 손을 저으며 달아났다. 그들은 절대로 호텔문턱을 넘지 않는다. 도로와 호텔 영토는 선이 없는데도 그들은 철저히 모두 도로변에 서서 호텔을 바라볼뿐 한 발자국도 호텔 마당에 들여놓지 않는다. 기막힌 장면이다.
* 바라나시 도심 거리
과일을 파는 상인들이 많다. 사람과 자동차, 저전거 택시들로 복잡하다. 새파란 바나나를 작은 트럭에 실어 나르기도 한다. 한켠에 세워둔 커다란 트럭은 아름답게 무늬를 그려 꾸며서 곱다. 목화와 실크의 발달로 바라나시 거리에는 천으로 만든 제품상가가 많다. 갠지스강변의 아담한 도시다.
* 불교 성지 녹야원
인구 300만명이 사는 도시, 바라나시에 있는 불교 성지다. 2500년 전 석가모니가 최초로 불법을 전한 곳이다. 42m의 탑이 올곧게 서서 그날을 설법을 전하는 듯하다. 즉 이곳은 인도 불교의 시작점이다. 사위가 모두 푸른 녹지다. 그래서 녹야원이라 부르는가 보다. 고요한 정원에 뜨거운 햇살이 내리는데 인도 여인들은 녹지를 다듬고 있다. 보리수 그늘에 앉으면 석가의 설법이 들릴 것 같다.
* 녹야원에서 만난 인도 학생들
학생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인도 사람들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바깥 세상에 나가보지 않아 외부인을 만나면 사귀려고 하고 말을 나누려고 한다. 아주 호의적으로 다가온다. 이곳에서 그런 문화를 절감했다. 초등학생이든, 중,고생이든, 대학생이든 모두가 한결 같이 우리와 함께 호흡하려 다가온다. 우리는 그들을 사진에 담고, 그들은 우리를 사진에 담으며 많이 친해졌다. 인도에서 이런 학생은 최상의 신분이리라. 더러는 이 안에도 생업으로 물건을 파는 아이도 있다. 대견하여서 석가상도 사 줬다. 영어로 대화도 나눴다. 잠시지만 뜻깊은 인연이다.
* 바라나시의 바라트맛타 사원
석가모니가 해탈한 사원이다. 사원은 네 종류가 있는데 출생, 해탈 전, 해탈, 사망이다. 그 중에서 이곳은 석가의 해탈 사원이다. 아담하다. 뜨락도 사원도 녹야원에 비하면 아주 협소하다. 인도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다. 한 가족이 왔는데 아이도, 엄마도 참으로 곱다. 얼굴과 옷차림이 정갈하고 선하다. 석가모니를 만나러 들어가는 사원 안에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신발을 관리하는 사람이 문 곁에 있어 그곳에 놓고 들어갔다. 금불상이 불교의 빛을 발한다.
* 바라나시 노변 과일상
바나나와 사과, 오렌지가 많다. 델리에서도 그렇고 이곳 바라나시에서도 그렇다. 아침 일찍 트럭에, 수레에 새파란 바나나를 싣고 가는 풍경을 종종 보기도 했다. 시장은 물론 사람이 모이는 길가에는 어김없이 과일상이 즐비하다. 더운 나라에서 주로 생산되는 과일이다. 자연 그대로의 걸르지 않은 모습들이 천진하다.
* 인도의 목조건물 건축 장면
우리의 시각으로는 부러운 현장이다. 쇠덩이와 시멘트가 난무하는 공사 현장을 보다가 얼기설기 나무로만 엮어놓은 목조건물 신축 장면 앞에서 나는 건강한 집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인간이 병드는 것 중의 한 원인이 너무 발달된 화학제품이라고 여겨지는데 조금은 거칠고 볼품없어도 나무로 집을 지을 만큼 넉넉한 자연을 허락받은 것은 신의 축복이다.
* 인도 특산 실크제품 공장 견학
실크는 인도의 특산물이다. 쇼올을 모두들 샀다. 비단으로 보드랍고 색상이 곱다. 특히 실크는 인도에서도 바라나시의 제품이 제일 좋다. 값도 적당하여서 선물용으로도 사곤 한다. 넉타이도 있다. 인건비가 저렴하여 물건값에 거품이 없다. 목화 재배도 인도에서 많이 한다. 바라나시 올 때 기차 안에서 들녘에 심겨진 목화를 보았다. 천연섬유 제품 생산을 보니 때묻지 않은 향수다.
* 인도 바라나시의 힌두교 사원
인도에는 사원이 많다. 힌두교 사원이다. 하얀 돔지붕과 허름한 종교의 집이 바라나시 도심 가운데 있다. 불교에서 파생된 여러 종교가 인도를 굳건하게 다스리고 있다. 철저한 자신의 종교를 따르며 숙명처럼 신을 의지하고 산다. 그래서 굶주려도 항상 평화로운 표정들이다.
* 바라나시 도심의 강
바라나시는 거대한 갠지스강이 있다. 그래서 이 도시를 찾아 온다. 4대 문명 발상지라고 교과서에서 수없이 외웠던 갠지스강, 그 작은 지류가 바라나시 도심을 흐른다. 서울의 한강 같은 강이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이 도시에는 더 잘 어울린다. 해가 넘어감에 낙조가 드리워 더욱 곱다.
* 인도 여인의 춤과 카페트
두 남자가 악기를 연주하고 한 여자가 30분 동안 춤을 춘다. 애절한 선율과 애련한 춤사위다. 연인사랑을 주제로 춤과 곡조가 가슴을 절저히 울린다. 인도 여인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그대로 눈앞에서 전개된다. 굵은 선으로 진정한 미인이다. 연주자도 진정한 미남이다. 공연 후에는 정중한 인사를 올리고 인도 특산품인 카페트를 소개 한다. 아무도 사진 않았지만 독특한 문양의 카페트는 대단한 걸작품이었다.
* 인도문화 탐방 한국문인협회 세미나 및 시낭송
인도 갠지스강이 흐르는 강변 도시 바라나시의 호텔 세미나장에서 한국문인협회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문학강연을 듣고 시낭송으로 뜻깊은 시간을 엮었다. 1부에서는 시에 대하여, 언어 구사에 대하여, 그 어려운 장벽을 넘어야 시인이라 했다. 시는 언어의 예술이고 시와 언어가 즉시 연결되는 작업을 시인은 잘 해야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끊암없이 언어에 대하여 배워야 한다는 결론이다.
2부에서는 인도의 땅에 조국의 시를 심었다. 호텔 직원들은 큰 소리로 외치는 대한민국의 시에 눈과 귀를 열고 시청한다. 나는 [한반도], 나의시를 낭송했다. 조국을 떠나서 바라본 조국은 안에서 볼 때보다 더욱 위대하다. 행사의 마지막은 포도주 건배로 마무리 지었다. 밤 깊도록 문학의 정열을 쏟으며 배우고, 문인의 사명을 다짐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2008년 9월 21일 일요일 바라나시 출발 카주라호 도착, 카주라호 사원군
* 갠지스강 가는 새벽 거리
무어라 표현할까. 사람과 동물이 함께 거리에서 자더라고 말하면 믿어질까. 인도에 대하여 수없이 들어왔는데, 그래도 설마 그럴까, 했는데 다 사실임이 목전에서 증명되는 인도의 새벽 거리다. 소가 길 위에서 누워 자고, 사람이 건물의 추녀 끝에서 누워 잔다. 어느 무리가 사람이고, 어느 무리가 동물인지 가뭇한 형상으로 구분 지을 뿐이다. 쓰레기더미까지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인도의 정직한 새벽을 열고 있다. 왜 그런 모습들이 밉지 않을까. 코를 막아야 할 상황인데 나는 아무 거부감 없이 신성한 그들의 터전을 응시했다.
더러는 거룩한 종교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분주히 걸어간다. 개인 혹은 단체로 간다. 그들은 정갈한 몸차림이다. 우리는 갠지스강의 일몰과 강의 비경을 보러 가는데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신을 만나기 위해 간다. 목적은 달라도 한 지점을 향해 함께 가는 걸음이다.
* 새벽의 갠지스강
모두가 분주하다. 상인은 물건을 팔기 위해 준비하고, 뱃사람은 손님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보살피고, 걸인도 오가는 길손에게 구걸하느라 바쁘다. 새벽의 갠지스강은 이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그 한 일원으로 동참하여 빠른 횡보로 움직인다. 강의 비경과 일출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다투는 일이기 때문이다. 갠지스강은 장엄하다. 강변의 건물들도 대단한 위용이다. 차츰 어둠이 가시며 서서히 갠지스강의 비경은 드러나고 있다.
* 갠지스강 비원의 꽃 띄우기
유람선을 타고 갠지스강으로 나갔을 때 한송이 꽃단을 나누어 준다. 가운데에 작은 촛대를 세우고 불을 켜서 정성스레 손바닥에 놓고는 비원의 꽃을 강물에 띄우는 의식이다. 갠지스강에서 내국인 및 외국인 모두에게 이루어지는 거룩한 하나의 종교 의식이다. 매일 매일 이렇게 행하여지리라. 인도인들에게는 신과 가장 가까이 마주하는 시간이리라. 오늘은 나도, 너도, 우리 모두 하나되어 이 나라의 예법에 따라 동일한 모습으로 소원을 빌며 소중하게 꽃단을 강물에 띄웠다.
* 갠지스강의 빨래터
인도인에게 있어 갠지스강은 생명의 젖줄이다. 세상을 초월한 신의 영역이다. 여기서는 모두가 거룩해지고 행하는 모든 일들이 신성하게 여겨진다. 어떤 일을 해도 신의 손길로 정화되며 맑아진다고 믿는다. 감히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이곳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는 인도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인도인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이 옷을 벗고 강물에 들어가 빨래를 한다. 목화 재배의 나라여서일까. 하얀 광목천을 빨아 널고 있다. 어찌보면 지저분하게 보일지 모르나 저들에게는 몸도 마음도 깨끗해지는 순간이리라.
* 갠지스강 일출
드넓은 갠지스강 위로 솟는 해, 바다 같은 강물 위 배에서 핏빛 해가 솟구쳐 오르는 풍경을 보는 것은 오늘 여정의 하이라이트다. 눈부신 장관이다. 멀리 갠지스강 다리가 보이고 우리처럼 일출을 맞이하러 나온 배들이 유유히 갠지스강에 흐른다.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비경이다. 광폭한 강, 그 위에 푸른 지대가 길게 드리우고, 끝이 어딘지 모르는 우주 저 너머에서 신성한 해가 인간에게로, 인도에게로 빛을 발하며 떠오른다. 인도의 앞길에 빛이 있기를 빌었다.
* 갠지스강 유람선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우리 한국문인협회 회원은 두 척의 유람선에 나누어 탔다. 무두 32명, 그리고 가이드 2명 34명인데 배가 그리 크지 않아서 그렇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만나고 지나치고 그렇게 갠지스강 위를 흐른다. 더러는 일행을 부르며 농담을 하기도 하고 인도의 상인은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물건을 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문학이라는 동일한 감성으로 만난 문우들, 그래서 모두 뜨거운 문학의 감성으로 갠지스강을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운 정경이다.
* 갠지스강에서 목욕하는 사람들
강변 한자락 평화로운 목욕탕이다. 드넓은 갠지스강은 지긋이 눈감고 이들의 행동을 허용한다. 아이도 어른도,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젊은이도 구분없이 모두 발가벗고 물 속에서 하나로 목욕한다. 원초적 삶이다. 이방인 내가 손을 흔드니 함께 손을 흔들어 화답한다. 부끄러움도 없다. 기도하며 가장 천연의 모습으로 평화를 선사한다. 저들은 지금 이 순간, 가장 신성한 경지에 이르는 의식이다.
* 갠지스강변의 우람한 건물들
갠지스강은 상당히 넓고 길다. 이곳 바라나시에 흐르는 강물만도 끝없이 길다. 그 강변에 들어선 건물들 역시 대단히 크고 우람하다.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과는 다르다. 높이도, 외형의 아름다움도, 한줌의 빈 공간도 없이 줄기차게 이어져 있다. 외객을 의식한 건물일까. 물론 숙소도 있을테고, 식당, 상가 등 다양한 용도의 건물들이겠지만 갠지스강의 역사만큼 장엄한 혼이 서려있다.
* 갠지스강변의 화장터
누군가가 이 세상을 떠나 갠지스강변 화장터에서 소록소록 연기를 올리며 타고 있다. 나무더미 위에 올려진 시신은 차츰 살점이 사그라들고 거룩한 영혼을 하늘 위로 올리고 있다. 신과 상면하는 거룩한 시간이다. 시신을 태우는 사람들 사이로 하얀 연기가 솟는다. 석가는 회양목으로 태웠다. 보통 사람들은 망고나무를 사용한다. 재도, 뼈도 강에 버린다. 망자와 산자가 엄격히 구분되는데 누가 산자이고 누가 망자인지, 바라보는 자들의 시선은 혼돈이다. 죽어도 사는 듯, 살아도 죽는 듯 하나로 매듭지어진다. 아름답게 살아야지, 경계선의 화장터에서 굳은 서약을 한다.
* 장엄한 갠지스강
광폭의 강이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길다. 바다로 보인다. 강물 색깔은 탁하지만 결코 예사로운 강은 아니다. 강물 위에 뜬 배들은 매우 많은데도 점으로 보인다. 멀리 나기지 못하고 강변의 건물 주변을 맴돌 뿐이다. 대부분 이곳의 배들은 일출을 맞이 하러 나온 외객들을 싣고 유람하는 배들이다. 용감한 인도인의 쪽배가 물살을 가르고 깊은 곳으로 간간이 지나가기도 한다. 그 조차도 아득하다. 인도의 역사를 이어가는 강, 장엄한 강이다.
* 갠지스강변의 번화가
갠지스강변에도 분명히 번화가는 있다. 그저 어설프게 지어진 건물은 결코 아니다.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는 외형은 첨탑의 사원이 많다. 목숨처럼 지켜오는 인도인의 종교가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인도의 글자라서 알 수는 없지만 꼬부랑 글자가 건물벽에 씌여 있다. 꽃처럼 고운 색상으로 건물을 치장한 것도 갠지스강의 번화가를 상징하고 있다. 인도인들의 고운 심성이 강변에 수놓아진 형상이다.
* 화장터의 나무 더미들
일출을 다 보고 배를 돌려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갈 때는 화장터의 연기가 잦아들고 사람도 떠나고 나무 더미들이 빼곡이 쌓인 풍경만 보인다. 부자로 살았던 사람은 사후에 그래도 이곳 갠지스강변에서 하늘로 오르는데, 저 건장한 나무들이 하늘과 땅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서럽기 그지 없는데 갠지스강변에서는 가장 평화로운 정경이다.
* 갠지스강에 뜬 소의 시체
인도에서는 개고기도 먹지 않는다. 소는 당연히 먹지 않는다. 그러니 시체도 당연히 아무 곳에나 버려진다. 갠지스강에 누런 소의 시체가 떠 있다. 개의 시체도 떠 있다. 산자도 떠서 헤엄치고, 죽은자도 연기로 떠서 맴돌고 인간과 동물이 강변에서도 하나로 맴돌고 있다. 지상의 도심에서도 함께 살더니 사후에도 동일한 길을 간다.
* 갠지스강 물건 파는 배
남자 상인들이 유람선을 따라 다니며 물건을 사라고 한다. 땅에서는 여자들이 주로 파는 물건을 물 위에서는 남자들이 배를 타고 들어와 판매한다. 물건이라고 해야 수공예 공작품 정도다. 그들에게는 소중한 작품일지 모르나 기념품으로서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아무도 사지 않는데 정성들여 설명하고 배미를 좇는다. 인도인에게 갠지스강은 또 하나의 장터다.
* 갠지스강 유람선 선착장
갠지스강의 새벽은 분주하다. 강변 선착장은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일출을 보기 위해 배에 오를 때는 발 디딜 틈조차 없다. 허름한 배가 강변에 빼곡하게 들어와 사람들을 받는다. 바라나시 도시와 이어지는 긴 계단 곁에는 불심을 상징하는 그림과 함께 건물들이 아름답다. 이곳이 갠지스강변의 번화가다.
* 바라나시의 사람들
갠지스강의 일출을 보고 다시 바라나시로 돌아오는데 강가의 애련한 모습이 눈시울을 적신다. 구걸하는 자, 물건을 파는 자들이 진풍경으로 전개된다. 곳곳에서 아우성으로 소리치거나 달려든다. 일행이 줄을 지어 도심으로 이동하는데 조금만 틈을 벌이면 끼어 들어 손늘 내민다. 버스에 올랐는데도 여전히 유리창 너머에서 배고프다는 시늉을 하며 구걸한다. 저들을 누가 구제할까. 어디서부터 풀어야 굶주림에서 벗어날까. 소가 우리의 길에 서서 함께 걷는다. 쓰레기 더미가 주변에 널려 있고, 소똥의 역겨운 냄새가 코를 진동한다. 아무도 그것을 치우지 않는다. 바라나시 사람들의 가난한 아침 풍경이다.
* 바라나시 클락 호텔 출발
오전 10시에 호텔을 출발한다. 아쉬운 작별이다. 푸른 정원 깨끗하고 우아한 실내 로비, 호텔 안과 밖은 천지 차이의 세계다. 인도인들에게는 호텔에서 머무르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든다. 외국인으로 인해 관광수입을 얻겠지만 바깥 세상은 먹거리가 없어 앙상항 몰골로 다니는 사람들로 애처롭하다. 친절한 호텔 직원들이 나와서 배웅한다. 갠지스강의 인도 역사를 담아가는 소중한 여행지다.
* 바라나시 시가지 풍경
바라나시에서 카주라호로 가기 위해 바라나시 국내선공항으로 이동하며 본 시가지 풍경이다. 역사 깊은 도심의 강과 드넓은 교정의 학교, 넓은 농토와 소들, 인디아 주유소 등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 도심을 벗어나면 초록 물결이다. 일부구간의 도로는 아주 깨끗하다. 잘 정리되어 있다. 소박한 도시, 인도의 중부 동편의 갠지스강변에 위치하여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드는 바라나시다.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린다. 동물이 도심을 활보하고, 함께 굶주리고, 함께 거리에서 배회하던 그 애련한 모습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 바라나시 공항
카주라호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국내선 공항이라서 한국의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 수준이다. 친절한 인도 여인이 함께 사진을 찍어준다. 공항까지 인도인 가이드 라카를 다시 만났다. 침대 열차에서 만났던 그 사람이다. 반웠다. 공항 직원들은 우리 일행이 주는 볼펜과 사탕을 고맙게 받는다. 한국의 볼펜은 인도에서 아주 인기다. 활주로가 광활하다. 나무도 울창하다. 우리가 타는 비행기는 제트 비행기로 아담하다. 아름다운 바라나시여 안녕, 청명한 하늘에 이별을 고하고 이륙했다.
* 바라나시 상공
비행기로 상공에 오르니 바라나시가 한눈에 보인다. 놀라은 것은 경작지가 반듯하게 잘 정비되었다는 것이다. 누가 저 땅을 인도라 할까싶다. 유럽의 어느 잘 생긴 땅덩이 같다. 흰구름도 다른 도시보다는 많이 떠 있다. 아마도 갠지스강에서 올라온 수증기 때문인 것 같다. 구름 색깔이 하얀 목화솜 덩이 형상으로 지상의 무공해 환경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인도, 눈부신 바라나시의의 창공이다.
* 카주라호 상공
바라나시에서 비행기로 40분 정도 소요되는 도시 카주라호다. 그 상공에 다다르니 벌써 인도의 강물이 지상에 구비구비 흐르고 붉은 사암의 땅이 드러난다. 이곳에는 사원군이 많이 있는 도시다. 인도의 건물은 대개 붉은 사암으로 지어졌는데 카주라호 상공에서 본 지상의 땅 색깔이 온통 붉다. 기내식으로 샌드위치와 레몬 쥬스를 먹고 히말리안 물을 마시고 아름다운 인도 카주라호의 지상을 감상하며 날고 있다.
* 카주라호 공항 도착
주변에 산이 없더니 활주로에 착륙하자 멀리 산줄기가 보인다. 바라나시보다 더 작은 공항이다. 한국 시골의 어느 버스 터미널 향수다. 그래서일까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인구 1만 5천 명이 모여 사는 소도시다. 도시라기보다 한 마을 개념의 지역이다. 대개는 바라나시에서 버스로 이동하여 이곳까지 오는데 우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비행기로 온 것이다.
* 카주라호의 동쪽 사원군
카주라호에는 사원이 많다. 그 중 동쪽에 모여 있는 사원에 먼저 들렀다.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문화가 잘 혼합된 사원군이다. 천년 전에 지어진 건물들이다 인도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드러나는 사원이기도 하다. 들어 섰을 때 그 비경은 사원이라는 느낌보다 어느 별천지 신선이 마무는 밀회의 아늑한 정원 같았다. 무엇을 먼저 봐야할 지 눈이 분주했다. 뜨락도 기막힌 아름다움이고, 곳곳에 선 사원들은 사람의 손길로 지었다고 믿기지 않는다. 첫 입구 문에서부터 영혼을 흡입한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거룩한 유산이다.
* 카주라호 동쪽 사원의 예술적인 조각
모두 다 예술이다. 쌓은 형상도, 조각된 형상도 엄청난 예술이다. 눈과 귀를 의심한다. 과연 1000년 전의 작품인지, 오늘날 발달된 건축술과 조각술로도 완성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보이는데 기막힌 사원들이다. 에로틱한 조각상이 대부분이다. 사랑을 표현해도 적나라하다. 성기 교합이 그대로 여과없이 표출되고 있다. 혹자는 성의 문란을 논하고, 혹자는 성교육을 논하는데 나는 후자를 믿고 싶다. 석가의 훌륭한 성교육이라고 믿고 싶다. 돌고 돌아도 이어지는 진솔한 예술 조각 앞에서 새로운 인도를 발견하게 한다.
* 카주라호 동쪽 사원의 아름다운 뜨락
아름다운 꽃은 다 모여 있다. 한국의 봉숭화, 백일홍, 노란 국화 등등 나를 황홀케 한다. 발걸음을 붙든다. 석가모니가 현존한다면 저 아름다운 정원에서 더 무르익은 설법으로 사람을 훌륭하게 교화시킬 일이다. 후세에 이르러 그 향기만으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불심이 서려 있다. 비틈없이 전개되는 파란 잔디, 올곧은 나무들, 고운 색상의 꽃들 모두 하나로 통일되며 우주를 동글게 묶는다. 모나지 않은 세상을 외치고 있다. 인도 철학의 향수에 흠뻑 젖는다.
* 카주라호 도심 풍경
카주라호 동쪽 사원군은 카주라호 도심에 있다. 그래서 밖으로 나오면 바로 도시와 연결된다. 관람을 마치고 나왔을 때 카주라호 도시는 상가와 사람들, 차들로 북적인다. 그 중에서 신기한 풍경을 보았다. 인도 의 거리상인들이 우리 일행에게 저브근하여 책가 기념품을 팔려고 하는데 경찰이 막대기를 들고와 그들을 밀친다. 그러면 상인은 갈 위로 올라가 못 내려오고, 잠시 경찰이 한눈 팔면 순식간에 우리에게로 와서 물건을 사라고 달려든다. 나라의 위상을 의식해서일까. 어김없이 경찰을 그들을 혹독하게 몰아내곤 한다. 이색 풍경이다.
* 카주라호 서쪽 사원군
카주라호의 서쪽에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 동쪽 사원국과 대칭되는 이름이다. 이곳은 동쪽 사원군과는 다르다. 우선 규모면에서 협소하고 단조롭다. 섬세한 조각상도 있지만 대개는 뭉툭한 건물들이다. 다시 고친 건물도 있어 역사적 감각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사원은 사원이다. 우람한 인도의 불심이 오롯하다.
* 카주라호 가정집
카주라호 서쪽 사원군에서 나올 때 인도의 오픈 된 가정집에 들어 갔다. 한 가족이 둘러 앉아 저녁을 짓는 지 분주히 움직인다. 우리 일행이 주변에 다가가자 석류를 준다. 내 손바닥에도 석류 한줌을 준다. 함께 사진도 찍고 즐거운 순간이었다. 격의 없이 다가오는 그들의 삶이 세계의 다른 나라 백성괴는 다르다. 친절하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배워가야 할 덕목이다.
* 카주라호 거리의 동물들
인도 사람들은 염소 고기는 먹는다. 소나 개나 돼지고기는 먹지 않는다. 거리에 소나 개, 돼지는 그냥 제멋대로 나돌아 다니는 것이고 염소는 사육하는 동물이다. 민가 앞에 염소 무리가 나돈다. 소도 쓰레기 더미를 뒤진다. 하도 많이 보아온 풍경이어서 새로운 것은 아닌데 염소가 소보다 대접 받고 있는 듯하여 소슬했다.
* 카주라호 기념품 상가
세련된 상가다. 인도는 항상 이중적인 모습이다. 창밖은 초라하고, 창안은 화려하다. 백성과 이방인과 너무 큰 겨리의 공간에 서게 한다. 평시의 인도가 저리 곱게 살았으면 싶다. 외객인 내가 인도인에게 죄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영역에 발을 딛고 있다. 물건도 최고급이다. 결코 싸지 않은 물건으로 보아 하나의 국가적 상업이다. 사원이 많은 도시여서 대부분 기념 조각상이다. 인도 특산품인 섬유제품도 많다. 잘 감상하였다.
2008년 9월 22일 월요일 카주라호에서 전원도시 오차로 이동, 잔시
* 카주라호 클락 호텔
불심 깊은 사원의 역사만큼이나 우람한 호텔이다. 룸의 뒤켠에도, 앞 정원에도 초록 물결이도 울창한 나무가 깊은 연륜을 노래한다. 지난 밤, 인도의 또 다른 가이드 라카와 많은 대화로 인도에 대하여 배웠는데 이 아침 수영장에서 그를 다시 만남에 반가웠다. 뜨락을 여유로운 걸음으로 거닐어 보고 천연의 숲 향기를 호흡했는데, 아직 길가에 나가는 것은 두려워서 호텔 가장자리에만 맴돌았다. 어떤 일행은 호텔에서 자전거를 빌려 멀리까지 나갔다 왔다 하니, 인도는 두려운 영토가 아님을 깨달았다.
* 카주라호 철로
인도는 워낙 넓은 영토여서 철로도 길고 기차도 길다. 산도 보이는 곳이 있지만 대개는 드넓은 평원이어서 철로는 더욱 장엄하게 보인다. 푸른 나무 사이로 지금 보는 철로는 아름답다. 카주라호를 떠나 전원도시 오차로 가는 도중 버스 안에서 본 풍경이다. 우리나라의 철로와 다르지 않다. 잘 정비된 철길이다.
* 카주라호의 변두리 마을
인도에는 대중교통 수단이 발달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탄 대형버스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본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인도인들을 살펴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카주라호의 변두리 시가지를 벗어날 때 역시 그랬다. 순진한 사람들이 일손을 멈추고 서서 버스의 이동 모습을 본다. 카주라호는 그리 크지 않은 시골 마을인데 벽보도 붙어 있고, 사람의 향기가 고여 있다.
* 카주라호의 들녘
아름다운 정경이다. 인도의 다양한 풍경을 선사한다. 산과 나무, 농토와 동물들까지 도로변에서 이방인을 반긴다.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한폭의 수채화처럼 비경으로 다가온다. 어느 곳을 보아도 명화다. 전원도시 오차까지는 카주라호에서 4시간 소요되므로 이런 풍경은 계속 이어진다. 논에는 벼가, 밭에는 곡식이 자라고 있다. 콩, 밀 등 다양한 작물이다. 평화 가득한 들녘이다. 평화 가득한 들녘이다.
* 카주라호 휴게소
여행 중, 그 나라의 휴게소를 보는 것도 큰 배움이다. 그 나라의 문화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주라호에서 오차까지 4시간 걸리므로 중간에 한번 휴식릉 한 것이다. 카주라호 휴게소는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인도의 모순이기도 하다. 평민의 백성들이 사는 영토는 초라하기 그지 없는데 외국 손님을 맞는 곳은 어디든지 별천지다. 그 영역에는 자국민은 들어오지도 못하다. 휴게소 바깥 풍경을 보기 위해 도로변으로 나갔을 때 인도의 초등생쯤 되는 두 사내 아이가 다가와 사진을 찍어 달란다. 남편 유기섭 수필가님과 함께 찍어 디카의 모니터에 띄워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빙그레 웃는다. 내가 가져가는 사진인데, 그들과는 무관한데, 그들은 무어시 그리 좋은지 고맙고 기쁜 표정이다. 순수한 나라다.
* 인도의 농촌 풍경
땅이 넓은 나라이기에 농토도 광활하다. 오밀조밀한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한 종류, 한 종류의 작물이 끝없이 밭에 심겨져 있다. 인도에는 농부가 70%다. 더러 잘 사는 농가는 잔디 트랙과 수영장까지 갖추고 산다. 지붕이 뭉툭한 민가의 꼭대기에서 한 여인이 우리가 탄 버스를 바라보고 있다. 농기구를 쌓아 놓기고 하고, 나무 그늘에 앉아 휴식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 정도의 농토라면 인도에서는 풍요로운 마을이다. 물길이 닿는 곳에서는 논농사를 짓기도 한다. 사육하는 염소가 밭고랑에서 풀을 뜯 는다. 행복한 정경이다.
* 인도의 산정 사원
들녘 가운데 제법 크고 높은 산인데 산정에 사원이 세워져 있다. 멀리서 보면 돌무리가 쌓인 것 같기도 하고, 초소 같기도 한데 사원이란다. 인도 사람들은 사후 세계가 있다고 철저히 믿기 때문에 하늘 가까운 곳에 사원을 세우는 것이다. 성벽처럼 산 능선에 오롯한 사원, 인도인의 소망이 걸려 있다.
* 사원 모양의 화분
주로 들판에 놓여진 대형 화분은 대개가 사원 모양의 화분으로 진열되어 있다. 기차나 버스로 이동할 때 흔히 길가에서 보게 된다. 어떤 곳에서는 밭의 경계선인듯 길게 늘어 놓은 곳도 있다. 한국의 첨성대 모양인데 사암의 붉은 벽돌로 만들어 색상이 곱다. 이것도 역사 깊은 인도에서 보는 톡특한 화분이다.
* 드넓은 강의 댐
인도의 시골을 지날 때면 여러가지로 광활한 풍경이 전개된다. 들판도, 농토도 끝이 없다. 더러 산이 보여도 우라나라처럼 높고 깊은 산이 아니다. 주로 평원이 계속 이어진다. 강도 드넓다. 카주라호에서 오차로 갈 때 긴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았는데 드넓은 강의 댐도 보았다. 이 순간에는 인도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잘 발달된 나라의 한 영토 같다.
* 인도의 농촌마을 사람들
카주라호에서 오차로 가는 도중 휴게소에 들러 잠시 휴식하며 농촌 마을 을 살펴보았다. 인도 사람들이 친절한 것은 도시나 농촌이나 똑같다. 동네 아낙들이 물을 길어 나르기도 하고, 물건을 머리에 이고 가기도 하고, 그 곁에 소가 한가로이 거닐고, 길가 오두막집에는 남자들이 쉬고 있다. 그런데 한결같은 공통점은 모두 이방인을 반간다는 점이다. 처음 만난 우리에게 아주 호의적이다. 떠날 때는 손을 흔들어 이별을 고했다.
* 인도의 강 철교
신기하다. 미개한 나라라는 나의 이미지가 지워지는 순간이다. 무언가 모자란 나라로 보아왔는데 긴 메트로강 위에 놓인 철교를 보며 우리나라의 한강 철교가 떠오르고 동질감을 느낀다. 한강보다 훨씬 큰 폭으로 웅장하다. 형상도 아름답고 인도 들녘을 빛내는 문화의 가교물이다.
* 인도의 도로변 소떼
인도의 거리에서 흔히 보아온 소라서 신기한 일은 아닌데 이번에는 아주 많은 무리의 소떼를 만났다. 하얀 소들이다. 아마 주인이 있는듯 목에 줄도 매여 있다. 어린 아이가 끌고 가는 소도 있다. 농촌마을이어서 아마 농사용으로 기르는 소인가보다. 그런데 문제는 차량 통행이 빈번한 도로변에 지나간다는 것이다. 버스는 아무 불평없이 소를 위해 서행한다.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또 하나의 장면이다.
* 오차 도착
왕이 머물던 도시다. 오차성에 가기 위해 방문한 도시다. 인구 5천명이 거주하는 소도시다. 진입로 들어서자 철로도 만나고, 성곽도 보인다. 나무들도 우람하다. 카주라호에서 4시간을 버스로 달려왔다. 전원도시로 주위 풍경들이 절경이다.
* 오차 중식 식당
식당이라기보다 궁전에 가깝다. 정원도, 건물도 실내 풍경도 모두 궁전식이다. 오차성의 방문객들을 위해 그리 조성한 식당이다. 아름다운 식당에서 그 옛날의 인도 왕이 머물렀던 것처럼 우아하게 머물며 식사도 하고 정담도 나누었다. 드넓은 뜨락, 어느 한 곳 흐트러짐 없이 지어놓은 궁전 모습에 모두들 감탄했다.
* 인도 오차성
무굴왕 때 축성한 성이다. 왕과 왕비가 머문 성이다. 붉은 사암 벽돌로 지어 온통 적색이다. 보수공사 중으로 인부들이 입구에서 사암 벽돌을 다듬고 있다. 우리가 멈추어 서서 쳐다보아도 아랑곳 없이 열심히 일한다. 성은 4층이고 방이 지하까지 150개다. 최상단층까지 올라갔는데 오차의 전원 풍경이 비경이다. 초원과 강 등 아름다운 조화다. 데칸고원에 있는 오차성의 방이 하도 많아 돌고 돌아도 끝이 없다. 건축물의 모양도 대단히 수려하다. 인도의 찬란했던 문명을 현실에서 뚜렷이 만나고 있다.
* 전원 도시 오차
자연 풍경이 빼어난 도시다. 인도의 남동부 갠지스강이 있는 바라나시에서 서편으로 이동하며, 그리고 다시 델리로 돌아가며 그저 거쳐가는 한 도시쯤으로 여겼는데 아니다. 오차에 진입할 때도 그렇고, 오차성에 올라가서 본 도시는 푸른 물결이다. 산은 멀리 아련히 한줄기 보이고 끝없는 들녘이 온통 나무 물결이다. 그 옛날 왕궁의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고풍스럽기도 하다. 도시의 건물들은 초원 위의 꽃으로 곱게 부상한다.
* 잔시 시가지
이 도시는 아그라행 특급 열차를 타기 위해 잠시 들른 곳이다. 아그라는 타지마할이 있는 도시다. 잔시는 인구 200만 명의 도시라는데 거리가 깨끗하다. 나무 물결이 어김없이 인도를 드러내고 있다. 더운 나라이고, 지금은 인도의 여름과 가을 사이 계절이기 때문에 짙푸른 가로수들이다. 인도 어느 작은 도시 하나 지나 갔다는 것으로도 큰 만족이다.
* 잔시 기차역
잔시에서 아그라행 오후 6시 5분 특급열차를 타기 위해 온 역이다. 오차에서 잔시까지는 1시간 동안 버스로 달려왔다. 여기서 아그라까지는 260Km로 먼 거리다. 그래서 기차를 타는데 특급열차로도 2시간 30분 소요된다. 기차역 플랫홈에서는 기이한 풍경이 전개되고 있었다. 인도의 양면성을 본 절묘한 광경이다. 한쪽에서는 거지 남자아이들이 승객이 버린 도시락을 주워다가 웅크리고 앉아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고 있는데 지금 내 곁의 부유한 가정집 아이는 엄마 곁에서 우리 일행이 주는 사탕도 받지 않는다. 기차도 특급열차는 깨끗한데 일반열차는 피난민 열차처럼 거지행색으로 매달려간다. 누군가 인도 여자에게 준 담배를 거지 남자가 와서 빼앗간다. 무심한 석양은 이것이 인도라는 듯 살빛 언어를 늘인다.
* 기차에서 본 잔시
차를 타고 가며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투명하여서 좋다. 여과되지 않고 그대로 투영한다. 잔시역에서의 애처러운 사람 냄새와 수많은 인파, 아우성 등을 뒤로 하고 아그라로 떠난다. 저녁 석양이 노을을 드리운다. 잔시의 낮으막한 집들이 전개된다. 산은 얕으막하다. 자신의 타고난 운명을 철저히 수용하며 행복하게 사는 자들의 꿈이 저 집들 속에서 피어나리라. 바라보는 내눈도 행복하다.
* 인도 특급 열차
넘칠만큼 풍요로운 서비스를 베푼다. 어려운 나라에서 왜 이럴까. 오후 6시 5분에 출발한 기차이니 아마 저녁식사로 주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배려다. 샌드위치, 과자, 사탕, 쥬스, 스프, 물 등등 승차하자마자 계속 음식을 날라다 준다. 개인 쟁반에 받아놓은 먹거리가 수북히 쌓인다. 특급열차의 요금이 비싼 탓일까. 신분 차이가 크다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일반기차는 발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창무에까지 매달려 아우성치며 떠나던데 특급 열차는 모두 앉아서 좋은 음식까지 먹으며 귀빈으로 대접 받으며 달린다. 이 시간의 황홀한 행복은 내게 있어 잠시뿐이고, 인도의 안타까운 현실에 씁쓸했다.
* 아그라 기차역
오후 8시 30분, 밤 시간에 도착했다. 어둠 속에서 본 아그라 기차역은 아수라장이다. 아이들은 승객이 버린 생수병을 들고 달아나는 소년에게로 서로 빼앗아 먹으려 내달아 뛰고, 기차역 광장에는 노숙자들로 가득 차 있다. 이곳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타지마할이 수많은 외국인들이 찾는 도시인데 왜 이토록 무질서하게 놔두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 사는 현장을 그대로 드러내는 곳, 이것이 인도다.
* 아그라 클락 호텔 투숙
어느 나라든지 외국 손님을 받는 호텔은 깨끗하고 넓다. 인도의 호텔도 그렇다.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더 넓고 웅장한 편이다. 그런데 인도의 평범한 사회 현실하고는 너무 동떨어져 투숙하는 걸음조차 민망하다. 특권층이 누리고 있는 부를 나누어 인도 서민들에게도 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곳곳에서 든다. 이 호화로운 호텔 안에서 누가 인도를 가난한 나라라 하겠는가. 나는 123호실, 내일 아침 6시 모닝콜이라는 여정을 지고 룸으로 갔다. 나는 참으로 행복한 순간인데 낮에 본 인도인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밤이다.
2008년 9월 23일 화요일 아그라, 타지마할
* 아그라 클락 호텔
지난 밤에 투숙하며 웅장하다고 느꼈던 것은 오늘 아침에 본 클락호텔에 비하면 한조각이었다. 실내뿐만 아니라 실외 풍경은 더욱 비경이다. 어느 휴양지에 온 착각이 든다. 푸른 잔디트랙과, 아름다운 정원, 야자수 길 등 상큼한 분위기가 여행의 피로를 덜어준다. 여직원들도 친절하다. 인도에 있는 클락호텔의 체인상황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다. 대단히 훌륭한 호텔이다.
* 타지마할 가는 셔틀버스
일정 거리에 버스가 다다르자 내리라고 한다. 더 이상 버스는 못 들어가고 타지마할을 운행하는 왕복 셔틀버스로 바꿔 타야 한다. 거리상으로는 걸어갈 거리인데 우리는 피곤한 여정으로 셔틀버스를 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걸어서 가고 있다. 한국의 마을버스 개념인데 작아서 우리 일행은 두대에 나누어 탔다. 가면서 아그라 시내를 둘러보았다. 화려한 곳도, 허름한 곳도 지나고, 학생들이 단체로 걸어 가기도 한다. 인도에서는 이 셔틀버스의 요금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리라.
* 동쪽문으로 들어간 타지마할
동문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는 곳에서 입장권을 사 가지고 들어갔다. 타지마할의 서곡일뿐인데 드러서자마자 범상치 않은 풍경이다. 붉은 건물들의 아름다움, 잘 가꾸어진 정원의 연륜 깊은 나무들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는 지금 세계문화유산이며, 7대 불가사의 명물 앞에 다다른 것이다. 궁전이기 이전에 한 남자의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의 꽃이라는 매목에서 인간 본연의 깊은 속정이 타오르는 영역이다.
* 세계 7대 불가사의 타지마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며 198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양식 건물로 하얀 대리석 건물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다. 타지마할에서 '마할'은 왕관이라는 뜻이고 샤자한 왕의 아내 뭄타즈 마할을 위해 1631년부터 1653년까지 18년에 걸쳐 지은 눈물겨운 이름이다. 왕비인 아내가 17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번째 아이를 낳다가 1631년에 사망했는데 샤자한 왕은 그 불쌍한 아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타지마할을 세웠다. 눈부신 비경이다. 하루에도 햇빛의 각도에 따라 7가지 색깔로 변하며 수려한 아름다움의 꽃으로 떠오른다. 눈물처럼 깔아놓은 물길이 애련하다.
* 타지마할에서의 한국문인협회 단체사진
어쩌면 세계 사람들이 인도에 오는 것은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오는 지도 모른다. 갠지스강도 훌륭한 유적지이지만 타지마할은 정녕 타지마할이다. 이곳에서 내린 우리 문인들의 정의다. 기념하기 위해 타지마할 궁전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하얀 대리석 건물이 이방인을 바라보며 눈부시게 솟구친다.
* 타지마할 곁의 아름다운 야무나강
강은 보았는가. 그날의 비극을. 왕비가 아이를 생산하다가 죽어간 슬픈 장면을. 얼마나 가슴아팠으면 18년간 국고를 탕진하며 지은 왕비를 위한 궁전 곁 강물에서 샤잔의 고뇌가 짙푸르게 일어서는 것일까. 야무나강물은 여전히 청청한데 사람은 간곳 없으니 애달프다. 저 강 건너에 왕과 왕비의 무덤이 있다하여 소슬한 눈으로 한동안 응시하며 사람은 동일하게 한 세상을 빌려 살다가 떠남을 확인했다.
* 타지마할의 웅장한 대리석
이토록 눈부시게 하얀 대리석 건물로 인해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이며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간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옛날 누구의 손끝에서 조각되었는 지, 바라보는 자의 눈이 시리다. 무수한 세월 속에서도 변함 없이 왕비의 넋을 기리고 있으니 죽어서도 행복한 여인이다. 곡선과 수직 수평의 고운 선을 늘이며 천상의 하모니로 인도의 대륙을 빛내고 있다.
* 타지마할 뜨락
어찌 담아 갈까. 어느 곳을 담아 갈까. 아무리 보아도 생생히 일어서는 그날의 명화는 잠들지 않는다. 나무도, 물도, 궁전도, 나도 너도, 모두 뜨거운 시선으로 타지마할 뜨락을 밝히고 있다. 하얀 궁전과 푸른 잔디, 굵은 나무들이 환상의 조화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걸음인데 시간은 자꾸 이곳에서 이끌어낸다. 야속한 시간이다.
* 아그라 시가지
타지마할이 있어 도시는 더욱 빛나고 있다. 세계인이 드나드는 곳이기에 도시는 세련되어 있다. 광고물도 화려하고, 상호 간판도 아름답고, 사람들도 고상하게 보인다. 타지마할을 관람하기 위해 학생들이 단체로 걸어온다. 내외국인을 포함하여 걸음이 끊이지 않는 도시다.
* 아그라성 입구 풍경
붉은 사암 벽돌의 아그라성 입구 풍경은 역시 웅장하다. 관람용 마차도 있고, 오토릭샤도 있고, 구걸하는 자와 종교인, 거리의 상인들이 한가득 메우고 있다. 전혀 통제 받지 않는 인도 그대로 정경이 전개되고 있다. 야생 원숭이도 나무 위에서 사람을 빤히 들여다 본다. 절대로 해쳐서는 안되는 인도의 한 동물이다. 역사가 살아 숨쉬는 뜨거운 현장이다.
* 인도 아그라성
역시 인도 특유의 생산물 사암 붉은 벽돌 궁전이다. 이슬람 양식의 붉은 성은 무굴제국의 군사기지로 강대한 권력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건물마다 온통 적색이 고운 꽃술로 부각된다. 건축 양식도 수려하고 천연 돌의 색상이 절묘한 운치다. 아그라성은 샤자한 왕의 아들이 거하던 곳이다. 또한 이곳에 아버지 샤자한을 8년간 감금하여 사망케 한 곳이기도 하다. 무덤은 타지마할에 두었지만 샤자한 왕이 목숨을 거둔 곳은 여기다. 저 멀리 타지마할이 보인다. 권력 앞에서 눈먼 광경을 재현하고 있지만 인도는 이러한 유적으로 후손들이 살고 있으니 지금에 이르러 누가 나쁜 덕목으로 보겠는가. 한줄기 바람이 슬프게 지나갈 뿐이다.
* 아그라성에서 본 타지마할
아르나의 젖줄, 야무나 강줄기를 따라 시선이 멈추는 끝선에 타지마할이 신비로운 자태로 서 있다. 천상에서 내려온 자태로 아름다움을 지상에 선사한다. 아그라성 성문에서 바라보니 훤히, 아주 정겹게 다가온다. 권력이 부자간의 끈을 자를만큼 무서운 위력이라는 사실은 이미 내 조국의 역사 속에서도 알고 있었지만 샤잔왕의 아들이 저 아름다운 궁전 타지마할의 주인인 아버지 샤잔왕을 살해했다는 것에 대하여는 짙푸른 슬픔이다. 드넓은 초지와 강을 사이에 두고 붉은 피를 흘렸던가. 아그라성에 올라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내 눈이 시리다.
* 아그라 클락 호텔 출발
아그라 도시에 있는 타지마할과 아그라성을 관람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해는 중천에 떠서 우리를 힘들게 한다. 버스 안의 에어컨이 아니면 견디기 어려운 날씨다. 여름의 끝자락 기온이 37도까지 오르내린다. 샤워를 하고 잠시 휴식하고 호텔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음 여정을 따라 떠난다. 푸른 빛 아름다운 정원을 다시 돌아보며 호텔을 출발했다.
* 파테뿌르 쉬크리 시가지의 도로
아그라 호텔을 따나 1시간 30분을 버스로 달려온 도시다. 인도는 큰 대륙으로 이동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너무 먼 거리는 비행기로 이동하고 5시간 이내의 거리는 차량으로 이동한다. 파테뿌르 쉬크리성을 보기 위해 온 도시다. 인도에는 역사가 고스란히 잔재하는 성이 많다. 역사 유물의 보고다. 파테뿌르 쉬크리 시가지의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가로수가 우람하고 여유로운 거리다.
* 파테뿌르 쉬크리 기념품 가게 견학
인도 특산물로 만든 여성의 쇼올 등 옷 종류와 인도에서 생산되는 대리석 공예품이 많다. 특히 대리석 탁자는 대단히 아름답다. 섬유는 실크와 목화 제품이 많아 은은하고 고풍스럽다. 한쪽에는 석공이 대리석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장면을 견학하도록 오픈된 공간도 있다. 젊은 남자의 피서린 손끝과 예리한 눈빛에서 투철한 장인정신이 피어오른다.
* 파테뿌르 쉬크리 도시 풍경
고대 승리의 도시다. 사람 냄새가 가득하다. 변두리 지역인듯 한데 나무 그늘 아래에서 과일을 팔기도 하고, 상가도 보이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런데 기막힌 장면을 보았다. 기념품 가게 앞 큰 도로 중앙에 개가 죽어 있다. 그 위로 차가 지나 다녀 피를 흘린 자국이 애처롭다. 인도 사람은 개고기를 먹지 않으니 아무도 그 육신에 대하여는 탐하지 않는다. 사람도 동물도 그냥 태어나, 그냥 살다 가는 곳이 인도다. 그 곁으로 커다란 소 두마리가 어슬렁 거린다. 낙타는 짐과 사람을 싣고 걸어간다. 산 목숨과 죽은 목숨의 무너진 경계선을 본다.
* 인도의 물소
파테뿌르 쉬크리성을 가기 위해 시내를 벗어나자 큰 호수에 물소들이 물속에서 많이 있다. 더운 날씨에 몸을 식히고 씻기 위해서인가 보다. 이곳 사람들이야 종종 보는 풍경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만나기 어려운 진풍경이다. 한 두 마리도 아니고 물소떼들이 모여 있다. 회색빛 살갗이 다부지다. 거친 야성이 물 위에 맴돌고 있다.
* 인도 들녘의 기차
인도 땅은 평평한 곳이 많다. 우리나라처럼 높은 산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기차가 지날 때도 평원을 다린다. 산모롱이 돌고돌아 가는 기차가 아니다. 나무 사이로 달려가는 인도 들녘의 기차가 보인다. 인구가 많은 만큼 기차 칸도 많이 매달려 있다. 정말로 길다란 기차다. 낭만도 그리며 서민의 발로 들녘을 가른다.
* 파테뿌르 쉬크리성
이 성은 악바르 황제의 왕궁으로 왕이 거주한 곳이고, 샤잔왕의 아들이 늙었을 때 거하던 곳이다. 가장 큰 특징은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를 통합하여 아우르는 문양으로 지은 궁전이어서 세계문화유산이다. 3대 종교 양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묘한 조합으로 성의 내외부 곳곳에서 발견된다. 성은 상당히 크고 웅장하여 몇 구비를 돌아도 끝이 없다. 건물도 아름답고, 정원도 한치 흐트러짐 없이 잘 가꾸어 놓아, 이 성의 높은 문화유적의 가치를 부각시킨다.
* 파테뿌르 쉬크리성에서 사람을 따라 다니는 개
인도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라서 그리 신기한 것은 아닌데 이번의 개는 좀 다르다. 우리 일행이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 다닌다. 인도 가이드는 말한다. 여기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내지 않고 들어오는 녀석이 바로 저 개란다. 그것도 사람들 행렬 속으로 파고 든다. 말끔한 녀석이다. 먹이를 구걸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지혜다. 개도 사람도 환경에 따라 적응도가 대단하다. 살기 위한 길을, 저 개는 지금 걷고 있을 뿐이다.
* 인도의 기름진 농토
파테뿌르 쉬크리에서 자이푸르로 이동하며 본 정경이다. 긴 여정, 200Km의 거리를 이동하는데 버스로 5시간 소요되는 관계로 인도의 기름진 농토를 제대로 보았다. 촉촉한 물이 흐르는 농토가 많고, 소와 농작물 등 참으로 풍요롭다. 2차선 도로라서 버스도 원활히 잘 달린다. 긴 시간의 여유로 모든 문인들이 노래를 부르며 갔다. 한사람씩 통로로 나와 노래를 불렀다. 나는 드라마 '명성황후 주제가'인 '나 가거든'을 불렀다. 모두들 흐뭇한 분위기다.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짙푸른 나무 사이로 여전히 달린다. 자이푸르에는 밤 10경 도착 예정이다. 곱고 기름진 풍경이 있어 덩달아 행복하다.
* 인도 자이푸르 야경
어둠 속에서 자이푸르 시가지에 들어 왔다. 가로등이 큰 눈으로 우리를 맞는다. 자이푸르는 핑크빛 시티라는데 밤이어서 색깔은 드러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아름다운 야경으로 보아 도시가 잘 꾸며진 것은 알 수 있다. 건물도, 가로등도, 상당히 세련되어 있다.
* 자이푸르 쉐라톤 호텔의 아름다운 연주
자이푸르 호텔에 투숙하여 먼저 저녁 식사를 했다. 늦은 밤인데 우리를 위해 아름다운 식탁과 아름다운 음악 연주를 마련해준다. 식사보다 맛있는 인도 전통 음악의 애잔한 선율이 음식 사이사이로 스며든다. 나는 음악을 사랑한다. 그런 감성이 일어서면 천상을 떠도는 환상으로 최고의 행복에 이른다. 부지런히 식사를 마치고 연주무대로 갔다. 물이 잔잔히 흐르고 인도의 악기로 라이브 연주하며 라이브로 노래를 부른다. 로비에는 카페가 있어 유럽 집시풍의 두 남녀가 기타 선율로 라이브 음악과 함께 심금을 울린다. 밤을 새워도 좋을 시간인데 밤 10시까지만이어서 아쉬웠지만 잊지 못할 고운 여정이다.
2008년 9월 24일 수요일 자이푸르, 암베르성, 바람의 궁전
* 자이푸르 쉐라톤 호텔
쉐라톤 호텔은 인도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다. 150개의 많은 객실과 실내 조각품의 내경과 분수의 외경이 비경이다. 조명은 가히 환상에 이른다. 이제 인도 여행을 마무리 지어가는 시점이기에 지금까지도 최상이었지만 인도에서 베풀어주는 가장 아름다운 대접이다. 쉐라톤 호텔은 세계 여행 중 곳곳에서 투숙한 호텔이고 캐나다에서도, 또 다른 나라에서도 융성한 대접을 받아왔다. 특히 라이브 연주는 여행자에게 가장 편안한 휴식을 선사함에 절창이다.
* 자이푸르 시가지 풍경
인도의 도시로 볼 때 자이푸르는 상당히 크고 웅장하다. 도로도 넓고, 재래시장도 아주 큰 규모다. 아침 이른 시간인데 암베르성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인도인들은 부지런히 생활이 문을 연다. 과일, 야채 상인과 출근자의 모습, 릭샤를 타고 가는 사람들, 낙타와 소가 사람들과 함께 걸어다니는 모습 등 거리 풍경이 살아 일어선다.
* 자이푸르 암베르성 외경
자이푸르 도시에서 아주 서서히 산길을 오른 곳에서 범상치 않은 산정의 성벽을 만났다. 버스로 들어가는데 유람한 산이 시야에 당당히 서 있고 산 꼭대기마다 줄지어 성벽과 성이 전개된다. 우리가 올라갈 암베르성이다. 하늘 가까운 도시였다는 그 옛날 왕정시대의 찬란했던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 암베르성을 왕래하는 짚차
암베르성을 왕래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도보, 코끼리, 짚차 등이다. 바쁜 여정의 방문객들은 한번은 짚차로, 한번은 코끼리로 오르고 내린다. 암베르성 아래에는 짚차가 줄지어 손님을 기다린다. 우리 일행은 오를 때는 코끼리를 탔고, 내려올 때는 짚차를 탔다. 인도 사람들의 큰 돈벌이 수단이다.
* 암베르성 오르는 코끼리 행렬
인도 코끼리를 타고 암베르성에 오른 행렬이 장사진이다. 코끼리에게 고운 입을 입혀 풍경은 더욱 아름답다. 한 마리에 두 사람씩 앉을 수 있는 안장이 코끼리 등에 있어 이집트 카이로의 피라미드 사막체험과는 많이 다르다. 이집트에서는 낙타등의 봉만 잡고 거닐었는데 여기 코끼리는 사각의 안장이 장치되어 있어 무섭지 않다. 나는 남편 유기섭 수필님과 함께 탔다. 오르는 중 코끼를 이끄는 인도 청년이 디카를 달라하더니 사진도 찍어 준다. 뒤에 앉은 우리 부부를 보지도 않고 찍었는데 참으로 정확히 포즈를 담았다.
한국인이라 하니 볼펜을 달란다. 나는 메모용으로 쓰던 볼펜을 꺼내 주었다. 인도에서 우리나라의 볼펜은 큰 인기다. 가는 곳마다 볼펜을 달라고 외친다. 한국인이 쓴 모자를 달라는 주문도 한다. 한국상품이 그 만큼 우수한 제품임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코끼리는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하늘 닿을듯 높은 성에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 암베르성 정상
산 위에 이런 성을 짓고 살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무굴제국의 황제가 죽고 쇠퇴하는 시기에 암베르를 통치하던 자이 싱은 정사보다 암베르 건설에 힘썼다. 점점 늘어가는 백성들의 안전한 거주지로 자이푸르를 선정했고 외침의 방벽으로 암베르성을 쌓은 것이다. 성과 성벽은 눈물겹도록 아슬하다. 위로는 하늘만 보이고 아래로는 천길 낭떠리지 절벽이다. 그 옛날 어떻게 건축물품을 운반하였을까. 기막힌 비경 앞에서 눈과 가슴은 연민에 젖는다.
* 암베르성에서 본 자이푸르
성의 창문 앞에서 내려다 보니 자이푸르 시가지가 절경이고 성으로 오르는 코끼리 행렬은 여전히 진풍경이다. 정원에는 호수와 나무, 잔디로 궁전 뜨락을 재현해 두었고 오래 전의 성터 흔적이 내려다 보인다. 건편 산의 성벽으로 오르는 계단과 또 맞은 편 산의 성벽이 병풍처럼 늘여 있다. 자이푸르 도시가 깊은 산과 산 사이로 아름다운 정경이다. 자이푸르는 인도 최초의 계획 도시로 벵골제국의 총명한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어 가까이서 보아도 멀리서 보아도 훌륭한 도시다.
* 자이푸르 암베르성
산정의 궁전은 신의 손길로 지은 듯 아름답다. 대리석 문양과 색상도 대단히 수려하고, 저 멀리 산등을 휘감이 흐르는 성벽의 위용이 외침을 제압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하늘 가까운 이 도시에서 살았다 하니 믿기지 않는다. 인도의 옛향기를 온전히 호흡하는 역사적 성터다.
* 암베르성 문인들 단체사진
한국문인협회 우리 회원들은 곳곳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지만, 하늘 가까운 암베르성에서 찍는 기분은 남다르다. 인도의 높은 성에 입성했다는 환희, 왕과 백성이 거하던 하늘 도시의 나들이 등 황홀한 경이다. 더운 날씨에 모두들 지쳐 있는데 암베르성은 아름다운 날개로 우리를 감싸 안는다.
* 인도 코브라 뱀 공연
암베르성을 관람하고 하산하는 길목에서 코브라뱀 공연을 보았다. 인도 남자 둘이서 피리를 불며 바구니에 담긴 뱀을 조정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운데 저들은 저것이 생업이다. 많은 사람들이 촬영해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다. 영상매체로만 보았던 코브라뱀 공연을 목전에서 보다니 꿈인 듯 싶다. 커다란 코브라뱀의 머리가 주인을 응시하며 묘기를 연출한다.
* 자이푸르 여름궁전
왕이 늙었을 때 여름에 와서 살았던궁전이다. 암베르성에서 하산하여 자이푸르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호수에 만났다. 물 위에 아름다운 자태로 앉아 있다. 산이 뒤로 둘러쳐 있고 물과 산의 절묘한 기운으로 궁전은 호흡하고 있다. 저 물 속에 어찌 지었을까. 물 속에 박힌 기둥들이 다부지게 인도의 역사를 붙들고 있다.
* 자이푸르 도심 풍경
자이푸르는 인구 145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다. 라자스탄 주의 주도로 상업과 금융,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이 도시는 1727년 암베르의 통치자였던 사와이 자이 싱이 1693년부터 1743년까지 건설한 성벽도시다. 자이푸르는 '자이왕의 성'이란 뜻이다. 그 당시는 무굴제국의 황제 아우랑제보가 죽고 무굴제국이 쇠퇴하는 시기였다. 왕은 잠시 정사보다 도시 건설에 혼을 쏟고, 유명한 건축가 비다드하르 바타챠르야에게 고대 힌두교의 연구서에 따라 설계하도록 하여 지은 도시가 바로 자이푸르다.
아주 우람하고, 질서정연하고, 아름답고, 깨끗한 편이고, 이방인이 눈에도 노력하여 일군 흔벅이 역력히 보인다. 깊은 역사 유적도 많고, 시민들의 표정에서 생기가 돌고 있다. 지금까지 다녀본 인도의 도시 중에서 규모와 생활수준 등에 있어서 으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 자이푸르 쉐라톤 호텔 외경
처음에는 호텔의 문을 찾지 못했다. 대로변에 있어 외부와의 접촉을 막기 위해 길가에 문을 내지 않은 것 같다. 호텔 앞의 고가도로는 여러번 지나다녔는데도 그 곁에 내가 유숙한 쉐라톤 호텔이 있었다는 것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인도의 호텔은 대부분 최상의 수준이다. 내경 및 외경이 아주 성실한 손길로 갖추어 있다. 이게 인도의 호텔이냐고 반문할 만큼 문밖의 세계와는 별천지다. 백성들에게는 잔인할만큼 소홀한데 방문객에게는 귀빈으로 모신다.
잠시 버스가 호텔 진입로에 멈추어 있을 때 한 남자 상인이 다가와 저기 자신의 가게에 와서 물건을 사란다. 그땐 이미 떠날 채비를 다 했고, 시간도 허락하지 않아 그의 주문을 들어줄 수 없었다. 나와 인도인과는 무관하지만 수영장과 찬란한 뜨락, 등 오직 이방인에게만 베푸는 절경 앞에서 이런 곳에 투자하는 비용을 조금 나누어 헐벗은 자국의 서민들에게도 베풀어주면 어떨까 하는 동정심이 솟구쳤다.
* 자이푸르 도심의 소
도심에 소가 많다. 허술한 곳뿐만 아니라, 궁전 정문 앞, 외객이 많이 드나드는 곳에도 소의 걸음이 허락된다. 인도의 소는 제약된 장소가 없다. 뭉쳐 다니거나 홀로 떠돌며 쓰레기장을 뒤져 먹이를 찾아 먹기도 하고 끼리끼리 뭉쳐 다니며 함께 먹이를 찾기도 한다. 사람을 절대 해치지는 않는다. 인도 가이드는 만져도 된다는데 그건 두려운 일이어서 못하고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인도의 소와 호흡을 같이 했다.
* 자이푸르 천문대
자이푸르에서도 핑크시티 안에 있는 고대의 천문대다. 그저 옛날 기상관측 시설물 하나 있겠지 했는데 놀랄만큼 많은 고대 천문 유적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높이 평가 받는 것은 해시계다. 해의 그림자가 지나가는 눈금으로 시간을 가늠하며 살았던 인도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 있다. 그외 별자리 관측소, 24절기 등 여러가지 우주를 관찰하던 천문대 부속 기구들이 뜨락 가득 들어 차 있다.
* 자이푸르 바람의 궁전
인도말로는 '하와마할' 즉 바람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핑크시티 안에서 다른 건물과 동일한 핑크빛으로 지은 아름다운 궁전이다. 1799년 왕족의 여인들이 일상생활과 시내의 행열을 지켜보기 위해 대로변에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인도의 왕이 와서 산다. 영국 갈 때 떠서 가지고 간 갠지스강 물통으로 대형 술항아리도 있고 출입구에는 두 대의 대포와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 지금 인도의 왕에게 아들이 없어 다음번의 왕은 외손자가 될 것이란 소문이 돈다. 상당히 높은 5층 건물이다.
* 자이푸르 바람궁전 입구 풍경
우리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거품을 제거하고 인간 본연의 가슴을 열고 보아야 이해할 수 있는 곳이 인도다. 눈으로만 보면 기막힌 구토가 목을 훑는다. 유명한 바람의 궁전 진입로에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산적해 있다. 사람도, 물건들도, 짐승들도 무한한 자유로 널브러져 있다. 아무도 통제하지 않는다. 비둘기 모이를 파는 남자는 비둘기를 아기 다루듯 한다. 정말, 동물을 사랑하는 나라다.
* 자이푸르 핑크시티의 재래시장
규모가 아주 크고 웅장한 시장이다. 핑크시티의 상징처럼 도심 한 블럭을 양편으로 다 점유하고 있다. 바람의 궁전을 관람하고 개인적으로 각자 시장을 둘러보았다. 약국도 있고, 옷 가게도 많고, 눈으로 보는 것만도 황홀하다. 물가는 싼 편이다. 궁전식으로 꾸며놓은 상가 건물의 행렬이 아주 인상적이다. 그 앞에는 자동차 도로가 있는데 교통량이 많아 사람의 통행이 상당히 위험하다. 인도의 헐벗은 모습은 간 데 없고 화사한 어느 유럽을 느끼게 한다.
* 인도의 약국
바람의 궁전 앞에 있는 약국이다. 재래시장을 돌아보며 발견했다. 나는 해외여행 중에 그 나라의 약국을 꼭 디카에 담아온다. 그것은 나의 작은 아들이 약사이기 때문이다. 나라 별로 독특한 약국 상호를 모으고 있다. 인도의 약국은 작은 편이다. 넓은 나라에서 점포의 평수가 좁다. 인도에서 약사는 유망한 직종이라는데 조촐한 모습이다. 모든 것들이 다 한국보다는 낮은 수준이어서 그러하리라. 소규모이지만 저 안에서 근무하는 약사는 그래도 수준이 높고, 행복한 사람이리라.
* 자이푸르 바람궁전 앞의 소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 있다. 한국의 덕수궁 앞에 소가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고 하면 이해가 되겠는가. 걸인이 소와 함께 있으며, 소에게 마른 풀을 주고 있다 하면 이해가 되겠는가. 바람의 궁전을 찾아온 관광버스가 주차한 바로 곁에서 소들이 파리가 들끓는 음식물 찌꺼기를 훑고 있다. 염소떼와 개도 떠돈다. 형식을 버린 나라, 외부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나라, 목숨이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함께 어울려 사는 나라, 이것이 인도다.
* 인도의 차량 운전석
한국의 차와는 반대다. 영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 같다. 차의 왼쪽에 있어야 할 운전석이 오른 쪽에 있다. 뉴질랜드에 갔을 때도 그런 연유로 여러번 혼동하며 차에 올랐는데 인도 여행 중에도 그런 혼동을 일으키게 한다. 도로 규칙도 마찬가지로 반대다. 인도의 교통체계는 사람에게 맞춰진 것이 아니고 차를 위한 도로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나라다. 내가 찍은 아래의 사진은 외국 관광객을 태우고 다니는 고급 버스의 운전석이다.
* 자이푸르 라자스탄 대학교
라자스탄 주의 주도가 자이푸르다. 자이푸르에는 부자가 많다. 사업가가 잘 산다. 도시가 깨끗하다. 이곳 사람들은 유채기름을 빵에 발라 먹는 요리를 주로 먹고 산다. 해질녘 호텔로 들어가며 자이푸르시에 있는 라자스탄 대학교 곁을 지났다. 가장 이색적인 것은 캠퍼스 안의 뜨락이다. 잔디가 파랗게 깔려 있어 어느 아름다운 공원 같은 느낌이다. 건물도 저층으로 우라나라의 높은 대학 건물과는 다르다. 드넓은 대륙륙에 대한 부러움이 눈길을 적신다.
* 문인 생일 축하 노래 진달래꽃
쉐라톤 호텔에서 마지막 석식을 하며 일행 중의 한명이 생일을 맞아 파티를 열었다. 포도주로 건배를 하고, 문우의 정을 다지며 생일을 맞이한 분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시간을 마련했다. 나는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가요로 만든 '진달래꽃'을 불러 드렸다. 넓은 공간에서 마이크가 없이 육성으로 불렀다. 아름다운 식사와 아름다운 낭만의 시간이다.
* 인도 전통춤 공연 관람
저녁 식사 후 인도 전통춤 고연을 관람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좋은 공연장은 못 가고 호텔에서 가까운 공연장에 갔다. 그곳은 식사와 함께 묶여진 공연이어서 우리가 원치 않는 식사까지 나왔다. 종업원은 계속 서빙을 한다. 음식, 과일, 맥주 등 푸짐한 테이블이다. 그리고 무대에서는 인도 여인과 남자 몇 명이 전통춤과 악기로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열린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이다. 한국인의 시각으로는 낮은 수준인데 인도에서는 아주 높은 수준의 공연이라는 말에, 부자가 아니면 보기 힘든 공연이라는 말에, 문화적 차이를 느꼈다.
2008년 9월 25일 목요일 자이푸르 출발, 델리 도착, 연꽃 사원
* 자이푸르 핑크 시티
도심의 일정 구간을 핑크빛으로 꾸몄다. 건물이 모두 분홍빛이다. 그 안에 바람의 궁전도 있고, 재래시장도 있고, 천문대 등 주요 기관이 많이 들어 있다. 꽃처럼 아름다운 블럭이다. 자이푸르는 직선 방사형의 거리와 도로로 이루어진 도시다. 일직선의 가게가 9각의 도시 구역으로 정비되어 격자 시스템으로 설계되었다. 이 도시는 정글의 맹수와 외국군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7개의 대문을 가진 성벽으로 둘러 싸여져 있다. 자이 싱의 계획도시는 모든 압력과 변화로부터 잘 견디어 내었다. 그런 연유로 자이푸르 도시는 지금까지도 훌륭한 시가지이며, 그 단단함이 돋보인다. 그 중에서도 핑크시티는 자이푸르의 핵심 포인트다.
* 자이푸르 바람궁전 외경
자이푸르 도시를 관람하며 여러번 지나친 곳인데 오늘 아침은 마지막으로 이 도시를 떠나며 버스에서 잠시 내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았다. 도심 복판에 있어서 교통도 혼잡하고 인파도 많아 경찰이 대나무봉으로 단속하고 있다. 가로수가 깊은 연륜의 몸짓으로 한껏 풍경을 돋보이게 한다. 여자를 위한 궁전, 바람이 시원하게 지나간다는 궁전, 1700년대의 아주 뛰어난 건축물이다. 도로의 폭이 좁아서도 그렇지만, 궁전의 높이가 상당히 높아 아무리 멀리 카메라로 조절해도 전경을 잡기가 힘들다. 5층 건물인데 회오리 바람처럼 높이 솟았다. 색상도 핑크빛으로 눈부신 비경이다. 자이푸르의 명물이다.
* 인도의 산 풍경
자이푸르를 출발하여 델리로 간다. 이제 인도 여행의 마지막 코스다. 오늘 밤 늦게 델리에서 한국행 비행기로 돌아간다. 점점 아쉬운 인도의 시간이다. 자이푸르에서 델리까지는 250Km,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자이푸르 시가지를 벗어나자 인도의 자연 풍경이 전개된다. 인도의 산은 사암산이다. 그래서 붉은 흙이 보인다. 산이 일직선으로 길게 늘어선 풍경도 보인다. 나무가 울창하지 않다. 어느 곳을 지날 때는 드넓은 평원만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우람한 산줄기를 만났다.
* 인도의 편도 2차선 도로
인도에서는 잘 발달된 도로다. 고속도로가 없는 나라인데 이 정도의 도로라면 한국의 고속도로격이다. 1차선 도로에서는 교통이 적체되어 저속운전인데 다행히도 자이푸르에서 델리 가는 길은 편도 2차선 도로여서 순조로운 운행이다. 가끔은 소가 지나가므로 서행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흔히 보아온 풍경이어서 이젠 새롭지도 않고 이상하지도 않다. 나도 이제 인도의 문화에 젖어든 것일까.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면 여행이 즐겁다는 명언이 떠오른다. 도로변의 야자수와 인도의 목재를 싣고 가는 트럭이 정겹다.
* 자이푸르에서 델리 가는 길 휴게소
참으로 아름다운 휴게소다. 꽃과 나무가 절경이다. 휴식보다 더 행복한 풍경을 선사한다. 휴게소 안에는 기념품과 커피숖도 있다. 사람들은 흩어져서 자유시간을 즐긴다. 나는 인도의 낭만에 젖어 정원을 거닐었다. 남국의 향기로운 뜨락이다.
* 낙타 먹이 옥수수대
넓은 평원에 옥수수대가 세워져 있다. 낙타에게 줄 먹이란다. 마른 사초처럼 저장하기 위한 것이다. 소 먹이로 둥글게 말아둔 풀더미와 유사한데 묶지 않고 그대로 세워둔 것이 다르다. 인도에서 낙타는 큰 교통수단의 동물이다. 그런 만큼 낙타를 위한 먹이를 준비하는 것이다. 정겨운 풍경이다.
* 자이푸르에서 델리 진입도로
중앙 분리대까지 설치된 아주 큰 도로다. 이 정도면 인도에서는 훌륭한 교통도로다. 자이푸르도 발달된 도시이고 델리도 인도 최고의 도시이기에 두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라서 그렇게 정비한 것 같다. 델리에 가까이 다다른 진입도로에서는 더욱 광활도로다. 이 도로상에서라면 누가 인도를 낙후된 나라라 할까. 시원하게 전개된 도로를 버스는 막힘없이 잘 달린다. 향기로운 도로다.
* 인도의 낙타
인도에서 낙타는 대단한 동물이다. 한국의 그 옛날 우마차처럼 큰 교통수단의 동물이다. 인도에서 소는 주인이 없지만 낙타는 분명한 주인이 있다. 시골과 도시 가리지 않고 짐과 사람을 실은 낙타의 수레가 활보한다. 한 무더기 낙타떼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주인과 함께 쉬고 있다. 양순한 몸매다. 더운 나라에서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사는 생존의 한 수단이다.
* 휴게소의 어린이
한 어린이가 휴게소에서 악기를 연주한다. 학교에 가서 배워야 할 나이인데 이것도 하나의 생활수단인지 우리 일행이 버스에서 내리자 다가와 웃으며 악기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부른다. 나는 그에게 생수가 든 물병을 건네 주었다. 개봉하여 먹던 것이라서 주저하며 주었는데 그 아이는 반가운 손으로 받는다. 인도 아이에게 생수는 비싼 물품이리라. 그후 그 아이는 내가 보이기만 하면 달려와 내 앞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준다. 생글생글 웃으며 나름대로 큰 사례를 베푸는 뜻이다. 눈물고운 나라, 정을 주면 배로 정을 갚는 나라, 이것이 인도다.
* 뉴델리 남부 신도시
한창 발달하고 있는 모습이다. 건물도 빼어난 아름다움이고, 곳곳에서 건설현장이 보인다. 아파트도 짓고, 공장도 짓고 인도의 번창이 목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델리의 남부 뉴델리 진입로에서 만난 남부 신도시다. 한국 서울의 강남격이다. 톨게이트도 웅장하고 선전광고판도 대형으로 우람하다. 머잖은 미래에 눈부신 발전으로 잘 사는 인도가 되길 빌었다.
* 뉴델리 대사관 거리
이 부근에서 점심 식사를 했는데 나무가 울창하다. 영국이 만든 거리다. 인도는 1904년까지 영국이 지배했다. 50년대 까지는 캘커타가 수도였다. 국회위원이 500명이다. 18세부터 투표권이 주어진다. 대통령궁도 지났는데 방이 300개다. 아름다운 정원으로 일반인 출입이 가능하다. 다른 지역과는 분위가가 다르게 아름다운 거리다.
* 뉴델리 연꽃 사원
도심의 나무 숲 사이로 하얀 연꽃 모양의 건물이 솟구친다. 가까이 다가가 버스를 주차하는데 거리가 상당히 혼잡하다. 수많은 내외국인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연못이 9개, 연꽃잎이 27개, 키가 34m의 아름다운 사원이다. 긴 보도블럭 길을 따라 들어갔다. 황홀한 연꽃 모양의 사원이 영혼을 흡입한다. 그 안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이곳 사람들은 안에서 50분 동안 기도한다. 월요일만 휴관이다. 사위를 둘러싼 연못과 잔디가 사원을 푸른 빛으로 물들인다. 정원의 조경도 빼어나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예술이다. 인도 종교를 모른다해도 여기서는 모두 두손 모아 기도를 하게 된다.
* 뉴델리 신도시 번화가
화려한 도심거리다. 전철역도 있고, 건물도 아파트도 고급스럽다. 사람들도 아주 세련된 모습이다. 여기가 뉴델리의 신도시 번화가다. 삼성전자 세비스 센터도 보이고, 새로이 짓는 대형 극장도 보인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건물 물결에 인도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어느 나라든지 화사한 얼굴은 있듯이 인도 역시 다 모자라고 하술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조금 한산한 도로변에는 어김없이 소가 있다.
* 인도의 주유소
델리 시가지를 돌다보면 주유소를 간간이 만난다. 규모가 크진 않는데 여늬 도시의 주유소와 다름없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먼 이야기겠지만 귀족에게는 생활필수 공간이다. 신분 차이가 엄청난 나라,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 들이고 고요하 사는 나라, 인도의 주유도 역시 극한의 부자를 위한 시설이리라. 드나드는 자동차 역시 그리 많지 않다. 인도의 저녁시간, 퇴근 무렵인데도 말이다.
* 꾸뜹 미나르 유적지
델리 최고의 유적지로 세계문화유산이다. 73.5m의 높은 승전탑이 하늘을 오른다. 나무 사이로 내민 모습이 오롯하다. 우리가 도착한 것은 저녁 석양이 내리는 시간이어서 그 아름다움은 더욱 눈부시다. 379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탑이다. 더러는 이곳에 올라 자살하는 여인도 있다. 꾸뜹 마니르 욍의 승전 기념탑인으로 인도 시민들이 많이 찾아와 휴식을 취하곤 한다. 곳곳에 남은 유적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 붉은 색의 기둥탑이 예술이다. 붉은 사암의 건물들도 꽃처럼 곱다. 인도인의 한 가족이 이방인인 우리를 보더니 역으로 신기한듯, 아이와 아내를 우리들 가운데 세우고 사진촬영을 해도 되냐고 묻는다. 쾌히 승낙했다. 여기가 인도 여행의 마지막 코스이기 때문일까. 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어려운 고비도 많았지만 향기로운 인도 여행이 마냥 아쉽다.
* 뉴델리 상가 야경
이제 점점 인도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오늘 밤 늦게 비행기로 떠난다. 저녁 식사 전에 잠시 인도의 상가에 들렀다.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인도의 야경이 더운 흥미롭다. 작은 규모의 상가 군락에 밀집해 있는 삶의 터전에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식당, 전자상가, 수리센터,기념품 가게, 24시간 사용 가능한 현금인출코너 등 화려하다. 영어권 나라이므로 웬만한 글씨는 판독도 가능하여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은 거리다. 어스름 불빛이 더욱 큰 낭만을 선사한다.
* 마지막 석식 만찬
정말 인도에서의 마지막 석식이다. 중국식 만찬으로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한국문협 김년균 이사장님의 고별 인사를 들었다. 포도주 잔에 문우의 정을 담아 아름다운 건배로 무사히 마친 인도 여행에 대하여 서로 자축했다. 오기 어려운 나라, 인도에 우리는 문학이라는 동일한 주제로 뭉쳐서 온 것에 대하여 서로에게 감사했다.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문학을, 문학의 정을, 인도에 대한 애정을, 인도에 대한 연민을 먹고 있다. 진정 뜨거운 만찬이다.
* 뉴델리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출발
밤 10시까지 공항에 가야 한다. 인도 시간으로 새벽 1시 5분 비행기를 탄다. 국제선이므로 언제나 넉넉히 여유를 가져야 함을 잘 안다. 서둘러 갔는데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라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간 침대열차에서 우연히 만나 인도에 대하여, 한국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교류하면 정든 청년이다. 한국이 좋아 한국어를 독학히여 한국 가이드가 되었다는 심성 고운 청년, 어찌나 반가운지 얼싸안고 한바탕 웃었다. 기쁨도 잠시 이제 헤어져야 한다. 손을 흔들며 내년 4월에 한국에 온다는 라키의 약속을 새기며 이별을 고했다. 아시아나 항공은 뉴델리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을 1시 35분에 출발했다. 두사람이 미착석으로 30분 지연된 것이다. 밤 하늘을 힘차게 가르며 내 조국 대한민국으로 날아가고 있다.
2008년 9월 26일 금요일 인천 도착
* 인천공항 도착
인도 여행을 무시하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을 때 꿀잠이 쏟아졌다. 모두들 비행기 창문을 내리고 깊은 잠을 자며 날아왔다. 조식으로 닭고기 볶음밥을 먹고 나니, 창밖은 눈부신 창공의 아침 햇살로 청청하다. 창문을 못 연다. 태양 가까이의 자외선이 강하여 직접 쐬이면 인되기 때문이다. 7시간 30분을 날아 한국시간으로 12시 3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긴 여정을 마감하는 순간이다. 인천 상공에서 보는 내 조국은 참으로 아름답다. 산과 바다가 절창이다. 그 어느 국제공항 못지 않은 정경이다. 문인들과 작별을 고하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영종도 다리가 긴 목선을 늘이고 뜨거운 마중이다. 인도에 대하여 공부한 수많은 자료들을 나는 문학기행 자취록으로, 시로, 곱게 엮어 내 조국에 선사하리라 다짐하며 다리를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