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2019년 5월 30일 있었던 일입니다.
이날은 저의 어머니와 같이 지역 내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나왔었는데 저의 이모가 저의 어머니께 전화를 하여 빨리 오라고 전화를 하셨던 겁니다.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참 이였는데 저의 이모는 재촉을 하셨지만 갑자기 저의 친동생이 저의 이모가 어머니께 전화를 하시고 나서 친동생이 3분정도 시간차이를 두고 저의 외할머니께서 별세를 하셨다고 친동생에게 전화가 왔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말을 듣고 먼저 저의 이모의 집으로 가시겠다고 하여 저에게 하시는 말이 있었는데 제가 사복차림이라서 어머니께서 이 복장으로 가겠냐고 물어보셨는데 일단은 간 다 안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제가 어머니와 같이 따라서 가는 것보다는 먼저 어머니께서 먼저 가시라고 하셨는데 저의 어머니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택시로 이동을 하겠다고 하여 지역에 개인택시를 타고 다니는 저의 아버지 친구 분에게 전화를 하여 오라고 했었나봅니다.
어머니와 같이 있었는데 아버지 친구 분이 오셔서 저의 어머니를 태우고 저의 이모의 집으로 이동을 하셨는데 택시비는 20,000원주고 가셨고 저는 이것저것 준비를 해서 가야 할 일 같고 하니 먼저 어머니께 먼저 저의 이모의 집으로 가시라고 권했었습니다.
전 저의 집의로 가서 사복에서 검정색 양복에 흰Y셔스를 입고 일단은 넥타이는 분흥색으로 착용 하고 출발을 하고 분흥색 넥타이는 장례식장에 가서 벗어버리더라도 일다는 이동 할 때만 착용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저의 어머니께 연락을 하여 장례식장은 잡혔냐고 전화상으로 물어보니 잡혔는데 위치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목포 삼학동에 소제한 시내버스종점 바로 옆 이였던 겁니다.
도착하여 건물을 들어서서 보니 영전사진에 저의 외할머니 실명이 걸려있었는데 그 옆으로 보니 제가 알고 있기로는 저의 친 이모 2명 중 1명은 1990년도에 별세를 하셔서 이름이 올라 와있지도 않고 생존한 저의 친 이모 와 저의 이모의 이름이 기제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엉뚱하게 저의 외할머니의 자녀라고 하여 아들 2명에 추가로 저의 이모의 이름이 3명이 더 추가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저의 외할머니로써 보면 외손자는 저를 포함하여 6명이였는데 아들 2명에 딸 3명이 추가로 나온 거보니 여기서 문득 저의 어머니께 얼추 들은 말이 있었습니다.
저의 (故)외할아버지께서 젊었을 때 사고를 치셔서 첩을 얻어서 살면서 본처인 저의 친외할머니 와 혼인신고는 유지를 하시고 계셨는데 여기서 첩으로 들어와서 사셨던 할머니는 저의 친외할머니 때문에 혼인신고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大韓民國)국가에서는 혼인신고는 1회만 적용을 하지 1회이상 혼인신고는 할 수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또한 여기서 보면, 사별, 이혼, 혼인무효, 혼인취소가 되어있다면 혼인신고는 하데 이외 혼인은 유지가 되어 있다면 혼인을 할 수가 없는 것은 누구나 아는 법입니다.
저의 외할머니께서 생각을 하시고 저의 외할아버지와 혼인관계를 유지를 하셨는데 여기서 보면 저의 외할아버지가 첩을 얻어 사시면서 저의 외할머니는 죽었으면 죽었지 이혼을 해주지 않으셨던 겁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의 외할아버지는 사망을 하시기 전까지는 저의 외할머니와 혼인관계를 유지를 할 수밖에 없었고 저의 외할아버지의 첩으로 들어와서 혼인신고는 하지 못하고 저의 외할아버지께서 먼저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고 이후로 첩으로 들어와서 사셨던 첩의 할머니는 저의 외할머니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버렸던 겁니다.
그래서 첩으로 들어와서 사셨던 첩의 할머니께서 자녀를 2남 3녀를 낳고 저의 친외할머니 밑으로 호적에 올라 와버리고 그 자녀가 저의 친외할머니 자녀로 등제가 된 케이스였는데 어쩔 수 없이 저의 외할머니께서 저의 이모에게 말을 하셨던 부분이 있었나 본데 저의 외할아버지의 첩으로 들어와서 사셨던 첩의 할머니의 자녀는 부르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의 이숙과 저의 이모가 첩에서 낳은 2남 3녀를 부르게 되었던 거라고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양복차림에 분흥색 넥타이는 건물로 들어서서 계단으로 올라 가면서 풀어버리고 말았는데 2층에 올라가서 보니 저의 이숙 과 저의 이모, 저의 어머니, 작은 사촌 제수씨가 있었는데 제가 그 앞으로 가니까 저의 어머니께서 저보고 하시는 말은 “(분흥색)넥타이를 착용을 하지 않으니까 낳다.”라고 말을 하시고 저의 작은 사촌 제수씨는 저를 유심히 보더니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지 몰라도 남자는 어떤 복장인지 구체적으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저의 이모는 시선을 회피를 하셨지만 저의 이숙은 저에게 하시는 말은 “조카는 옷차림새를 보니 사전에 준비를 해서 왔구나. 넥타이 와 팔에 차는 권장만 착용을 하면 되겠구나.”라고 말을 하셨습니다.
전 왜 이렇게 해서 왔었냐면 저의 아버지께서 2019년 10월 22일자로 별세를 하셔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후로 외할머니, 친할머니 외 어른들이 사망을 하게 되면 준비를 하여 가는 것도 좋은생각 이겠거니 생각을 하고 이번에는 외할머니께서 별세를 하셔서 제가 사둔 양복차림으로 한번 시도를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시도를 하니 이거에 먹혀 들어간 꼴밖에 안되었는데 이후로 기다려보니까 저의 외할아버지께서 첩을 얻어서 사셨던 첩의 할머니가 낳은 자녀들이 그 뒤로 오게 되었던 겁니다.
저는 첫날 저녁시간 때는 새벽 3시쯤 설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밥 먹고 첩의 할머니께서 낳으신 자녀들과 같이 있어보니 오전시간 때를 보니 한 밥상 앞에서 모여 앉아서 꿈적도 하지도 않고 옆에서 제가 있었는데 영전사진 옆에서 오는 손님들과 맞절을 하고 저만 왔다같다 하고 저의 이숙이 중간에서 나서서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을 하지도 않고 보는 뭘 보고 배우라는 것인지 원... 저의 이숙이 나서서 싸우더라도 첩 할머니께서 낳은 자녀들에게 뚝 까놓고 화를 내셨어야 하는데 하지도 않고 있다가 제가 옆에서 보니까 스트레스 받고 화도 나고 차마 저의 이숙과 저의 이모가 왔다 같다하고 저의 사촌형수도 옆에서 보고 사촌 제수씨 2명도 옆에 있고 하다 보니 눈치가 여기서 보여서 욱한 마음에 밖으로 나가서 속으로 생각을 한게 “에나 모르겠다. 목포역 쪽에 보면 삼거리가 있었는데 삼거리에서 다른 은행이 있는 곳까지 같다오자”하면서 신협까지 가서 두쪽형님이 보내주신 부조금을 찾아오자고 하여 같다왔는데 부조금을 포함하여 여유로 1만원을 더 찾아서 신협에서 공과금을 납부를 해도 되었는데 일부로 신협에서 납부를 하지 않고 목포역전 앞으로 온 사유는 전기요금 고지서가 자택으로 오지 않아서 가상계좌로 납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목포역 앞에 “국민은행”과 “광주은행”이 있었는데 여기서 “광주은행”으로 간 사유는 전기요금 고지서에 “광주은행”가상계좌가 있어서 “광주은행”으로 가서 가상계좌로 전기요금을 납부해달라고 의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기요금은 휴대폰으로 이미 확인을 한 요금이 4,810원이였는데 가상 계좌번호를 적고 전기요금 4,810원을 적고 받는사람은 “한국전력공사” 그리고 보내는 사람은 저의 실명과 저의 주민번호 그리고 연락처를 적고 주니 납부를 하고 난후 영수증을 받아 나오니까 그때서야 답답한 것도 풀리고 스트레스도 풀리고 욱한 것도 풀렸는데 그 뒤로 장례식장으로 가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겁니다.
저보고 말없이 어디 같다왔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었는데 저녁시간 때 외할머니께서 별세를 하셨다는 것을 통보를 받았던 분들이 몰아와서 4시간정도 절만 하고 말았었는데 그날 저녁은 새벽 5시가 넘도록 잠을 못자고 장례식장 사장의 목소리 때문에 잠 든지 20분정도 되었는데 시끄러워서 깨게 되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첩의 할머니께서 낳은 자녀들은 찜질방에서 자고 왔나본데 아침밥 먹고 난 후에 들어와서 외할머니 시체를 가지고 화장터에 가지고 가서 화장하겠다는 접수를 하면서 앞서서 저는 경험을 했던게 아버지를 화장을 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장례식장 버스기사가 저에게 신분증을 달라고 하여 서류에 저의 인적사항을 적고 사인을 하라고 하여 사인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외할머니께서 별세를 하셨으니 장례식장 버스기사가 유족중에 아무나 신분증을 달라고 하여 장례식장 버스기사가 한 쪽으로 가서 서류를 보더니 제 신분증을 일단은 줌면서 작성을 하라고 하니까 저의 이모가 오더니 저의 이모의 신분증을 꺼내면서 저의 신분증을 집어 넣으 라고 줘 버린 겁니다.
저의 이모가 알아서 하시라고 하면서 아무 말도 안했는데 시간은 2시간을 예상을 잡았었으나 저는 앞서서 저는 경험자고 하니 2시간은 다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1시간 30분 소요된다고 말을 해놨었습니다.
제 말대로 따라 말이 맞으니 아무 말도 못하고 시간이 그렇게 되니까 화장하는 시간을 기다리다가 보니 저는 의자에서 앉아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의자에서 졸고 있었습니다.
저의 사촌 제수씨가 하는 말이 다되었다고 오라고 하는 말 듣고 깨게 되었는데 “유골함”이 생각나서 가서 보니까 “유골함”이 보이지 않아 저의 친동생에게 물어보니 “유골함”을 줬냐고 물어보니 줬다고 하고 유골함에 화장한 가루를 유골함에 넣고 받게 되면 저의 이모의 이름 과 연락처를 적어 주고 난 후 유골함을 되돌려 받았는데 여기서 저의 이숙이 5월 30일자로 상주를 했기 때문에 저의 이숙이 저의 외할머니를 봤을 때 장모이기에 사위게 장모 가루를 넣은 유골함을 받으라고 저는 저의 이숙에게 말을 하니까 가서 저의 외할머니를 받아서 중간에 저의 이모의 집이나 고향을 들리지 않고 바로 “납골당(상호. 천국으로 가는 계단 추모관)”으로 바로 가게 되었던 겁니다.
납골당에 가보니 제가 현제 거주하는 지역에 있는 납골당 이였는데 한 건물에 저의 아버지 유골함도 있고 저의 외할머니 유골함도 있게 되었습니다. 단 건물만 같지 장소는 다르다는 것만 알면되겠습니다.
아무튼 두쪽형님 부조금은 부조금함에 넣었으니 알고 계십시오.
첫댓글 수고 하셨어요...
힘든 일 마무리 잘 하시길...
큰일 치루느라 고생했다.
모쪼록 빨리 일상 생활로 복귀해서
열심히 살자.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