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부활절 다섯 번째 주일)
열왕기상 11:1~13
마음 지킴이
하늘사랑교회 주일예배 설교문
본문 접맥 식 주제설교 형식
김규태 목사
*설교 주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했다.
*설교 목적: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둠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따라야 한다.
when?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였던 헤밍웨이는 “작가가 노벨상을 받으면 작가로서의 삶은 끝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성공에 도취되고 다른 사람의 칭찬에 익숙해지면 마음의 황폐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출처: 홍명환, 「인생 잠언: 행복편」 (두란노, 2021); 「생명의 삶」 (두란노, 2024년 4월호), 143에서 재인용.
세계 최고 갑부 중 하나인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에게 어느 날 한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카네기 씨, 당신은 내가 볼 때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데 당신에게도 소원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카네기가 기자의 질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했을 것 같습니까? 카네기는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조금만 더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습니다. 얼굴이 예쁜 사람은 조금 더 예뻐지고 싶고, 몸매가 날씬한 사람은 조금 더 날씬해지고 싶어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조금 더 공부를 잘하고 싶고, 카네기처럼 돈을 많이 가진 사람도 조금만 더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에도 풍요가 주는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물질, 건강, 취업, 결혼의 복을 하나님께 구합니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이런 복을 받고 나면 하나님께 소홀해집니다.
없을 때는 하나님께 매달리며 살다가도, 조금 여유가 생기면 자신의 인생을 즐기려다 신앙을 잃고, 심지어 하나님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때로는 신앙생활에 풍요가 걸림돌이 될 때도 있습니다.
-이승희, 「하나님을 알아가는 행복」(두란노, 2016); 「생명의 삶 플러스」(두란노, 2024년 4월호), 259에서 재인용.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나이가 많았을 때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솔로몬은 노년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습니다.
솔로몬왕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20년 동안 건축하였습니다. 그는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애굽과 블레셋으로부터 조공을 받을 정도로 강대한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솔로몬왕이 해마다 거두어들인 세금이 금 666달란트로, 오늘날로 환산하면 금 23톤가량이나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솔로몬은 금으로 만든 장식용 방패 500개를 전시해 두었고, 상아에 금을 입혀 만든 보좌에 앉아 나라를 다스렸으며, 그가 마시는 그릇은 다 금 그릇이었습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부유한 시대였습니다.
솔로몬이 하루에 먹었던 음식물은 밀가루가 20,000리터였고, 살진 소가 열 마리였으며, 초장의 소가 스무 마리, 양이 백 마리였습니다.
또한, 솔로몬 시대에는 문화가 융성하여, 그가 지은 잠언이 3,000개였고, 그가 지은 노래가 1,005편이었으며, 식물과 짐승과 새와 물고기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을 듣기 위해 천하 모든 왕이 그에게 사신을 보내왔습니다(4:20~34).
솔로몬은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 막대한 돈을 들여 애굽에서 병거를 수입했습니다. 그가 모은 병거가 1,400대였고, 마병이 12,000명이었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여호와의 성전이 지어져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껏 하나님께 제사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요, 화려한 왕궁과 건축물을 지어 왕의 위용도 올라갔으니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솔로몬 시대는 은을 하찮게 여길 정도로 경제가 융성하고 수준 높은 문화와 튼튼한 국방을 이루어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는 풍요가 주는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 건강, 취업, 결혼의 복을 하나님께 구합니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이런 복을 받고 나면 하나님께 소홀해집니다.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평가하셨을까요?
what’s problem?
우리는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열왕기서 저자가 노년의 솔로몬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솔로몬왕은 후궁을 700명 두었고, 첩을 300명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했습니다. 4절에 보면,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솔로몬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아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서 “왕의 마음이 돌아섰다.”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가요? 솔로몬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은 늙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왕이 하나님만 섬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다른 이방 신들을 섬겼습니다. 솔로몬왕이 혼합 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솔로몬은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랐습니다. 아스다롯은 번식과 풍요를 주관하는 고대 근동의 여신이었습니다. 또한, 솔로몬은 암몬 사람이 믿는 가증한 신, ‘밀곰’을 따랐습니다. 또한, 솔로몬은 모압 사람이 믿던 전쟁의 신 ‘그모스’를 위해 예루살렘 앞산에 산당을 지었습니다.
또한, 솔로몬은 암몬 사람이 믿던 신 ‘몰록’을 위해서도 산당을 지었습니다.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이같이 행했습니다. 솔로몬의 후궁과 첩으로 들어온 이방 여인들은 왕의 마음을 돌이켜 솔로몬도 이방 신들에게 제사하며 분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11절).”
하나님은 솔로몬에게서 나라를 빼앗아 그의 신하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 다윗을 위해 솔로몬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않고, 그의 아들의 손에서 빼앗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과 예루살렘을 위해 한 지파를 솔로몬의 아들에게 남겨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한 지파”는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의미합니다.
솔로몬 왕이 죽고 난 후에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지만, 솔로몬의 신하였던 여로보암이 반역을 일으켜 이스라엘은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분열되었습니다. 이때가 주전 930년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과연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솔로몬의 마음이 돌아선 것이 문제였습니다. 솔로몬의 마음이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솔로몬의 마음이 돌아서게 된 계기는 그가 많은 이방 여인을 사랑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1절과 2절에는, “솔로몬이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다.”라는 표현이 두 번 등장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1절과 2절에서 사용된 “사랑하다.”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각각 다르게 사용된 점입니다.
1절에서 사용된 “사랑하였으니”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아헤브’입니다. 이 단어는 일반적인 사랑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2절에서 사용된 “사랑하였더라.”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다바크’입니다.
이 ‘다바크’라는 단어는 “달라붙다, 집착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1절 “사랑하다”에서 사용된 ‘아헤브’보다 훨씬 더 강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자기 의지로 헤어나올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런 사랑은 ‘중독성 사랑’ 혹은 ‘집착성 사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처음에 이방 여인들을 사랑할 때는 자기 의지로 다스렸지만, 훗날 솔로몬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집착성향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출처: 박영호, “솔로몬은 왜 오점을 남겼는가?”, 「생명의 삶」 (두란노, 2024년 4월호), 25.
솔로몬은 비록 많은 이방 여인을 사랑했지만, 진정한 사랑, 건강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솔로몬이 결혼 동맹을 통해 스스로 권력을 유지하고, 세력을 확장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여인이라.”
솔로몬은 결혼 동맹을 통해서 자기 세력을 더욱 넓혀가기 원했습니다. 그 때문에, 솔로몬 주변에 있던 많은 여인은 그의 권력욕이 얼마나 강한 것이었는지를 드러내는 증거였습니다.
what?
과연 이러한 솔로몬왕의 몰락이 하루아침에 일어났던 일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절에서 제 눈에 띄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의 딸”이라는 단어입니다. 솔로몬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딸” 이야기가 여기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솔로몬 이야기에서 “바로의 딸”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 곳은 3장 1절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성에 데려다가 두고”
이때는 솔로몬이 왕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솔로몬은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애굽 왕 바로와 결혼 동맹을 맺어 자신의 왕권을 안정시키기 원했습니다.
“바로의 딸” 이야기가 두 번째 등장하는 곳은 7장 8절입니다.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 이때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처음으로 “바로의 딸”을 데려왔을 때는 다윗성에 데려다가 두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는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위해 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솔로몬의 나이가 많았을 때는 “바로의 딸” 외에 많은 이방 여인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아서게 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이방 신들에게 제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유혹은 하루아침에 오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맺었던 결혼 동맹이 결국 그의 신앙을 변질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신명기 7장 3~4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이방인과 혼인 관계를 맺지 말도록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 여인을 며느리로 맞아들인다면, 이방인 며느리가 아들을 유혹하여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할 것이라고 경계하셨습니다.
만약 솔로몬이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담아두었더라면, “바로의 딸” 외에 많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명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장차 왕이 경계해야 할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왕은 자기를 위해 많은 은금을 쌓아두어서는 안 되었고, 둘째로, 병마를 많이 두거나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애굽으로 내려가서도 안 되었습니다. 셋째로, 왕은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어서도 안 되었습니다(신 17:16~17).
만일 솔로몬이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겨 두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결국, 솔로몬이 패망했던 원인은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의 마음을 지키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솔로몬이 걸었던 패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11절).”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 바쳤던 솔로몬을 향해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만약 솔로몬이 여호와의 법도와 율례를 지킨다면, 여호와께서는 솔로몬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솔로몬이 돌아서서 여호와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않고 다른 신을 섬겨 경배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게 구별한 성전이라도 던져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9:4~7).
우리가 세속적인 성공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우리의 마음에 늘 하나님의 말씀을 두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마음을 돌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암송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뜻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how?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아들은 죽음을 기다리며 유배지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대적자들은 루이 16세의 아들을 유혹해서 그를 도덕적으로 파멸시키고자 했습니다.
대적자들은 젊고 혈기왕성한 그가 유혹에 넘어간다면 불명예와 불신의 나락에 빠지게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적자들은 술과 여자, 도박, 음식, 창녀, 불량배들을 동원해 루이 16세의 아들을 유혹하거나 협박했습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도록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루이 16세의 아들은 유혹과 협박을 당할수록 더욱 또렷한 정체성과 신분 의식으로 무장해 왕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루이 16세의 아들은 자신을 유혹하려는 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요구하는 것을 절대로 수용하지 않을 것이오. 당신들이 아무리 나를 회유와 함정으로 넘어뜨리려 할지라도 그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오. 왜냐하면, 나는 이 나라의 왕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오.”
그가 세상의 유혹과 협박을 이겨낼 수 있었던 비결은 분명한 왕의 정체성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도 세상 속에서 이러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출처: 김상수, 「풀타임 크리스천」(두란노, 2023); 「생명의 삶 플러스」(두란노, 2024년 4월호), 289에서 재인용.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거센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휩쓸려 나가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돌려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뜻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