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싱님 창고에 쟁여져있는 쌀푸대를 보며 갑자기 한바닥 쓰고싶어졌습니다. 오늘 고구마 택배 보낼것도 있고 할일이 나래비로 줄 서 있는데 와 이라는지 참말로...ㅎ
어린시절, 할부지 아부지 엄마 오빠 나 동생. 우리 6식구 밥 할때면 엄마는 보리쌀을 삶아 바닥에 안치고 그 아쉬 삶은 보리밥 위에 적은양의 쌀을 올려 밥을 하셨었어요. 그리고...밥 푸는 순서가... 입맛 까탈스러운 할부지는 넉넉지 않은 도시 살림임에도 불구하고 매끼 흰쌀밥만 고집하셨으니 할부지 쌀밥 한사발 퍼드리고나면 그담은 보리쌀을 조금만 섞어 입 짧아 잘 안먹어 얼굴에 늘 마른버짐이 다글다글 피어있던 동생놈 밥 한사발 푸고 그다음 아부지 오빠순... 그러고나면 눌고 보리쌀 투성이인 밥은 나와 엄마몫... 나는 그 밥이 너무 싫었었어요. 지금도 보리밥은 아주 싫어하지요
늘 보리한톨 안섞인 하얀쌀밥이 먹고싶었었지요. 인정없고 당신밖에 모르시던 울할부지는 손녀딸 먹으라고 두어숟갈 덜어주실만도한데 절대 그런법이 없으셨지요.
이담에 어른되면 난 하얀쌀밥만 먹어야지. 명절 생일 때가 아닌 맨날천날!
결혼전 남편과 연애를 하는데... 순진했던건지 좀 모자란건지 서울에 30평형대 아파트 한채 장만해두었다는 사실보다 성주 고향에 부모님께 유산으로 받은 돈 열다섯마지기가 있다는 사실에 우와~~~하고 속으로 환호(?)를 했었으니요. 쌀밥은 원없이 먹겠다 싶어서였을까요 ㅎㅎ 신혼때 가을이면 남편 고향에서 도지쌀 세가마가 화물로 올라오곤 했었지요. 거실 한켠에 그 쌀 쌓아두고 바라만봐도 흐뭇하고 배 부르던 행복했던 기억이 나네요
세월이 한참 흐른 이즈음 비싼 베이커리가서 빵 몇개 집으면 쌀한푸대값이고 비싼 커피 몇잔값이 쌀한푸대값인 세상이 되어버렸고 그보다 건강 생각해서라도 흰쌀밥은 멀리하는 세상이고 탄수화물 섭취 줄이라고 떠드는 세상이고보니 홀대받고 기피하는 쌀...흰쌀밥...
십만평 벼농사 짓는 친구네 쌀(카페에 파는건 일부)을 팔아주면서 수고해주는 댓가로 우리 먹을 쌀(한달에 10kg도 못먹지만)은 늘 얻어먹지요. 물론 건강 생각하고 흰쌀밥 싫어하는 남편 땜에 현미에 수수에 콩에 잡곡 섞어 밥을 해먹어요. 어쩌다 혼자 밥해서 먹을 일 있음 앗싸~~~흰쌀밥!
지금 까시는 어린시절, 흰쌀밥(쌀)에 포원이 져서 남들(친한언니까지도)이 이해하지 못하는 행복한 쌀장수 노릇을 하고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흐흐.
보리밥은 부잣집이여~~ 내는 학교다녀와서 감자 한다라이 까고 옥수수랑 삶아서 저녁으로 먹었는데 두메산골 첩첩산중~~ 그나마 우리아버지는 그시절도 마당발이라 십리밖에 논이 있어서 쌀밥좀 먹었음 물론 귀남이들이 먹고 딸랑구인 나는 못먹어서 못크다가 나중에 대전유학하며 키컷음 쌀밥도 많이 먹고 ㅋ
흰쌀밥ㅎㅎ 난 어릴 때 쌀밥만 먹었어요. 외갓집 이 포천이었는데 외갓집 가면 모두 꽁보리 밥들을 먹었어요 그런데 내가 가면. 서울 아가씨 왔다고 쌀밥을 나만 따로 해준 생각이 나네요 어린 시절 그렇게 공주 대접만 받고 그 당시에도 돈암 유치원도 다녔고요 고명딸이라고 친척집 갈때 마다. 모두 예뻐해 주고 잘 먹고 다녔는데 결혼하고 팔자가 반대로 바뀌었어요 ㅎㅎ
나는 아버지가 6 25 전쟁 중에 돌아가셔 큰집에서 딸로 키우시면서 여름에 쌀이 귀해지면 보리밥 지으며 쌀를 가운데 두어 하얀 쌀밥 주시는거 당연 한줄 알고 어른이 되어 남들 고생한 이야기 듣고 너무 애지중지 키우셨구나 느낄때는 큰엄마 큰아버지가 돌아 가신 후라 지금도 죄스럽고 마음 아프지요~
100000 평이 대체 몇마지기일까? 고거이 계산을 못해 연필로 나누기 해보니 500 마지기입니다 와! 500 마지기면 예전 표현대로 천석꾼 집안이지요 아니 만석꾼인가? 지가 왜 일케 논마지기에 민감한가면요 울 친정동네서는 열마지기 넘으면 밥은 안 굶는 집이였어요 저가 처음 본 고부평야를 보고 입을 못 다물었으니요 까시님 저도 지금껏 보리밥 뭐 이런것 잘 안먹어요 그런건 클때 마이 먹었으니 오로지 하얀 쌀밥만 먹어요 친구네는 진짜 아나로그 부자이십니다 저같으면 그 넓은 땅하고 아무리 비싸다해도 서울 빌딩따위하곤 안바꿔줄겁니다 500 마지기는 얼마나 넓은 땅일까요
하이구 오리맘형님. 아닙니당. 십만평 땅 대부분 농어촌공사 임대에 친인척들 논 대신 농사짓는겁니다. 제가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벼농사 개갈 안납니다 ㅜㅜ 할부로 구입한 각종 농기계들 감가상각 따지면 한숨만... 오죽하면 제가 벼로 파는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받고 쌀로 팔아보자고 시골 동네서 공부 잘해 서울 유수의 약대 진학한 친구네 아들 장학사업(?) 차원에서 카페에 쌀 팔아준다고 나섰을까요 ㅜㅜ 규모는 크되, 실속은 없는 할부 끝나기도 전에 억대 단위 농기계 수명 다해 또 새로운 할부 시작해야하는 딜레마의 연속... 대농의 실체입니다. ㅜㅜ
@까시(64 충남 당진 여)ㅎㅎ 까시님 그만 제 본심이 뽀롱났습니다 그려ㅡ 어릴적 가을타작 끝나면 처마물이 떨어져 마당에 작은 구멍이 생긴 곳에 낟알이 몇알씩 들어가있으면 엄마는 그 낟알도 일일이 파서 벼무더기보탰지요 마지막 타작이 끝나면 하루할 것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에 혼자말 하시던 엄마생각에 그만 십만평이란 말에 정신줄 놓았네요 울 친정엔 마지막 타작한 벼는 고방에 들여놓지도 않고 마당 한가운데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는 봄부터 장리얻은 것 갚느라 힘들었어요 우리 8남매 아들딸 구별없이 죄 공부시키느라 그야말로 뼈가 으스러지게 고생한 울 부모님 지금 농사짓는다면 제가 엄마 원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릴 수 있으려나요 까시님 넓고 따스한 그 마음속에 친구의 사랑과 함께 행복이 가득가득하겠지요 참 고마운 까시님!
첫댓글 ㅎ
어릴적
보리밥속흰쌀밥은
아부지꺼였죠
한두수저남기시는데
그거먹을라고
서열싸움질을했었지요 ㅎ
ㅎㅎ그러셨군요
저는시골 정미소집딸이였어요
어릴적 친구집 가면 보리밥이여서 밥을 못먹었는데 지금은 보리밥이 참맛있습니다ㅎ
까시님
유년날이
어쩜저와 같은지요
하얀 쌀 한주먹
조부모님과 아버지 밥
푸고 나면
휘휘 섞어버린 밥에는
쌀을 찾기가 힘들었지요
그밥이
와그리도 싫었던지요,
저역시 지금도 보리밥
시러라 합니다,
시집을 와보니
보리 구경도 못하며
수많은 대소사
떡에 질려 버렸어요,
요즘 차고 넘처나는
풍요로움에
건강식 찾아 먹고 살지만
그땐 왜그리도 하얀 쌀밥 한그릇 먹음 소원없겠다 하였을까요
까시도 그런 기억이 있네요 .ㅎ
나도 어릴때 보리밥 감자섞은 보리밥
고매 처밖은 보리밥 너무 ㅇ먹어서. 지금은
쌀밥만 좋아하는데
그것도 수향미나
진수미
진짜 맛나지요
허나 건강상. 잡곡을 먹자고
보채는 영감땜시
쌀밥을 잘 안먹게 되네요.
지난번에 구매한
수향미 한포대. 남았는데~
이걸 언제 먹냐구요 ㅎㅎ
햅쌀이. 묵고싶은데~~
여기에 그냥
쌀 판매 언제 하시나요
현미 20키로 있으면 좀 주셔요
흰쌀밥에 서리태 넣고 먹으니
꼭 병날것 같은 생각드네요 ㅎ
11월 첫째주에 수확 마무리하고
둘째주쯤 도정, 판매 시작합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겠네요
ㅎ
정부에서 혼식장려하던 학창시절,
도시락 검사도 했었어요
늘 흰쌀밥 도시락 싸와 친구들 도시락에서 보리쌀 얻어 군데군데 박아 위장하던 부잣집딸 친구도 있었는데 ㅜㅜ
우리 어릴땐
거의 이런 형편였을듯요
시골태생인저도
학교에서
혼식 검사하면
제 도시락은
걱정할것도없이
거무스름한보리밥~~
옆자리 노미자라는 친구는 쌀밥에 보리 몇알섞여있는
밥이 그리웠었어요
지금도 그친구봄 그 도시락이생각나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10.12 10:40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10.12 11:07
저도 어릴때 아버지는 흰 쌀밥 그 아래 애기들 밥 다음은 보리랑 다 섞어서
보리밥 먹고 살았는데
육학년 여름방학때 서울 올라와서 흰 쌀밥만 20일 먹고
시골가서 보리밥 먹으려니 안넘어 가드라고요.
지금도 보리밥은 별로인데
밥 보다는 빵을 좋아해요.ㅎ
보리밥은 부잣집이여~~
내는 학교다녀와서 감자 한다라이 까고
옥수수랑 삶아서 저녁으로 먹었는데
두메산골 첩첩산중~~
그나마 우리아버지는 그시절도 마당발이라 십리밖에 논이 있어서 쌀밥좀 먹었음
물론 귀남이들이 먹고 딸랑구인 나는 못먹어서 못크다가
나중에 대전유학하며 키컷음
쌀밥도 많이 먹고 ㅋ
흰쌀밥에 포원 진사람 추가요
그런데 혼자먹어도
잡곡밥을 먹고있네요
흰쌀밥ㅎㅎ
난 어릴 때 쌀밥만 먹었어요.
외갓집 이 포천이었는데
외갓집 가면
모두 꽁보리 밥들을 먹었어요
그런데 내가 가면.
서울 아가씨 왔다고
쌀밥을 나만 따로
해준 생각이 나네요
어린 시절 그렇게
공주 대접만 받고
그 당시에도
돈암 유치원도 다녔고요
고명딸이라고 친척집 갈때
마다. 모두 예뻐해 주고 잘 먹고 다녔는데 결혼하고 팔자가 반대로 바뀌었어요 ㅎㅎ
건강을 위해 잡곡을 먹으니 쌀 소비가 적어 지지요 사실 흰쌀밥 바로해서 먹으면 넘 맛나잖아요 ㅋㅋ
나는 아버지가 6 25 전쟁 중에 돌아가셔 큰집에서 딸로 키우시면서 여름에 쌀이 귀해지면 보리밥 지으며 쌀를 가운데 두어 하얀 쌀밥 주시는거 당연 한줄 알고 어른이 되어 남들 고생한 이야기 듣고 너무 애지중지 키우셨구나 느낄때는 큰엄마 큰아버지가 돌아 가신 후라 지금도 죄스럽고 마음 아프지요~
난 밥이라면 다 좋은디
보리밥도 잘 먹구
이제라도 실컷 먹을 수 있으니 성공했네 ㅎ
100000 평이
대체 몇마지기일까?
고거이 계산을 못해
연필로 나누기 해보니 500 마지기입니다
와!
500 마지기면
예전 표현대로 천석꾼 집안이지요
아니 만석꾼인가?
지가
왜 일케 논마지기에 민감한가면요
울 친정동네서는
열마지기 넘으면 밥은 안 굶는 집이였어요
저가 처음 본 고부평야를 보고
입을 못 다물었으니요
까시님
저도 지금껏 보리밥 뭐 이런것 잘 안먹어요
그런건 클때 마이 먹었으니
오로지 하얀 쌀밥만 먹어요
친구네는
진짜 아나로그 부자이십니다
저같으면
그 넓은 땅하고 아무리 비싸다해도
서울 빌딩따위하곤 안바꿔줄겁니다
500 마지기는 얼마나 넓은 땅일까요
하이구 오리맘형님.
아닙니당.
십만평 땅 대부분 농어촌공사 임대에 친인척들 논 대신 농사짓는겁니다.
제가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벼농사 개갈 안납니다 ㅜㅜ
할부로 구입한 각종 농기계들 감가상각 따지면 한숨만...
오죽하면 제가 벼로 파는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받고 쌀로 팔아보자고
시골 동네서 공부 잘해
서울 유수의 약대 진학한 친구네 아들 장학사업(?) 차원에서 카페에 쌀 팔아준다고 나섰을까요 ㅜㅜ
규모는 크되, 실속은 없는
할부 끝나기도 전에 억대 단위 농기계 수명 다해 또 새로운 할부 시작해야하는 딜레마의 연속...
대농의 실체입니다. ㅜㅜ
@까시(64 충남 당진 여) ㅎㅎ
까시님
그만 제 본심이 뽀롱났습니다 그려ㅡ
어릴적 가을타작 끝나면
처마물이 떨어져 마당에 작은 구멍이 생긴
곳에 낟알이 몇알씩 들어가있으면
엄마는 그 낟알도 일일이 파서 벼무더기보탰지요
마지막 타작이 끝나면
하루할 것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에
혼자말 하시던 엄마생각에
그만 십만평이란 말에 정신줄 놓았네요
울 친정엔
마지막 타작한 벼는
고방에 들여놓지도 않고
마당 한가운데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는
봄부터 장리얻은 것 갚느라 힘들었어요
우리 8남매
아들딸 구별없이 죄 공부시키느라
그야말로 뼈가 으스러지게 고생한 울 부모님
지금 농사짓는다면
제가 엄마 원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릴 수 있으려나요
까시님 넓고 따스한 그 마음속에
친구의 사랑과 함께
행복이 가득가득하겠지요
참 고마운 까시님!
어쩜 제얘기를
써놓은듯 합니다.
흰쌀밥이 소원이었죠.
우리집은 그래도 따사롭게 살앗다고 해서 보리고개니어쩌니 해싸도 울아버지는 늘하얀 쌀밥
넓은 마당에기른 닭이 낳은 계라찜은 아부지 상에만ㅡ
막내인 제가 먹고싶엇지만
당연히 아부지만 잡수시는걸로 알앗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