亨水亭은 내가 오래 소원하여 지은 정자의 이름이다. 대개 누각이나 정자를 짓게 되면 그의 스승이나
글 잘하는 벗에게 그 이름을 부탁하기도 하고 정자를 지은 유래의 기문을 부탁하는 것이 상식이나
이름도 내가 짓고 정자의 기문도 이렇게 내가 쓰고 있다.
亨水亭이란 무슨 뜻인가. 그 세 글자는 다 사람 이름에서 한 자씩 따 왔다.
亨은 예전에 같이 공부하던, 그러나 지금은 고인이 된 벗의 이름의 한 글자를 따 왔고
水 역시 벗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 벗은 고인이 되지는 않았으나 수년 전에 뇌출혈 수술후 현재까지 몽혼의 상태에 있다.
亭 역시 벗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러나 그 벗은 나의 狹量을 원망하며 떠나갔다.
나는 세 벗을 추억하며 정자의 이름으로 삼는다.
亨은 원래 밀양 사람으로 내 나이 30대에 만나 그가 죽기 전날까지 만났다. 그가 췌장암에 걸렸다고 하고 6개월 여 밖에 못 산다고 했을 때 그는 담담하게, 남의 말 하듯이 웃으며 말했으나 나는 얼마나 충격이었던지. 그는 오히려 내가 놀라는 것을 재미있어 하였다. 병상에서 그는 읽어볼 재미있는 소설 하나를 사다 주기를 부탁하였다.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사다 주었다. 그가 작고한 것은 그로부터 열흘도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병상에 있은 이후 하루 걸러 한 번 씩은 반드시 문병을 갔으며,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토록 빨리 죽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않았다. 어느날 그날도 아침을 먹고 그에게 가보려고 방문을 나서려는 데 문자 하나가 왔다. 아아, 그가 작고 했다는 소식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임종시 그의 동생과 나눈 이야기등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형님, 혹시 마음에 풀어야 할 문제의 사람이 누가 있나요? 불러들일까요?"
"나는 다 풀었다. 상대가 풀지 않는 것은 불러온 들 무슨 소용이겠느냐?"
그가 아이엠에프 때 하던 사업을 접고 밀양에서 대구로 올라왔다. 그는 그의 후배들이 스터디 하는 어떤 노후한 건물 이층에
책상과 의자와 피시 한대를 가져다 놓고 한 친구의 부탁을 받고 한문책을 번역했다. 번역을 부탁한 사람은 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뒤에 책이 나왔을 때의 그의 이름은 책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저자로 부탁한 사람의 이름만이 나와 있다. 나는 화가 나서
이럴 수는 없는 법이라고 하였더니 그가 말했다.
"이 보시게. 나는 그를 학자로 보지 않고 한 사람의 장삿꾼으로 보고 있다네. 그는 내게 번역을 부탁한 댓가로 약속한 돈을 주었고, 나는 그것을 받았으면 된 것이지."
그는 재능이 많았다. 특히나 불교에 통효하였다. 언젠가 밤에 술을 먹고 같이 돌아오던 길에 담벼락에 두 사람이 붙어서서 소변을 볼 때 갑자기 그가 고개를 빼어 내 물건을 보겠다는 자세를 취한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왜 손과 얼굴은 남들이 보게 두는 데 그건 보여주려 하지 않지?"
그것은 그가 내게 불교로 유도하는 심각한 화두였다. 그런 비슷한 질문을 내게 던진적인 여러 번 되었다. 나는 물어보았다. 불교를 어디서 어떻게 공부한 것인지, 무슨 경전을 본 것인지. 그는 말했다. 처음엔 교회에 다녔노라고. 교회의 노래가 좋아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 데, 뒤에 반야심경을 보고 불교를 믿게 되었노라고. 자신이 불교를 접한 것은 반야심경이 전부라고.
水는 내 고등학교 때의 친구 하나의 이름 한 자이다. 그 친구는 대구 비산동에서 태어났다. 위로 형님이 있었고 아래로 남동생 둘 여동생 하나가 있었다. 약대를 나왔을 때 그의 아버지가 그랬다고 한다. ............[미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