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게 좋아서 쓸까? 적어도 난 그렇지만은 아닌 거 같다. 같이 일을 다니는 안 선생님이 ‘교수님은 어떻게 매일 글을 씁니까’ 하고 묻는다. ‘매일’에 방점이 있는 거 같다. 그렇다. 요즘 난 거의 매일 하나씩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셈이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외로워서요.”
아니 교수님이 왜 외롭습니까? 하고 반문한다. “늙어서 외롭습니다.”고 했다. 덧붙였다. 사람이 늙는다는 건 일종의 재앙입니다. 요즘처럼 나이가 들어서 혼자 살고 계시는 노인분을 보면 더 그렇네요. 누군가는 늙어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치라고 자위하지만, 늙는다는 건 굳이 선악으로 말하면 악입니다. 삶에 대한 의지가 나약한 게 악이니까요. 철학자 니체가 이걸 ‘힘에의 의지’로 표현한 겁니다. 물론 윤리적인 악이 아니라 존재의 불안정에서 오는 실존론적 결핍으로서의 악이겠지요.
난 지난 코로나 동안 세 권의 책을 썼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썼다. 그리곤 책에 넣을 서원과 고택 사진을 찍으러 전국을 다녔다. 지나고 보니 그땐 그리 외롭지 않았다.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물론 글쓰는 게 좋아서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난 요즘 월수금 3일 일하고 4일을 쉰다. 일한다고 하지만 오후 3시면 끝난다. 그러니 시간이 많다. 하지만 시간이 많다고 글을 쓰지는 않는 거 같다. 결국은 나이들어 가면서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이란 이방인이 나를 책상 앞으로 이끈다.
난 젊은 시절에도 책을 적지 않게 썼다. 하지만 교재를 만든다거나 아니면 연구비를 받아서 의무적으로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쓴 글이 많다. 물론 그중에는 그렇지 않은 책도 있지만, 그땐 그래도 글쓰는 게 마냥 즐거웠었다. 내가 글을 쓴다는 건 결국 글이 나를 쓰는 거다.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동기가 있다면, 그건 존재의 불안에서 오는 것이다. 이젠 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마치 숙제하듯이 올린다. 그 누구도 올리라고 주문하지도 않는데도. 나이가 들면서 더 외로운 만큼 글쓰기는 더 잦다. 누군가 읽어주지 않더라도 글을 쓰는 건 결국 나 자신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내 나름의 소통방식이다. 대상이 있어 쓰는 게 아니다. 결국 대상은 나 자신이다.
‘나’란 주체는 어디에 있는가? 내 앞에 있는 책상처럼 어디엔가 존재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데카르트는 자아를 생각하는 실체로 규정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그의 선언은 근대 이후 자아에 관한 모든 담론을 삼켜버리는 블랙홀이 되었다. 하지만 생각도 언어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안타깝게도 데카르트는 언어로 말하고 글쓰는 자아를 괄호쳐 두고 말았다. 그의 자아는 묵언(默言)의 자아다.
결국 나는 글 쓰고 소통하면서 존재한다. 글 쓰면서 나 스스로 쓰여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와 소통하는 나로 존재한다. 나는 내가 쓰는 글 속에 이미 함축되어 있다. 내가 글 쓰고 글이 나를 쓰면서 나는 글 속의 존재(Being-in Writing)로 짜여 들어가 있다. 글로 이야기하는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로 그리고 누군가와 글로 대화하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로 존재한다. 호모 나랜스는 디지털 공간에서 글·사진·동영상 등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생산하고, 공유하고 전파하는 디지털 자아다.
외로움은 선물이다. 그 외로움이 나를 호모 나랜스로 만든다. 언어를 무기로 외로워 글쓰고 누군가와 이야기하도록 한다. 인간은 생각하기 이전의 언어적 존재이다. 언어는 나의 존재의 벗이고 파수꾼이다. 그래서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던가!
첫댓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하는 일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다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과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일과도 약간 다르다
타고난 운명 성격 복도 다르다
물론 혈액형 띠 태어난 고향 공부한 학교와 선생님 등이 같아서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같은 환경에서 살아도 자신이 어떻게 느꼈는가 어떤 개인적인 특별한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서도 조금 다르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선생님밑에서 배워도 느끼는 것이 다르고 배우고 깨우치는 것이 다르다
이제껏 살면서 좋은 친구가 몇명이었고 얼마나 소통하는가?
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얼마나 하며 지냈는가?
이 세상이 불국토이기 위해서는 불국토라 여길만한 마음이 있어야 하며
이 세상이 화엄세상이라 생각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확신이 있어야 하지
그냥 남이 그렇게 말하니 아니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좋아서 형식적으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이듯이 깨친 만큼 살 것이다
누구에게나 희망사항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건강히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어떻게 하는지 좋은지 나름 방법을 찾고 노력해야 한다
친한 친구를 많이 가지고
좋은 사람과 자주 만나고
좋은 일을 하며 사느냐하는 것도 각자의 선택이자 몫이 아닐까 싶다
외로워서 글을 쓴다고요~
질풍노도의 외로움을 벗어나 아직 외롭지 않지만,
늙음이 찾아오니 막연히 두렵기는 합니다.
나란 무엇인가?
김성철교수님의 '중관학'이란 책에서 아주 명쾌한 답을 봤습니다.
나라는 것은 없다. 허깨비같은 착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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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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