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풍호의 제비봉 능선이 부드럽고 한국적인 진경산수화 같다면,
거칠고 투박한 고흐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갈기산 말갈기능선과
430년 전에 벌어진 처절한 사연이 전해지는 곳에서 머문 하루 餘滴 ▣
☆ 일시 : 2023년 7월 1일.
☆ 산행코스 : 영동 갈기산~말갈기능선~성인봉~자사봉~영동 월영봉(東)~금산 월영산(西)~
금산 출렁다리~잠수교~원골마을.
☆ 산행거리 및 시간 : 11km, 5시간 50분.
지울 수 없는 운무처럼
그대가 지워지지 않아 걸음을 멈추어 섭니다.
먼 풍경들은
왜 다 그리움인지
나는 또 그 그리움에 끌려
긴 한숨을 내려 놓습니다.
오늘 따라
세상은 온통 푸른빛으로 치장한 채
먼길을 떠나온 산객들을 맞이해줍니다.
2013년에 시작한 블랙야크 명산도전단에서 인연을 맺은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영래라는 이름으로 '전남 셰르파'로 활동(유목민 대장은 '지리산 셰르파')했으며,
그 이전엔 2017년 11월에 작고하신
故 백계남 선배님과 '영래와 함께' 라는 시그널을 매달면서
남도와 지리산 등지를 헤아릴 수 없이 답사한 장본인이다
뿌연 대기 속에 잠긴 풍경이 몹시 아쉽다
아무리 조리개를 조절해도
장마철에 든 금강물빛이 기대한 것보다
뒤쳐지는 풍경으로 다가선다.
서운함이야 어쩌랴..
질투가 사랑의 힘이 되듯
아쉬움은 삶의 희망이다.
아마 다음에 또 다시 갈기산을 찾게된다면
오늘의 이 아쉬움 탓이리라.
그러므로
산꾼들은 날씨를 좀처럼 탓하지 않는다.
그 아쉬움이 지니는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동 일대 사투리인 '덜게기'는 "바위 낭떠러지"라는 의미이며,
갈기산과 마주하고 있는 월영산 아래의 금강쪽 바위절벽에는 '금산 덜게기'가 있다
갈기산 아래 금강 줄기는 영남과 호남을 잇는 중요한 길목으로,
1593년 임진왜란 때 왜군은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했다.
따라서 왜군의 금산 진입을 막으려는 조헌의 의병들에게 이곳은 천혜의 요새였고, 왜군에게는 죽음의 길목이었다.
당시 '조헌(趙憲)' 의병대장과 합류했던 승병대장 '영규(靈圭) 대사'는
양산 덜게기 바위벼랑 위에 돌을 쌓아 놓고 기다리다 적이 이곳을 지날 때
돌을 허물어뜨리면 능히 적을 무찌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조헌은 당당하게 싸워야 한다며
영규대사의 계책을 쓰지 않고 이곳을 지나는 왜군을 막지 않았다고 한다.
왜군은 이곳을 무사하게 지나자 너무나 기뻐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늘처럼 습하고 무더운 날임에도
아슬아슬한 캔버스에
몸에 배는 호젓함이 밀려오는 풍광이다!
금지된 비원을 걷듯
애인이 보낸 첫 편지를 밤새 읽어보듯
아껴둔 마지막 한방울의 와인을 마시듯
언제나 애타는 그런 그림이 펼쳐진
갈기산록에서의 오전이었다.
산행을 통해 얻는 여러가지 감상들은
결코 너무 편협하거나 완고하지 않다는 점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낀다
결론은 언제나 후퇴될 수 있고 관용적이다
완고하게 고집을 피울 이유가 없다
그냥 물흐르듯 놓아두면 그만이다.
흐른는 물이 나무 그늘을 만나고 소를 만나듯
나 자신이나 타인의 의견들이 무시로 드나들어도 상관없다
산을 푸르다고 표현한들,
혹은 파래를 얹은 전병같다고 표현한들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충북 영동의 갈기산(鞨騏山, 585m)은 "바위능선이 말갈기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기암이 많은 돌산이면서..
굽이굽이 흐르는 금강의 물줄기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북쪽으로 동골산, 마니산, 소암봉이, 북서쪽으로 천태산과 마주하며,
바위가 많은 산으로 금강변으로 수직절벽을 이루고 있어
암릉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뿐더러
정상에 서면 그림같이 흐르는 금강과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은 사이란 이런 사이가 아닐까!
산은 이렇게 사람들을 스스럼 없이 만든다.
산의 정기는 인간의 가슴을 파고 들어서야 비로소 멈추는 것..
그 환한 깨침이 이들의 얼굴 속에서 빛난다.
산행을 통해 누적된 인식을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감성의 완전한 공유란 어렵기로 악명 높다
말은 설익고 글은 들뜬다
어떻게 이 이미지를 전달한단 말인가!
나는 이런 경우 사진을 선택한다
사진 속에 고요하게 표현된 존재에대한 감동이 역력하다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山이라기 보다는
산에 사로잡힌 영혼의 형태다.
한 자리에서 명멸을 거듭하는
모든 순환!
왕복무제(往復無際)의 순환이 눈 앞에 장엄하게 펼쳐진다.
動靜이 하나인 가운데
有餘한 여백의 아름다움이
言思를 가로막은 채
세상을 또 장엄케한다.
적요(寂寥)의 세계이자,
그대로 화엄(華嚴)의 세계다.
흰 백지와 같은 길을 걷다보면
생각이 걷히고
마음의 여백이 마당처럼 넓어진다.
그 마당에
새가 앉고
나무가 자라나고
바람이 머물다 간다.
그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또 빈 마당
그런 깊은 마당의 마음을 갖고 싶다.
스스로 쌓였다
스스로 비워지는 마당처럼
그렇게 자정되는 마음을 갖고 싶다.
행복은 파랑새가 아니다.
있지도 않은 즐거움을 구하려 들지 마라.
괴로움의 안개를 걷어내면
바로 그자리, 묘한 모습..
산길을 걷고 걸어
아주 서럽도록 걸어
나를 텅 텅 비워낼 때
그 빈 空性의 자각이야말로
바로 행복이다.
화살은 목표를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도
느린 화면으로 보면 요동을 치며 진행한다.
우리의 삶이 화살처럼 날아와 오늘에 닿은 것 같아 보이지만
다 우여곡절이요,
희비의 점철이다.
산을 오르는 길이 그렇다!
산을 오르며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걷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냥 걸음으로써
걸음의 실체를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걷고 있되 생각이 죽어있다면
살아가되 순간의 소중함을 잃은 것과 무엇이 다르랴...
백하지맥은 각호지맥의 천만산에서 분기하여 천마령, 진삼령, 백하산, 칠봉산, 삼도봉 성주산에서 내려와
이곳에서 성인봉, 갈기산을 지나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의 금강에 잠기는 37.2km의 산줄기다.
산줄기 북쪽에는 영동천, 항천, 학산천이, 용화천, 남대천, 율곡천 등이 금강으로 흘러든다.
산행은 머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많은 생각들을 끄집어 내는 일종의 도구이다.
스쳐 지나가는 한 장의 단면 속에서도 영감을 얻을 때가 많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산행을 통해 무언가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즉,
존재를 실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산행여적은 사진이 가지는 기록이라기 보다는
대자연이 치유라는 공간을 제공해주는
귀하디 귀한 보석같은 존재다.
산행은 어쩌면 풍차를 향해 질주하는 돈키호테 만큼 무모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돈키호테가 겨눈 창끝처럼
희망의 메시지가 우리들의 발걸음 끝에 놓여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무모함을 무릅쓰고 우리는 산을 넘고 또 넘게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얻는 것이 희망인지,
아니면 지난날에 대한 반성인지,
그것도 아니면 반복적인 일상에 지친 일탈인지 혹은 그 모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그런 것이 있을 거라는 가설을 증명하려는 노력으로
우리는 오늘도 또 이렇게 산속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다.
말한 바 없고
마침내 닿을 곳도 없으니
갈 곳도 없고
얻은 바도 없다.
길은 다만 길일 뿐,
나는 오로지 없을 뿐이다.
소리를 아는 자는
소리가 없어도 소리를 듣고
道를 아는 자는
설한 바 없어도 깨닫는다.
길을 걷되 걷지 아니한 것처럼 걸으라는 공염불도
머물 때 또한 머무르지 않은듯 머물러라는
출처불명의 법구경도
아직은 한낱 바람 소릴 뿐
나는 더 길을 걸어야할 모양이다.
'준·희' 라고 아크릴판에다 쓴 표지기의 주인공 최남준님(1947년생)
부산 국제신문 취재산행팀의 안내를 맡았고,
2001년 남한의 대간과 정맥을 모두 완주하였으며,
2005년까지 2년간 부산 건건산악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기맥 종주를 마치고, 2개월간의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다녀온 후
후유증으로 무릎 치료를 받으면서도 절룩거리며 매주의 산악회 행사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화악지맥과 명지지맥까지 종주한 억척 산꾼이다.
부인과 사별한 후 자신과 부인의 이름자를 딴 '준·희' 표지기를 만들어 붙임으로써
마음은 항상 부인과 함께 산행을 하고,
혼자서만 즐기는 춤과 노래는 멀리한다는 열부(烈夫)이시다.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에 놓인 높은 밀도의 경건함을 느낀다
투명한 세상에 마음이 한 치의 가림없이 드러난 듯하다
옷을 벗어 던지고 싶은 욕망이 불현듯 부끄러움 없이 일었다.
산행을 통해
세상을 배경삼아 외로이 걸어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더 진지해지고 보다 성찰적이며 더 솔직해진 모습이다
인간 내면에 가리워진 보다 본연의 위치에 다달아
세상을 더 당당히 마주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자신의 행동과 철학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월영산(月影山)은 거대한 암봉으로 충남과 충북의 경계로 금강에 접해 있으며,
인근 제원면 사람들은 예전에 정월 대보름에 산 위로 떠오르는 달을 맞이하며 풍년을 비는 달맞이행사를 했는데,
월영산과 성인봉 사이 비들목재를 중심으로 달이 월영산쪽으로 기울어 뜨면 풍년,
성인봉쪽으로 기울면 가믐이 들어 흉년이라 여기며 정월대보름 달맞이 때 한해 농사를 점쳐왔다고 한다.
산행을 통해 내가 보고 느낀 바가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주관적이어서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산행이라는 경험을 통해 얻는 수많은 감상의 결과들을
옳거나 그러다는 가치로 판단되어서는 안된다.
막 뜸이 든 밥처럼,
또는 방금 시루에서 들어올린 떡처럼
잘 지어진 아침 밥상을 받은 기분을 얻은 풍광이었다.
월영산 출렁다리는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원골유원지 일원에 58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2022년 4월 28일에 개통한 월영산과 부엉산을 연결하는 출렁다리로
높이 45m 무주탑 형태의 길이 275m, 폭 1.5m 규모로
기초 구조는 70t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앵커를 양쪽에 22개씩 총 44개 시공해
최대 1500명까지 동시에 통행할 수 있고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구조안전성을 갖췄으며
바닥재 시공에 톱니식 스틸그레이팅 공법을 사용해 미끄럼을 방지했다.
안전성 확보를 위해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풍동실험을 진행해
최대 대형 태풍급 풍속인 61.3m/s까지 이상 없음을 확인하였고
빔이 없는 다리로는 우리나라 최장이라고 한다.
유무이변의 풍경같지 않은 풍경을 마음에 딱 걸어두고 생각한다.
하나를 생각하고
습관처럼 둘을 떠올리는 것과
세상을 두 가지로 구분하여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다소 다르다.
망상으로 망상을 다스리는 것이 화두이듯
어둠의 빛으로 밝음을 강조하고
빛으로 어둠의 contrast를 도드라지게 한다.
혼자 길을 걸어가는 것을 두고
고독하다던지 쓸쓸하다던지 하는 부정적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다.
산행을 홀로하게 될 때 나는 일종의 혜택같은 것을 누린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야 내 몰골에 책임질 이유가 없으니
옷깃을 풀어헤치고, 땀으로 생쥐처럼 된 머리를 그대로 노출시키며
심지어 바지 지퍼까지 내린상태로 걷는다 해도 아무도 간섭할 사람이 없다.
이럴 때는 정말 내가 자유인이된 것 같은 해방감을 느낀다.
그래서 산행을 고독에 이르는 마지막 비상구로 여길 것이 아니라
마음껏 자유를 발산시킬 수 있는 방편으로 여기는 편이
더 심리적 안정감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부엉산과 이어지는 자지산(紫芝山·467.2m_붉은색인 지초)의 원래 이름과 뜻은 다르지만
一說에는 남근에 비유하기도 하는 바,
천태산 쪽에서 자지산을 바라보면 불끈 솟은 남성의 생식기를 닮았다 한다.
부엉산 아래 벼랑에 설치된 인공폭포 오른쪽의 좁은 바위골을 음굴(용굴)이라 해 음양의 조화를 맞췄다.
* 蛇足 *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산은 항상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
왔다가는 길이 아니요
있었다 사라지는 길이 아니다
자연 그대로일 뿐..
- 숭산 스님 -
@ 광주 희망토요산악회 회장님 이하 및 집행부님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따뜻한 배려에 깊이 감사드리며,
기회가 닿는 즈음에는 언제든지 함께할 것을 다짐하면서
길고도 길면서 허접한 후기에 같이해주심에 고마운 마음을 나눕니다...^^
첫댓글 스토리가 있는 산행기 잘보고 갑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함께한 산행길이었기에!
남다른 감회가 여미어진 걸
댓글로 공감의 갈무리를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나비님~🤗
갈기산과 주변의 산들을 멋진 사진과
글로 산행기를 상세히 올려 주신
정성에 다녀온 길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더운 날씨에 저희
희망토요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기 내용에도 언급되었다시피!
우리가 무더위 속에서 걸었던 갈기산은~
한반도 역사 중에서
가장 치욕적이고 처참한 亂 시에..
칠백의총에 모셔진
의병 700명과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義僧 800명이 산화해간 곳임에
색다른 시선으로 임했다고 적으면서요..
집행부 일원으로
큰 봉사를 해주심에
감사드리는 덧글을 씁니다,
한나무님~🤗
함께한 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을것 입니다
아름답고 멋진 산의 맛을 글로 담아 주심에 감사 드리며
다음 산행에도 함께 하실 수 있음을 기다립니다
지난 3월의
서산 가야산에서의
뜻깊은 역사탐방길에 이어서
이번에는 역사+출렁다리길에
동행하는 오롯한 여정이었답니다^^
다가오는 8월엔
자주 함께하게 되는 일정을
앞두고 있어서..
무척이나 설레이는 가슴으로
무더위는 잊어버리고 산답니다, 핫 포테이토 작가님~👍🥾
행복한 산행을 축하드립니다
산행기는 더더욱 멋집니다
덕분에 구경 잘 했습니다
서산 가야산에서
같이 산행 했었군요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열정적으로 임하시는 가운데서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서
살가운 댓글로 같이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태봉고을님^^
빛고을 최고로 자리매김되는
<희ㆍ토>에서
각별한 느낌으로
뵙는 날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