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선이나 당선되어 12년간 재임을 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장악력이 뛰어난 대통령으로 20세기의 위대한 인물로 꼽힌다. 그런데 사생활에 있어서의 그는 아내에게 깊은 상처를 입힌, 그리 모범적인 남편은 아 니었다. 그의 아내 엘리너 루스벨트는 여성권익에 앞장을 서, 미 역사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죽는 날까지 남편의 외도 때문에 괴로워했는데 이것이 얼마나 뼈에 사무쳤는지 숨이 질 때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1918’이라는 숫자를 써 놓았다고 한다. 그 숫자는 그녀가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챈 해이다. 게다가 남 편의 외도 상대가 자신의 비서였던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녀는 배신의 고통으로 치를 떨었다고 한다.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후 그녀는 180도 변했다.
헌신적인 아내와 엄마 상이라는 고전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여성운동과 인권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대공황시대에 미국을 구한 대통령이 본의 아니게 아내를 정치적으로 해방시킨 셈이 되었다.
이번엔 여자의 외도 한편을 들여 다 보자.
잘 나가는 영어학원 원장인 여자. 구조조정으로 은행에서 잘리고 집에서 빈둥빈둥 백수로 살아가는 남자. 남자의 후줄근한 모습에 실망한 여자는 옛 애인과 만나 사랑을 나누며 새로운 관계에 탐닉한다. 외도하는 아내는 옛 애인과의 정사를 위해 우유에 수면제를 타서 아기를 잠재우고 나간다.
이 사실을 안 남자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여자를 살해한다. 아내의 외도를 다룬 전도연, 최민식 주연의 영화 ‘해피엔드’의 줄거리다. 제목과는 달리 전혀 ‘해피엔드’스럽지 않은 결말이다. 남편의 외도나 아내의 외도 모두 같은 외도지만, 전개되는 내용에서는 차이가 난다.
물론 나라별로 외도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 프랑스에서는 미테랑 대통령의 숨겨놓은 딸이 공개되었어도 ‘사생활’로 관대한 반면, 미국에서는 클린 턴 대통령의 백악관 인턴여성 스캔들은 대형 사건으로 탄핵의 대상까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남자들의 외도에 국한한 시선일 뿐, 본질적으로 세상은 남자의 외도와 여자의 외도에 대한 시각에 상이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남편의 외도는 남편살인이라든가, 죄의식에 못이긴 남편의 죽음, 이혼 등의 가정 파괴로까진 이어지지 않는다. 남편의 외도를 안 순간 아내는 하루 아침에 큰 충격과 절망에 휩싸여 인생이 모두 끝난 것 같은 허망함에 사로잡히지 만, 대개는 참고 인내한다. 복수의 칼날도 엘리너 루스벨트처럼 간접적이다.
반면 아내의 외도는 아내 살인이나 자살, 이혼 등 파탄으로 끝을 맺는다. 그녀에겐 주홍글씨의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처럼 선명하게 부정적인 로고가 찍힌다. 남편의 외도나 아내의 외도를 바라보는 이중적인 가치관은 외도의 피해자도 차별적으로 만든다.
남편의 외도는 너무나 흔한 일이기에 여성은 스스로 절망은 해도, 세상의 시선은 동정적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를 봐도 남편의 외도 를 감싸는 모습에서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인기가 상승했다. 하지만 외도한 아내의 남편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소적이다. ‘쯧쯧, 오죽 못났으면 자신의 여자 하나 간수를 못했을까’하는 식이다.
남성성을 심하게 훼손하는 것으로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이미지에 치욕적, 굴욕적인 흠집을 남 긴다. 이런 점 때문에 아내의 외도는 남성들에게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 특히 주변에서 알게 되는 경우엔 100% 가정 해체로 이어진다. 하지만, 세상은 조금씩 변화한다.
기혼여성도 미혼여성에 못지않게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남편 외의 다른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 과정에서 아내의 외도가 점차 늘고 있다. 아내가 외도를 해도 자식들 때문 이라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사랑하기에 기다리고 용서하겠다는 남편들도 생겨나고 있다. 남편의 외도나 아내의 외도에 대한 시각 차이가 점차 줄어들며 세상은 조금씩 진화를 해가고 있다.
비뇨기과 전문의 이선규(강남 유로탑비뇨기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