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근대골목 제5구간 이어 제2구간 투어 이야기◀◀◀◀◀
▲ 대구 근대골목 투어 제2구간 근대문화골목 시작점에 도착한다.
▲ 대구 근대골목 투어 제2구간 시작점 출발.
▲ 청라언덕 입구
「청라언덕」은 20C초 기독교 선교사들이 거주하면서 담쟁이를 많이 심은 데서 유래되었으며, 달성토성이 대구의 중심이었을 때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산으로도 불린다. 아름다운 정원인 이곳은 챔니스 주택, 스윗즈 주택, 블레어 주택 등 옛 선교사들이 생활하였던 주택과 90계단, 대구 3.1 만세운동길, 대구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인 동무 생각 노래비,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묘지인 은혜정원 등이 있다. 또한 청라언덕은 골목 투어 2코스의 출발지이며, 드라마 촬영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 근대문화골목 첫 번째 스팸프 위치는 관광안내소 앞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건물 안쪽에 있다. 청라언덕 스탬프 찍고
※ 스팸프 찍을때 주의사항 : 대구관광 스팸프와 함께 있어 약령시 스팸프 찍을때 잘 못 찍었다. 필히 대구 중구 골목 투어 근대路의 여행 스탬프 함에 붙어 있는지 확인하고 스탬프 찍는다.
▲ 선교사 블레어 주택
1989년 6월 15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10년 무렵 미국인 선교사들이 블레어 선교사를 위하여 지은 집이다. 동산 위의 여러 주택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자리를 잡은 붉은 벽돌의 이층집이다. 남쪽은 경사지로 반지하실이 딸려 있다
현재는 계명기독대학 교육·역사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 선교사 챔니스 주택
챔니스 주택은 1910년경에 건축되었으며, 계성학교 제2대 교장 레이너(Reiner), 선교사 챔니스, 그리고 제7대 동산병원장을 역임한 마펫(Moffet)선교사가 살았던 주택이다.
콘크리트 기초 위에 붉은 벽돌로 쌓은 이층집인데 남북으로 약간 긴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이 건축물은 당시 미국 선교사들의 주거 양식과 생활양식을 가늠해 볼 수 있으며, 영화 촬영장소로 사용되는가 하면, 건축 분야 논문의 주제로도 인기가 있다. 현재 의료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1800년대부터 1900년대에 이르는 동서양의 많은 의료기기가 소장되어 있다.
▲ 청라언덕 선교사 주택을 둘러보고 이 길은 ‘3·1만세운동길’로 불리며, 이어지는 계단은 ‘90계단’ 또는 ‘3·1운동계단’으로 불리는 명소이기도 하다.
▲ 계단을 내려와 뒤돌아본 모습
▲ 3.1 만세운동길 스탬프 찍고 바로 옆에 있는 계산대성당으로 향한다.
▲ 이 건물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진 고딕양식 성당으로, 당시 대구에 처음 세워진 서양식 건물이다.
현존하는 1900년대의 성당 건축물로 유일한 것이어서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 근대 골목 스탬프 위치는 매일빌딩 커피명가 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아뿔싸! 계산문화회관 출입문 앞에서 성지순례 스탬프 찍는다?
▲ 이상화 고택 가는 인도 블록에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시가 있다.
▲ 곧이어 골목길과 함께 멋들어진 중절모 신사가 그려진 벽화가 눈에 들어오는 이상화 고택으로 가는 골목길이다.
▲ 골목에는 이상화 시인의 유명한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로 노래했다.
▲ 2022 근대 골목 관광 사진 공모전 수상작도 있다.
▲ 현재 고택은 고층빌딩과 주택 사이에 있었는데, 1999년 이상화 고택을 보존하자는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으로 현 모습을 지킬 수 있게 된 사례를 가졌다.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 주옥같은 시를 쓴 대구 출신의 민족시인 이상화(1901~43) 선생이 살았던 이상화 고택.
▲ 시인 이상화 고택 스탬프 위치는 고택 안쪽에 있다. 스팸프 찍고 ☞ 관람 12분 한다.
「이상화 고택」은 1999년부터 고택을 보존하자는 시민운동을 시작으로 군인공제회에서 인근 주상복합아파트를 건립하면서 고택을 매입해
지난 2005년 10월 27일 대구시에 기부하여, 대구시는 그동안 고택을 보수하고 고택 보존 시민운동본부에서 모금한 재원으로 고택 내 전시물 설치를 하였습니다.
이상화 고택은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일제에 저항한 민족시인 이상화의 정신을 기리고, 후손에게 선생의 드높은 우국정신과 문학적 업적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이상화 고택 바로 앞에는 서상돈 고택도 있다.
▲ 서강돈 고택 스팸프는 입구 좌측에 있다. 서상돈 고택 스탬프 찍고 ☞ 관람 3분
서상돈은 조선 고종 때의 민족운동가입니다.
1898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간부로 활동하면서 러시아의 내정간섭을 규탄하고 민권보장 및 참정권획득 운동을 전개하였고
1907년 대구의 광문사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의하고 국채 보상 취지서를 작성 발표하는 등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의 고택은 2008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 복원되어, 이상화 고택과 함께 중요한 거점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이상화 고택과 이상돈 고택을 보고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가는 길에 이상정 장군 고택도 있고, 일제강점기 대구를 대표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시인 이상화가 늘 앞서 회자된다. 그 많은 인물 중에 대구시 달서구에 ‘상화로’란 도로명이 존재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상화에겐 상정(첫째), 상백(셋째), 상오(넷째) 등 3명의 친형제가 있다. 맏이인 상정은 독립운동가로, 상백은 사회학자와 체육인으로, 상오는 수렵인이자 동물학자로 모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이들 3형제는 달서구 대곡동 산9번지에 함께 잠들어 있다.
이상정(1897~1947)은 국내보다 중국에서 장군으로 더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대구시 중구 서문로 2가 11번지(현 서성로13길 7-16)에서 태어났다. 3세 때 부친 이시우가 사망하는 바람에 우현서루 설립자 백부 이일우의 고택(중구 서성로 1가 44번지)에 살다 1923년에 지은 한옥(중구 계산동 2가 90번지·현 약령길 25-1)으로 이사를 온다. 이 한옥에선 현재 다문 협동조합이 바보 주막을 운영하고 있다.
▲ 근대문화 골목은 현재는 약령시장의 뒷골목 정도지만, 예전에는 영남대로를 이용하는 사람들로 붐볐을 길목이다.
▲ 당나라 시인 두보의 21대손인 두사충에 관한 이야기가 그려진 벽화도 있다.
▲ 두사충과 뽕나무 골목 벽화 조형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두사충은 중국 두릉 사람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원군으로 왔다가 정유재란이 끝나고 조선에 귀화했습니다.
두사충은 풍수지리에 밝아 하루에 천 냥이 나오는 자리에 집터를 잡고 살다가 경상감영이 그곳으로 옮겨오자 계산동으로 거주지를 옮겼습니다.
두사충이 계산동 주변에 뽕나무를 많이 심어 이후 이 일대를 뽕나무 골목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조선 여인과 사랑 이야기가 함께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 하루 천 냥이 나오는 명당이 있는 동전 조각품.
두사충은 조선에 귀화해 현재의 경상감영공원 자리를 자신의 집터로 잡고, 두 아들에게 이 터는 하루에 천 냥이 나오는 자리 라고 하였답니다.
그의 뛰어난 안목은 400년 영남의 수도 경상감영의 터가 되었으며, 이후 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도청이 들어서면서 지역 최고의 상권이 형성되어 그야말로 하루에 천 냥을 버는 명당으로 자리매김하였답니다.
▲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입구
▲ 대구 약전골목에 있는 문학 체험 전시 공간이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은 6·25전쟁 이후 대구 중구를 배경으로 한 소설 「마당 깊은 집」의 이야기와 등장인물, 대구 피난민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문학 체험 전시 공간이다.
옛 남성동경로당 부지(약령길 33-10)에 지상 1층, 대지 218.2㎡, 건축 80.58㎡의 규모로 한옥을 리모델링하여 조성하였으며, 전시관, 안내실, 화장실, 마당(회랑), 골목, 외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 전시관은 마당 깊은 집 모형, 등장인물 소개, 50년대 대구 풍경과 생활 사진, 길남이네 방, 김원일 작가 기증품 아카이브, 작가의 방으로 되어 있으며, 마당과 골목에는 50년대 수돗가(부엌), 포토존, 사진 게시판을 설치해 피난민의 생활상을 느낄 수 있다.
▲ 스팸프 위치는 출입문 지나 좌측에 있다. 스탬프 찍고 ☞ 관람 15분
▲ 다음 스팸프 장소인 교남 YMCA 건물로 향한다.
「교남 YMCA 건물」은 일제강점기 3.1 독립만세운동 당시 회합의 공간이자 물산장려운동, 기독교 농촌운동, 신간회운동 등 기독교 민족운동의 거점이었던 건물. 2013년 10월 29일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구 약령시에 있는 국가 등록문화재이다. 일제강점기 3.1 독립운동 때 화합의 공간이자 물산장려운동, 기독교 농촌운동, 신간회 운동 등 기독교 민족운동의 거점이었던 건물이다. 대구 중구 근대역사의 중요한 시설물로 이만집 목사 3.8 만세 운동 기념지로 한국기독교 사적으로 지정됐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각종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였으며 특히 당시 산업의 대부분인 농촌사업을 체계화하고자 전국 각지에 농민학교를 세우고, 협동조합, 농민회, 야학 등을 조직하여 농촌 청년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 스팸프 위치는 건물 바로 앞에 있다. 교남 YMCA 스탬프 찍고
▲ 맞은편 구 제일교회 스팸프 찍는다. 스팸프 위치는 정문 옆에 설치되어 있다.
「구 제일교회」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 대구제일교회의 구 예배당이다. 1994년에 새로운 예배당이 건립됨에 따라 지금 이곳은 선교관으로 쓰이고 있다. 제일교회는 1893년에 대구·경북 지방 최초의 기독교 교회인 남성정 예배당을 모태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와집을 구매해서 예배를 드리다가 성도가 점차 많아지고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1908년에 단층 교회를 신축하게 되었고 이후 1933년 벽돌조의 교회당을 신축했다. 1936년 종탑을 세우며 현재의 교회 모습이 완성됐다. 건물 전체에 근대의 고딕양식이 잘 나타나 있어 근대건축물 연구에도 큰 자료가 된다. 현재는 구 대구제일교회 역사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 아뿔싸! 또다시 스팸프 잘못 찍고? 이번에는 대구관광 스팸프 대구 약령시 스팸프이다. 대구 중구 골목 투어 앱으로 스탬프 완료하여도 종이 스팸프 찍는 기념으로 다음에 다시 근대 골목 투어 스팸프 도전(밤마실 투어)
▲ 한의약박물관 앞 관광안내소 스탬프 함에서 약령시 스탬프 찍고
▲ 대구 제일교회와 염매시장을 거치면 이번 여정에서 골목길의 백미를 느낄 수 있는‘진골목’ 차례다. 진골목의 ‘진’은, ‘길다’라는 경상도식 발음 ‘질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 진골목 스팸프 위치는 스타벅스 대구 종로 고택 점 입구 옆 진골목 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진골목 스탬프 찍고
서울의 북촌 분위기와도 비슷한 근대문화 골목은 ‘명당 골목’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특히 달성 서씨 집성촌이던 진골목은 대구 부자들이 떼로 모여 살았던 공간이다.
1900년대 초반 진골목 최고의 부자는 서병국이었다. 대구로 몰려드는 전국 약재상들을 상대로 한 객주 사업으로 부를 일군 서병국은 3,300㎡가 넘는 대지에 저택을 지어 살았다. 지금의 화교협회(중구 종로 34)가 그가 사무실로 이용하던 건물이고 인근 화교소학교 대지 역시 그의 소유였다.
▲ 증강현실 포토존
▲ 진골목 읍내
황성이나 소백산에서 왔을까?
아니면 봉화의 선한 눈망울을 따라 왔을까
한우 소고기의 은근한 육즙이 좋았을 것이고
고추장떡, 울산의 신불산의 그 장떡 집에서
이곳 대구로 왔을까?
동해의 오징어, 신선한 김해의 파밭에서 온 파 향이 어우러져, 田 냄새를 담았나,
해물파전 두메 동동주 한 잔에 소반 하나 받아드니
팔도의 밥집은 옛 읍성의 놋쇠 잔에 다지고 다져
녹은 情 집이었더라.
▲ 2코스 근대문화골목 안내도
▲ 전주에 붙어 있는 이정표에는 우측으로 중앙대로 50m, 좌측 공감 게스트하우스 80m, 대구화교협회 130m
▲ 공감 게스트하우스 스탬프 찍고
대구시 사회적기업 공감 게스트하우스이다. 안전, 접근성, 청결, 가격, 그리고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로도 예약할 수 있다고 한다.
코로나19 때 대구 의료진이 무료숙박을 지원한 안철수 김미경 부부도 이용했다 합니다.
▲ 대구 근대 골목 투어 2코스의 마지막 지점에 있는 화교협회로 향한다.
대구화교협회는 1929년에 지어진 붉은 벽돌의 2층 서양식 주택이다. 대구 지역 부호인 서병국이 중국 건축가 모문금에게 설계와 시공을 맡겨 건립했다.
장방형의 평면 구조이며, 현관은 화강석을 사용하여 돌출시켜 전체적으로 좌우 대칭의 균형미를 이뤘다. 벽돌은 평양에서 구워 오고 나무는 금강산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HID(방첩대)건물로 이용되기도 했다. 건물 1동과 놀이터, 장제스 동상이 있으며, 입구에는 중국 인물 벽화가 그려져 있다. 수려한 미관을 자랑하는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로 현재 대구화교협회 사무실로 이용된다. 얼마 남지 않은 1930년대 근대건축물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2006년 6월 19일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화교협회 스팸프 위치는 화교협회 입구 도로변 인도에 설치되어 있다.
▲ 화교협회 스탬프 찍고 오랜만에 동성로 구경하면서 교동시장 먹거리(양념 어묵, 삶은 소라와 50년 전통의 진짜 순대 특히 분식의 최고인 떡볶이와 김밥을 저렴한 금액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인데요. 그리고 전자상가, 군복과 수입 과자 등을 판매하는 곳도 꽤 있었는데
예전에는 많은 사람으로 부적이었던 곳인데 지금은 한산하기만 하다. 언제쯤 다시 많은 사람으로 부적일까요?(위 사진은 다음 골목 투어 후 뒤풀이 장소)
▲ 대구역에서 무궁화 타고 경산에 도착합니다.
다음 트레킹은 2월 12일(일) 대구 수성구 생각을 담는길 따라 금호강 종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