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사실의 부존재'라고 해서
희안한 말이 요즘 부쩍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너가 내한테 돈을 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보라, 너가 너의 엄마의 자식이 아님을 입증하라...등등.
말도 안된다싶은
그런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경우에 부딪히게 되면 이 문제는 이제 엄청난 무게로 본인에게 다가갈 것이며, 채 전총장 의 경우 이제 그 애가 자신의 아들이든 아니든 그런 건 뒷전으로 밀리면서 지리하고 골치아픈 법률 공방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 채 아무개씨는
이제 직장을 놓고 가족의 눈총을 맞게 되며, 주변 지인들로부터 사시의 눈길을 받게 될 것이다...우리 방관자 모두는 행복하게도 그 일이야 우리랑은 무관한 거니까 뭐..하고 헤실헤실 웃으며 관음의 즐거움만 누릴 것이고...
요즘 유행하는
언어 유희같은 이런 말놀이에 대해 싸움을 걸고 그 싸움에 응수하는 사람들은 둘 다 어느 정도 싸움을 지속해갈 경제적인,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야 가능할 것같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조선일보와 채 전 총장간의 다툼에 대한 기사를 읽다 보면 문득 엉뚱하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느 네티즌의 말처럼
내가 검찰쪽의 항변에 박수를 치게 되는 이런 지경을 겪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하여튼 이 문제는 단순히 채 전 총장과 일개 조선일보라는 신문사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은 빠싹하니 꿰고 있으니까 그에 관련한 언급은 더이상 필요 없을 거라...난 다만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단순하면서도 만만치 않은 이 의문에 대해서, 개인의 사사로운 경우와 크게는 법적인 경우로 나누어 두고 생각해 보고 고민해 보고 궁금해 하면서 이렇게 머리 터지는 글읽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가령 예를 들어,
모 신문사 전 회장의 혼외 자식 존재에 대해 조선일보가 도덕적인 분개를 드러내며 보도를 했는데, 당사자가 사실이 아니다며 보도를 정정하라고 '조선일보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했다면, 그런 경우 모 신문사 전 회장은 사실이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해야 하는 지경에 빠지게 된다.
이런 곤란에 직면한
모 신문사 전 회장은 완전히 요즘의 채 전 검찰총장의 입장이 되어 버릴 것이다. 도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참 만만치 않은 상황에 처한 그 신문사의 전 회장이나 채 전 총장의 입장이 예사롭지가 않다. 다음 기사는 모 신문사 전 회장에게도 상당한 도움을 줄듯 하기에 그 신문기사의 일부를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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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적인 경우라면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한 쪽이 보도가 허위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채 전 총장의 주장의 핵심은 혼외아들이 없다는 것, 즉 사실의 ‘부존재’여서 입증이 어렵다. 서울에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이 경우 사실상 조선일보가 입증 부담을 나눠 가진다. 조선일보는 몇 가지 근거를 들어 ‘혼외아들이 있다’고 주장해야 하고 채 총장은 이 근거를 깨트리는 방식으로 부존재를 입증하는 식이다. 다만 최종 결론이 50 대 50일 때에는 채 총장이 불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2011년 9월 <피디(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관련 보도에 대한 정정·반론보도 청구 소송에서 “소송을 청구하는 이가 언론보도 등이 진실하지 않다는 증명 책임을 부담한다”면서도 “의혹을 받을 일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해 의혹을 받을 사실이 존재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는 그러한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진다. 피해자는 제시된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허위성을 입증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김원철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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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나 해서
pd수첩 관련 기사에 내린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충 설명을 덧붙이면,
대법원 판결 판례:
1. 미국산 쇠고기 관련 보도에 대한 정정반론보도 청구 소송(이하 다음부터 '미송'으로 칭함)에서 소송을 청구하는 이가 언론보도 등이 진실하지 않다는 증명 책임을 부담한다.(채 총장, 즉 모 신문사 전 회장이 증명해야 한다.)
2. 그러나 의혹을 받을 일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언론에 대해 미송을 제기한 당사자는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진다. 피해자는 제시된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허위성을 입증할 수 있다.
(즉 조선일보는 소명할 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지고, 채 전총장이나 모 신문사 전회장은 그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허위성을 입증할 수 있다.)
그래도
조금 헷갈릴테지...? 머리 운동 좀 해보자고...........메이저 리그를 빠삭하게 꿰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 보담사 좀 영양가가 높지 않으까...?
사건 1 : 소송 제기자-소고기 수입업체 [갑]
[실제] 소송 당한자-pd 수첩 [을]
사건 2: 소송 제기자-모 신문사 전 회장 [갑]
[가상] 소송 당한자-조선일보 [을]
사건 3 : 소송 제기자-채 전총장 [갑]
[실제] 소송 당한자-조선일보 [을]
이제 조금
위 대법원 판례에 대한 감이 올라나? 나도 저놈의 법률 글을 읽다가 지금 내가 뭐하나? 싶더라고...그러다가 심기일전해서 총정리를 한번 해버리고 나니 혼자 읽고 넘어 가기에는 원통하네 싶어서 같이 머리 썩여보자고 제시한 거다 ^^..사실 몇 달 전에 여기 글 올릴라고 담배관련 하염없이 길다란 소송자료를 찾아 함 읽어본 적은 있다..와, 그넘들 진자...왠 말을 그렇게 열심히 죽자사자 꼬아놓았는지..그런 미로를 뚫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넘들도 있는 세상이니..참 내..이런 문어투에 짜쯩을 내는 사람들더러, "한 문장이 3~4쪽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당시에 비해 많이 개선됐다"고 어느 변호사는 말하더라만,
체 총장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사실의 부존재'를 입증하는 일이, 그리고 설령 조선일보가 대법원 판례에 따라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소명자료를 제시한다 쳐도 그 허위성을 입증하는 동안에 가족이 겪을 일들이, 계산될거라. 그래서 소를 취하했을 것이다.
그럴리가 없겠지만
조선일보가 자신의 전 회장의 혼외자식 건을 보도했다고 치더라도 전 회장은 그냥 소를 취하할 거라 여겨진다. 왜냐? 자신의 결백 유무를 입증하기 전에... 자꾸 거론되는 거 자체가 힘들거든...채 전 총장과 달리 그는 실제상황이기도 하니...일부 사람들은 말하기를,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조선일보가 혼외자 보도를 하는 건 좀 그렇다 하더라만.. 하여튼 당사자들이사 자기네 집도 쑥대밭이 될거고...새끼들 눈도 있고...
그러거나 말거나
대통령 선거 자체를 문제로 삼는 이런 일을 지 죽을줄 알면서도 파헤치는 그런 넘을 어찌 그냥 넘어갈거라? 당근 모종의 플레이를 기획했는데 그 중에서 조선일보가 맡은 업무가 좀 막막할터인데도 뭐 대가가 만만찮을 테니 덥썩 물지 않았을까 싶긴 하더라만..그기에다 한나라들도 얼씨구나 dna 검사를 하면 될텐데 왜 소를 취하해? 뭐 있나? 하면서 언론에 대고 나발 불거고...[정말이지 채 전 총장도 죽을 맛일 거고 모 신문사 전 회장도 죽을 맛일 테지..]
그래서 네티즌들도 양분된 상태,
"정정보도로는 성에 안 차나보다. 끝장을 볼 기세인데. 채동욱님 파이팅"
등 채 총장을 지지하는 내용의 글도 보이는가 하면
"퇴임 하루도 안 지나서 소송취하 미친다. 퇴임식에서 했던 말들 뭐지. 떳떳하다면서 소송은 왜 취하", "끝까지 비겁하군. 저런 자가 검찰총장이었다니"
라는 글도 보인다..
한 번 걸렸다 하면
도무지 빠져나올 길이 없는 저런 무간지옥에는 누구도 빠지고 싶지 않을거라...또한 나만 아니면, 잘난 넘들 치고 박고 싸우는 거 보는 재미도 여사가 아닌데다 그기에 혼외자 운운하는 이야기는 훔쳐보는 사람들에게는 그 재미가 얼마나 못질 것인가? 술자리 안주감으로도 여사로 다디단 맛이 아닐 것이고...당사자야 죽든말든 말이지... 우리는, 아무래도, 참 말하기 싫지만, 원천적으로 악하게 태어난 모양이다...
무간지옥 無間地獄....
옥졸이 죄인의 가죽을 벗기고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수레에 실어, 훨훨 타는 불 속에 죄인을 집어 넣어 몸을 태우며, 야차들이 큰 쇠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내가 무간도 라는 영화 파일 보낸 적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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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단, 그러나 독인 줄도 모르고
공직 윤리의 문제라면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 그러나 그의 퇴임과 함께 막가파식 폭로와 사생활 침해는 오히려 더 폭주한다. 이제 만만한 사인이니, 보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까. ‘조선’의 매체들은 임씨의 옛 가정부를 등장시켜 증언 혹은 전언을 연일 쏟아낸다. “뻔뻔스런 채 전 총장…” 이런 식이다. 전화통화 내용을 본인 여부도 확인 않고 보도한 매체도 있다. “그 인간이 지금 천하의 거짓말쟁이가 돼서 제정신이 아닌 거야….”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제보’를 전제로 국회에서 “채 전 총장과 (혼외아들을 낳았다는) 임모씨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채 전 총장과 모 여성 정치인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의혹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자들만 살판난 게 아니다. 한낮의 목욕탕이나 미용실 등 대중접객업소는 종편의 싸구려 진행자와 패널들의 들뜬 목소리로 시끌시끌하다. 객들은 목욕하고 이발할 생각은 않고 윤창중씨 아류의 전언, 분석, 평가, 전망에 귀를 맡기고 있다. 하다못해 장기표씨의 말에까지 넋을 놓는다. 이런 귀를 더 잡아두려 ‘조선’의 자매 종편은 불륜 문제로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신정아씨를 등판시키려 했다. 비록 포기는 했지만, 경쟁사들은 강용석씨를 간판으로 쓰고 있는 터에 몹시 아까운 눈치다. 김진태 부류의 정치가 횡행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저 거대한 관음증이 이런 무책임하고 범죄적인 보도와 정치를 키우는 토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장씨의 이야기를
얌전히 들어야 했다. 날카로운 가위가 정수리 주위를 깎고 있고, 시퍼런 칼날이 목젖 근처를 쓸어내리는데 어쩌겠는가. ‘채 총장 찍어내기야 맞긴 맞는데, 임씨 아들이 그의 혼외자인 것도 맞고, 문제는 채 총장이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또 비겁했다는 것이다. 당장 고백해야 한다.’ 사실 서넛 모인 자리만 가면 쉽게 들을 수 있는 분석과 평가와 충고였다. 벌거벗은 객들은 그 앞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저의 판단과 비슷해선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이다. 그러고는 저의 도덕적 우위를 확인하기라도 하듯, 남보다 더 큰 목소리로 빈정거리고 조롱한다.
이제
사인의 사생활도 공적으로 통제되는 사회가 된 것만 같다. 그런 매체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희들 사주가 당하고, 웬만하면 단골 카페가 있는 기자들도 당할 수 있는데 어찌 의도했을까. 그럼에도 물고 늘어지는 건, 조폭적 힘자랑이 하나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장삿속이다. 그들 눈에 시청자는 말초적 관심사만 나오면 넋을 놓는 맹목적인 소비자일 뿐이다. 틀린 판단도 아니다. 그만큼 관음에 중독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남이 당한 사찰 내용을 보고 즐기는 사이, 나의 비밀 또한 그렇게 빠져나가고 그런 체제는 더욱 강화된다. 새로운 현상도 아니다. 불과 20~30년 전 이 땅의 현실이다. 1975년 1월 인권변호사 이병린은 간통 혐의로 구속됐다. 그가 맡고 있던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직 사임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했던 중앙정보부 요원을 내쫓고 난 이틀 뒤였다. 1982년 민한당 한영수 의원도 간통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로선 드물게 국회에서 5공 정권을 대놓고 비판한 직후였다. 그때 안기부는 도청과 미행, 공작을 다 동원했다. 1992년 14대 총선 때는 안기부 요원들이 홍사덕 후보의 ‘사생활’이 담긴 유인물을 살포하다가 걸렸다. 거기엔 “혼외 자식은 내팽개치고 3명의 처녀와 6명의 유부녀를…” 따위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대표의장에 내정됐다.
결국
문제는 (사생활) 사찰이고, (찍어내기) 공작이다. 혼외자 의혹은 채씨와 가족 그리고 임씨가 정리할 일이다. 그걸 문틈으로 엿보려고 기를 쓰는 모습이란 얼마나 지질하며 병적인가. 게다가 그사이 당신의 주머니에선 돈도 빠져나간다. 연금은 줄고 세금은 는다. 자신을 농락한 정권의 거짓말은 잊혀지고, 또 다른 음모가 진행된다. 한바탕 냉탕에 푹 빠져야 깨달을까….
곽병찬 논설위원, 대기자
chankb@hani.co.kr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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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꼭 그렇게 결말이 지금처럼 항상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간혹이지만 정의가 승리하는 때도 있지 않던가? 드레퓌스 사건의 경우처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사실의 부존재'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그런데 왠걸, 현실적으로는 그런 경우가 너무 많더라고..채무의 부존재(난 빚이 없는데, 빚을 갚으라)니, 친생자관계부존재(얘는 내 새끼가 아니다)니 하면서...보통사람은 생전 듣도보도 못한 별 희안한 경우가 다 있더라고..증말 법공부 하는 사람들 대단한 거 맞지...?
진행형인
이번 사건의 추이를 따라가다 보면 아마 언젠가는 사건의 부존재함에 대해 그럭저럭 마지못해 해결되는 모습을 엿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오랜 시간이 경과한 뒤에...법률적인 결과는 언제나 그럿듯 늦게 내려지게 되기 싶상이고 우리들의 성마른 기질은 어느새 이 모든 것들을 잊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꼬드김에 '어, 그래? 참, 그렇지, 그래야지' 하면서 졸래졸래 뒤꿈치만 보면서 따라가게 될 것이다. 그 나중 나중이 될 때까지..
그러다가
부존재의 증명이 이루어지는 것은 재판장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괴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니시야마 사건;http://sunonthetree.blog.me/110084528760
설령,
그 신문의 주장대로 채 전 총장 혼외 자식을 둔 것이 맞다손 치더라도, 그들이 설령 자신의 전 사주가 혼외자식을 몇 명이나 두었다고 기사화 하는 일이 벌어진다 해도 그런 기사들 때문에 자신들이 저지른 하수구 노릇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너무 쉽게 잊기 때문에 그 악취는 곧 사그라들 것이고, 그 조폭적인 작태를 은연중 두려워할 것이며,우리는 다시 그럭저럭사는 하루를 맞이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실의 부존재'를 밝히는 일은 쉬울 수도 있다. 그냥 '그건 아니다' 라고 하면서 계속 뚜벅뚜벅 살아가면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모두 아무도 쉽게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일까? 타인의 눈길을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많이 많이 의식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자기의 삶을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지 않은가?
임제어록
'...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죽여 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여라,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이라...'고 하는 말...
그가 죽이라고 한 것은
자신을 노예로 만드는 일체의 외적인 권위였다고 하지 않던가?.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노예의식 이라고. 스스로 제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타인의 권위에 의존하여 살려는 일체의 노예의식이 문제의 시발점이라고...
그게 얼마나 어렵노?
자기 쪼대로 산다는 말 자체의 울림도 얼마나 역겹노? 그러니 그렇게 산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조선일보'라고 언급당하는 것조차 어마나 거시기하것노?
오늘
역겨운 이름을 너무 많이 언급했다. 미안하구나. 고운 글 읽고 눈과 귀 씻어라..
섬
안 도현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 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그랬구나,
섬만 보면 좀 애잔한 느낌이 들곤 했는데...그래서 그랬구나..마라도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번 가 봐라, 그 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 봐라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눈 밝혀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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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1. 드레퓌스 사건;
2. 니시야마 사건;
3. 주인으로 사는가 노예로 사는가;
1. 드레퓌스 사건-[1]
1894년 10월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포병대위 A.드레퓌스가 독일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비공개 군법회의에 의해 종신유형의 판결을 받았다. 파리의 독일대사관에서 몰래 빼내온 정보 서류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필적과 비슷하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었으나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이 혐의를 짙게 하였던 것이다.
그 후 군부에서는
진범이 드레퓌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확증을 얻었는데도 군 수뇌부는 진상 발표를 거부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다. 드레퓌스의 결백을 믿어 재심(再審)을 요구해 오던 가족도 진상을 탐지하고, 1897년 11월 진범인 헝가리 태생의 에스테라지 소령을 고발했지만, 군부는 형식적인 심문과 재판을 거쳐 그를 무죄 석방하였다.
그러나
재판결과가 발표된 직후 소설가인 E.졸라가 공개한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제목의 논설로 사건은 재연되었다. 졸라는 드레퓌스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군부의 의혹을 신랄하게 공박하는 논설을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형식으로 1898년 1월 13일자 <오롤》지에 발표하였다. 이를 계기로 사회여론이 비등하여 프랑스 전체가 ‘정의·진실·인권옹호’를 부르짖는 드레퓌스파 또는 재심파(再審派)와 ‘군의 명예와 국가 질서’를 내세우는 반(反)드레퓌스파 또는 반재심파로 분열되었다.
전자는
자유주의적 지식인을 비롯하여 사회당·급진당이 가담하여 인권동맹을 조직하였고, 후자는 국수주의파·교회·군부가 결집하여 프랑스 조국동맹을 결성하였다. 마침내 이 사건은 한 개인의 석방문제라는 차원을 넘어 정치적 쟁점으로 확대되면서 제3공화정을 극도의 위기에 빠뜨렸다.
1898년 여름
군부는 어떤 새로운 증거서류에 의거하여 드레퓌스의 유죄를 확언하였으나, 그것이 날조로 판명되고, 체포된 증거서류 제출자는 자살함으로써 반(反)드레퓌스파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이에 정부도 재심을 결정했으며, 또 이때 반드레퓌스파에 대항하면서 공화정 옹호를 내세운 발데크 루소내각이 성립되어, 사태는 재심파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1899년 9월에 열린
재심 군법회의는 드레퓌스에게 재차 유죄를 선고하였으나, 대통령의 특사로 석방되었다. 무죄 확인을 위한 법정 투쟁을 계속한 끝에 그는 1906년 최고재판소로부터 무죄판결을 받고 복직 후 승진도 하였다. 자유주의적 재심파의 승리로 끝난 이 사건은 프랑스 공화정의 기반을 다지고, 좌파 세력의 결속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1. 드레퓌스 사건-[2]
1). 드레퓌스 사건의 본질 : 반유대주의, 일종의 마녀사냥 혹은 집단발작
원래
드레퓌스 사건은 단순한 간첩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드레퓌스는 유대인이었고, 종래 중세 때부터 존재하던 반유대주의가 폭발적으로 작용하면서 사건은 단순한 군사재판에서 전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됩니다.
그런데,
반유대주의는 ‘반공’처럼 우파의 전략이었습니다. 사회에 여러 문제점이 있을 때, 좌파는 그것을 근본부터 고치려 하지만 우파는 전쟁을 일으켜 관심을 외부로 돌린다던가 내부나 외부의 적을 설정하여 내부의 문제를 감추려 합니다. 대공황이라는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히틀러나 무솔리니는 외부로의 팽창을 택했고, 일본에서는 ‘정한론(한국을 정벌하자는 주장)’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실제로 조선과 만주, 중국을 침략합니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히데요시가 부하 장수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사례도 이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러한 선택을 하는 정치세력에게는 언제나 ‘적’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의 독재자들은 북한 혹은 공산주의라는 ‘악마’가 필요했고, 오늘날 미국의 부시에게는 이라크나 북한 같은 ‘악의 축’이 필요합니다. 이런 ‘악마’나 ‘악의 축’을 처단 혹은 처단하자고 떠드는 동안 국민들은 자신들이 독재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나 엄청난 빈부격차나 사회안전망의 해체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현 정권의 집권을 용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드레퓌스 사건 당시 프랑스의 우파, 즉 군부와 보수세력은 드레퓌스라는 유대인을 공격함으로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 하였습니다. 심지어 진법이 체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죄 판결을 함으로써 진실을 왜곡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몇몇 우파들만 드레퓌스를 ‘악당’으로 몰아갔던 것이 아니라 드레퓌스 사건 초기에 다수의 프랑스인들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일종의 ‘마녀사냥’, 혹은 ‘집단발작’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과거 중세의 마녀사냥은 비기독교도, 이단, 정신이상자에 대한 집단적인 폭력이었지만 앞에서 설명 드린 ‘우파의 전략’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사회 현상을 모조리 ‘마녀’의 탓으로 돌려버리면서 위안을 삼는 사회적인 ‘집단 발작’이 바로 마녀사냥인 것이죠.
예를 들어
유럽에 흑사병이라는 질병이 퍼졌을 때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왜 그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행을 하면서 행진을 하기도 했지만 유대인을 집단 학살하거나 힘없는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마녀사냥은 종교개혁 시기까지 이어졌습니다. 루터나 칼뱅도 마녀사냥에 앞장섰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말이죠. 어쨌든 드레퓌스 사건은 이처럼 마녀사냥 혹은 집단발작으로 설명할 수 잇습니다.
2. 드레퓌스 사건의 의의 : 진보적 지식인들과 좌파의 승리, 그리고 민주주의의 성장
그런데,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총궐기하여 드레퓌스를 옹호하게 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에밀 졸라의 경우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발표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물론 졸라가 글을 발표한 직후 적지 않은 프랑스인들은 진실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졸라는 매국노로 취급합니다. 온갖 협박을 가하고 군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졸라는 재판을 받게 됩니다.
재판정에서
졸라는 유명한 말을 하죠 “지금은 의회도, 신문도, 신문이 만들어 낸 여론도 나에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나의 편은 다만 진리와 정의뿐이지만, 프랑스는 언젠가 거짓과 맞서서 싸운 나에게 감사할 때가 올 것입니다.” 졸라 이후 수많은 양심적․진보적 지식인들과 좌파의 운동으로 드레퓌스는 풀려나고 결국 진급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드레퓌스 사건은
첫째, 우파에 대한 좌파의 승리였습니다. 더 자세하게는 평등주의와 인권의 승리이자 자유․평등․우애로 대표되는 프랑스혁명과 공화정 정신의 승리였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우파는 보수당, 보수당, 국수주의자, 군부, 성직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앞에서 설명드린대로 우파는 사회 모순을 근본부터 해결하기 보다는 감추거나 적을 만들어 내부적인 결속을 추구합니다. 또한 법 규제를 완화해서 기업이나 개인이 자유롭게 이윤을 추구하고 재산을 축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입니다.
반면에 좌파는
이러한 ‘자유’가 오히려 사회적인 불평등을 야기시킨다고 주장했고 당시에 사회당과 급진당 및 그 지지자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우파는 드레퓌스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좌파가 이에 반대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파는 중세시대부터 사회유지기제로 기능해 온 ‘반유대주의 전략’을 충실히 따랐고, 좌파는 평등주의와 인권의 관점에서 이를 반대했던 것입니다. 결국 드레퓌스의 석방은 좌파의 승리로 귀결되었고, 이후 사회당의 집권으로 이어집니다.
둘째, 드레퓌스 사건은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시민운동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국가권력(더 정확하게는 집권세력 내지는 우파)이 얼마나 자의적으로 무고한 사람을 죄인/희생양으로 만들어 정권을 연장하려 하는지 보여주며, 또한 양심적 지식인들과 건강한 시민사회가 역동적으로 움직였기에 드레퓌스를 석방시킨 프랑스의 사례를 통해 시민운동의 중요성을 또한 깨닫게 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은 원래 좌파의 이념을 내세우며 집권한 세력도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우파의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결국, 평등주의, 인권, 자유․평등․우애로 대표되는 프랑스혁명과 공화정 정신, 이런 것들은 ‘민주주의’라는 단어로 귀결됩니다.
xangkarl
2. 니시야마 사건
신의 부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면 신은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종교인들은
바로 그렇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명을 할 수 없으므로 신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반대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문제를
‘부존재의 증명’이라고 한단다. 부존재의 증명은 존재의 증명보다도 훨씬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악마의 증명’이라고 도 한단다. 지난 주 일본에서 부존재의 증명을 이용한 명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우리도 잘 아는 ‘니시야먀(西山)사건’의 판결에서이다.
니시야마 사건은
약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 미국이 점령하고 있던 오키나와섬의 일본반환협정을 앞두고 일본과 미국이 비밀협정을 맺었다는 폭로가 터졌다. 토지원상 회복을 위해서 당시 일본 정부가 거기에 소요되는 자금 400만 달러를, 원래는 미군이 부담해야겠지만, 일본이 책임지기로 밀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사회당 의원을 통해서 국회에서 터져나온다. 이를 터트린 기자는 마이니치 신문의 니시야마 타키치(西山太吉).
이런 사실이 나가자
난리가 났다. 일본 정부는 이 보도로 오키나와의 반환이 어려울지 모른다는 걱정아래 이러한 밀약이 없었다고 강력히 부인하고, 누가 이 사실을 유출했는지를 조사해 외무성의 여직원을 찾아낸다. 검찰은 외무성 여직원을 국가공무원법의 기밀누설죄로, 니시야마 기자는 국가공무원법의 ‘교사(敎唆)의 죄’ 로 각각 체포한다. 일본 언론들이 언론의 자유를 위협한다며 들고 일어났다. 그러자 검찰은 재판에서 문서누출보다도 이 니시야마 기자가 어떻게 육체관계를 이용해 이 여직원으로부터 문서를 빼냈는가에 주력함으로서 문서의 존재여부를 규명하기 보다는 두 사람의 스캔들로 몰아간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유죄가 되었다. 최고 재판소까지 올라갔지만 판결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0년이 되자 미국 측이 보관하고 있던 이 문서가 기밀에서 해제되어 그 밀약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니시야마 기자는 2005년 국가에 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밀약문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국가가 법을 어겨가며 기소했다는 이유에서다. 곤혹스러운 일본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손해배상 청구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2008년까지 기각판결을 내린다. 문서의 존재가 이미 드러났지만 문서의 존재에 대해서는 일부러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의 작가, 연구가. 저널리스트들이
이러한 일본 법정의 판결에 항의해서 다시 모였다. 2008년 9월2일 일본 정부 재무성과 외무성에 문서 공개를 다시 요구했다. 한 달 뒤 두 정부기관은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2009년 7월에는 일본정부가 일찍이 정보공개법을 대비해 문서를 폐기하는 과정에서 밀약과 관련된 것들이 폐기된 흔적을 일본의 한 신문이 찾아내었다. 그리고 일본의 정권이 자민당에서 민주당 정권으로 바뀐 뒤 일본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과거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문서의 존재를 찾아내어 공개하자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2009년 12월1일
도쿄지법 301호 법정. 요시노 분로쿠(吉野文六) 전 외무성 미국 국장이 법정에 섰다. 요시노 씨는 오키나와 반환 교섭 때 미국과 이 있었다며 “(공문서의 BY 이니셜은) 내가 담당국 실장으로 사인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2010년 4월 9일, 밀약문서 공개여부를 결정하는 판결의 날이다. 외무성은 여전히 “원래부터 있을 수가 없는 문서, 있다 해도 이미 폐기된 문서”라며 공개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도쿄지방재판소의 스기하라 노리히코 (杉原則彦) 재판장은 판결을 내린다.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외무성의 대응자세는 불성실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는 판결과 함께 이렇게 말한다;
“ 문서가 있을 것입니다. 폐기 되었다고 말한다면 언제, 누구의 지시에 의해 어떻게 처리되었는가를 조사해서 증명하십시오.”
일본 언론은
이 판결을 ‘부존재의 증명’이란 명제를 활용한 멋진 판결이라고 환영한다. 이로써 38년을 끈 니시야마 사건의 진실은 법원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 이 문서가 존재했음이 미국을 통해서 이미 증명되었지만 그것이 마침내 일본 법정에서도 인정받아 문서의 공개를 정부부처에 명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니시야마 사건의 본질은 국가 이익과 개인의 신념, 언론의 진실의 충돌이었다. 70년대 당시 일본은 아직 미국과의 관계에서 일본이 많이 불리한 처지이기에 일본 외무성으로서는 오키나와의 성공적인 반환을 위해서 밀약이라는 형식으로 미국에 프리미엄을 준 것이고. 그것이 폭로되자 혹시나 반환에 지장을 받을까 봐 밀약의 존재, 문서의 존재를 한사코 부인한 것이라고 하겠다.
‘외교교섭의 회담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 라는 국제적 관행이 존재하고, 그것이 누설되면 타국의 불신을 초래해 교섭의 효과적인 수행이 저해된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본의 사법당국도 그런 우려 때문에 정부를 옹호하는 판결을 내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신문기자인 니시야마씨는 진실을 알리는 것이 국가이익에 부합된다는 신념으로 정보를 공개했고 그 신념을 위해 30년을 넘게 국가를 상대로 싸워 온 것이리라.
이 사건을 놓고
언론계에서는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의 확인이라고 반길 것이다. 처음 이 사건을 터트린 니시야마 기자도 바로 그 순간, 즉 자신의 행동이 진실을 위한 것이었음이 밝혀지고 확인되는 것을 위해 그 긴 세월 재판에 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30년이라는 세월, 우리가 흔히 한 세대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그 시간이 지나간 뒤 과거에 묻힌 것들이 문서공개라는 이름으로 다시 세상에 나옴으로서 그 진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진실이 승리한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승리한 것일까? 지난 시대 일본의 정부와 법정이 고민하던 자신들이 생각한 진실이 시간이란 엄청난 힘 앞에 무너진 것이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부존재의 증명을 이끌어 낸 것은 재판장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괴물이라고 할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진실들이 꺼지지 않고 살아나고 밝게 사방을 비춘다는 면에서 우리는 부러운 것이다. 우리나라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철수하고 그 뒤 그들이 남긴 기지의 오염을 처리해야 하는 우리들로서는 일본의 니시야마 사건이 더 새롭게 다가온다.
http://sunonthetree.blog.me/110084528760
3. 주인으로 사는가 노예로 사는가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말했다.
“신은 죽었다!”고. 기독교가 지배하는 서양 문명에서 신은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고 있었다. 당연히 기독교가 지배하는 이런 지적인 분위기에서 인간은 노예의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에게 자유와 힘을 되돌려주기 위해,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신이 죽었다면, 이 지상에 무엇이 남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다. 기독교의 신이 창조와 심판의 주체였다면, 이제 인간이 창조와 심판의 역할을 떠맡아야만 한다. 물론 잘못된 창조나 심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수정하는 것도 인간일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역사가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로 이 점이 니체를 서양 문명에서 가장 탁월했던 인문주의자로 만든 이유가 아닌가?
하지만
니체가 말한 신을 굳이 기독교의 신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신은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일체의 초월적 권위를 상징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니체의 거부는 국가 권력, 사회적 관습, 자본의 힘 등등 인간을 노예로 길들이는 일체의 힘에 대한 거부로 읽힐 수 있다. 놀라운 일은 “신은 죽었다”고 니체가 울부짖기 이미 1000여년 전에 동아시아에서 모든 권위를 제거하고 주인으로 서야 한다는 임제(臨濟, ?~866)의 사자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임제어록>(臨濟語錄)을 꼼꼼히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죽여 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렇게 한다면 비로소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
<임제어록>에서
임제는 스님들에게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죽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부모를, 친척을 죽이라고 이야기한다. 자비를 궁극적 이념으로 삼아야 하는 스님이 어떻게 이렇게도 무자비하고 잔혹한 이야기를 하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임제가 죽이라고 했던 것은 부처라는 사람, 조사라는 사람, 나한이라는 사람, 부모라는 사람, 친척이라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노예로 만드는 일체의 외적인 권위였다.
임제가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노예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제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타인의 권위에 의존하여 살려는 일체의 노예의식이 그가 표적으로 삼았던 것이다. 생각해보자. 싯다르타의 말을 절대적인 권위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혹은 부모의 말을 절대적인 권위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싯다르타는
싯다르타일 뿐이고, 부모는 부모일 뿐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는 나일 뿐이다. 이런 자각이야말로 싯다르타가 우리들에게 남긴 가르침,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유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반증 아닌가? 이렇게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가르침을 깨달은 사람을 임제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이라고 규정한다.
다시
<임제어록>을 넘겨보자. “‘벌거벗은 신체에 하나의 무위진인이 있어서 항상 그대들의 얼굴에 출입하고 있다. 아직도 이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거듭 살펴보아라.’ 어떤 스님이 나와서 물었다. ‘무엇이 무위진인입니까?’ 임제선사가 법당 아래로 내려와 그 스님의 멱살을 잡고 말했다. ‘말해보라! 말해보라!’ 그 스님이 무엇인가 말하려고 하자 임제선사는 그를 밀치며 말했다. ‘무위진인, 이것이 무슨 마른 똥 막대기냐?’ 그러고는 임제선사는 자기 거처로 돌아갔다.”
‘무위진인!’
“어떤 자리도 없는 참다운 사람”,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군주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신하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부모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자식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자본가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노동자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선생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학생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런 자리를 능동적으로 선택한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군주, 부모, 자본가, 선생이 가진 압도적인 힘이 무서워서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역할을 배우처럼 능숙하게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무서운 것은 이렇게 부득이하게 맡은 배역이 시간이 지나면, 마치 우리 자아의 일부분인 것처럼 우리에게 각인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군주, 부모, 자본가, 선생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면화된 노예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제 이해되는가?
어느 제자가 무위진인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자, 임제가 왜 그의 멱살을 잡았는지, 그리고 왜 무위진인을 “똥 막대기”라고 말했는지. 제자는 무위진인을 또 하나의 외적인 권위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니 임제는 무위진인을 똥 막대기라고 바로 부정해 버렸던 것이다. 그 누구도 똥 막대기를 권위로 받들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하듯이, 무위진인을 만나면 무위진인도 죽여야 한다. 그렇지만 그 제자는 무위진인을 자신이 반드시 달성해야 할 이상적인 권위로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이다. 무위진인마저도 외적인 권위로 변하여 제자들이 주인으로 서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무위진인을 임제가 이야기했을 때, 그 제자는 당상으로 올라가 임제의 멱살을 먼저 잡았어야 하지 않을까?
“만나는 모든 것을 죽여라”
인간을 노예로 길들이는
모든 권위를 거부하란 뜻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일없이 똥 누고 소변을 보며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며
피곤하면 누워서 쉬는 것”
이 순간,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내가 주인되는 삶을 시작하라
하지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무위진인이 될 수 있다는 임제의 말을 너무 어렵게 받아들이지 말도록 하자. 임제는 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단순한 가르침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제어록>에서 임제는 우리에게 주인이 되는 방법을 ‘쿨하게’ 알려주고 있다. “불교의 가르침에는 특별히 공부할 곳이 없으니, 다만 평상시 일없이 똥을 누고 소변을 보며,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며, 피곤하면 누워서 쉬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겠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알아들을 것이다. 옛사람은 ‘외부로 치달아서 공부하는 자들은 모두 멍청한 놈들이다’고 하였다. 너희들이 어느 곳에서나 주인이 된다면 자신이 있는 그곳이 모두 참되어(隨處作主, 立處皆眞), 외부대상도 그것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부모나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똥이나 소변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나아가 우리를 노예로 부리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피곤하지만 쉬지도 못한다. 오직 인간만이 같은 생물종인데도 서로 눈치를 보고, 마침내 눈치 보는 것이 내면화되는 존재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검열로 점철되어 있는 삶이 어떻게 주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가장 생리적인 것도 스스로 부정하고 있으니, 우리가 정신적이고 이념적인 면에서 주인의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스스로 삶의 척도가 되지 못하고, 제 삶을 외적인 척도로 재단하는 데 우리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셈이다. 이제 비겁함과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서야 될 때가 아닌가.
지금은
부당한 권력이나 반인간적인 자본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하루라도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결의가 필요한 때다. 그러기에 앞서 소중한 내 삶은 한번밖에 없다는 투철한 자기애를 다질 필요가 있다. 오직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주인으로서 살아야겠다는 결의를 다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쩌면 당분간 우리는 임제의 사자후를 불편하지만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곳에서나 주인이 된다면 자기가 있는 그곳이 모두 참되다”는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 이 여덟 글자를 가슴에 품고 말이다.
임제의 사자후를 듣다 보면
문득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주인공(主人公)! 잘 있는가!”라고 외쳤다는 스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깨달음을 얻은 스님마저도 항상 주인의 삶이 아니라 손님의 삶을 살까 두려워했는데, 평범한 우리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지금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노예로 살고 있는가? 내 서재에 꽂힌 <임제어록>은 아직도 서슬 퍼렇게 이렇게 묻고 있다.
강신주 철학자
첫댓글 강신주의 '임제어록'을 한겨레에서 읽고 조금 어안이 벙벙했는데, 여기서 다시 대하고 보니 용주의 논지에 부합하여 인용한 것 같은데 이는 좀 거시기하네. 부처, 조사, 부모의 권위를 타파,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이라는 논리는 불교나 임제의 원의에서 상당 부분 이탈하고 있다. 수처작주의 主(주인) 개념을 그사람 만나서 직접 묻고 싶은 것이지만 전체적 맥락에서 보면 자의적 해석이고, 똥막대기에 대갈박을 깨지게 맞아야될 작자다. 바로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그것의 상충, 이것이 인간사 모든 갈등의 시발인 것을...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아'를 풀지 못하면 불교의 영원한 미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혹시, 강신주는 '아', '주인공'의 원의를 올바로 깨닫고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글을 통해 독자의 입장이 되고 보면, 그의 임제 이해는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강신주의 철학은 몇 권 그의 저서를 통해 친숙한 편이지만, 불교의 접근은 몸으로 부딛혀 본 흔적이 없이 온전히 머리로만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다. 禪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임제든, 전등록이든 벽암록이든 무문관이든,
육조단경이든 언제나 읽는 사람의 자기 깜냥으로만 해석될 뿐이다. 철학 대중화의 전도사로서 비틀거리는 현대인들에게 긍지 높은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갈 희망의 메세지를 임제의 이름을 빌려 전해주고 싶었던 강박일 것으로 이해한다. 차라리 그들이 항시 밥줄을 대고 있는 서구의 철학자들 중에 실존주의자들도 쌔고쌨을 텐데, 하필 임제였을까....
이런 강신주 이해의 단면을 말한다고 해서 용주의 이야기 논지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우~
어떻게 마구 휘둘다보니 그의 쿳수염을 건드리기도 해버린 모양이네...마침내..^^ 그기에다 내 논지를 살며시 보듬어 주기까지 하고..허헝..그저 고마울 따름이라...
마지막
세 번째 '부-주인으로 사는가~'라는 글은 덧붙여 넣을 때도 왠지 좀 찜찜터라니...그냥 임제 부분 칼럼은 따로 쓸라고 애껴 둘라꼬 하다가 대충 전개에 별 무리가 없기는 하니깐..하면서 덧붙였는데..그런데 그게 묘하게 주인장의 심기를 건드려 버렸네..결과적으로는 얼마나 다행인고?
항상
불교 관련 해석은 너무 많은 갈래가 있어서 잘난 놈들 해석이라도 고개를 끄더득이기에는 찜찜하더라고..그래도 나야 뭐 별 다른 의의없이 읽었다.
설마
'아'에 그런 논란이 숨어있다는 소리는 이제 처음 듣는 거니까..워낙 그쪽은 읽고 고민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주인장이 짚고있는 임제 해석은 말을 하려다 만듯 하니 이 참에 주루룩 정리를 해서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있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하는 이 언급이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라'라는 교훈의 적용에 문제가 있음을 한번 정리해 보면 어떨라나?
책을 딱 보는 순간
별로 읽을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고..애가 생긴 게 벌써 골때리게 생긴 데다가 숱한 갈래 설명을 품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팍 오더라고....불가의 글에 대한 해석은 얼마나 난해하노? 무슨 정답이 보이는 것 같지가 않더라고..괜히 몸만 베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