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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1일 오늘의 역사
2022년 일본 대사관, 문재인 대통령 설 선물 반송.."상자에 독도 추정 그림 강력 반발"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설 명절을 맞아 각국 대사 등에게 보낸 선물에 독도로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이유로 일본 대사관은 이를 반송하고 강력히 항의했다
설 선물은 김포의 문배주(또는 꿀)와 매실액(전남 광양), 오미자청(경북 문경), 밤(충남 부여) 등 지역 특산물로 구성됐다.
그러나 일본 대사관 측은 선물이 담긴 상자에 독도로 추정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이유로 이날 이를 받은 뒤 곧바로 반송했다. 한국 주재 일본 대사관은 "독도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봐도 국제법상 분명히 일본의 영토"라며 강력히 항의했다.
2021년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 성폭행 혐의에 징역 10년 6개월 선고
2021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 김진욱 초대 처장 취임
2017년 에스토니아 노래혁명의 상징인 작곡가 벨요 트로미스 사망(86세)
2016년 조윤선 문화관광부 장관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현직 장관으로는 첫 번째 구속,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구속
2017.7.27 1심에서 조윤선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김기춘 징역 3년 선고, 2심에서 조윤선 징역 2년 김기춘 징역 4년 선고, 대법원 직권남용죄에 관한 법리 오해와 심리 미진을 이유로 파기환송
2014년 태국 '셧다운' 집회 지속에 방콕 등지에 비상사태 선포
2012년 이집트 하원의원 선거 무슬림정당 70% 득표 압승
2011년 소말리아 피랍 선원 구출('아덴만 여명 작전' 성공)
2011년 1월21일 대한민국의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삼호해운 소속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하기 위해 소말리아 인근의 아덴만 해상에서 벌인 작전이다
작전을 시작한지 5시간 만에 선원 21명과 선박을 모두 안전하게 구출했다
2011년 1월11일에 페르시아만 북쪽에 있는 이란의 하르크섬에서 화물을 싣고 출항한 삼호주얼리호에는 한국인 8명, 인도네시아인 2명, 미얀마인11명 등 모두 21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1월13일 아랍에미리트의 푸자이라를 거쳐서 스리랑카로 향하고 있던 삼호주얼리호는 1월15일 소말리아 해안에서 동북쪽으로 2,000km 떨어진 인도양 해역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되었다
청해부대는 최영함과 해군 특수전 여단의 병력을 동원해 2011년1월21일 새벽에 ‘아만덴 여명작전’이라고 명명한 구출작전을 시작했다
최영함의 링스헬기가 위협사격을 가하는 동안 삼호주얼리호 갑판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한 해군 특수전여단 소속 병사들은 해적들과 전투를 벌인 끝에 선원과 선박을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2010년 동물박사 김정만씨 별세
1934년 인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수의과를 졸업한 뒤 1958년 창경원(현 창경궁) 동물원에 수의사로 입사해 1995년 서울대공원 동물진료부장으로 공직을 마감할 때까지 37년 동안 근무한 우리나라 동물원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TV의 각종 동물 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해 대중들과 친숙하다. 은퇴 후 서울대학교 수의과 초빙교수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2009년 KBS 노동조합 집단 대휴
KBS 노동조합는 2009년 1월 21일 오후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열어 22-23일 이틀간 방송 필수인력을 제외한 조합원 전원이 동시에 대휴에 돌입하기로 했다. 또 설연휴가 끝난 뒤인 28일부터는 연장근로를 무기한 거부하기로 했다.
이번 집단 휴가 투쟁은 지난 16일 이병순 사장이 양승동 PD, 김현석 기자, 성재호 기자 등을 포함해 사원 8명에게 파면, 해임, 정직 등의 중징계를 내린 후 결정된 것으로써 징계 처분을 받은 사원 8명은 이병순 사장이 지난해 사장 교체 시기에 ‘관제 사장 반대’ 투쟁을 벌였던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의 주요 구성원들이다.
당초 KBS 기자와 PD들은 21일부터 집단 휴가를 내고 23일까지 사흘간 제작거부 투쟁을 벌일 계획이었으나 KBS 노동조합이 “전 조합원이 참여하는 노조 차원의 집단 휴가 투쟁을 진행하겠다” 며 일정 조정을 요청해 양 협회는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한편 이번 징계 처분은 16년 만의 언론인 대량 해고 사태로 불렸던 YTN 사태에 이어 이명박 정부 들어 두번째 언론인 해직 사태다.
2003년 단위농협 예금가입자 비밀번호 새어나가 현금카드 1000만장 교체
단위 농협 예금가입자의 현금카드 비밀번호가 유출돼 1000만명에 달하는 전국 단위농협 예금가입자의 카드를 모두 교체하는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농협은 “2002년 12월 중순부터 2003년 1월 초까지 서울과 경기, 충남 등지에서 단위농협 예금가입자 10여명의 예금 5000여만원이 예금주들도 모르게 인출되는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농협은 카드 위조단이 고객이 버린 예금청구서 등을 통해 알아낸 정보로 현금카드를 위조한 뒤 고객 비밀번호를 이용, 현금을 빼낸 것으로 보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농협은 사고의 확산을 막기 위해 단위농협 발행 현금카드를 모두 교체하기로 하고
전국 카드 1000만장을 교체 하였다
1998년 요한 바오로2세, 쿠바 방문
1995년 세계화추진위원회 출범
1992년 경상대 박물관 발굴팀, 경남 합천군 성산리 대형토분 6호에서 가야시대 유물 205점 발굴
1992년 후기대 입시 시험지 유출사고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발족
노동자, 농민 등 8개 부문단체와 전국 12개 지역단체, 2백여 개별단체가 총망라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이 1989년 1월 21일 1천1백여 전국 대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연세대 대강당에서 결성됐다. 당시로서는 국내 최대규모의 민족민주운동연합체였다.
1987년 대통령선거, 1988년 국회의원선거를 통해 심한 분열양상을 보였던 민족민주운동단체들은 노동자, 농민 등의 기층 대중운동의 성장을 토대로 1987년 10월경부터 민족민주세력의 구심을 형성하기 위한 `전국민중운동연합`건설논의를 시작, 1988년 9월 2일 `전국민족민주운동협의회 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이날 비로소 결성대회를 갖게 됐다.
노동자,농민 등 8개 부문단체와 전국 12개 지역단체 연합으로 결성된 전민련은 개별단체 200여 개를 망라한 해방이후 최대의 민족민주운동단체로 1970년대의 명망가 위주 재야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중운동의 토대위에서 민족민주운동을 새롭게 발전시키려는 노력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들은 결성선언문에서 진정한 민중해방을 실현시키기 위해 반외세 자주화운동, 반독재 민주화운동, 조국통일운동에 매진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1984년 한국-사우디아라비아, 항공협정 체결
1980년 북한올림픽위원회 모스크바 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인 회담을 판문점에서 갖자고 일방적으로 통보
1980년 이란항공 보잉 727기 이란의 셀브로즈산맥에 추락 128명 사망
1977년 카터 39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
1976년 초음속 콩코드기 파리와 런던에서 첫 상업취항
프랑스와 영국이 공동개발한 초음속여객기 `콩코드` 2대가 1976년 1월 21일 각각 100명의 승객을 태우고 처음으로 상업비행을 시작했다. 1대는 프랑스항공기로 파리를 출발 다카르를 경유해 리우데자네이루로 향했고, 또 1대의 영국항공기는 런던을 출발 페르시아만으로 향했다.
콩코드의 속도는 마하 2.25로 전장길이 62.1m, 날개길이 35.5m, 정원은 128명이었다. 콩코드는 드골 대통령의 제안으로 개발됐다. ‘화합’을 의미하는 ‘콩코드(Concorde)’는 영·불 협력관계의 상징이기도 했다. 1962년 양국의 콩코드 공동개발협정 성립 이래 양국은 140억달러라는 거액의 비용을 투입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대당 가격이 약 190억달러가 됐고 더구나 초음속비행때문에 연비가 나빠 구입하려는 회사가 없었다. 300대 생산을 예상했던 기대와 달리 콩코드는 겨우 20대 생산되었고 그나마 상업비행에 투입된 것은 14대뿐이었다. 또한 좌석이 100석밖에 안 돼 대서양 왕복요금은 1만2000달러나 해서 억만장자나 영화배우들이 주로 타고 다녔다.
콩코드는 1969년 3월 2일 첫 시험비행에, 10월 1일 초음속비행에 성공했다. 1970년 11월 4일에는 1백2번째 시험비행 만에 마하 2의 고속으로 53분간 순항하는 기록을 세웠다.
콩코드는 경제성 관문을 넘지 못했다. 비행기를 공동제작, 운행해 온 영국의 브리티시항공(BA)과 프랑스의 에어프랑스는 기체 노후에 따른 유지비 부담을 이유로 운항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첫 시험비행을 한지 34년, 상업비행을 시작한지 27년 만인 2003년 10월 23일 비행을 끝으로 퇴역시켰다.
1974년 비상고등군법회의 검찰부, 김경락 목사 등 11명 구속 발표
1974년 한국과 독일 비자면제협정 체결
1968년 북한 무장공비 31명 서울침입
1968년 1월 21일 휴전선을 넘어 서울에 침투한 북한의 특수부대원 31명이 김일성의 청와대 습격과 박정희 대통령 등 정부요인 암살지령을 받고 서울에 잠입했다. 북한 124군 소속 특수부대원인 이들은 밤 9시가 넘어 자하문 고개를 넘어 경복고등학교를 지나 청와대로 향했다.
이틀 전 나무꾼의 신고로 비상경계에 돌입해있던 군경의 불심검문에 걸렸으나 훈련을 마친 군부대 행세를 하며 계속 청와대로 향했다. 의심을 풀지않은 군경이 따라붙자 정체가 드러난 것으로 착각한 공비들은 기관총을 난사하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뒤따라 붙던 최규식 종로경찰서장이 즉사하는 등 우리측 군경에 피해를 입히며 세 갈래로 흩어져 도주하던 공비들은 경복고등학교 후문 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공비측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김신조가 생포된 것은 이튿날 새벽 1시 30분쯤, 인왕산 기슭에서였다.
공비소탕작전은 31일까지 계속돼 27명을 사살했으나 나머지 3명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우리측의 피해도 적지않아서 민간인을 포함해 32명이 전사하고 52명이 부상당했다. 1.21 사태로 정부는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군사도로인 인왕·북악스카이웨이를 건설해 대비책을 마련했다.
1968년 시인,교육자 신동명 사망
1966년 월남전 4일간 구정휴전 발표
1965년 이란 수상 만수르 피격
1963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족
1961년 통일사회당 결성(대표 이동화)
196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콜브로크 광산 폭발 437명 사망
1959년 평화시장에 대화재
1954년 세계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노틸러스호 진수식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인 노틸러스호가 1954년 1월 21일 진수식을 가졌다. 영어로 `앵무조개`란 뜻을 가진 노틸러스는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사(社)가 건조한 것으로 길이 97m, 배수량 3180t으로 장시간 잠수할 수 있는 세계최초의 잠수함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잠수함은 수중에서 축전지에 의존해 주행한 탓에, 8kn(노트)의 속력으로는 1시간, 3kn의 속력으로는 20∼40시간밖에 항속(航續)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이 당시의 잠수함은 전지의 충전을 위해서 수시로 부상해야하는 결정적인 약점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노틸러스호는 가압수형(加壓水型) 원자로에서 만들어진 증기로 터빈을 돌려 동력을 공급받아 움직이며, 1만 5000 마력으로 잠수상태에서 20kn 이상의 속력으로 항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속력을 거의 변함없이 유지할 수도 있었다. 1958년 8월 W.R.앤더슨을 함장으로 하여 극점에 도달, 북극해의 잠항(潛航) 횡단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80년 항해임무를 마친 후, 1985년부터 코네티컷주 뉴런던에 있는 `미군함 노틸러스호 기념 및 잠수함박물관`에 전시됐다.
이 노틸러스호는 프랑스의 소설가 쥘 베르느(Joules Verne)의 `해저 2만리`라는 소설에도 등장한다. 인간의 바다 오염에 분노를 느낀 네모 선장이 노틸러스라는 잠수함을 타고 배들을 파괴하는 줄거리로 된 과학 공상 소설이다. 소설 속의 나오는 잠수함 노틀러스호는 공상 속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나 인류 최초의 잠수함이면서도 원자력 잠수함의 기본 개념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1954년에 미국에서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의 이름도 바로 소설 속의 이 잠수함 이름을 그대로 따와 지은 것이다.
1951년 일본 소설가 미야모토 유리코 사망
1950년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 사망
1949년 장개석 총통 사임
1941년 스페인의 오페라 가수 플라시도 도밍고 출생
1940년 미국 프로 골프 선수 잭 니클라우스 출생
1939년 조선변호사협회 인권운동 전개
1931년 페루 무장 게릴라 역사상 처음으로 항공기 납치
1930년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 런던서 해군군축회의 개막
1924년 레닌 사망
러시아 공산당을 창설하고 10월혁명을 주도한 소련 최초의 국가원수 레닌이 1924년 1월 21일 고리키에서 네 번째 발작을 일으켜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54세였다. 오랜 기간의 혁명활동과 그에 따른 과로가 1921년 중반부터 극심한 두통으로 발전됐고 1922년 5월에 첫 발작을 일으켰다. 1923년 3월에 발병한 세 번째 정신착란으로 거의 식물인간 상태가 된 레닌은 사망한 뒤 스탈린에 의해 방부처리돼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지하에 안치됐다.
1870년 볼가 강변의 심비르스크에서 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난 레닌은 1887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암살계획에 연루돼 처형된 맏형 알렉산드르의 영향으로 혁명에 뜻을 두기 시작했다.
1870년대 플레하노프에 의해 러시아에 도입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여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고 이후 1905년 혁명운동에 투신하여 체포와 유형의 세월을 거친 뒤 1907년 국외로 망명했다. 1917년 2월혁명이 발발하자 귀국해 마침내 11월 7일 무장봉기로 과도정부를 전복하고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표방하는 혁명정권을 수립했다. 1919년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창설했다.
그는 러시아 10월혁명의 중심인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후진국 러시아에 적용함으로써 러시아파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킨 혁명이론가이자 사상가였다. 레닌은 10월혁명 이후 최근까지도 마르크스 이후 가장 위대한 혁명사상가인 동시에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혁명지도자로 인정받아 왔으나 동구권 몰락과 소련의 해체로 그의 동상이 철거되는 등 수모를 당했다.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 창립
1921년 찰리 채플린 영화 `키드` 개봉
1919년 고종황제 승하
1919년 아일랜드 독립 선언
1916년 `학지광` 발매 금지
1915년 시가지에 이정표 등장
1905년 프랑스 패션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 출생
1903년 브로드웨이 `오즈의 마법사` 초연
1901년 소설가 최서해 출생
1895년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발렌시아가 출생
1892년 해왕성을 발견한 영국의 천문학자 애덤스 사망
1859(조선 철종 10) 이준 열사 태어남(함경북도 북청)
서재필 등과 함께 독립협회 조직 초대 평의장, 친일단체 일진회에 맞서 공진회 조직
1907년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고종밀서 갖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참석했으나 거부당한 뒤 울분을 못 이겨 앓다가 7월 14일 세상 떠남, 그의 시신은 56년만인 1963.9.30 서울 수유리묘지로 이장
1831년 조선조 화가 오경석 출생
1793년 프랑스 루이16세 처형
프랑스 루이16세가 1793년 1월 21일 파리의 혁명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할아버지 루이15세의 뒤를 이어 1774년 왕위에 오른 루이16세는 선량하고 성실했지만 의지가 약하고 결단력이 부족했으며 난국을 타개할 만한 능력이 부족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의 발발로 파리시민의 감시하에 놓인 루이16세는 국외탈출을 시도하다가 바렌에서 체포됐다.
그러나 1791년 헌법성립과 함께 입헌군주제 원수 지위가 보장되었으나 1792년 파리시민의 재차 봉기로 체포되어 탕플탑에 유폐되자 왕권이 정지되었다.
그러던 중 그가 혁명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외세와 결탁했다는 혐의가 포착되어 국민공회로부터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처형으로 부르봉 왕가도 마지막을 고했다
1516(조선 중종 11) 주자도감 설치 구리활자 병자자 주조
919(고려 태조 2) 만월대 왕궁 짓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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