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 직업을 대상으로 한 직업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최근 (3월 17일) 조사에서 미국과 독일은 소방관이 1위고 한국이 13위인데 반해, 한국은 국회의원이 1위고 미국과 독일은 각각 12와 10위다. 한국에서 정치하는 사람은 모두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게 꿈일 게다.
지난 토요일(23일) 22대 총선 대구에서 출마하는 동기의 사무실 개소식에 다녀왔다. 그는 전국 최다 공직선거 이력이 있다. 이번이 17번째 출마다. 그는 2008년 재보궐 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에서 구청장으로 당선된 이력이 있다. 하지만 청장을 사퇴하고 국회의원에 도전했다가 낙선했다.
이 친구 이름을 대면 60세 이상 어지간한 대구사람은 다 안다. 그 사람 또 나오나? 대단하다. 도대체 정신이 있나 없나? 등 평가는 다르다. 아마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평가하는 거 같다. 좁고 허름한 2층 사무실에 꽤 많은 동네 주민들이 모였다. 난 이 친구와 대구 경대사대부중고 6년을 같이 다녔고, 대학은 다르지만 같은 전공을 했다. 그는 경북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경북대학교 철학과를 나와 대구 협성 재단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정치에 뛰어든 셈이다.
아직도 기억이 또렷하다. 친구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정치에 꿈을 꾸었다. 학교 운동장을 같이 걸으면서 그가 한 말이다. ‘영필아 니 꿈은 뭐고? 난 솔직히 꿈이 없을 때였다. 아니 꿈도 꾸기 전이었다. 그는 나지막하지만 묵직하게 말한다. 나는 국회의원이 되어 조국 통일을 앞당기는 일을 할 거다. 그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경북대 철학과에 들어갔고, 박사학위 논문도 플라톤의 정치철학에 대해 섰다. 논문을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이 과정 역시 꿈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낙선 다음 날부터 다시 다음 선거를 준비해왔다. 구석구석 그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오죽 다녔으면 그를 두고 맨홀 뚜껑 일련번호까지 다 외운다고 했을까. 사무실 개소식 때 그의 아내가 마이크를 잡고 또 도전하는 남편을 응원하는 말을 한다. 여러 번 하다 보니 후보보다 연설이 더 낫다. 평생 같은 꾸면서 걸어온 동반자이다. 아내 역시 중학교 미술교사였다. 남편 따라 교사직을 일찍 그만두고 남편과 같이 어렵고 험한 길을 같이 걸어온 셈이다.
그는 이 지역의 정치 지향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는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겨레민주당 후보를 시작으로 제14대(1992) 민주당, 제15대(1996) 무소속, 제16대(2000) 민주국민당, 제17대(2004) 열린우리당, 제19대(2012)·제20대(2016) 선거에는 각각 무소속으로 출마했다.(출처 : 경북매일)
그는 이번에도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보수세가 강한 대구에서 어려운 길을 걸어 온 셈이다. 하지만 그는 이 길을 한 번도 후회하지는 않았을 거 같다. 만약 후회했다면 낙선 다음 날부터 다시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어려운 길을 다시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난 확신한다. 그가 꿈꾼 건 국회의원 배지 자체가 아니라, 조국 통일이라는 대업을 완수하는 거라는 걸. 그는 젊은 시절 소위 18번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 눈치 안 보고 우직하게 불렀다.
우린 남의 삶을 너무 쉽게 재단한다. 그가 국회의원 병에 걸렸다고. 그렇다 남이 보기엔.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만둘까? 그렇지 않을 거 같다.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이 보기엔 터무니없는 짓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에겐 아직 이루어야 할 꿈이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하이델베르크대학 교수직을 정중히 사양하고 안경렌즈를 가는 직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보다 여섯 살 아래지만 30년을 더 산 루이 14세보다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 어떤 삶을 선택하는가는 각자의 몫이다. 그가 선택한 길이 힘든 만큼 고귀한 것이다. 고귀한 것은 드문 것인데 친구만큼 드문 길을 걸어온 사람이 또 있을까? 대구 소방공무원으로 열심히 사는 아들이 무척 자랑스러운 오늘 아침이다.
첫댓글 _()()()_
무슨 일을 하든지 열심히 하면 되고
착하게 살면 되는 것
얼마를 가지고 있든지 자족 만족하고
어떤 상황이든지 감사 감사하며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면 되는데
문제는 이게 쉽지가 않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에 엄청 많이 나오는 사람이 있다고 아는데
이 글을 보니 애잔하다
물론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돈도 들것이고 여러 가지로 힘들텐데.
되는 것보다는 선거에 나가는데 더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기도 하네
원하는 대학가기 위해 삼수 사수 오수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고시 패스 하기 위해서는 삼수 사수는 기본이고 오수 육수까지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국회의원 되기 위해 10번 이상 나왔다면 보통이 아니네
몇 번 아니 한번이라도 당선되었다면 그 맛으로 또 하고 싶어서 한다고 하지만
계속 떨어졌는데도 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두 세번이나 몇 번 하고 안되면 접는 것이 맞을 것이다
중독?이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옛날 법대 친구가 고시공부가 마약과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독하고 끊기 힘들다는 뜻
여러번 떨어지길래
너무 사법고시에만 집착하지 말고 다른 시험도 보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
그후 준공무원인 대한법률구조공단에 합격해서 60너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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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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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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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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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