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24일) 고령장을 다녀왔다. 지금은 대구에서 고령까지 30분이면 간다. 하지만 고속도로가 없던 예전엔 버스로 꽤 시간이 걸렸다. 대구에서 고령을 거쳐 성주 수륜을 지나 가천(창천)까지 주말이면 다녔다. 아내의 초임 발령지가 성주 가천고등학교였다. 아내는 처음은 대구에서 매일 네 시간 이상을 버스로 출퇴근했다. 그러다가 애를 가지면서 학교 인근 작은 방을 얻었다. 주말이면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들고 이곳을 다녔다. 3년 동안 이 길을 그렇게 다녔었다.
고령은 행정상으론 경상북도에 속해 있으면서도 경상남도 합천과 이마를 맞대고 있다. 그런 만큼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북 북부지역과는 지역적 특성이 다르다. 경상북도 최남단에 위치해 있어 퇴계(退溪) 이황의 학풍을 이어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경상남도 남명(南冥) 조식의 영향도 계승한다. 그러면서도 경북 북쪽의 퇴계보다는 경남의 남명학의 영향을 좀더 받는다. 그 예로 남명 사상에 기반한 의병활동이 일어난 곳이다. 죽유(竹牖) 오운(吳澐, 1540~1617)이 대표적 인물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곽재우(郭再祐)의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수병장(收兵將)으로 활약했다. 오래전 대구교육대학교 다문화강사 연수에 참여한 지역 이주여성을 인솔해 고령 쌍림에 있는 죽유 종택을 찾은 적이 있다. 당시 안내를 해준 오용원 박사가 죽유의 15대 종손이다. 현재 안동 국학진흥원에 재직하고 있다.
고령장이라 해서 다른 장날 풍광과 그리 다른 게 없다. 눈에 띄는 건 뒷고기를 이곳저곳에 앉아서 구워 먹는 사람들이 많다. 돼지고기를 팔려고 나누고 자르면서 떼어낸 '잡다한' 부위들을 일컫는다. 일종의 자투리 고기다. '뒤로 나가는 고기', 즉 정식 판매하지 않는 고기다. 너무 맛이 좋아 주인이 뒤에 숨겨놓은 고기란 설이 더 맞는 거 같다.
이 시장에 오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고령대장간이다. 주인은 젊은 분이다. 아마 대를 이은 집인 거 같다. 대장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망치와 모루다. 모루는 쇠를 불에 달구어 올려놓고 망치로 두르려 원하는 물건을 만드는 작업대다.
망치와 모루 전술이란 게 있다. 보병대가 적을 저지하는 동안 기병대가 측·후방을 타격한다. 밀집대형의 보병대가 마치 모루처럼 전진하는 데 약점은 측·후방이 뚫리기 쉽다. 이점을 감안하여 적의 측면이나 후방을 공격하는 게 망치 전술이다. 중무장한 모루 부대는 기동력이 떨어진다. 무장력은 약하지만 기동력은 강한 망치부대다. 망치와 모루 전술은 잘만 사용하면 승전한다. 기동대가 올 때까지 견고한 모루 역할을 하는 게 보병대다. 고대 그리스 시민군인 팔랑크스 대형이 견고한 모루를 닮았다. 알렉산드로스나 한니발이 주로 사용한 망치와 모루 전술이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에서 사용한 학익진은 망치와 모루 전술의 탁월한 예다. 학의 날개처럼 펼치면서 적의 측면과 후방을 효과적으로 공격한 전술이다.
대장간을 볼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북한에 가족을 두고 홀로 남으로 내려오셔서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당신이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대구 중구 반월당의 작은 대장간이다. 아버지가 사용하던 모루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모루는 당신이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망치질로 달랬던 당신의 흔적이다. 남에 와 어머니를 만나 낳은 5자녀에 대한 사랑이 불처럼 타올랐던 곳이다. 건장한 남자도 들기 힘든 해머로 아버지가 요구하는 대로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게 때론 빠르게 혹은 느리게 내려쳤던 어머니의 허리는 거의 90도로 휘어지셨다. 그래도 아직 자식들 곁에 건강하게 계셔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당신의 망치와 모루는 모난 자식을 사랑으로 마름질한 증표였다. 자식들을 위해 당신의 등짝을 모루처럼 기꺼이 내놓으시고 수없이 두들겨 맞으셨던 부모님이다. 때론 모루처럼 무겁게 때론 힘들어하던 자식들을 망치처럼 도닥거려주시던 나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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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을 위해 당신의 등짝을 모루처럼 기꺼이 내놓으시고
수없이 두들겨 맞으셨던 부모님~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님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