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총 Webzine] 시민이 과학자가 되는 시대··과학의 문턱을 낮추다!

[이윤배]

시민이 과학자가 되는 시대··과학의 문턱을 낮추다!

▶ 2024년 5월 10일(금)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제223회 한림원탁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시민과학’이라는 용어가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하면서, 시민들이 과학에 참여하여 과학 발전을 촉진하고 일반 대중과 과학자 간의 긴밀한 소통 기회를 제공하며 과학문화 확산에도 기여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시민과학’의 현재와 미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10일 ‘시민, 과학자가 되다’를 주제로 제223회 한림원탁토론회를 개최했다.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과학적 탐구에 대중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전문 과학자만이 아니라 대중들도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과학 커뮤니케이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번 토론회가 평범한 시민들이 과학 연구에 직접 참여하고 과학적 발견과 지식의 확산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보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시민과학이란 무엇인가?

포럼 첫 순서로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가 ‘시민과학이란 무엇인가? 전통과 최근 동향들’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구글 앤그램 책에 ‘시민과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1984년으로,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커슨(Kerson)의 ‘환경을 위한 연구실(Lab for the environment)’라는 논문에서 ‘시민과학’이라는 단어가 정의됐다”며 “시민과학은 과학과 시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불명확한 난제에 맞서기 위해 정부가 이해관계자 다원주의를 포용할 것이 요구되고 있는데, 여기서 시민 과학적 관점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시민과학의 사례로는 ‘세포 슬라이더(Cell Slider)’와 ‘나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Patientslikeme)’ 등이 있다. '세포 슬라이더'는 시민자원봉사자들이 이전 연구에서 얻은 유방암 종양 샘플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로, 시민과학자들이 암세포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는 후속 프로젝트를 촉발시켰다. 또한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소셜 네트워크인 ‘나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 프로젝트에서는 시민 자원봉사자들이 약물 부작용과 치료의 영향에 대한 개인 건강 데이터를 업로드하여 만성질환 치료를 위한 새로운 지식을 개발하고 환자의 삶을 개선하고자 했다.

홍 교수는 “한국에서의 시민과학은 ‘사회문제해결형 R&D’의 범주에 속한다. 대표적인 사업이 리빙랩으로, 생활 속의 문제를 시민 주도로 해결한다. 리빙랩은 시민과 과학자가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이다. 2024년 현재 과기정통부가 주관하는 가장 유사한 사업은 한국연구재단의 ‘국민공감·국민참여 R&SD 선도사업’이다. 하지만 이 사업도 올해 종료된다. 올해부터 새롭게 예정된 시민과학 관련 프로그램과 사업은 없다. 이외에 리빙랩 등 시민참여형 과학은 지역 단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회문제해결 R&D보다 국제적 트렌드에 적합한 시민과학으로 다시 범주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가 ‘시민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사진: KOFST, 클릭 시 이동)

시민의 힘으로 우주를 탐구하다

두 번째 순서로 박창범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가 ‘시민과 함께 과학 프로그램’을 주제로 발표했다. 박 교수는 “‘시민과함께과학’은 고등과학원이 국내외 과학계와 시민 참여를 바탕으로 진행 중인 프로그램”이라며 “세계 각국에서 ‘시민과학(Citizen Science)’ 또는 유사한 이름으로 시민들이 직접 과학적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과학자들과 시민의 협업이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우리 국민의 과학에 대한 관심이 최근 크게 향상되어 그 수준에 맞는 과학 교육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하기에 시민이 참여하는 과학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국민의 과학화를 추진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추진 배경을 밝혔다.

‘시민과함께과학 프로그램’의 주요 과제는 ‘모두의 은하 연구소’와 ‘뮤온 입자 찾기’다. 특히 ‘모두의 은하 연구소’에 대해서 박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로 대규모 은하 분광탐사를 독자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80만 개 은하 자료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시민과함께과학’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은하 영상을 보며 객관식 질문에 답하고 은하 형태를 분류한다”며 “이는 은하 생성 과정을 이해하는 연구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박 교수는 “시민과함께과학 프로그램의 활용 지향점은 참여자들이 과학 연구의 즐거움을 느끼고, 자신의 노력 결과가 과학적 연구 성과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연구 재참여를 통해 지속적으로 과학계와 연결될 수 있게 한다”라며 “과제로부터 생산된 자료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각 과제마다 자료를 가공하여 프로그램 웹페이지를 통해 대중에 공개한다. 원자료는 이를 활용한 연구를 수행하려는 과학자와 시민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며, 공개발표회를 통해 결과물을 공유하고 확산시킬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 박창범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가 ‘시민과함께과학 프로그램’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사진: KOFST, 클릭 시 이동)

시민과 함께한 선충 연구 프로젝트

세 번째 순서로 김준 충남대 생명정보융합학과 교수가 ‘시민과 함께한 선충 채집 및 DNA 분석 사례’를 주제로, 서울시립과학관과 함께한 시민과학 프로젝트 경험에서 얻은 시민과학의 성공적 운영 노하우를 소개했다. 그는 “다양성이 높은 선형동물에 대한 연구는 전국 곳곳에서 썩은 열매 등을 채집해야 하는 연구다. 그렇다면 ‘누구나 썩은 과일을 주워올 수 있으니, 누구나 연구에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민과 함께한 선충 채집과 DNA 분석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며 “썩은 식물을 수집하고 야생 선충을 골라내서 DNA를 추출한 후, 염기서열해독기법을 활용해 그 정보로 종을 판별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주변에서 나뭇잎 채집을 했지만 열매가 없어 선충 빈도가 낮았고, 선충이 너무 작아 일주일은 고생을 해야 했다. 또 DNA 추출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오래 걸려서 어려움이 많았다. 원래 실험은 꽤 오랫동안 숙달해야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실험을 대충하고 쉬운 것만 직접 수행할 수 있도록 권유했다”며 “제주도 고등학교에서는 사시사철 썩은 과일에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그래서 직접 채집하고, 유전자 증폭 등 실험을 진행하여 선충 종 이름도 확인하고 신종도 찾아냈다. 실제 채집한 선충을 이용한 연구를 유전체 분야 주요 학술지에 발표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결국, 시민과 함께하는 과학을 위해 김 교수는 “연구실에서 하던 일 중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부분을 분리했다. 서울시립과학관의 지원을 받아 예비 실험을 진행하면서, 어려운 부분을 생략하고 필수적인 부분도 단순화하여 누구나 할 수 있는 실험으로 최소화했다. 단계별로 난이도를 다양화하여 진행했다”며 “실제로 썩은 과일을 줍고 관찰만 하는 연구를 하나로 분리하고 학생을 대상으로 실험을 극히 간소화해서 진행하도록 했다. 실험결과가 안 좋더라도, 결국 하나는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김준 충남대 생명정보융합학과 교수가 ‘시민과 함께한 선충 채집 및 DNA 분석 사례’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사진: KOFST, 클릭 시 이동)

비과학적인 사고, 소통 부재가 사회 발전 걸림돌

발표 후, 황호성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를 좌장으로 하고 박인규 서울시립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와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 박진희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 김원섭 동아사이언스 교육기획연구소장이 패널로 참여한 가운데 지정토론이 진행됐다.

박인규 교수는 “시민과학은 일반 시민들이 과학 연구에 참여하는 활동을 말한다. 통상적으로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전문가 집단의 관점에서는, 시민들의 과학 연구 활동 참여가 데이터 수집과 초기 분석 등 일종의 도움 차원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시민들의 참여가 필수적이고 본질이 과학 탐구 프로그램도인 것도 있다. 하지만 최신의 과학 연구가 매우 고도화되어 있고 고가의 연구 장비를 사용하며 데이터 분석 차원도 매우 전문성을 요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연히 시민들의 참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시민과학 프로그램도 교육이나 홍보 차원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진희 교수는 “시민 참여가 강조되는 시민과학 활동이 AI 연구와 결합됨으로써 사회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고 공정한 AI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머신러닝 기반 AI에서는 어떤 데이터셋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라며 “자료 빈도가 낮은 아프리카 언어 사용자들이 온라인을 통한 자발적 모임을 결성하도록 돕고 이 언어 데이터를 수집, 평가, 분석, 해석함으로써 영어를 39개 아프리카 언어로, 3종의 다른 아프리카 언어를 영어로 번역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김원섭 교육기획연구소장은 “우리는 비과학적인 사고와 단절된 정보, 소통과 교류의 부재가 사회 발전에 얼마나 큰 걸림돌인지를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시민과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세계적인 흐름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시민과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거의 없다. 게다가 아시아에는 시민과학협회도 없는 실정”이라며 “정부 지원 없이 민간에서 11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지구사랑탐사대와 같은 모델은 미국 시민과학 컨퍼런스에서도 사례를 찾기 어렵다. 여기서 얻은 경험이 공공의 영역으로 좀 더 연결되고 확장되기 위해 시민과학에 대한 논의의 장이 활짝 열리기를 기대한다”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