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부족을 걱정하며 춘천운동장을 빠져 나간다.
전국에서 모여든 22,000여 아마튜어 마라토너가 자기 기록대별로 무리를 지어 달린다.
내 최고 기록은 3시간 17분.
그러나 오늘은 목표시간을 지난 동아대회보다 15분을 늦춰서 3시간 40분으로 했다.
최상 3시간35분, 최하 3시간45분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사람들은 그 10분이라는 게 34분지 1이니까 대략 3% 정도인데
그걸 어떻게 관리할 수 있냐고 물을 것이다.
출전경력이 15회쯤 되는 나는 그걸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 마라톤의 진수이고 마라톤 그 자체이다.
마라톤을 할 때는 자동차 경주, 마차 경주 때와 마찬가지로 ‘racing’라는 용어를 쓰는데,
그 단어 속에는 관리,조정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천천히 언덕을 오른다.
첫 5Km를 뛰면서 오늘 하루를 버틸 내 체력을 점검하고
전체 목표와 전후반 레이싱 페이스를 결정할 것이다.
3Km의 완만한 언덕을 꾸준히 올라서자 경쾌한 내리막길.
속도가 너무 붙지 않도록 유의한다.
‘목동마라톤클럽’ 붉은 조끼가 간간히 눈에 띈다.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모임이다.
이번 대회 참가자 수가 93명으로 단체팀 중 1위이다.
우리는 매일 목동운동장에서 국가대표 출신 감독의 지도하에 체계적인 훈련을 한다.
그리고 주말에는 한강이나 남산, 아니면 호젓한 시골 산길을 택해 크로스 컨트리를 한다.
마라톤을 통해 ‘땀흘린 만큼만 보상받는다.’는 인생관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목마’팀은 가장 열성적이고 체계적인 자원봉사 응원팀을 운영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나는 청년시절부터 ‘이 사회를 개혁하여 인간다운 세상으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한
소위 운동권 출신이다. 체제를 움직여서 사회를 개편한다는 것이 결국은 땀방울을 통한 복지와 행복을 나누는 목동마라톤 모임 같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아닌가 싶다.
의암호를 지나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핀 호숫가로 난 포장도로를 꾸준히 내달려 간다.
마음속으로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겠다.’고,
또 에너지소비를 최대한 줄이는 주법을 쓰겠다고 거푸 다짐한다.
그간 풀코스를 여러차레 달려본 관록으로 몇가지 체크포인트를 지속적으로 점검한다.
모든 것을 가볍게 해야 한다. 숨도 가볍게 쉬고, 팔도 가볍게 흔든다.
특히 발바닥과 땅이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을 가뿐하게 유지해야 한다.
몸 컨디션이 정비되어 가는 동안 3시간 40분 페이스 메이커와 만났다.
60대 초반의 노익장이 목표시간이 표기된 풍선을 등에 메고
20-30명쯤 된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있다.
달리는 폼이 아주 세련되고 부드러웠다.
그 분은 단지 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기에 필요한 짧은 지식들이나 달림이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같은 것들을 툭툭 던져 준다.
다 새겨 들을 만 하다.
누가 묻는다. ‘몇살이시냐?’고.
우문에 현답이 나온다.
‘달리기 하는 판에 뭔 세속 나이를 물어? 달리는 능력이 나이 아니여?’
그리고는 덧붙인다. ‘누구나 32Km는 뛸 수 있다.
문제는 나머지 후반부를 얼마나 멋지게 마무리하냐에 달려 있다.’
마음 속에서 ‘인생사도 다 그렇지요.’라는 맞장구가 나온다.
후반부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마라톤에서 또 한번 깨닫는다.
노익장 이름은 ‘송철강’이었다.
부족한 훈련량을 관록으로 때우며 “Back to the Basic!”만 반복하면서 35Km지점을 통과한다.
초반 레이스를 내 힘에 맞춘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왔다.
목마클럽 자원봉사팀이 내주는 홍삼을 꿀물에 다려 만든 특별음료를 마신다.
발걸음이 한결 낫다.
힘이 좀 남은 것 같아 기록을 단축시켜 볼 요량으로 37Km지점부터 1Km를 내달아 뛰었다.
그러나 곧바로 시련이 찾아왔다.
고개가 숙여지고 상체에 힘이 들어가더니 발검음은 탄력을 잃는다.
연습이 부족하여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에 어떻게 추스려 지지가 않는다.
내 주제를 모르고 남은 힘을 과신한 것이다.
과유불급, 후회막급!
40Km 포인트에서 자원봉사단 응원단에서 북채를 휘두르던 아내가
북을 두둥둥 쳐대며 목이 터져라 외친다.
“여보, 힘!!!”
나는 희멀게진 눈으로 고개를 돌려 한번 쳐다본 뒤로는 터덜거리는 발걸음을 계속하여 옮긴다.
그리고 ‘걷지 않겠다. 힘이 들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다짐만 되풀이 한다.
이를 악물고 무거운 다리를 반복적으로 들었다 놓는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조선일보 기자가 이 구간을 ‘고통을 즐기는 시간’이라고 재치있게 표현했었다.
쥐가 나려는 조짐도 찾아온다.
눈까풀을 들기도 힘에 겨워 몇 미터씩은 눈을 감고 달리기도 한다.
점차 운동장이 가까워져 온다.
마침내 골인테이프를 끊었다. 3시간 40분 25초.
다행이다. 최소한의 자존심을 유지하는 레이싱을 했다.
그리고 확인했다.
연습을 통해서 기초 실력을 다지지 않은 채
기본 자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한밑천 건지겠다는 것은 오만이라고.
오직 연습만이 살 길이다.
그 많은 연습량을 소화해 낸 우리 목동마라톤 클럽 회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첫댓글 수고했어~~ 잘했어!!! 조오기 위에 우리 정다운 친구들이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우리 모두 건강하게 오래도록 살자구~!
어뜨케 3시간 넘게 뛰는지...장하다~~김태룡~!
역쉬 아랫도리는 튼튼하구만. 추카 추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