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시조작품의 계시
18세기 20년대에 엮은 시조집 《청구영언》과 18세기 60년대에 엮은 《해동가요》 그리고 20세기 초년에 편찬된 《대동풍아(大東風雅)》에 각각 실린 황진이의 시조작품 6수는 작자의 뛰여난 기교와 우리 말을 쉽고도 곱게 다룬 독특한 솜씨로 하여 후세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내고있다. 일부 학자,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을 두고 “우리 말의 아름다움과 뉴앙스를 교묘하게 살린 작품”, “인생 무상을 자연의 리치에 비추어 교묘하게 읊어낸 작품”, “예술적향기가 그윽한 주옥같은 노래”라고 평가하고있다.
황진이가 후세에 남겨 알려진 시조작품은 비록 많지 않지만 이렇듯 많은 독자들들의 호평을 받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가? 말하자면 무슨 특성을 갖고있기에 작품마다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주는가를 사고해보지 않을수 없다.
첫째, 황진이의 작품은 평범하면서도 신선미가 있는 착상에 의해 씌여졌다.
우선 그의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로부터 보기로 하자.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할제 쉬여간들 어떠리
(《청구영언》)
이 시조는 당시 종친의 한사람인 벽계수(碧溪守)라는 사람을 두고 지은것이라고 한다. 벽계수는 용모가 아름답고 시서음률(诗书音律)에 뛰여나고 묵화(墨画)도 잘 그리는 황진이를 만나더라도 유혹되지 않을것이라고 장담했다고 한다. 이 말을 전해들은 황진이는 사람을 시켜 벽계수를 개성의 경치좋은 곳인 만월대(满月台)로 오게 하고 이 시조를 불렀는데 랑랑한 목소리와 함축성있는 노래에 벽계수는 그만 도취되여 저도 몰래 타고있던 나귀등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는 바로 이런 생활실마리에서 창작적충동을 받고 쓴것이라고 한다.
그의 다른 시조 “산은 옛산이로되” 역시 그가 겪은 구체적생활이 창작적충동을 주어 짓게 된 작품이다.
산은 옛산이로되 물은 옛물이 아니로다
주야를 흐르니 옛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아서 가고 아니 오더라
(《해동가요》)
이 시조를 쓰기 전에 개성에는 서경덕(徐敬德, 1489-1546년)이라고 하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벼슬이나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 즉 성명(性命)과 리기(理氣)의 관계를 론한 유교철학 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념하고 리기론(理氣论)의 본질을 연구하여 “리기일원론(理气一元论)”을 체계화하였고 수학, 력학에도 연구가 깊었으며 저서 《화담집(花潭集)》의 저자로서 박연폭포, 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绝)로 불리우는 사람이였다. 황진이는 서경덕을 존경하고 사모하다가 나중에 유혹하려고 했지만 그의 인격에 감화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승과 제자의 의를 맺고 거래했었다. 그런 서경덕이 재능은 뛰여나도 조정의 중용을 못받고 속절없이 늙어감을 보게 되자 뜻밖에 비애에 잠기게 되였고 위대한 인물도 물처럼 멀리 흘러가버리는데 하물며 보통백성이야 더 말할것이 있느냐 하는 생각에 묻히면서 생명이 제한된 인간의 존재가 서글펐던것이다. 이런 그 자신의 생활체험이 바로 그더러 붓을 들어 이 시조를 쓰게 했던것이다.
문학창작에서 착상이란 현실속에서 작품이 될수 있는 생활의 실머리(단서)를 발견하고 창작적충동을 받게 되는 첫 생각이며 작품의 내용을 머리속에 구성하는 일을 가리킨다. 상술한바와 같이 벽계수나 서경덕과의 인간관계에서 벌어진 잊을수 없는 사건이 황진이에게 창작적충동을 주었고 붓을 들려는 첫 생각을 갖게 하였으며 작품의 내용을 머리속에 구성하도록 재촉하였던것이다. 따라서 이런 착상은 황진이만이 느끼고 생각할수 있었다는 점에서 신선감을 주게 되는것이다.
둘째, 황진이의 작품은 수사학적표현수법을 능숙하게 적용하여 인물 혹은 사건의 구체적형상을 선명하고 생동하게 표현하였다.
우선 비유법을 능란하게 사용하였다.
비유법이란 형상적사유의 중요한 수단의 하나로서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다른 사물과 현상에 비교하여 형상적으로 표현하는 수법의 하나이다. 작가, 시인들은 비유법에 의하여 아름다운 경지와 격조를 창조하고 심금을 이끄는 예술적매력을 산생시킴으로써 선명하고 생동한 형상을 교묘하게 부각한다.
황진이의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의 초장 “청산리 벽계수야 / 수이 감을 자랑마라”를 보더라도 “청산”과 “벽계수”를 시적묘사대상으로 제시하고 변함없이 솟아있는 정적상태의 “청산”과 끊임없이 변하여 흘러가는 동적상태의 “벽계수”를 대비시켰으며 “청산”을 영원한 존재의 자연으로, “벽계수”를 순간적존재의 인간으로 비유하면서 인생은 자연에 대비해 길지 않으니 살아가는 동안을 즐거이 보내야 한다는 뜻을 암시하고있다. 말하자면 이 시조는 인생의 무상함을 자연리치에 비추어 반영하고있다.
그는 또 시조 “산은 옛산이로되”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정적인 “산”과 예전과는 달리 주야로 흐르는 지금의 동적인 “물”을 대비적인 묘사대상으로 하고 “산”을 쉬이 변하지 않는 무한한 자연에 비유하는 한편 “인걸도 물과 같아서”라고 구사하며 “인걸” 즉 걸출한 사람을 물에 비유하였다. 말하자면 무한한 자연에 비하여 인걸들의 짧은 인생을 애석해하면서 서글픈 심정을 반영하였다.
다음으로 과장법을 합리하게 사용하였다.
문학작품에서의 과장법은 사물현상을 그려서 보여줄 때 실지 사실보다 확대하거나 줄여서 묘사하는 표현수법으로서 전형적형상을 창조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며 생동하고 도드라지게 보여주기 위한 묘사수법이기도 하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베여내여
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시는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청구영언》)
이 시조를 알기 쉽게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동지달 긴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여내여 / 봄바람처럼 따스한 이불아래에 서리서리 뭉치여 넣어두었다가 / 정든 님이 오신 밤이면 굽이굽이 펼쳐내여 그 밤이 더디 새게 길게길게 이으리라.”
이 시조의 초장에서 밤의 “허리”란 말은 불성구이지만 형상적과장어로
는 아주 생동한 말이다. 이 경우 독자는 “기나긴 밤의 허리”로 받아들이는것이 아니라 “기나긴 밤시간의 한토막”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한허리를 베여내여”를 “긴 시간을 잘라내여”로 생각하게 되는것이다. 그러므로 이 과장어는 생경한것이 아니라 기발한 사유로 구사된 생동한 언어이다. 그리고 “춘풍이불” 역시 함축된 과장어로서 “춘풍”이라면 “따스한 봄바람”을 떠올리게 되기에 “춘풍이불”이라면 “춘풍처럼 따스한 이불”을 련상하게 되는것이다. 그리고 “넣었다가”라든가 “펴리라” 등도 과장어에 따르는 용언(동사)들이다. 이와 같이 시조 “동지달 기나긴 밤을”은 타당하게 과장어를 씀으로써 독자나 가창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갖도록 생동화하면서 작품의 형상성을 높이고있다.
다음으로 대구법을 능란하게 쓰고있다.
문학작품에서 대구법이란 서로 관련되는 두가지 현상을 서로 견주면서 쌍으로 대조시켜 병렬적으로 묘사하는 예술적수법의 일종이다. 아래에 시조 “청산은 내뜻이요”를 들어보기로 한다.
청산은 내뜻이요 록수는 님의 정이
록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록수도 청산을 못잊어 울어예어 가는고
(《대동풍아(大东风雅)》)
이 시조를 알기 쉽게 풀이해 옮기면 다음과 같다.
“변함이 없는 푸른 산은 바로 나의 뜻이고 / 잠시도 쉬지 않고 흘러가
는 푸른 물은 님의 정과 같은데 / 물이야 흘러가더라도 / 산이야 변할수 있겠는가 / 하지만 흘러가는 물도 제가 놀던 산이 그리워 / 울며 흘러 가는구나”
보는바와 같이 이 시조의 초장 “청산은 내뜻이요 / 록수는 님의 정이”는 하나의 시행내에서 대구를 이루고있다. 즉 “청산은 내뜻(나의 뜻)”과 “록수는 님의 정”이라는 서로 련관되는 두가지 현상을 쌍으로 대조시켰다. 이 대구는 음절수가 같고 구조가 비슷한 두 구절을 서로 병렬시켰기에 량자간의 반대되는 의미가 강조되면서 시조 언어의 표현성과 형상성이 강화되였다.
황진이의 다른 시조 “내 언제 무신하여”에서도 대구법이 적용되여있다.
내 언제 무신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 삼경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잎소리야 낸들 어이 알리요
(《청구영언》)
여기서 “무신(无信)”은 신의가 없음을 의미하고 “월침삼경(月沈三更)”
은 “달이 진 깊은 밤”을 말하며 “온 뜻”은 “올 뜻”을 말한다. 시조의 초장에서 제1구의 “내 언제 무신”과 제2구의 “님 언제 속임”이 서로 련관되는 두가지 현상으로 대조되면서 비슷한 두 구절의 병렬로써 량자간의 반대되는 의미가 강조되고 언어의 표현성과 형상성이 강화되였다.
황진이는 또 다른 시조 “산은 옛산이로되”에서도 초장에 “산은 옛산이로되 / 물은 옛물이 아니로다”라고 구사하면서 서로 련관되는 두가지 사물인 “산”과 “물”, “옛산”과 “옛물”을 서로 견주면서 쌍으로 대조시켜 병렬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대구를 이루게 하고 량자간의 상반되는 의미의 강조로 언어의 표현성과 형상성을 높이였다.
다음으로 수사학적반문법을 적절히 쓰고있다.
반문법이란 의문의 형식으로 언어의 정서적표현을 강하게 나타내는 묘사수법으로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바라는것이 아니라 주로 서정적색조를 강화함에 그 목적을 둔다.
어져 내 일이야 그릴줄을 모르더냐
있으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청구영언》)
이 시조에서 “어져”는 감탄사로서 “아!”이고 “그릴줄”은 “그리워할것을
”라는 뜻이다. 이 시조를 알기 쉽게 해설하면 다음과 같다,
“아, 나의 하는 일이여 그리워할것을 왜 몰랐더냐 / 있으라고 말했더라면 님이 왜 갔으랴마는 제 일부러 애써서 / 보내놓고 더욱 그리워하는 정은 내자신도 몰라하노라”
시조 초장 제2구의 “그릴줄을 모르더냐”는 “그리워할것을 왜 몰랐더냐"의 뜻으로서 기실은 “그릴줄을 알아야 한다”는 뜻을 반문의 형식을 통하여 긍정하는 정서적표현이다. 이와 같은 수사학적반문법을 적용한 시조들로는 황진이의 다음과 같은 작품의 중장과 종장들에서도 보이고있다.
록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청산은 내뜻이요》)
주야로 흐르니 옛물이 있을소냐
(《산은 옛산이로되》)
록수도 청산을 못잊어 울어예어가는고
(《청산은 내뜻이요》)
여기서 절선을 그은 구절들인 “변할손가”, “있을소냐”, “울어예어 가는고”는 모두 반문법으로 씌여졌다. “변할손가”의 반문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을 의문의 형식을 통하여 정서적으로 긍정한것이고 “있을소냐"의 반문은 “있을수 없음”을 의문의 형식을 통하여 정서적으로 긍정한것이며 “울어예어가는고”도 “울어예어가다”의 뜻을 의문의 형식을 통하여 긍정하는 정서적표현이다. 이런 묘사법은 황진이의 시조로 하여금 정서적표현을 강하게 나타내면서 언어구사의 다양성과 회화성(绘画性)을 다분하게 해주고있다.
셋째, 황진이의 작품은 우리 말의 고유어를 잘 골라씀으로써 친근감을 안겨주며 그 뜻을 쉽게 리해할수 있도록 하여주고있다. 더우기 한시 7언절구도 손수 짓는 수준을 가진 황진이에게 있어 이 점은 돋보이는 창작자세가 아닐수 없다. 고유어사용의 주요표현은 우선 고유명사를 골라쓴데서 나타나고있다. 이를테면 산, 옛산 , 물, 옛물, 님, 일, 내일, 내뜻, 밤, 이불, 자랑, 한허리, 동지달, 잎소리 등은 사물의 이름을 나타낸 단어 또는 합성어로서 고유한 언어들이다.
다음으로 주제를 서술, 활용하는 독립된 말인 용언을 타당하게 구사한데서 나타나고있다. 이를테면 쉬여간들, 흘러간들, 울어예어, 변할손가, 오신(날), 온(뜻), 지는(잎) 등은 사물의 동작작용을 나타낸 자동사이고 그리는(정), 못잊어, 베여내여 등은 사물의 동작작용을 표현하는 타동사이다. 그리고 기나긴(밤), 아니로다, 어떠랴, 어려워라 등은 사물의 상태나 성질의 여하를 나타내는 형용사들이다.
다음으로 부사를 적절하게 쓴데서 나타나고있다. 이를테면 “수이 감을 자랑마라”의 “수이”는 “쉽게”라는 뜻으로서 “가다”의 용언앞에 놓이여 그 뜻을 한정하는 부사로, “서리서리 넣었다가”의 “서리서리”는 긴 물건을 동그랗게 포개여 감는다는 뜻으로서 “넣다”의 용언앞에 놓이여 그 뜻을 한정하는 부사로, “굽이굽이 펴리라”의 “굽이굽이”는 휘여서 구부러지는 모양이라는 뜻으로 “펴다”의 용언앞에 놓이여 그 뜻을 한정하는 부사로써 활용되였다.
다음으로 구두어화한 언어를 타당하게 구사한데서 나타나고있다. 이를테면 “물과 같아서 가고 아니 오더라”, “있으라 하더면 가랴마는”, “한허리를 베여내여”, “서리서리 넣었다가”, “록수 흘러간들”, “수이 감을 자랑마라” 등은 평소에 주고 받는 알기 쉬운 입말이다.
이상에서 보다싶이 시조를 창작하려면 착상이 평범하면서도 새로워야 하고 착상이 새롭자면 생활을 정서적으로 체험하면서 창작적충동을 일으키는 감동적인 시적계기를 포착해야 하며 3장6구 음절작시법에 좇아 우리 민족의 풍부한 고유어에서 유일어를 골라내고 타당한 수사학적 묘사수법을 능란히 적용하여 기승전결의 정리된 구성으로 생동한 형상을 창조함으로써 의의있는 심오한 주제를 구현해야 한다는 리치를 깨달을수 있다. 이것이 바로 황진이의 시조가 우리에게 주는 계시가 아닌가고 생각한다.
중국연변 시조작가협회 김경석
2014.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