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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벗이여-
박 복 수
우리가 사람 같이 살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아겠습니까?
고령에 잘 들 을 수 없는 그대의 귀가 되고 , 비서로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딸과 사위가 해주는 밥 먹고 손녀와 같이 놀며, 자식들의 극진한 사랑과 보호를 받는 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닙니까? 우리함께 말벗이 되어 줄 수 있고 그대 뒤를 총총 걸으며 그림자가 되는 것도 너무 감사합니다. 아직도 씩씩하게 운전 하고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고맙습니다. 두 동생 내외들을 통해 극진한 사랑으로 긴 세월 변함없이 우리를 돌봐 주게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참으로 놀랍고 놀랍습니다.
한가지 두려워 떨던 일. 지난 달 엄마의 팔구 생일을 축하하고자 자식들의 효도로 하와이 쿠르즈 할 때 였지요. 마우이 섬 관광을 마치고 배로 돌아 와 점심식사를 부패로 하러 갔지요. 음식을 가지고와 바로 앉을 수 있게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고 싶어도, 음식을 들고 나오는 출구 앞에 자리를 잡았지요. 음식을 가지러 간 그대, 돌아 올 시간이 많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았지요. 마치 우리를 좋아하던 웨이터가 나를 보자, 혼자 왔느냐 하기에 나의 근심어린 답에 자기가 바로 가서 찾아 보겠다고 했어요. 한참 후 "여기 모시고 왔습니다." 하기에 어디 게시더냐 하니 건너편 다른 부패에서 나를 찾고 계시더랍니다. 놀라운 것은 음식을 가지러 간 분이 빈 손 이었어요. 관광길에 차 안에 앉아 만 있었는데도 아마 몹시 피곤하셨나 보다고 말 했지만, 혹 치매인가 가슴이 조여 왔어요. 하지만 기도로 마음의 평안을 찾았어요. 그 후 눈을 땔 수 없이 긴장해 그대를 지켜보았어요. 그러나 함박 꽃 웃음으로 그대를 안심시키려 제 딴에는 진땀 흘렸어요.
그 항해 중 있었던 일화 중 또 하나 잊을 수 없어요. 승객들을 위해 즐거운 시간을 제공하던 5층 공간에서, 하와이 갈 때 마다 만났던 우쿠렐래 선생이 하와이 춤을 지도하던 자기 부인과 ,노래와 춤으로 승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지요. 그 앞을 지나다 보니 하와이 춤을 추자고 하자 40대 중반의 저희 딸 같은 중국 여인들이 여섯 명이 참여했지요. 그들은 그때 춘 하와이 춤을 추던 나의 모습을 그 후 " 89세 라니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다" 는 과찬으로 영상을 보내 주었어요. 지금은 이메일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어요. 주변의 의자는 꽉 차 빈곳이 없어 좀 떨어진 '바' 에다 그대를 편안히 앉히고 저도 가서 합류했던 일. 끝나고 박수가 나온 뒤, 다른 게임이 이어졌었지요. 남자 일곱 명을 중앙에 세우고 여인들 이십 여명이 춤을 추며, 주변을 돌다 "STOP!" 하면 재빨리 한 남자를 차지하는 것. 결국, 남자 둘이 남고 여인은 세 명이 남았지요. 기회를 놓친 저더러 진행자가 "네가 승리 할 줄 믿었는데...." 하기에 그의 마이크를 빌려 들고 오층, 육층, 칠층, 팔층, 가득히 둘러 선 승객들을 향해 "내 나이 89, 여기까지 온 것만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니 박수갈채가 쏟아졌어요. 사회가 "그 박수갈채는 이분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라는 소리인가요?" 하자 더 큰 박수가 쏟아 졌지요. 한 번 더 준 기회는 두 젊은 여인들이 차지했어요. 나는 미소로 관중들께 키스를 보내며 " Thanks ! My love to all of you and I wish you have a wonderful cruise! God bless you all !!" 하며 퇴장하던 저의 등에 대고 박수갈채를 보내 왔지요.
그 때입니다. 놀랍게 무릎때문에 거동이 어려운 그대가 어떻게 나 의 도움 없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더구나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 그러지 않아도 거기 함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했는데....그 많은 관중 속에 어찌 자리를 얻어 앉았는지 감동했지요. 늘 곁에 있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서로 마주 보며 맛있게 먹고, 웃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 나눌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축복 받은 좋은 '벗'이지 않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흔 셋 고갯길, 무릎의 연골이 다 달아 발을 끌고 다니는, 그대 무릎이 되어 줄 수 없어 안타까워, 그저 지켜만 봐야하는 내 마음 그대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이 나이에 운전 면허 갱신에 5년을 다시 받고 너무 감사하고 힘을 얻었습니다. 인생의 해는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다 기울고 있는데, 무엇을 욕심내며 무었을 탓하겠습니까?
그래도 그대가 잠자다 꿈을 꾸고 비명을 지르면 잠든 딸도 달려오게 할 때 어쩔 수 없이 내 가슴이 철렁한답니다. 그래도 그저 주어진 인연 만들어진 삶의 테두리 안에서 가끔, 뒷들에 밤하늘의 야자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을 보며, 따뜻한 마음 하나 간직하면 족한 삶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물처럼 유유히 흐르며 사는 것도 복 받은 인생일 것입니다. 서로 더 아끼며 구름처럼 떠돌다 바람처럼 감사하며 가야지요.
탐욕에서 두려움과 근심이 생기는 것이니 그것들에서 벗어나면 무엇이 근심되고 두렵겠습니까? 자식들이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공경하며, 어진 아내들이 되어 서로 사랑하며 집안이 화목하니, 뿌리가 깊이 박힌 나무는, 베어도 움이 다시 돋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 망구가 당신의 꽃이었음을 이제야 알랐습니다. 복은 자기에게서 싹트고 화도 자기로 부터 나온다지요. 성경 말씀에 사랑은 오래 참고 견뎌야한다지요. 하루하루 더욱 조심 하며 현재의 삶을 감사하며 즐겨야지요. 먹는 나이는 거절할 수 없고, 흐르는 세월은 멈추게 할 수 없으니 덤으로 주시는 그날, 그날을 더욱 서로 사랑하며 감사로 받아드리고 감사로 떠나보내야지요.
-누구도 비껴 갈 수 없는 길-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돌아오는/ 상념마저 오가는 길목/ 앗 차 어쩌다 그렇게 불의(不意)의 사고/사거리에 쓰러진 새 한 마리// 짝 잃은 애련의 작은 새야/누워있는 님 곁에 날아와 맴돌며/ 위험이 다가오면 날아오르고/ 다시 돌아오는 애상(哀喪) "짹, 짹, 짹"// 보는 이들의 가슴마저 /적시는 애처로운 너/ 죽음은 누구도 비껴 갈 수 없는/ 생명체와 자연의 섭리인 것을//떠나보내야 할 것은 /구름 너머 저편에 떠나보내고/ 새 마음 산들 바람에 실어/ 밝아오는 태양을 맞이하게나.//
세상을 힘들게만 생각지 말고 오르기 힘들 때가 있으면 내려감이 편할 때도 있는 법, 늘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부푼 기대로 새날을 용기 있게 맞아드려야지요.
밤에 잠을 자는 동안에는 알파 (A)가 나온답니다. 그러면 엔돌핀(Endorphin)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답니다. 이 '엔돌핀' 이라는 호르몬은 피로도 회복하고 병균도 물리치고 암세포도 이기게 한답니다. 그러므로 잠을 푹 자고나면 저절로 병이 낫기도 하고 기분도 좋아진답니다. 그런데 깨어 있을 때도 알파 (A)가 나오는 때가 있는데 그것은 사랑할 때라고 합니다. 사랑할 때 마음이 흐뭇하고 기분이 좋은 것은 뇌 속에서 알파 (A)가 나오면서 동시에 엔돌핀이 분비되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 서로를 배려하고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많이 웃고 좋은 노래도 듣고, 부르며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께 감사하며 많이 사랑해야합니다. 우리는 지금 다시 신혼임을 명심해야합니다. 사랑을 띄우며 그대의 영원한 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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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게 특별한 우리 말 -
박 복 수 (Bok Sue Park)
어제 나의 작은 실수로 불쾌한 일이 있었다. " 머리 뚜껑이 열리네요." 라는 이메일은 너무 놀라운 일이다. "우리 사랑하는 천사언니~" 라고 부르는 동생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다툼은 할 생각을 말라. 현명한 사람도 무지한 자와 다투면 무지에 빠지고 만다." 괴테가 한 말이다. 참아야 '덕'이 된다는데 내가 조급하게 굴었던 탓이다.
실수는 대작가에게도 있다. 유명한 소설 '동키호테Don Quijote 는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가 쓴 것인데, 이 안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순이 있다. "동.키호테의 부하 산초(Sancho)가 당나귀 등에서 잠을 잔다. 이 때 도둑놈이 와서 당나귀 안장 네 귀퉁이를 말뚝으로 버티고 당나귀를 뽑아간다. 산초는 안장위에서 실컷 잔 후, 다음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당나귀가 없어졌다." 여기서 작가 세르반테스는 "산초는 울면서 당나귀를 몰아 그 자리를 떠났다." 고 했다. 이 모순은 유명한 작가의 실수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동키호테' 를 번역 할 때 이 대목만은 고치지 않고 그냥 실어둔다 고한다.
어제 그 이메일을 받은 나는 이렇게 답을 보냈다.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는 일, 그대의 엄청난 실수도 9년이 되 오도록 일구무언으로 덮어준 사람에겐 좀 지나친 말 같소. 90을 바라보는 노인의 작은 실수를 노망으로 잊어 주기 바라오." '부드러운 답은 분노를 물리치는 법이다.' 하신 어머니의 말씀이 기억났다. '참음' 이 왜 아름답고 힘이 있는 말인지, '미움' 이란 말은 오직 사랑만이 특효약이며 수 백 번의 기도보다' 용서'의 힘이 더 크다는 , 아름다운 자작시들을 좋은 음악과 함께 보내줬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어요. 존경하는 우리 언니~" 하고 사과의 전화가 왔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노여운 감정을 내는 것은 이미 '덕'에서 벗어난 일이다. 그리고 다툼은 대부분이 사소한 일이 원인이다. 이럴 때 꼭 있어야 하는 '덕' 은 '내게 특별한 우리 말' 이라 하고 싶다. '덕'은 원수를 굴복케 한다고 했다.
미국 의 남북 전쟁 때 남군의 총사령관은 "내가 남군의 지휘를 집어던지고 백기를 들었던 것은 북군의 대포의 힘 보다 <링컨>의 '덕'의 힘 앞에 굴복 하였던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링컨은 아량과 성실의 사람이었다고. 도이취의 시인 괴테도 "덕'과 사랑은 참음으로 얻는다." 고 했다.
나에겐 유년시절 '천자문'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외우게 하신 우리 할아버지가 붓글로 써 놓으신 우리 집의 가훈, 나를 오늘까지 지켜준 버팀목인 가훈은 '나를 찍는 도끼에도 향을 묻히는 향나무가 되라.' 이다. '덕' 과 '향나무' 이 두 말은 부족한 나를 도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언니~" 로 돌려놓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생의 모든 과정이 때마다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영원할 수 없기에 조금 모자라는 것에(먹는 것도) 만족하는 삶이 지혜이고 아쉬움과 궁핍을 모르면 고마움을 모르기에 불행해 진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을 감사하며 이 순간을 내일 떠 날 사람처럼 아름답게 마무리 하라"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어머니가 들려 주셨다. 늘 남을 배려하고 소중히 여기며 마치 돈이 필요 없는 사람처럼 베푸는 삶으로 본이 되어 주신 어머니의 뜻을 따르고 싶다.
"사람은 언제나 미워했다 사랑했다 를 반복한다. 인간이 삶 속에서 경험하는 이런 저런 일들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살아있는 동안 사랑 하라!' 고 속삭인다. 그것만이 건강하게 살아남는 길이기에. 생애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우리들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 시기심, 이기심, 무절제한 욕심, 사람을 너무 미워하는 사람, 부적합한 판정을 너무 쉽게 하는 사람, 거짓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 칭찬엔 아주 인색하고 비난만이 마음에 꽉 차 있는 사람, 그렇다고 그들을 다 무시하고 살순 없는 일,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다. 자신에게 좋은 사람만 만나고 살 수는 없다. 앞뒤가 맞지 않은 행동도 하고 남의 행복한 미소를 질투하며 사람들은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이로 인해 나는 <바람의 충고>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바람의 충고> 바람은 소리친다./삶은 내일을 사는 거라고/시기와 미움의 화살이/너를 향해 날아 와도/노하지 말라고/모든 것은 순간적/시간은 그들을 싣고/떠나기 마련/참음은 값진 것이라고/귓전을 치며 지나간다./슬픔이 파도처럼 넘실대도/위에는 부신 햇살/그 손은 너를 잡고/평온의 길로 /이끌어 준다고/바람은 이아침에도 소리친다./
결국 언제고 가는 것을 까맣게 잊은 체 한 장의 잎사귀처럼 나르며, 언제라도 떨어져 내릴 수 있음을 세월은 일깨워주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한 존재다. 이런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과 이별할 날을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가고 있다." 온순하고 겸손해야지를 매일 새김질한다. 나를 사랑으로 격려해준 모든 고마운 이들을 떠나는 날까지 사랑하고 더 사랑 받고 싶다. 사막에서도 바람은 건널 수 있듯이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자만하지 말고 거리에 오래 서 있는 나무처럼 모든 일을 참고 견디어야한다. 보답이 없어도 내게 특별한 우리 말 '덕'과 '향나무' 마음을 다 해 지키고 싶다.
한국일보 창간 46주년 과 51주년 축시를 청탁받았었다. 신문이란 실로 우리 이민사회에 말로 꽃을 피어내는, 또 샘물처럼 끊이지 않고 새로운 말들이 넘쳐흐르는 우리 말, 따라서 이 축시<절륜 (絶倫)의 징검돌>도 '내게 특별한 우리말'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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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스칸디나비아에서 만난 클래식과 사치--
박 복 수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세인트 피터스버그 (St. Petersburg)에 다녀왔다. 또 하나의 네덜란드의 수도 앰스터댐 (Amsterdam) 같다고 세인트 피터스버그 성업자인 피터대왕이 <북의 여왕> 이라 부른 아름다운 곳이다. 도시이름도 피터대왕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우리가 탄 배는 그곳에 3일간을 정박해 있었다. 둘째 날은 18세기 왕족들이 살던 궁 (Catherine Palace) 을 보러 갔었다. 유람선에서 17마일밖에 안 되는 곳을 교통 사정이 몹시 나빠 세 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저녁 식사는 궁 안의 ‘다인닝 홀'에서 정식 러시아 요리를 대접 받기로 되어있었어 모두 정장 차림인데 고스란히 싸락비를 맞아야 했다. 거기다 저녁 식사 시간이 3 시간이 지연 되 나는 물론, 모두 얼마나 시장들 했을까? “금강산 절경도 식 후 구경” 이라던데. 비속에서 경쾌한 행진곡을 울려대며 대기 중이던 왕가의 근위대의 환영을 받았다. 너 나 할 것 없이 버스 안에서의 지루함은 다 어디로 가고 캄캄한 비속을 신들린 사람들처럼 궁의 안뜰을 춤을 추며 악대 뒤를 따르고 있었다.
현관 앞에서 악대가 일 열로 서더니 옛 귀족들이 타던 마차가 저 멀리서 오고 있었다. 왕자와 공주 차림의 한 쌍이 내리더니 나비들처럼 비를 맞으면서도 의연하게 그 넓은 안뜰을 날아다니며 발레 춤으로 우리를 환대했다.
부유한 18세기의 구 러시아의 통치자였던 캐써린 (Catherine) 여왕의 사치는 상상을 넘고 도 남았었다. 배고픈 백성들에게 남겨주고 간, 일만 오천 벌의 드레스와 금과 대리석, 라피스 (Lapis) 호박 (Amber)등으로 뒤집어 쓴 궁전뿐이라니 반란이 일어나고도 남을 만 했다.
궁전을 돌아 본 후 안내 된 곳은 왕좌가 있는 방 (Throne Hall)이었다. 대왕과 황후 (분장한)가 등장하고 샴페인으로 환대해주었다.
곧 이어 관현악단의 연주가 열었다. 내가 문학소녀시절에 제일 좋아하던 세계적인 작곡가 차이코프스키 (Pyotr Ilyich Tchaikovsky)의 교향곡 제 5번 E 단조 Op. 64 와 ‘플로렌스의 추억’이 세련된 솜씨로 연주되었다. 교향곡 제 5번, 이 곡이 주는 아름다움은 참으로 뛰어나며 어두운 색채가 주는 독특한 느낌은 부드럽고 그 짜임새가 탄탄하다. 슬프면서도 달콤한 멜로디가 주는 입체감 있게 표현하는 아름다움은 세련되기 그지없다. 1 악장은 유명한 주제로 시작하는데, 유려하면서도 달콤하다.
3 악장은 경쾌한 스케르초 (scherzo) 나 3 박자의 프랑스 옛 무도곡, 미뉴에트 (Minuet)가 아닌 왈츠로 만들어졌는데, 관현악이 연주하는 왈츠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다. 4악장의 장대한 피날레에서는 처음의 주제가 다시 나타나는데, 슬픔과 우울함에 맛 서려는 차이코프스키의 의지가 이 대목의 담겨 있다. 슬픔과 고통을 감내한 인간의 의지는 결국 승리하며 장대한 클라이맥스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차이코프스키의 러시아 조국에 대한 자긍심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장식하였다는 것을 더욱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태양의 나라 이탈리아를 좋아 했다. 그래서 <플로렌스의 추억> 이란 걸작도 나온 듯싶다.
그는 짧았던 결혼생활에 실패한 이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남편의 거대한 사업을 물려받은 미망인‘ 포 메크부인으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열 한 명의 자녀를 둔, 돈 많고 감수성이 예민한 예술적인 감각이 탁월한 여인 이었다. 자식들의 음악 선생을 찾다 맺어진 인연이었다. 14년간이나 자유롭게 그의 경제적인 뒷바라지만 했다. 오직 편지 왕래로만 정신적으로 그를 사랑 헸던 것이다.
교향곡 5번을 쓰던 즈음 차이코프스키는 작곡가로서의 최고의 전성기에 있었다. 서유럽에서도 인기가 좋아 자주 해외여행을 했다. 그런 와중에 그는 규칙적으로 제발하는 우울증으로 괴로워했다. 힘들 때마다 메크부인에게 열렬히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즈음 건강이 나빠진 그녀는 요양을 위해 모스크바를 떠나 프랑스 니스로 갔다. 그녀와의 편지와의 헤어짐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이때 작곡된 대표적인 교향곡이 제5번이다. 그녀에 대한 애증과 미련, 갈망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이 이곡이다. 이 교향곡의 느낌은 슬픈 것 같지만 그보다는 내적으로 침잠하는 철학적인 깊이가 느껴지는 명곡이다. 슬프면서도 달콤한 멜로디가 주는 아름다움은 세련되기 그지없다.
차이코프스키는 이탈리아를 좋아하여 수차례 여행을 갔으며 특히 베네치아를 사랑했다. ‘이탈리아 기상곡’을 작곡한 곳도 이탈리아가 아닌가 싶다. 남유럽 지방에 대한 묘한 동경과 향수를 보인 것 같다. <플로렌츠의 추억> 은 현악 6중주곡이다. <플로렌스의 추억> 이란 말이 고색 창연한 고도(古都)에 대한 차이코프스키의 깊은 인상을 전해 주고 있다.
나 역시 이국의 도시 중 가장 선호하고 동경했던 터라 프로렌츠의 네 번째 방문에서 태어난 ‘ 피렌체 광장의 피에로’ 시로 신인상을 받았던 것은 나에겐 참으로 의미가 깊다. 더구나 나의 ‘한. 영 시와 수필문학선’인 ‘ 피렌체 광장의 피에로' 는 너무나 과분한, 꿈같은 ‘청아문학상’을 안겨주었다. 피렌체 시가지의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 가 보아도 나의 마음속에 향수의 대상이다. 또한 그곳에 초대해 준 고마운 동생내외를 생각나게 한다.
특히 처음 본 ‘두오모’ 대성당의 거대한 모습의 경이로움, 우리 부부는 미친 듯이 셔터를 눌렀다. 사진으로 담아 온 그 구름을 찌를 듯한 첨탑은 아직도 나의 가슴을 때리는 듯 흥분하게 한다. ‘플로렌스의 축제'에서는 여행자가 이 도시의 매력을 하나씩 음미하듯이 제1 주제와 제 2주제에서 차례로 펼쳐진다. 제3악장의 알레그로 (allegro) 모데라토 (moderato)는 농민들이 춤을 추는 듯한 무곡풍이 이탈리아에서 포도를 따는 농부들을 연상시키든, 러시아에서 귀리를 수확하는 농부들을 떠 올리게 하든 상관없이 즐겁다. 제4악장은 고전적 구조의 품격이 느껴지는 소나타 형식의 피날레로 달려가는 방역이 장대함을 더 하면서 마무리 했다. 차이코프스키 실내악 연주로는 그 권위에 있어 역시 러시아가 자랑하는 '보로딘 현악 4 중주단 ’ (Borodin Quartet) 을 첫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프로렌츠의 추억> 역시 ‘보로딘 4 중주단’ 의 연주가 먼저 떠오른다. ‘보로딘 4 중주단’에 의해 이 곡이 널리 보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연주가 끝나고 안 뜰을 지나 저녁 식사를 대접 받으러 갔다. 정장으로 오라고 했으니 기대가 컸었다. ‘다인닝 홀’에는 러시안 요리에다 권위 있는 러시아 민속 노래와 춤의 향연이 벌어졌다. 가히 러시안 제국의 귀족들의 사치는 백성들의 주림으로 혁명을 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 시켜주는 밤이었다.
여인들과 사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지난날들의 나의 사치는 어디서 어디까지 왔을까? 반성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 이 땅에서의 남은 날이 얼마 없기에. 비록 내 손으로 산 옷들은 아니더라도 옷장속의 걸려있는 옷들을, 당장 입을 몇 벌만 남기고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리라 다짐 했다. “너 거저 받은 것 거저주어라!” 성경 말씀이 생각났다.
차이코프스키의 못 다한 플라토닉 사랑 (platonic love) 은 바이올린의 우아한 선율에 실려 피렌체 어느 골목에서 들려오는 듯 프로렌츠의 추억과 함께 나의 귓전을 돌며 안녕히여! 속살 거린다.
세인트 피터스버그를 떠나는 선객들은 뱃머리로 모여 그 아름다운 도시를 떠나는 아쉬움에 손을 흔들었다. 내 눈에는 멀어져가는 세인트 피터스버그가 오직 애틋하고 애처로웠다.
세인트 피터스버그여 안녕히!
- 관광 길의 간이 시장- (St. Petersburg )
강가의 노변 간이 시장
가난한 삶 양손에 들고, 등에 지고
알뜰히 챙겨 온 채소들
주름진 얼굴에 묻어 온 삶 소중히 펼쳐 낸다
아침 햇살이 그 위로 깔린다
곧 행인들 북적인다
어쩌면 입은 옷들도 그렇게 비슷할까
격식도 멋도 필요 없는 사람들
햇살만이 풍요로워 검게 그을은 표정
말수 적으나 맑은 공기 마신 울리는 목소리
호박 잎새 닮은 투박한 손
잔잔한 소망으로 담담이 흥정하는 마음
무뚝뚝한 표정 뒤에 숨은
희미한 희망 흐르고 있다.
시집보낼 딸의 행복
대학 등록금이 될 아들의 출세
장에 간 엄마 기다리는 아이들 생각
애써 정들여 키운 운명 알아차린 닭들
마지막 정 아끼며 새 주인 기다린다.
철없이 보채는 간이 우리 속 아기 양들
인연과 정을 파는 공터 간이 시장
왠지 무거운 떠나는 나그네 발길
세인트 피츠버그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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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결혼은 -
박복수
결혼은 게으른 사람의 '쉼터'가 아니고 철저한 자기부인과 자기희생이다. 그래서 자기 의지를 상대의 의지에 절대적으로 복종시킬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결혼 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즉 결혼 생활은 일종의 저주는 시합이다.
" 결혼은 주도권 쟁탈전이 아니라 두 의지가 서로 이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주도권 포기 전, 남녀가 기꺼이 스스로 작아 질 때 비로소 가정은 영원히 행복을 누리며 감사하게 된다." - 결혼의 신비- 마이크 메이슨-
팬데믹으로 인해 결혼 생활 내내 어렵게 견뎌 온 부부사이가 더 많이 심각해진 어느 후배의 소식을 오늘 들으며 가슴이 아프다. 해서 서로 지난날을 다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자식들 행복을 위해 희생정신으로 화해하고 서로를 용서하고 섬기며 새로 시작해 보도록 노력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이런 답이 왔다.
출근을 하려고 차를 타고 보니 기름이 없다고 노란 불이 들어 왔다. 아내가 자기 차를 두고 남편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 왔단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노란 불이 오는데도 그 돈을 안 쓰려고 어떻게 그냥 다닐 수가 있느냐" 고 불평을 하고 방으로 들어왔단다. 그 날 밤, 부엌 식칼을 들고 남편 방으로 들어와 난동을 부렸다고 한다.
그 후로는 변소 에 가도 방에 들어가도 문을 잠그고 있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들은 딸이 경찰을 부르지 왜 그렇게 당하고만 있느냐고 부들부들 떨었다고 한다. 결혼 나이가 넘은 큰 아들 결혼 까지 는 이혼을 안하려고 버티다 이제 큰애도 장가갔으니 이혼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물론 이런 부부는 많지 않겠지만 "미워도 나쁜 기억은 빨리 잊고, 그저 감사한 것만 찾으라. 죽도록 잘해 주면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고마움을 알게 되면 착해진다." 고 했지만 너무 불가능한 일이라 했다.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이혼 하겠다고 우리 집에 와 몇 일 씩 와 묵고 있던 나의 친구 세 명이 있었다. 매일 납득시켜 180도 돌려놓아 지금은 그 세 친구가 다 의의 좋은 행복한 부부가 됐다. 참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
그 중 나의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는 남편이 어느 여자와 하룻밤 걸러 나가 자다 아내의 추궁에 못 견뎌 결국 짐을 싸고 나갔다. 가끔 집에 들리는 남편을 "아무 말 하지 말고, 음식도 잘 챙겨 주고 화 내지 말라. 여자는 이혼 하면 고무 줄 없는 팬츠다. 이혼 하자는 소리 안하는 것만 감사하고 기다리라" 고 했다. 왜 이혼을 해서 남 좋은 일을 하느냐고. 아니나 다를가 묵묵히 돌봐주는 아내에게 감동, 지금은 손잡고 샤핑 다닌다. 우리 집 어른이 나의 핸드백을 늘 들어 주는 것 본 받아 자기도 아내 가방을 들어 준다고 한다.
며칠 전 받은 한국의 K.B.S. 방송인 후배 의 E-mail 이다. " 누님! 너무 행복한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너무 가슴을 울리는 누님의 글을 저의 카톡 방에 올렸더니 올해 45 세의 막내딸이 다음과 같은 답을 보내왔습니다. "
" 바복수 시인의 감동적인 글을 읽고, 아빠 엄마, 아름답게 살아오신 날들처럼 저도 살아야 겠다 생각이 들어 너무나 행복합니다." 저의 가족 모두가 누님의 글로 감동, 행복했습니다. 제 평생 에 가장 마음을 울리는 편지를 넓고 넓은 태평양 건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이 담긴 편지를 접 했습니다. 오랜 세월 알지 못하고 살았던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누님께서 제 대신 글로 표현해 주셨네요, 저의 가족 모두 가 누님의 글로 감동, 새로운 행복에 젖어 들었습니다. 늘 사랑을 나누시며 행복한 삶을 누리시는 누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하략)
친정어머니는 "여인의 목소리는 아무리 화가 나도 아무리 슬퍼도 담을 넘어서는 아니 된다." 또 아버지는 오빠에게 늘 "아내는 고급 사기 다루 듯 해야 한다." 하셔서 우리는 늘 '신혼 부부' 라는 소리를 들으며 60년을 살아오며 서로 마음을 다 해 섬기며 살아왔다. 우리 딸들도 남편에게 "Thank you!" "I love you! " "I am sorry! " 세 마디로, 늘 남편에게 고마워들 한다. 그러니 가정은 언제나 행복하다.
기나긴 방콕 생활에 황혼의 두들겨 맞아 쇠약할 때로 쇠약해졌다. 이제 석 달이면 90을 바라보는 이 망구다. 네 살이 위인 남편은 한 살 짜리 아기가 됐다. 매일 두번씩 하는 마싸지 의자에 앉아도 단추를 눌러 줘야 한다. 머리도 빗겨 줘야 되고 얼굴에 로션도 발라 줘야 된다. 뿐만이 아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하나에서 열까지 곁에서 다 돌보아야한다. 그러나 아기가 되고 싶어 된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오는 마지막 정거장이다. 죽도록 힘이 들어도 병원에 가지 않고 곁에 있는 것만 감사히 생각하며 이겨내야 한다. 아무리 지극정성 자식들이 애써도 아무리 망구가 된 할매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며 아내만이 해 줘야 하는 일이 하루 종일 있다.
더구나 조실부모한 애들 아버지라 그 모든 부족한 사랑은 아내와 자식들이 다 채워주어 세상을 떠날 때 "나는 너희 엄마 때문에 행복했다." 듣고 말 것이다.
모든 아내들이여 파이팅!
--빗물 삼킨 파도 되어-
맑은 하늘
갑자기 검은 구름 밀려
소낙비 쏟아 놓는다.
바다 위에 커다란 원을 그리는
지난 밤 흘린 별들의 눈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중해 한 복판
낮 익은 흔적 지워가며
무수한 이름들이 물결 되어
어디론가 숨 가쁘게 가고 있다.
나를 비껴가는 이름들이
바다에 잠기는 빗물인듯
나는 속절 없음을 보았다.
참으로 지나간 것들은
되 돌릴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깝고 아름다워
나는 기꺼이 빗물 삼킨
파도 되어
만나도 만나도
그리워지는 친구로
오래오래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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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수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진작 알았다면 좀 더 현명하게 살았을 텐데...
그 동안 너무나 어리석게 살아왔습니다.
이제라도 이 말씀들을 제 좌우명으로 삼으며 지내려고 합니다.
늘 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하느님은 그런 지혜를 아무에게나 주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저도 할머니가 다 된 지금에야 스스로를
반성하며 저에게도 지혜를 허락해 주십사고
뒤 늦게나마 기도하겠습니다.
언제나 건강, 행복하시고요.
거듭 감사드리며, 안녕히.
설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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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름다운 삶, 행복한 죽음--
박 복 수
" 너 없이 못 산다" 던 말 거짓말이었나요?
1) "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 를 새삼 깨우치는 오늘이다. 죽음에는 나이와 순서가 없다지만 저 세상으로 소풍 가듯 무지개 타고 천사와 함께 " 행복했다. 고맙다. 다시 만나자." 며 고통도 없이 행복한 미소로 이 세상을 떠 날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이 없이 60년을" 같이 한 남편, "생명의 실존은 축복이고 존재의 가치다." 하던 그가 , 늘 " 너 없이 못 산다." 하더니 항상 내 곁에 있을 줄 만 알았는데... 집콕에 지친 삶에 손을 들고 말았다.
아름다운 죽음, 준비된 죽음을 실천하는 '웰 다잉' ( Well-dying) 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의 완성이라는 '웰 다잉' 은 '참살이' (웰 빙)의 진화된 개념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크리스찬 만이 가질 수 있는 귀한 선물이다.
나이가 많이 들고 삶에 책임져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삶의 의미와 존재감, 즉 책임감 상실,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살아 내기가 너무 버거워 죽고 싶은 심정이 들 때 마다 귀 기울여 볼 일이 없는 집콕의 나날, 나이 (94) 가 들며 눈도 침침하고 귀도 막혀 그저 먹으면 기도문 들고 있다 자고 , 태레비는 연합 뉴스나 본다. 그것마저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디서 몇 명 죽었다는 소식 뿐, 좋아 하던 운전도 못해, 귀가 막혀 '색소 폰 협주회' 고문으로 거리 선교 하러 다니며 그토록 즐기던 색소폰도, 피아노도 기타도, 이제는 멀리하고 태너로 아내는 소프라노, 극동 합창단에서 나와 함께 즐기던 노래도 이제는 안 들리니 .. 치과에는 입을 벌리고 앉아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만 모셔 올까 두려워 치과도 못갔다. 연골은 다 달아 무릎 통증으로 ..넘어 질 염려...등 쓸모 없는 인간으로 전락했다 .
인생은 좋아 하는 일들을 미뤄도 될 만큼 긴 것이 아니다.
일은 사람에게 행복을 준다. 더구나 좋아 하는 일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또 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일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정신과 육체 건강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일이 즐거우면 인생은 낙원이지만 할 일이 없으면 지옥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더 바랄 나위 없이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기쁨을 추구하는 삶은 언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바로 오늘이다. 오늘은 대충 그냥 살고 내일 부터 기쁘게 살자 하는 것은 우리에게 실제로 내일은 없다. 내일은 신의 영역이요 나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라는 말이 있단다. 그러나 기쁘게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행복을 추구하는 중요한 일일 것이다. 조용한 미소로 주위를 밝게 하고 행복의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사람이 기쁘게 살려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인생은 아무리 건강해도 세월은 못 당하고, 젊다고 흔들고 다녀도 늙어 지면 가는 것, 마지막 정거장의 이별이 뭔지 미처 몰랐던 이 바보, 너 없이 못 산다는 소리 만 믿고.. 영원히 내 곁에 있을 줄 만 알았다.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한 줄 몰랐던 남편의 사랑, 항상 손잡고 같이 거닐 줄 만 알았던 이 바보.. 반쪽이 될 줄은 .. 늘 들을 줄만 알았던 그 음성은 가슴에 머물러 있어 "행복했다," 속삭이기에 ..세상 모든 것 아름다웠기에 .. 하지만 차라리 미워서 떠난다 했더라면 가슴은 젖어도 이 토록 야속 하지는 않았을 것을...
반쪽이 되어 쓸쓸하고 외로운 노년을 .... 남은 생을 후회 없이 행복한 죽음을 준비하는 삶, 스스로의 삶을 차분하게 뒤 돌아보며 새로운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죽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준비하면 행복한 죽음이 가능할 수도?... 죽음의 질을 높이는 것이 지름길이라 믿는다. 산소에 묻어 두고 자식과 후손들에게 부담을 남기고 싶지 않다. 영혼은 이미 천국에 가 있는데 .. 몸이란 단지 옷인데 땅 속에 파묻고 썩히고 있다는 건 바람직 한 생각이 아닌 것 같다. 후회 없는 삶으로 최선을 다 하고 사라진 뒤에도 사람들 기억에 남으면 소중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지..남에게 내 세울 큰 성공은 못 했어도 이만하면 축복받은 삶,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게 하신 전능자에게 감사가 넘칠 뿐이다.
고통을 환희로 바꾸는 비결을 터득하자. 내일의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이 시대는 긍정의 마음가짐으로 믿음의 사람이 되자. 감사 한 것만 바라보며 최선을 다 하는 삶으로 " Be joyful in hope. Patient in affliction. Faithful in prayer." (희망을 갖고 즐겁게, 고통은 참음으로 이겨내고, 하나님만 믿고 기도하라.)
" See I am sending an angel ahead of you to guard you along the way to bring you to the place I have prepared." (보아라 내가 네 앞에 천사를 보내 네가 가는 길 내내 보호하고 내가 준비한 곳으로 너를 데려가게 할 것이다.)
2) 노쇠한 몸이라 밤에 화장실 가다 넘어 질까 지켜보며 밤 잠을 설치다 막 잠이 든 새벽 6시였다. 신음 소리 같은 "응, 응!" 소리가 들리는 듯 해,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었다. 방바닥에 앉아 침대를 잡고 오돌 오돌 무섭게 떨고 있던 남편' 처음 보는 모습에 놀라 애들을 깨웠고 구급차를 불렀다. 떠나던 구급대원에게 "친절한 당신을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한다." 며 보낸 것이... 같이 못 간다고 다른 차로 뒤 따르라 해.. 큰 병원으로 달리던 중, 전화로 다른 병원으로 간다며 차를 돌려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기독교병원으로. ..길은 야자나무들로, 거리는 넓고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병원 앞에 "이곳은 영웅들이 봉사합니다." 라고 크게.. .잠옷을 벗기고 구급차에 오른 몸은 시원해지니 열은 곧 떨어졌었다. 모두 정상인데 혈압이 많이 낮다고... 남편은 "연명치료는 하지 말라. 일체의 병원치료를 거부, 목숨에 연연하지 않겠다. 의료진도 고개를 끄떡, 끄떡. 허나 병원에서 할 일이 없으니 집으로 돌아 가야한다고 했다.
헌데 화장실에 가려니 천사 같은 간호사들이 양쪽에서 붙 잡아 주며 다녀와야 했다. 일단 하루 밤만 있으라고 환자실로 ..... 헌데 이게 왠 말인가 ?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확신을 주는 일이... 담당의사가 들어오다 우리 큰딸에게 달려가 얼싸 안고.. .손자들과 손녀들이 다니던 사립학교 학부모로 큰딸과 사랑을 주고받던 그가 담당 의사라니....세상엔 우연이란 없다. 큰딸은 학부모들을 대표로 행사마다 마이크를 들고.... 동부 명문대 갔던 손자 입학식에서도 학부모를 대표해 강단에서 인사 하던 동영상을 받고 또 감사했었다. 늘 압장 서서 학교일을 도왔고 나 또 한 한국에서 유학 온 한국학생들 한국부모에게 보내는 편지들 번역 일을 도와 달라해서. 도왔었다. 해서 학교와 학부모들의 사랑을 받았었다.
이번 일도 큰 딸의 교인들 로 부터 꽃들이 쉴 새 없이 쏟아 져 왔다. 별의 별 선물들이 반쪽이 된 망구를 위로해 주었던 일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었다.
그 의사가 준 서류들을 다 써 보내고... 옮겨 준 방은 아파트 보다 도 크고, 냉장고로 부터 주방 시설까지 없는 것이 없는 대형 방, 어느 병원에도 없는 많은 사람이 잘 수도 있고 유리 창 마다 보이는 높은 야자나무들, 배경은 푸른 하늘만 보이는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 병원에도 딱 하나만 있는 방 이었다. 병원 식당엔 스시 까지 있으며 일류식당이었다.
천사 같은 간호사들과 목사님들이 드나들며 찬송과 기도로 남편은 "행복했다. 고맙다.' 너희 엄마는 마음만 예쁜게 아니고 글도 예쁘게 쓴다." 는 등 아내 자랑을 하며 잠이 들었다 깼다 하며 행복한 미소로... 손자들에게 알리지 말라했는데. 평생 못을 박아 주는 일이라며... 열 일 제치고 밤새 동부에서 달려 온 손자들, 손녀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큰 사위도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며 수술복을 입은 채 틈틈이 달려 왔다. 두 사람만 허락이 되 식당에서들 기다리며 교대로 ..
어느 환자는 그런 상태로 2주부터 2년도 있다 떠났단다. 두 번째 밤, 큰딸과 큰 손자와 좋아 하던 찬송가들을 부르며 예베 드리고 큰 딸과 손자의 손을 양쪽에 붙잡고 잠이 들었다 .
새벽 4시15분 큰딸이 눈을 뜨고 5분 후 아빠 숨소리가 안들린다는 전화가.. .밝은 미소로 무지개타고 새가되어 훨 훨 천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소천 하셨다. 아름다운 삶을 마치고 행복한 죽음이었다. U.C.L.A. '한국학생회' 에서 만난 남편은 총각시절엔 여자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던 청년이다. 나는 한 학기를 남긴 대학원 법대생인 남편과 결혼, 관세음보살에게 절하고 학교에 가던 나를....어머니는 이곳에 달마사 까지 세우시었다. 부처도 금을 씨워 절에 필요한 모든 집기등을 공수해 오셨다. 절 안에 샨델리아들은 동생이 다 감당했다. 마당에 탑 밑에는 7 보석을 묻어야 한다 해서 우리 형제들의 폐물들이.....15년이나 회장으로 섬기 셨던 불교 집안의 나에게 하나님은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남편을 주셨다. 헤아릴 수 없는 기적들의 삶으로 이 망구를 처방 약도 주치의도 없이, 큰 탈 없이 축복으로 가득한 90 인생을 주셨다.
기쁨이 마르지 않고 빛이신 주님의 성품이 우리 모두 안에서도 들어 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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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좋은 글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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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드문 세기적인 문호!!
박복수 시인.
눈물 나도록 감명 깊은
거룩한 인생훈.
미국 이민, 시민을 총망라.
뜨거운 감사와 격찬을 보내며
귀하신 옥체 !!
더욱
크게
자중자애 하소서
간절히 바라는 憂老 경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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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복 수 Profile
*재미한인방송인협회회장, 현: 고문 *미주문인협회 회계국장 및 시분과 간사, 현 : 이사 * 현: 한국본부 국제 팬 회원, 현:재미시인협회 이사. 청하문학회회원,*여의도 클럽U.S.A./ K.B.S.한국방송공사 사우회미주지회현: 고문.
역임:*미주기독교문인협회 이사장 *한미 문학 진흥재단 편찬, 자문위원 ,국제 팬 미주지회 홍보이사 한국문학진흫재단 공동발행인, *토요화가협회회장,*미스코리아 심사위원 8년, * 무궁화어린이선발대회 심사위원장, *기독교방송국 방송위원 *재미사진작가협회 회장, 이사장, 고문 *부산 국제 사진전 미주추진위원장. 한국해운대 전국사진대회 심사위원으로 참가 외 (하략) /청하문학상, 서울문학 오늘의 시인상, 한미문학 오늘의 시인상, 시 암송대회 세계한인작가협회 대상, 윤동주 선양회 장원상, 세계화가초대전 (불란서 르. 살론) 동상, 로즈포래이드 추진위원회 사진촬영 대상,외 공로상, 감사장, 다수/ 권길상 작곡, 박복수 작시 감사음악회,국제사진전(중국, 일본, 부산, 미국) 12회, 개인시사전 1회, 저서: 한'영 시와 수필문학선 . 한'영 시집 수상 기념작품, <세계한글작가대회기념 한'영대역 대표작 선집> 2회 참여, 국제시인들과 <국제 현대 시> Bridging The Waters 3회 참여. 한인사회 추측이 된 롤'모델 29명의 에세이집, 조국을 가슴에 담고 한국을 빛낸 영웅들의 이야기 <한인보>에 게재,외(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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