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가 있어 300% 괜찮았던 사람, 윈스턴 처칠
그 자체로 ‘영국’인 엘리자베스 여왕 1세, 윌리엄 셰익스피어보다 영국인이 사랑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9년간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이다. 2002년, BBC 방송은 ‘지난 100년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인’을 꼽는 특별 앙케트를 실시했는데 윈스턴 처칠이 그 위대한 리스트의 가장 윗자리를 차지했다. 리더십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거의 히틀러의 ‘입’에 들어갈 뻔한 영국을 구한 것이 그 아닌가! 영국인은 그가 하원에 출석해 남긴 이 말을 국민에게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해 똘똘 뭉치게 한 최고의 연설로 꼽는다. “내가 국민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피와 노고, 땀과 눈물뿐입니다. 여러분은 제게 물을 것입니다. 우리의 정책이 무엇이냐고, 나는 대답하겠습니다.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바다와 땅과 하늘에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능력을 동원해 싸우는 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 여러분은 또 물을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무엇이냐고. 나는 한마디로 대답하겠습니다. 승리라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하는 것뿐이라고 말입니다.” 처칠의 뜨겁고도 진심 어린 리더십으로 영국은 결국 독일의 대공습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그 리더십의 핵심을 이루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위트라는 점이다.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어보면 그가 얼마나 위트 있는 사람이었는지가 그려진다. “히틀러가 지옥을 침공한다면 나는 하원에서 악마에 대해 호의적인 발언을 할 것이다”, “인간의 완전함에 대한 큰 기대는 성직자에게는 적절하지만 수상에게는 적절하지 않다”, “나는 음주도 하고, 흡연도 하는 200% 괜찮은 사람이다”…. 만약 그가 위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매일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승리만 생각합시다”라고 외쳤다면 어땠을까? 번뜩이는 눈빛으로 전쟁에서의 승리만 얘기하는 이는 히틀러만큼이나 무섭다. 처칠은 집에서도 위트 있는 사람이었다. “아내와 결혼한 것이 내 생애 가장 뛰어난 업적이다”라고 말하던 그는 회의에 지각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안하다. 하지만 나처럼 아름다운 아내를 두고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제 시간에 집을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은 각방이라도 써야겠다.” 1900년대 초 당시 최고의 신붓감으로 꼽히던 클레멘타인 호치에가 그의 아내. 혹자는 160cm가 겨우 넘는 단신에, 등은 구부정하며, 물려받는 재산은 거의 없는 몰락한 귀족 가문의 후손인 처칠이 모두가 선망하는 ‘꿈의 여인’과 결혼하게 된 것은 특유의 위트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한마디로 처칠은 매사에 여유가 있었다. 전쟁 중에도 꼬박꼬박 낮잠을 잤으며 레미 마틴사의 코냑 ‘루이 13세’를 떨치지 않았다. 스스로 “평생 먹고 살 돈을 혀와 펜으로 벌었다”고 말할 만큼 문장력도 뛰어나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 등 20권에 이르는 역사서를 남겼고 1953년에는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다. 그가 1965년 91세로 타계했을 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군왕은 신하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직접 조의를 표했다. 그가 여유 없는 빡빡한 사람이었다면 여왕까지 직접 나서 죽음을 애도했을까? 글 정성갑 기자
연륜의 위트,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영화배우를 거쳐 대통령이 된 사나이는 외모만큼이나 위트도 훌륭했다. 흔히 정치인의 위트는 생활이 아닌 전략인 경우가 많지만 그의 경우엔 달랐다. 1981년 정신병자인 존 힝클리의 저격(힝클리는 저격의 이유를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을 받은 그는 총알이 심장에서 12cm 비켜 나간 덕에 간신히 목숨을 구했는데 병원에 온 아내에게 한 말이 이랬다. “여보, 몸을 숙인다는 걸 깜빡 잊었지 뭐야. 가게(백악관)는 누가 보지?” 수술실에 들어온 의사들에게는 이렇게 농담을 건넸다. “당신들 모두가 (나와 같은) 공화당원이면 정말 좋겠소.” 비행기로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위를 날며 아내에게 건넨 농담도 유명하다. “여보, 내 인생에 여자는 오직 당신뿐이라오. 그 외에 다른 여인이 있다면 바로 밑에 보이는 이 자유의 여신뿐이라오.” 레이건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힌다. 2007년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갤럽은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으로 앙케트를 했는데 레이건이 루스벨트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의 뒤를 이어 3위에 랭크됐다. 이는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집권하던 시절 미국인이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하루가 다르게 골이 깊어가던 불황과 실업률은 거짓말처럼 좋아졌고 레이건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즈음에는 경제가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다. 베트남전쟁으로 큰 타격을 받은 군대 역시 레이건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다시 최강의 자리를 회복했으며 보수적이고 강경한 국내외 정책으로 미국에게 절대적 권위와 위엄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성과가 훌륭하다 해도 인간적 매력이 없다면 ‘뛰어난 대통령’이 아닌 ‘좋아하는 대통령’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위트를 소개한 책 <대통령의 위트>의 저자 밥 돌은 “클린턴, 아이젠하워, 케네디 등 위트가 넘치던 대통령은 역시 훌륭한 대통령,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기억에 남는 편이다”라고 얘기하지 않았는가. 레이건을 인간적으로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 일등 공신은 역시 위트다. 레이건은 대통령이 된 후 LA 다저스 측으로부터 트로피와 유니폼, 야구방망이를 선물받은 적이 있는데(1932년 유레카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레이건은 라디오방송사에 입사, 스포츠 아나운서로 일했다) 당시 소감이 이랬다. “이제야 내가 할 일을 알았다. (의회에서) 이 야구방망이를 휘두를 기회를 줘서 고맙다.” 이 발언이 알려진 후 민주당에서는 “의회를 몽둥이를 휘두를 대상으로나 생각하는 무식한 대통령”이라며 해명까지 촉구했지만 정치에 신물이 난 대다수의 국민은 그의 재치 있는 말에 큰 호감과 통쾌함을 느꼈다. 아내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모습, 팔굽혀펴기 세계 기록 보유자인 댄 루니와 팔씨름을 하는 모습 등도 바람직하고 건강한, 그래서 무척 호감이 가는 이미지를 국민에게 심어주었다. 대통령 재임 시절 그가 남긴 위트는 ‘어록’으로 묶어도 될 만큼 많은데 이는 연륜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에 취임했을 당시 70세, 이미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후였으니 남들보다 조금 더 여유롭고 조금 더 관대할 수 있었으리라. 나이 많은 남자에게 끌리는 여성들이 적지 않은데, 이는 그 생물학적 나이가 곧 여유의 나이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돈 많은 남자보다 따뜻하고 여유 있는 남자에게 끌리는 법이니까. 글 정성갑 기자
포스 넘치는 위트의 대가, 백남준
“한국 여자는 무서운 게 없다. 미국 와서도 ‘계’라는 걸 한다. 그건 일종의 고리대금업인데, 미국에서는 마피아들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여자들은 마피아보다 더 세다. 돈을 만져도, 무엇을 해도 겁이 없다. 남자에게 순종하는 듯해도 안방은 다 지키고 앉아 있다. 사실 한국 남자들은 헛깨비다.” 백남준의 위트는 역사의 정사正史를 일부러 비트는 것이 아니다. 정사라는 것이 모두 기록한 자들의 교묘한 거짓말투성이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지 않는 것뿐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만을 말하려고 하는데, 그때마다 해학이 발생한다. 그것은 어쩌면 백남준 특유의 간명한 어법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식이다. “그 대단한 독일이라는 곳에도 탑은 네다섯밖에 없었어. 나머지는 어차피 시원찮은 놈들뿐이었어. 시원찮은 놈들 사이에 시원찮은 내 이름 하나 더 넣는다고 뭐가 달라져? 그래서 난 처음부터 굵게 놀았어.” 1950년대 후반 작곡가가 되고자 독일에서 유학을 했던 그는 한국의 여성성이 빚어낸 샤머니즘과 흡사한 음악 퍼포먼스를 펼쳤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멋지게 연주하다가 갑자기 피아노를 발로 차서 쿵 하고 쓰러뜨린것이다. 혹은 피아노 위에 올라가 무당의 작두 쇼를 연출하다가 아무 반응이 없을 때는 칠판에 이렇게 쓰기도 했다. “Are you gentlemen?” 그리고 피아노 밑으로 슬슬 기어들어가서 전복시켜버렸다. 피아노는 형체가 부서질 정도로 엄청난 소리를 냈는데, 그때 독일의 음악 팬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곤 했다. “짐은 곧 황화(Yellow Peril)다”라고 루이 14세의 말을 패러디한 백남준의 농담은 뼈가 있었다. 자신에게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붙이자, ‘오냐, 그럼 내가 어떤 놈인지 직접 보여주지’라는 식이었다. 이처럼 청년 백남준은 단호한 데가 있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문화적 소통을 위한 따뜻한 마음을 깔아두었다. 가령, 도끼로 피아노를 부수고 난 후 그는 나가는 관객들에게 막 파괴된 피아노의 따끈따끈한 흰건반과 검은건반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저어, 이거 약소하지만 오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화도 내지 못하고 돌아섰다고 한다. 1984년 도쿄에서 요셉 보이스와 함께 콘서트를 연 다음, 사회자의 질문에 답한 것도 일본에서는 지금도 유명한 일화다. “종교가 이렇게 많은데 왜 전쟁이 멈추지 않는 것일까요?” 이에 요셉 보이스는 논문 같은 답변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청중이 하품을 할 무렵, 백남준이 답했다. “사회자 양반, 그런데 유대의 신과 이슬람의 신이 같은 신입니까? 다른 신입니까?” 처음부터 의표를 찌른 다음, 이렇게 이어갔다. “A 부족이 B 부족의 신을 모셔다가 잘 대접하고, B 부족이 A 부족의 신을 모셔다가 잘 대접해서 두 신들끼리 화해를 한다면, 이 세상이 좀 더 나아질 게 아닙니까?” 청승맞을 정도로 소박하고 어눌한 말투로 ‘전쟁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종교가 서로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백남준의 포스는 이날 굉장했다고 한다. 보이스 때와 달리 객석은 웃음바다가 된 것이다. 백남준식 위트는 북방 유목민의 단호함과 따뜻함이 절묘하게 뒤섞인 단순화에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단순화라는 것이 얼마나 깊이 있는 것이었던지. 글 김남수(무용 평론가ㆍ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실 직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작가, 빌 브라이슨
턱과 인중을 뒤덮은 덥수룩한 수염, 동그란 안경테, 동글동글한 몸매, 하여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주인아저씨를 닮은 빌 브라이슨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작가로 불린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 산책>,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등 그간 수십 권의 책을 냈는데 모두 강력한 위트의 힘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마치 친구에게 맥주 한 잔 걸치고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편안하고 기분 좋게 말하는 것이 핵심!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대체로 나는 어린 시절을 무척 즐겁게 보냈다. 어머니가 내게 몸에 꼭 끼는 여성용 바지를 입혀 학교에 보낸 적은 있다. 그것 말고는 정신적으로 거의 충격을 받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비행을 앞두고 나 역시 밤마다 누워 천장을 보면서 내 옆 좌석에 아리따운 여인이 동행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심각한 음란증이 있어 아버지가 스위스 기숙 학교에 강제로 보내는 아름다운 여자가 옆자리에 앉아 숨을 헐떡이기를 기대했는데, 옆 좌석 승객은 비행 내내 성경을 읽으면서 나를 개종시킬 기회만을 엿보는 여드름쟁이 꺽다리 녀석이다”(<발칙한 유럽 산책>), “국립공원관리국은 뭔가를 멸종시키는 게 전통인 듯싶다. 1923년 창설된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이 관리를 시작한 지 반세기도 안 되어 7종의 포유류가 멸종되었다. 관리국이 그들에게 관심을 갖기 전 수백만 년간 생존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놀라운 업적이다”(<나를 부르는 숲>)…. 유년 시절의 추억이나 부모님과의 관계도 그럴싸하게 미화하는 법이 없다. “밤참 만들 때면 반벌거숭이 차림을 했던 아버지와 음식을 하도 태워 부엌을 화상 병동으로 만든 어머니”라니, 우리 엄마아빠처럼 정겹다. 그저 그런 일상사나 경험을 ‘웃기게’ 나열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는 세계적 지성이다. 미국 태생이지만 영국으로 건너가 20년 넘게 <타임스> 경제면 교정 팀장으로 일했고 <인디펜던트>에서 국내 뉴스 부편집장까지 지냈다. 1987년에는 언론계를 떠나 전업 작가가 되더니 2005년에는 영국 더램 대학의 명예총장이 되었다. 2006년에는 대영제국 훈장까지 받았는데 영국의 문화부 장관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풍부한 지식에 바탕을 둔 재치 넘치는 글로 국민들을 즐겁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인의 견식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지성이 다른 이의 지성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발품과 ‘머리품’을 쏟아 부은 노력이 행간에 가득 묻어난다는 것. 광범위한 조사와 취재(셰익스피어가 남긴 단어 2035개를 조사할 정도다)를 통해 셰익스피어가 가상 인물이라는 주장의 허실을 파헤치는 <셰익스피어 순례>를 쓰고, 3년간 내로라하는 세계의 과학자를 직접 찾아가 설명을 듣고 현장을 답사한 끝에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썼으며, <나를 부르는 숲>를 위해 문제투성이 고교 동창과 함께 3360킬로미터의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감행하는 식이니 그의 글은 논픽션 영화를 보는 듯 흥미진진하다. 이처럼 그는 어떤 정보나 지식을 요리할 때 늘 알싸한 고추냉이를 곁들인다. 위트로 버무린 지식은 맛있고 영양가도 높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책상물림 학자들의 책에 지친 독자들에게 빌 브라이슨이 오아시스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유쾌한 독서를 하고 싶은가? 지금 당장 빌 브라이슨과 만나라. 글 표정훈(출판평론가)
편하고 기분 좋은 위트의 달인, 박중훈
유머의 가장 고급스러운 버전을 위트라고 할 때, 영화배우 박중훈의 유머는 위트의 경지에 다다라 있다. 영화 <해운대> 개봉 전 기상청에서 열린 시사회 자리였다. 영화 관람을 마친 기상청 직원들 앞에서 그가 말을 꺼냈다. “기상청은 어머니입니다.” 엉뚱한 말에 기상청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박중훈이 말을 이었다. “잘하는 건 안 보이고 한 번 못하면 확 표가 나니까요.” 그 재치 있는 농담에 여기저기서 박장대소가 터졌다. 박중훈의 농담은 그런 식이다. 약점을 건드리되 기분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짧은 농담에도 반전이 있다. 그 스스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농담을 할 때도 상대방을 배려해야죠. 그리고 반전이 있으면 더 좋아요. 점잖은 방법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거든요.” 이를테면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후배에게 축하 인사말을 할 때는 이런 식이다. “아무개 씨는 진짜 인간성도 좋고 노력도 많이 하고 참 인상도 좋습니다. 연기만 잘하면 정말 좋을 텐데.” 남우주연상 수상자에게 “연기만 잘하면 정말 좋을 것”이라니. 이것은 미스코리아 진으로 뽑힌 사람에게 “마음 착하고 학력도 좋으니 얼굴만 예쁘면 참 좋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박중훈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에게도 “다 좋은데 물리학 공부를 좀 더 하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농담할 사람이다.
위트가 없으면, 지는 거다 MEN WITH WIT |
‘지갑 얇은 남자는 참아도 위트 없는 남자는 참을 수 없다’는 말은 여자들의 괜한 지적이 아니다. 위트가 없으면 사랑에서도, 리더십에서도, 성공에서도 진다. 과학적으로도 입증할 수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재기 넘치는 과학자가 들려주는 위트의 실체와 진실, 힘과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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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좁아져 보는 것도, 경험하는 것도 많은 요즘엔 멋진 남자가 참으로 많다. 불가능한 꿈을 꾸는 남자, 옷 잘 입는 남자, 식스 팩이 환상적인 남자, 춤 잘 추는 남자…. 하지만 위트 있는 남자는 여전히 드물다. 센스 있게 입고, 말하고, 남을 배려하는 유쾌한 남자야말로 노래방에서 춤추는 장동건보다 매력적인데, 남자들은 오늘도 돈과 정치, 몸과 스포츠에 에너지를 쏟는다.
남자들 중에는 술집에서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능력이 위트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위트란 여유와, 지력, 자신감을 모두 갖췄을 때만 구사할 수 있는 최고 난이도의 ‘인격’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아는 것이 없으면, 어깨가 움츠러들면 자연스럽게 배어나지 않는 것이다. <럭셔리 옴므>의 첫 이슈를 발행하며 남자의 위트를 주제로 삼았다. 누구나 가질 수 없을뿐더러 돈으로도 살 수 없지만, 갖추기만 한다면 그 자체로 보석처럼 반짝일 것이니 남자에게 이보다 더 럭셔리한 자산이 어디 있겠는가!
얼마 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 기자단과 만찬을 할 때 나온 얘기다. “클린턴 장관과는 경선 당시에 라이벌이었지만 최근엔 아주 친해졌어요. 그녀가 (신종 플루가 유행하던) 멕시코에 다녀와서는 나를 껴안고 키스를 퍼붓더군요.” 대통령의 이 한마디에 좌중은 뒤집어졌고 기자들의 칼자루에서는 칼끝이 나올 생각을 안 했다. 그날 만찬이 얼마나 부드럽게 진행되었는지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경쟁자와 미묘했던 긴장 관계를 이렇게 절묘하게 표현하면서 해소할 수 있는 수준의 대통령을 가진 국민은 얼마나 복 받은 사람들일까!
어느 나라건 유머와 위트는 정치인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여기서 유머란 단순히 남을 웃기는 언행을, 위트란 단지 웃기는 것을 넘어선 재치와 기발함을 뜻한다. 즉, 위트는 품격 있는 유머인 셈이다. 아무리 유능해도 이른바 ‘괜찮은 유머 감각(good sense of humor)’이나 재치가 없으면 지도자가 되기 힘들 뿐 아니라 설령 된다 하더라도 대중의 사랑을 받긴 어렵다. 유머와 위트가 정치인만의 덕목은 아니다. 직업, 지위,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다른 이들과 의사소통할 때 의외로 신경이 많이 쓰이는 부분이 바로 유머와 위트에 관한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웃기지 않으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난 척하는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몇 년전 교수 임용을 위한 공개 강의 테스트 후 나는 ‘됐다’는 확신이 들었다. 당시 근엄하게 앉아 후보자들의 발표에 점수를 매기던 교수님들(지금은 동료가 되었다)을 15분 동안 두 번씩이나 웃겼기 때문이다. 강의의 핵심 내용으로 말이다. 이왕 내 얘길 꺼냈으니 한마디만 더 하겠다. 몇 년 전 초가을 전국이 태풍권에 들었던 어느 날, 나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한국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놓고 대중 강연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섰다. 심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300명이나 되는 청중이 각지에서 몰려와 앉아 있었다. 강연의 오프닝 멘트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이렇게 시작했다. “오늘 도킨스 선생님이 직접 강연을 하는 줄 알고 많이들 오신 것 같은데요, 기다리지 마십쇼. 선생님은 오늘 여기에 안 오십니다.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못 떴거든요.” 왠지 모를 긴장이 감돌았던 장내가 이 농담으로 순식간에 유쾌해졌다. 흥행 대박에 대한 감사의 표현에 청중들이 웃음으로 화답해준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강연이 실패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강연자들이 재기 넘치는 오프닝 멘트를 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신이 부자인 자가 진짜 위트를 구사한다
그렇다면 위트에 관한 진실 몇 가지를 함께 생각해보자. 도대체 위트가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왜 위트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필요한 덕목인 양 취급되는 것일까? 위트와 권력의 관계는 무엇인가? 우선 위트가 사람들에게 통하는 메커니즘부터 살펴보자. 우리에겐 누구나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 뇌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에 대한 내적인 모델을 운용하며 이 모델에서 이탈하는 경우를 민감하게 포착한다. 즉, 뇌는 매일 똑같이 일어나는 일들을 예측하는 기계이기에 그로부터 벗어나는 행위가 감지되는 경우에는 특별히 주목을 하게 된다. 위트는 기대를 위반하는 상황을 창조함으로써 주변의 관심을 이끌어낸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국무장관이 신종 플루가 유행하는 지역에 다녀온 직후라도 아무 거리낌이 없이 악수를 해야 한다. 이것이 일반인의 기대다. 물론 오바마는 악수, 포옹, 키스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통상적인 대통령의 공치사를 넘어선 농담을 던짐으로써 자신과 힐러리의 긴장 관계를 유쾌하게 이완시켰고, 좌중을 무장해제시켰다. 대통령답지 않은 참신한 언행을 보여준 위트다. 똑같은 것에 싫증을 느끼고 참신한 것에 끌리는 마음을 ‘네오필리아neophilia’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네오필리아가 인간의 전유물은 아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새로움과 창의성은 관심과 선망의 대상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암컷 새는 다른 수컷 새들이 부르지 않는 새로운 노래를 할 수 있는 수컷을 더 선호한다. 새로움은 일종의 품질 보증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논리로 위트는 여유로움, 창의성 그리고 사회성의 징표다. 생존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는 위트가 나오기 힘들다. 물질적 풍요는 차치하더라도 정신적 여유는 있어야 가능한 속성이다. 또한 위트는 남들이 예측하지 못하는 참신한 언행이기에 창의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방향이 없는 창의성은 아니다. 창의적이되 주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엉뚱한 행동’으로 치부되고 만다.
위트가 넘치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정서를 정확히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위트의 사회성이다. 그래서 위트가 있는 사람은 소통에 실패하는 법이 없다. 하지만 위트는 생존보다는 번식에 필수적인 덕목이다. 수컷 공작이 짝짓기를 위해 길고 화려한 깃털을 쫙 편 모습을 본 일이 있는가? 그런 깃털을 펄럭이며 하늘을 날아다닌다면 틀림없이 금세 맹금류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즉, 화려하고 버거운 깃털은 생존과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쓸데없거나 심지어 해가 되는 형질이다. 하지만 암컷 공작이 그 럭셔리한 꼬리를 가진 수컷을 좋아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실제로 암컷은 짝짓기 상대로 그런 수컷을 더 선호한다. 왜 그럴까?
수컷의 화려한 깃털은 일종의 KS 마크다. 그리고 짝짓기 시기에 암컷은 품질 검사관이 된다. 말하자면 수컷은 깃털을 통해 “나는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는 뛰어난 놈이니 날 선택해야 손해 보지 않을 것이오”라고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선전은 과대 광고나 거짓 광고와는 거리가 멀다. 생물학자들은 기생충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는 좋은 발생적 특성을 지녀야만 그런 럭셔리한 꼬리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위트는 수컷 공작의 화려한 깃털이다. 위트에 성별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결혼 적령기의 여성은 남성에 비해 배우자의 유머 감각을 더 중요한 항목으로 간주한다. 그러니 “못생긴 남자랑은 살아도 유머 감각 없는 남자랑은 못 산다”라고 말하는 것이다(하지만 남성은 여성에 비해 배우자의 외모를 더 중시한다). 이렇게 본다면 위트는 수컷 공작의 깃털처럼 성 선택sexual selection의 산물이다. 다윈은 생존 경쟁과 관련해서는 자연 선택 메커니즘을 제시했지만 짝짓기에 관해서는 성 선택 메커니즘(이성 짝을 차지하려는 동성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설명하려 했다. TV를 틀거나 술집에 가서 어떤 유머와 위트가 생산되고 소비되는지를 면밀히 관찰해보라. 웃기려는 쪽은 주로 남성이고 웃어주는 쪽은 주로 여성이다. 이것이 바로 위트가 성 선택의 산물이라는 증거다.
이 사실을 알았는지, 위트와 유머 감각이 떨어지는 남성들이 요즘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농담 외우기. 노력이 가상하긴 하지만 어쨌든 A급과는 간극이 있다. 촌철살인의 특 A급 유머와 위트는 이른바 애드리브 능력에서 오기 때문이다. 물론 싸구려 애드리브를 날림으로써 생각의 빈곤을 과시하는 행위도 A급과는 거리가 멀다. 남자의 위트에 관한 마지막 한마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계인이 관찰만으로 인간 집단의 우두머리를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의외로 간단하다. 누구의 말에 가장 많이 웃는지만 보면 된다. 위트가 권력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남들이 하면 썰렁한 농담인데도 대통령이 하면 품격 있는 위트처럼 포장되지 않는가?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언행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주는 것은 일종의 오버 액션이며 아부다. 왜냐하면 그만큼 창의적이고 사회성이 풍부해 우리를 유쾌하게 만드는 멋진 리더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CEO여, 직원들이 웃는다고 방심하지 마시라. 그들은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니까. 친구와 상사를 유쾌하게 만들 수 있어야 진짜 위트 있는 남자다.
* 위트의 과학에 관해 들려준 장대익 교수는 공부도 재미있는 소재만 골라서 했다. 인간 본성을 화두로 서울대 행동생태연구실에서 ‘인간 팀’을 이끄는가 하면 영국 런던 정경대학과 과학철학센터에서 생물철학과 진화심리학을 공부했다. 일본 교토 대학 영장류 연구소에서는 침팬지의 인지와 행동을 연구했고, 미국 터프츠 대학 인지연구소에서는 ‘마음의 구조와 진화’에 천착했다. 지난해 재기발랄한 형식과 참신한 콘텐츠로 주목받은 책 <다윈의 식탁>이 그의 작품이다. 실제로도 위트 넘치는 이 과학자는 “끝없이 변이를 시도하는 생물체가 살아남는 데 생존을 위해 꼭 갖춰야 할 필수 요건은 위트다”라고 말한다.
기자/에디터 : 정성갑, 장대익(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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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에 와서 좋은 음악도 듣고 한권에 책을읽은 기분이 드네요 행복 하세요
언니.....셩장에서는 언제 뵐수있나요
요즘 듣는 인사가 다 좋은말들이어서 귀에 쏙쏙 들어오더니,, 행복하세요~ 라는 인사도 참 좋네요. 감사^^
민들레님 평소 궁금 하던건데요, 민들레님은 곤드레 만드레랑 어떤 관계신지..??? 친한사이!!~~
곤드레 만드레는 ...누구신데요
담에 소개 시켜줄께~~~
언제요 ..
재미난 인생을 살아야하는데
글게 말여 나도 열라게 잼나게 살고 시퍼....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