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8. 예수비전교회 주일낮예배 좋은 것을 얻는 삶의 자세
마태복음 7: 7-12
교회 주소/ 서울 노원구 상계5동 136-55 유백선 목사 ybs9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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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니시오카 쓰네가츠(1908-1995)는 궁궐 목수의 우두머리로서 세계 최고(最古/1300년)의 목조건축물 호류지를 지키면서 비틀린 문명과 삶의 깊은 지혜를 담아 <나무에게 배운다>는 책을 냈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사는 요즘 사람들은 옛날 기술을 케케묵은 것이라고 상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생활이 기본이 되어서 그런지 긴 안목으로 보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것에는 새것이 짊어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호류지가 1300년을 버텨 온 힘의 근원이 뭔지 아세요? 주춧돌입니다. 진정한 가르침은 본보기여야 합니다. 머릿속 지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스승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배움은 순수한 마음으로, 스승을 향해 마음이 열 때 일어납니다. 억지로 배우는 것은 몸에 좀처럼 붙지 않습니다.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는 일은 간단해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기둥을 세우는 일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주춧돌은 자연석이기 때문에 돌 표면이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걸음쇠나 줄자 같은 연장으로 돌의 요철을 따라 표시하고 거기에 맞춰 기둥을 파야 합니다. 단지 작업을 빨리 하려면 콘크리트나 쪼개서 만든 평평한 돌을 사용하는 것이 낫겠지요. 돌을 평평하게 자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튼튼하게 하려면 생긴 그대로 자연석에 맞춰서 기둥을 파야 합니다. 기둥으로 쓰이는 나무도 모두 개성이 있고, 강도가 다릅니다. 똑같은 돌 위에 세워질 경우 나오는 힘도 같을 수가 없습니다.
지진이 오면 일제히 흔들립니다. 현대 건축의 기초는 나사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 한 방향으로 흔들릴 때 충격을 흡수할 여유가 없습니다. 모든 기둥이 같은 방향으로 요동쳐 마침내 무너져버립니다. 반면에 자연석 위에 세운 기둥 밑바닥은 모양이 가지각색입니다. 그래서 지진이 와서 흔들리더라도 힘을 받는 모양이 다릅니다. 나사로 고정되지 않아서 지진이 오면 기둥이 어긋날 뿐 곧 원래대로 되돌아옵니다. 각기 다른 놂이 있어서 지진의 요동을 흡수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목조건물이 주춧돌의 힘으로 장수한다는 것은 주춧돌을 놓을 때 단지 돌 위에 기둥을 세워 기둥이 썩지 않는 것을 방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 과학이 발달해도 믿음의 영역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주춧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믿음의 시작이요, 머릿돌이 되십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믿음을 삶의 근간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치의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않고, 먼저 자기 마음(감정)에 따르려고 합니다. 지혜보다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삶의 수단, 방법을 더 선호합니다. 가치 있는 삶보다 편리하고 편안한 것을 추구합니다. 영원한 것보다 감각적이고 즉각적인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 결과로 삶의 사이즈가 커지면서 마음의 공허를 더 크게 느낍니다. 풍족한 소비의 꿈이 커질수록 마음의 상실감이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목표만 바라보며 ‘깃대 인생’을 사는 사람은 행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도 마음의 병을 얻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병든 사람은 정신 에너지가 고갈됩니다. 마음이 병든 사람은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마음이 병든 사람은 영적인 신비를 체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공허한 사람은 늘 나 혼자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 삶을 이끄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을 잘못 다루면 유리처럼 깨지지 쉽습니다. 마음을 위로하고 잘 관리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마음이 진보해야 삶의 기술도 진보해 가는 것입니다. 마음을 잘 관리해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단잠을 자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7장 7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던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좋은 것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좋은 것을 얻으려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좋은 것을 얻으려면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눠야 합니다.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어떻게 나눌까요? 예수님 안에서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갑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삶의 중심입니다. 청교도 신앙인의 거장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품안에서 영혼이 호흡하는 것이다. 날마다 하나님과 꾸준히 교제하는 시간을 가져라.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 고난보다 죄를 더 두려워하라. 날마다 영원에 대해 생각하라.” 왜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해야 할까요? 기도는 하나님께 경배하고, 죄와 삶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7장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나서 낙성식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다. 그러니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 것이다.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일 것이다. 왜?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대하 7:12-16)
여러분! 하나님께서 어떤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까?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얼굴을 찾을 때, 기도를 들으시고 죄 사함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장 2절에 보면,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셨습니다.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구제할 때 기도에 응답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기도하는 일이 피곤하고, 금방 지칩니다. 기도의 응답이 더디면 의심하고, 기도를 즐겁게 지속할 수 없습니다. 나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의 활력이 넘칩니다. 그래서 기도생활이 곧 신앙수준이요, 기도생활이 곧 삶의 수준입니다.
신앙의 수준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삶의 수준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기도의 수준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의 바른 자세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는 기도만이 응답받을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구별되게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사용할 때 정결하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상에게 하는 버릇으로 이름만 바꿔서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어느 가정에 놀기를 좋아하고, 공부하기를 아주 싫어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이 상태로 가면 소망이 없어서 어떻게 해서라도 공부를 시켜보려고 했습니다. 아주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아빠가 아이에게 시험 점수를 50점 이상 받으면 5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 달 뒤에 아이가 집에 들어오면서 외쳤습니다. “아빠, 좋은 소식이 있어요.” “뭔데? 설마 너!” “50점 이상 받으면 용돈 5만원을 주기로 했잖아요? 그 돈 그냥 아빠 가지세요. 전 필요 없거든요.”
여러분! 좋은 것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은 세 가지 형태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본문 7절을 보세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첫째는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한다(아이테이테/Αιτειτε/aiteite)”는 말은 “구하다, 묻다, 청구하다, 빌다, 필요로 하다, 간청하다, 갈망하다, 바라다”라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구하라(Keep on asking)”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이 말은 한 번 구하는 그만 두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구하고, 하나님께 묻고, 간청하고, 갈망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어떻게, 구해야 합니까? 우리가 바라는 것을 세밀하게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구해야 합니다.
무교동 코오롱빌딩 앞에서 8년째 스낵카(석봉토스트)를 운영하는 김석봉 씨가 쓴 <석봉 토스트 1억원의 신화>에서 노점상을 할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제가 토스트 장사를 할 때 단칸방에서 살았습니다. 그때 저의 기도가 이랬습니다. “하나님, 화장실이 집 안에 있는 세 칸짜리 방을 얻게 해주십시오.” 매일 기도하고, 교회에 가서 소리 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곁에서 기도하던 분이 내 기도를 엿들었는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성이 아빠, 무슨 기도를 그렇게 터무니없이 하세요? 하하... 방 세 칸짜리를 달라고 하는 기도가 너무 재미있어요.” 제가 그분에게 말했어요. “기도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구체적인 희망을 가져야 구체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구체적인 기도를 하면 동기부여가 됩니다. 구체적인 기도가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습니다. 욕심이 많아지면 탐욕이 마음을 지배합니다. 행복하려면 신선한 마음의 재료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매일 27가지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합니다... 마음 밭에 사랑을 심어라. 그것이 자라나서 행운의 꽃이 핀다. 가정을 위해 기도하라. 가정은 희망의 발원지요, 행복의 중심지다...”
여러분! 하나님께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십니까? 무엇을 구하여 얼마나 응답을 받았습니까? 왜 응답이 없을까요? 하나님께서 야고보 사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음이요, 구하고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그렇습니다. 실패한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 응답 받지 못한 이유는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내 욕망을 벗어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나에게 들어오시고, 하나님께서 나로 더불어 역사하십니다.“(계 3:20) 믿음의 사람은 일하기 전에 기도하고, 언제든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는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찾는다(휴레세테/ευρησετε/heyresete))”는 말은 “찾다, 갖다, 얻다, 인지하다, 만나다, 보다, (질문하고, 생각하고, 관찰하여) 발견하다”는 뜻입니다. 찾는다는 것은 몸을 움직여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찾는 행동을 동반해야 합니다. 우리의 간구를 행동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기도의 사람은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구한 것을 기도하면서 다시 생각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계속해서 열심히 찾아야 합니다. 바쁠 때일수록 하나님의 뜻을 찾고,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왜? 바쁘다는 것은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신속하게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미국 시카고 윌로우클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쓴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라는 책에서 말했습니다.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하는가? 기도를 습관화하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임재에 조율되고 있는가?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에 열려 있게 된다. 기도를 어떻게 습관화 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몇 가지 원칙을 세우셨다. 그런데 먼저 두 가지 경고를 들어야 한다. 하나는 목록과 공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대화할 때 기록하고 독서할 때 밑줄을 긋는 사람은 영적인 부분도 그렇게 열심을 낸다. 그러나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좀 더 많은 습관인가? 아니면 좀 더 효과적인 습관인가? 영적인 훈련이 요구사항으로 가득 차서 복음이 종교가 되고,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임기응변형으로 우(愚)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생각해 보라. 영적인 삶에 의도성이 없이 영적인 성장도 없다.
예수님은 규칙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기도하셨다. 은밀하게 기도하셨고, 진실하게 기도하셨다. 진실한 기도가 무엇인가?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말고, 의미 없는 낱말을 반복하는 습관에 빠지지 말라.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기도하셨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기도는 타협할 수 없는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께 매달릴 때 심령이 온유해지고, 습관이 변한다. 믿음이 커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우러난다.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 쓰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끌어 오른다. 우리의 삶은 기도를 훈련하고 사랑하는 데서 시작된다. 지금 여러분은 기도하고 얼마나 찾고 행동하고, 삶으로 입증하고 있습니까?
셋째는 두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드리라(크루에테/κρουετε/kroyete)”는 말은 “톡톡 두드리다, 두드리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멀리 있던 소원을 아뢰고, 찾아다니고 구해서 지금 문에 다다랐습니다. 이제는 문 앞에서 두드려야 열립니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서 이제 주님이 계신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두드릴 차례입니다. 인격과 인격 사이에 문 하나가 있어서 두드리면 열릴 것입니다. 좋은 것을 얻으려면 문이 열릴 때가지 두드려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가 받을 준비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받을 자세가 되어야 주시거든요. 받을 그릇이 준비될 때 채워주십니다. 구하지 않는 데 그저 주면 받고도 은혜를 모릅니다. 거저 받고도 은혜를 모르면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거저 받고 감사할 줄 모르면 감사가 되지 않거든요. 하나님은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주십니다. 하나님은 겸손을 준비하고 지혜를 준비하고 능력을 준비한 다음에 주시거든요.
어떤 분이 써 놓은 글입니다. “넘어진 친구를 위해 살며시 손을 내밀 때 그 손에 온정이 있습니다. 외로움에 허덕이는 사람을 위해 밤새 편지를 쓰는 손에 격려가 있습니다. 하루 종일 수고한 부모님의 어깨를 주무르는 손에 효심이 있습니다. 넘어져 좌절하는 사람을 붙들어 일으켜 주는 손에 배려가 있습니다. 눈물이 나도록 시린 가슴을 안아 주는 손에 연민이 있습니다. 나 아닌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드리는 손에 사랑이 있습니다.”
여러분! 더 좋은 것을 얻으려면 기도하면서 마음이 변화되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믿음이 견고해지고,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 은혜의 문을 두드립니다. 전도자 디 엘 무디(Dwight L. Moody)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는 두 개의 보좌가 있다. 하나는 가장 높은 하늘에, 다른 하나는 가장 낮은 마음에!” 이제 먼저 기도하여 주님의 마음을 품고, 응답 받고 먼저 베풀고 대접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들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이 열어주시고, 행복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