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박 11일의 그리스와 터키 여행/ 김경빈
터키여행이라 하면 딱히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열기구 밖에 없었는데, 다녀오고 보니 그리스에서 이어진 터키요, 역사를 공유하고 잇는 고대사였다. 볼거리도 많고 풍성한 터키의 과일들 지중해의 올리브도 역시 많았다. 첫날과 셋찟날을 가른 그리스에서 넘어가는 터키의 여정에서 그리스의 느림과 멈춤이 있었다면 터키는 다이나믹한 바쁜 생동감을 다가섰다.
첫날은 에게해를 두고 터키와 마주선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올랐다. 멀리 아테네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는 과거 그리스시대의 민주주의의 중심지가 아닌가 싶다. 고대 도시국가의 기본 요소가 원형극장과 신전 아고라라는 시장이 기본이라는 말을 들으니 참으로 인간들의 삶이 위대하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리스와 로마인들의 활력에 찬 소리들이 들리는듯했다. 햇살이 뜨거워도 그늘로만 가면 시원한 것은 유럽여행의 특징이었다. 더워도 돌아다닐만했고 아크로폴리스라는 언덕을 중심으로 빙 둘러 발달된 도심지가 너무나 평화롭게 다가섰고 조용함이 느껴졌다.
둘쨋날은 메테오라라는 지역으로 이동을 했다. 로마인들의 박해를 피해 거대한 바위 속에 들어가 기도하던 수도인이 많았었고, 메태오라의 성벽 유세워진 수도원은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의지를 보았다. 가파른 절벽 위에 세워져 고마인들의 박해를 피해야했던 수도하던 신부나 수녀의 모습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보게 되었다. 그후로 산을 빙둘러봐도 고대에 융기된 거대한 바위들과 여기 저기 구멍이 나 있는 구멍에 굴을 파고 들어간 수도하던 사람을 품어준 바위들을 보며 내려왔다.
샛쩻날부턴 텨키여행이다. 장장 8시간에 걸쳐 그리스와 터키의 국경을 넘어들어섰다. 산세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벌써 산의 자갈산이 신록이 조금씩 들어간 민둥산을 멋어난듯하기도 했고 뭔가 생기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리스는 잠을 자고 있는 밤이라면 터키는 정신없이 바쁜 낮이었다. 먼길을 달려서 차니칼레에서 자고 에페소로 이동을 했다. 무식해서 처음들어본 지명이었다.
에페소스는 고대그리스 폴리스 시대 무역항으로 유명했던 도시였다고 한다. 번화했던 시가지를 3D 영상으로 재구성한 동영상들을 보고 나니 고대에 그렇게 화려했던 무역의 도시가 상상이 되었다. 유적들이 많았다.원형극당의 흔적, 하드리아누수 신던이나 목욕탕과 변소 모습 샐죽도서관등 기원전 2000년 전 이오니아인의 식민도시가 되어 초기 그리스 문화가 번창했고 그후 6세기부턴 페르시아인의 지배, 기원전 34년알랙산더 대왕에게 패하여 평정이 되었다는데 헬리니즘과 로마의 문화가 발달한 쥬요 건츅물이 발달했다는 곳이다.
아, 에페소!
찬란했던 삶을 살았던 그대들 지금 어디 있는가
화려한 부와 풍요는 시간이 깎아 먹었는가
대 자연의 변동은 바다를 메꾸고
수많은 상인들의 넋은
아쉬운 고대 유적지를 맴도는 것은 아닌가
허무한 새월이요
변화에 따라야하는 연약한 인생이라
변영은 끝을 달리다 세월을 이기지를 못했네
수많은 혼들이 주변을 맴도는 듯
어, 수천년전의 어페소여
화려한 그 삶의 무상함이여!
에페소스에 이어진 고대도시의 흔적이 화려했던 면화의 고장인 파묵칼레로 갔다. 면화 생산의 중심지로서 지금도 전 세계에 공급하는 면화가 많이 생산된다는 것이었다. 드넓은 평야지를 보노라니 1차 산업이 번성할 수 밖애 없을 것도 같았다. 파묵칼레 역시 고대 폴리스의 흔적이 많았다. 터키의 역사보단 그리스 역사일진대 돈은 터키가 벌어들이고 있는 관광지인 셈이다. 지진으로 많이 파손이 된 도시국가 형태가 잘 남아 있는 곳이였다. 면화생산이 많아서 세계인들이 많이 몰려들게 되어 도시가 번창하여 하나의 국가가 형성된 곳이었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함께 머물렀다는 대표적인 휴양지로 석회수를 뚫고 나오는 온천수를 찾아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한 곳으로 장례지까지 포함하고 있고 역시 산에서 바라보는 대평원이 주는 시원함은 그지없이 평함을 안겼다. 너무도 더운 날이었지만 카트를 타고 달리다보니 어느새 하산길로 이어졌고 지금도 흐른다는 온천수에 족욕울 했다.숙소에 들어와서 목욕을 하는데 물이 부드러워서 온천 하는 마음으로 목욕을 많이 하다보니 샇인 피로가 많이 가셨다. 면하 실어나르던 마차와 병을 고치러 찾아들었을 고대인들을 상상해보면서 다음의 여행지 안탈리아로 이동했다.
안탈리아는 지중해 연안의 터키에서는 가장 근 도시라고 한다. 로마에 정복되어 살다가 근대 들어와 돌립전쟁을 해서 터키공화국을 선포한 케말파샤에 의해 터키가 되었으나 기원전 200년 경 페그가몬의 이탈리아 왕조에 의해 세워졌던 도시만큼 도시는 로마의 유적 중 하나였다.
제우스와 헤라의 석상이 세워진 올림푸스 산까지 2650m나 된다는 산을 케이불카로 올라서 지중해 연안을 내려다보니 아찔하고 어마어마 했다. 산 위로는 완전 돌산이요, 자갈 산으로 되어 풀하나 자라지 않고 있는데 흘러내리지 않고 어찌 버티고 있는 지 그것도 불가사의하다는 생각을 했다. 올림푸스 산을 내려와 지중해 바다를 해적유람선을 타고 돌았다. 망망한 대해였고 강 기슭에 귀족들의 휴양이 눈에 보이듯하기도 했다. 햇빛에 반짝이는 바닷물 위의 윤슬들이 평화로움을 더해주었다.
다음으로 간 곳이 카파토키아였다. 로마의 동맹국이었으나 힘을 잃으니 속국이 되었다가 기원정 6세기에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기원전 190년 로마가 마그네시아승리이후론 셀래우스왕조가 로마에 충성을 바치기로 하여 11세기까지 동로마 제국의 본루가 되기도 했고 실크로드의 중간 지점으로 동서문명의 융합을 도모했던 대상들의 교역로 였다는 곳이다.
로마의 박해를 피해 그리스인들이 살았다는 굴속의 데린쿠유라는 지하 동굴도시들과 괴레메니 우치히사르 성이니 데브란트 계곡등 위험천만했을 과거의 지형의 역사가 상상이 되었다. 관광객들에게는 카파토키아 열기구가 유명한 곳으로 남아 있을 터다, 우리도 거금 선택관광비를 물고 새벾에 나가서 열기구를 타고 하늘까지 올라서 여명을 거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삶의 정기를 받은듯하다.
다음으로 투즈빌의 소금호수 걷기, 앙카라의 한국공원과 아타튀르크의 영묘를 차창으로 보면서 호탤로 들어가 투숙했다, 콘도처럼 넓은 호탤룸이 여유롭고 이색적이었다.
마지막 여행지는 이스탄불이었다. 역시 대도시처럼 역동성이 넘쳐났고 정신없이 바쁜 우리나라의 서울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오스맍제국의 번성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가 연상되는 곳이었고 술탄의 위대함이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이어지는 톱카스궁전, 내부를 돌아보고, 비잔틴 건축물의 의 대표로소 대성당의 박물관이라는성소피아 성당, 마주보고 있는 블루모스크를 머리를 감싸고 들어가 위엄가득한 이슬람교인들의 기도실을 보고 나왔다. 야간투어로 번화한 터키를 보았고,보스보러스해협이 오늘날의 터키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을 유람선을 타고 감상을 했다. 전날 보았던 그리스 신전들을 뽑아다 만들어놓은 에레바탄 지하궁전도 인간의 의지를 넘어선 것들이었다.
이스탄불을 마지막으로 돌아본 터키의 관광은 거대한 고대 유적지요,희망과 에너지가 넘치는 미래 발전 가능의 나라를 보는 여행이었다. 감정표현보다는 네이버와 함께한 역사이야기와 대평원의 인상적인 사진들이 나의 노년을 더욱 바쁘게 만들어줄 것 같은 위대한 나의 체험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터키, 터키여행을 노래한 이유를 알게 해준 여행이었다. 고대에서 오스만 제국을 건너온 터키의 역사가 참으로 위대하다고 생각해본다.
부부끼리 다니던 여행들은 토라지고 싸우면서 다녔다면 동생내외와 함께하니 더욱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그리스와 터키 안-녕!
첫댓글 Evergreen님, 카페에 활기가 돕니다.
글과 동영상을 통해 오랜만에 이국 정취를 공유할 수 있으니 고마울 뿐입니다.
오마나 경빈님
가이드님 설명할때 메모 하문서 다녔어요?
다녀온 곳이라
생생한 여행기
귀애 쏙쏙 들어오네?
역시
작가님은 다르네
무사히 귀국 하신거
고맙구요
이왕수고 하신김에
사진도 좀 올려주세요
난
십년전이라서
사진들이 흑백처럼
보이더라구요
두 분 방문에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의 외출이 또 다른 힘을 주었네요. 사진은 차차 올리겠습니다. 심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럽의 관광지들은 거의 비슷할 것 같아요. 정체된 옛날의 유럽, 역동적인 한국은 변치 않을 것 같아요. 터키가 조금 바븜의 철학이 느껴져 우리나라의 8,90년 대를 본 것 같았지요.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