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이 가장 힘을 들인 부분은 현대시와 민요의 정신을 결합하는 일이었다.
그는 ‘민중시’라고 하면 민요 속에는 집단적인 민중의 삶과 의지가 들어있다. 생활의 체험에서 직접 느낀 실망의 정서는 더욱 더 소중하다. 그는 민중시에서 이 둘을 결합하고자 했다..
‘어허 달구’
어허 달구 어허 달구
바람이 세면 담 뒤에 숨고
물결이 거칠면 길을 옮겼다.
꽃이 피던 날은 억울해 울다
재너머 장터에 종일 취했다.
어허 달구 어허 달구
사람이 산다는 일 잡초와 같더라
밟히고, 잘리고, 짓뭉게졌다
한 철이 지나면 세상은 더 어두워
흙먼지 일어 온 하늘 덮더라
어허 달구 어허 달구
차라리 한 세월 장돌뱅이로 살았구나
저녁 햇살 서러운 파장 뒷골목
못 버린 미련이라 좌판을 거두고
이제 이 흙 속 죽음되어 누웠다.
어허 달구 어허 달구
어허 달구는 사람이 죽어 하관을 마치고 관 주변에 흙을 넣고 다질 때 부르는 달구 소리를 시적으로 변용하였다.
이 시는 ‘달구 소리’의 민요 가락에 시적 정서를 기대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민요 ‘달구 소리’와는 다르다. 민요 ‘달구 소리’는 망자에 대한 축원을 노래한다. 그러나 이 시에는 축원이 없다.
‘엿 장수 가위 소리에 넋마저 뻬앗기고’는 엿판을 메고 이 동네, 저 동네도 돌아다니던 엿 장수의 가위 소리를 시적으로 변용하였다. 엿 장수의 가위 소리는 일반적으로 흥겨운 가락이다.
*엣장수 가위 소리에 넋마저 뻬앗겨
죽은 아이들이 돌아오는구니
비석치기 자치기 사방치기 하면서
늦콩 열린 들길 산길 메우고
엿장수 가위 소리에 어깨 춤을 추는구나
어허 남자 요령 소리에 비칠 걸음 치는구니
사라졌던 것들이 돌아들 오는구나
가시네들 삼베치마 삼승버선 입고 신고
올곡 선뵈는 장골목을 메우는구니
엿장수 가위 소리에 덩더꿍이 뛰면서
휘모리 숨찬 가락 흥이 절로 나는구나
잃어진 것 잊혀진 것들이 돌아들가는구나
살아있는 것들 데불고 가는구나
도가(都家)집 사랑, 깊은 골방마저
엿장수 가위 소리에 넋마저 뻬앗겨구나
들판을 고갯길을 선창을 메우면서
가는구나 살아있는 것들
죽은 아이들 사라진 것들 따라가는구나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구나’ 라고 내지르는 소리를 반복함으로 엿장수의 사설을 특이한 어조로 패러디한다. 이 시는 엿 장수의 가위 소리와 더불어 흥을 더해간다. 지난 날 엿 장수가 지나가면 동네 아이들이 우 몰려들어 엿을 사먹던 흥겨운 풍경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시에는 까닭모를 비애가 느껴진다. 이런 정조가 신경림의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