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의 미학
유옹 송창재
미학은 항상 고운 것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미학적 철학은
지독한 결핍의 추함
막다른 궁극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깨달음으로부터
생겨나는 철학인 것이다.
어제 하루종일
오늘 새벽부터 많은 비가 내린다.
안전문자들이 울려 경고한다.
장마철 우리 방 윗목에는 늘 넝마같은 헌 옷가지들이 펼쳐져 있었고,
방 가운데에는 세숫대야가 놓여있었다.
그때에는 장마도 왜 그리 길고 비도 많이 왔었던지...,
동네 골목길은
마치 논두렁이 무너져 흐르는 물고랑처럼 재미있어서,
개구장이들은 밑구멍이 터져 속이 다 보이는 헤진 바지를 입고 물고랑에 앉아서 노다지로 비를 맞으며 놀았다.
지금처럼 하수도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미개의 시대에 살았던 미개인들은 그 당시의 모습들이 눈에 선해서 그래도 그것이 한때의 추억으로 보이기도 할 것이지만,
지금처럼 잘 정비되어 조금이라도 물이 고이면 당장에 시청 전화통에 불을 질러버리는 현시대의 개화인들은
그런 미개시대를 이야기하면 아마 아마존을 말하는가 보다 하고 어리둥절할 것이다.
아니다 우리가 자랄 때, 불과 60여 년전 대한민국의 이야기이다.
그 당시에는 도랑을 비롯한 관개수로가 엉망이어서 비만 조금 넉넉히 오기만 하면 온 천지가 물난리여서 물피해가 심했고
비가 안 오면 농사를 짓지도 못하고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의 시골에서는,
기다리던 비가 오면 후드득거리는 빗소리도 반가워, 잠을 자다가도 이집 저집 김영감, 이영감, 최생원, 박첨지 할 것 없이~
손잡이 부러진 삽자루, 괭이자루 하다못해 한쪽이 다 닳아 반만 남은 호미자루라도 들고 논 밭으로 달음질들을 쳤다.
하늘에서 주시는 그 은덕을 우리 논, 우리 밭으로 물고를 뚫어 새끼들에게 한 톨이라도 더 먹여 배 곯리지 않으려고...
비를 흠씬 맞아 무거워 베 잠뱅이 허리춤이 내려가 맨 궁둥이가 보여도
한 손으로는 허리춤을 잡고 한 손으로는 삽 모가지를 잡고, 이리 저리 물고를 트며 집집마다 인간 두더지들이 논둑에 우글우글했었다.
그러다 자기 논에 들어오는 물고를 돌려 댔다고 악다구니하며 싸우고~
조금 있으면 막걸리 한 사발에 화해하고~~
그 농투산이들이 모정에 둘러앉아, 집집마다 내 온 먹을거리들을 나누어 먹으면서도 젖은 옷 말릴 새도 없이 또 논으로 밭으로 달려 나간다.
이것이 장마철의 시골 모습이었고 ...
아예 밑구멍을 가릴 수도 없는 다 헤진 내리닫이를 입은 동내 꼬마 녀석들은, 어른들과는 다른 패거리를 만들어 저희들 놀이에 신이 났다.
고랑창에 흘러드는 미꾸라지들이 신나게 헤엄쳐 다니면, 그 미꾸라지들이 밑구멍을 간질거리는 줄도 모르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잡으려고 이리 미끌, 저리 비틀~
물방개, 물매암이도 그리 많았었는데...
그러다 갑자기 해가 번쩍 떠오르면 또 그 뙤약볕에 홀라당 벗고 않아 물장구를 치고,..
머슴애. 기집애 구별이 있을 리 없고, 무슨 남녀칠세부동석이 어이 필요가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그 시골은 지금의 시골에도 없다.
그렇게 시골서 놀다가 도시라고 나와 보니, 장마철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시골보다는 재미가 적었다.
그 당시의 도시도 도랑물이 넘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 도랑물에는 그때에도 미꾸라지나 물방개는 없었고 오물만 가득하였다.
역시 장마도 시골이 재미있고 멋이 있었다.
그런데 바다 가까이에 있던 할아버지 집에서는, 장마철에 비가 오다 잠시 멎으면 신나는 일이 있었다.
마당에 작은 게들이, 마치 갯벌에 게떼들이 돌아다니듯이 바글바글하였다.
물에 밀려 도랑을 타고 집 마당에서 놀던 게들이, 물이 빠지니 못 따라 나가고 마당을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니는데...
갯벌이 아니어서 숨지도 못하고
결국은 우리들의 양재기속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한번 그 맛을 들인 나는 장마철만 되면 엄마를 졸라 할아버지 집에 가자고 하였다.
셋방인 우리 방은
뒤 언덕의 낮은 골에서 빗물이 스며들어 항상 습하여 윗목에는 못 입을 옷가지들이 마른걸레 대용으로 늘어 펼쳐져 있었고...
초가집 지붕도 해마다 새 짚으로 새로 이어야 하는데
집주인도 가난해서 지붕을 새로 이지 못하니 지붕으로는 빗물이 샜다.
그 밑에 양은 대야를 받쳐놓으면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남도가락처럼 슬프게 구성져서 마치 서편제 가락이라도 듣는 양
많은 애환의 소리였다.
어찌 들으면 자장가의 정취가 있고
어떤 때는 가난의 짜증이 묻어있기도 하고..
부모님들은 오죽했으랴!
오만가지의 사유를 그 가난의 소리속에서 느끼며 자랐으니 나는 가난 덕에 슬픈 정서를 키우는 작가로 길러졌는가 보다.
그 때는 할아버지 댁 마당의 게가 더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그런 집도 자기 집이라고 그 집 주인은 유달리 갑질을 하여
우리들이 자기들보다 공부든 구슬치기든 어떤 놀이든 늘 못해야만 만족을 하였다.
우리는 늘 져 주어야만 하여서
우리 가족들에게 참,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한 악질들이었다.
지금도 그러한 정신적 결핍을 발전의 동기유발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을 구별할 줄 알고 경멸한다.
그래서 난 일찍
있다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았고,
지금은 자발적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들 중에는
특히 집없는 설움이 얼마나 깊은가를 안다.
요즘 여러 채의 집을 가지고
없는 사람들에게 갑질을 하는 것처럼,
정당하지 않은 치부로 돈과 힘만이 절대라고 맹신하며 남용하는 속물적 사람들을 철저히 경멸하며
정의와 공정의 철학이 생활신조가 되어버린 것이 그때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가난이 나의 미학의 근저가 된 것이다.
이제 장마가 시작되었다.
태풍이 제주도에서 올라오고 낼, 모래면 국토를 관통한단다.
어릴 적 태풍 불던 날,
그 집의 부엌문을 열고 엄마를 찾아 나서던 내가, 바람결에 그 문짝을 안고 마당에 내동댕이 쳐진 기억이 또 떠오른다.
이제 이 태풍에 마당에 동댕이쳐질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고
눅눅한 여름이면 배탈이 나서 공동변소 앞에 줄서서 동동거리는 그런 풍경이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날
방안에 그릇을 놓고 빗물을 받아내었다는 황희 정승은 지금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한밤중에 번개를 횃불삼아 논두렁을 달려가지 않아도 새끼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더 좋겠다.
근천스러운 듯한 옛 장마에서
지금의 미학을 그린다는 것이
미래보다는 과거에 추억이 있다고만 생각하는 꼰대가 되어서 그럴까?
그래도 소박하고 정직한 꿈들은 결핍속에 있었다.
이것이 근천스러움의 철학일까?
첫댓글 유옹 선생님 장맛비가 내리는 7월 둘째날 첫째주 화요일 좋은글 잘 감상했습니다 오늘부터 다음주까지 계속 장맛비가 내린다고 하오니 미리 집주변과 시설물 점검 하시고 피해 없으시길 바라며 오늘도 더위에 건강유의 하시고 빗길 안전운전 하시고 행복한 화요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 🧡
고맙습니다
오오 ㅡ 🎶
옛 추억이
담긴 소중한 글 잘 읽고 갑니다 ㅡ 송쌤님 ♡♡♡
고맙습니다
장마철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비피해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