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전도서〉의 저자 솔로몬은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모습을 시적으로 은유한다. “힘있는 자들〔허리〕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치아〕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보는 자〔눈〕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귀〕이 닫혀질 것이며”(12:3~4) 라고.
난 며칠 전 맷돌 하나를 잃었다. 내가 유일하게 지니고 다니던 금붙이가 식사 도중 떨어져 나왔다. 나이든 나에겐 실로 슬픈 사건이다. 15년 전 대구 수성구 황금동 동네 치과에서 어금니를 금으로 덮어씌운 거다. 남자 의사로 서울대 치과를 나왔고 일본에서도 공부한 거로 기억난다. 내가 철학을 공부한다고 하니 자기도 철학에 관심이 많다고 하면서, 철학자 하이데거에 대해 조근조근 얘기하며 치료해 주었다. 그 후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없어졌다.
그 치과병원은 2층이고 1층에는 비디오 대여점이었다.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 1996)이라는 비디오를 빌려 강의시간에 틀어주었다. 사형제도 존폐에 대한 토론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줄거리는 수녀와 사형수 사이에서 일어나는 얘긴데, 사형제도에 관해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영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란 탈리오법칙이 과연 살인 등 강력범죄를 줄이는 실질적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유의미한 조사가 쉽지는 않다. 탈리오법칙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칸트가 있는가 하면, 사형이 징역형보다 유용성이나 효과적인 면에서 떨어진다는 벤담도 있다. 생명윤리의 논쟁거리다. 한국은 김대중 대통령 이후 20년간 사형집행이 한 건도 없어서 2007년 이후 지금까지 실질적인 사형제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15년이나 버텨준 게 고맙다. 어제 금니를 들고 가격이나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인근 시장에 갔다. 나란히 붙어 있는 금방 세 군데를 들러 가격을 물었다. 첫 집은 5만원, 둘째 집은 8만원 그리고 셋째 집은 5만 4천원이라 한다. 같은 정밀저울에 달아서 매긴 가격인데 집집마다 다른 게 이상하다. 같은 재질에 같은 무게인데 왜 각각 값을 다르게 부를까? 혹 젊은 사람이 가면 값을 더 줄까? 노인이라 이 값을 쳐주는 건 아닌가? 묘한 마음이 들었지만, 8만원에 팔았다. 발품을 판 대가다. 살면서 별별 경험을 다 한다. 오랜 시간 나의 착실한 맷돌로 살다가 생을 다해서도 주인에게 거금 8만원을 선물하고 간 게 고맙기도 하다.
두둑해진 지갑에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오던 중 이런저런 생각이 난다. 역시 금은 금이구나! 세월이 흘러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 건 금밖에 없구나. 금이 좋은 이유가 있긴 있구나. 사람은 늙어도 금은 늙지 않는구나 하는 별별 생각이 들었다.
배지는 신분을 나타내거나 어떠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옷이나 모자 따위에 붙이는 물건이다. 난 평생 살면서 배지를 달아 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표식할 또렷한 이력이 없었다. 지금까지 낸 책이 배지라면 배지다.
베지, 그것도 금으로 만든 배지라면 누구라도 달고 다니고 싶을 것 같다. 까만 양복 칼라에 황금색 배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을 우리는 ‘국회의원’이라 부른다. 오죽 신분을 높이고 싶었으면 순금으로 만들었을까? 처음 만들었던 1950년도에는 순금배지였다. 그 뒤 금배지가 과도한 특권이라는 지적 때문에 1981년 제11대 국회부터 금색 도금 배지를 사용하고 있다. 99%가 은이고 1% 금으로 도금했다. 사실은 은배지다. 금을 발라 권위를 업그레이드했다. 아니 배지가 꼭 필요한가?
총선으로 300개 배지 주인공이 결정되었다. 배지의 명목 가치는 같지만, 배지를 단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구매력 차이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작은 금니 값도 가게마다 다른데 하물며 300개의 배지 가치가 다 같을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완장인 것이 누군가에겐 공복(公僕)의 표식이다. 어제는 어금니 하나 빠진 사건으로 많은 생각을 했던 하루였다.
첫댓글 늙음에 대한 솔로몬의 표현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부처님은 늙음을 수레가 낡음에 비유했지요.
안팍이 연생으로 이어지는 무상한 삶을 다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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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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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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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