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보던 1만 8000여 버밍엄시티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66분 교체아웃되는 선수를 향해 기립박수를 보냈다. 박수를 받은 선수는 이 경기가 첫 홈경기였다. 골이나 어시스트 등 공격 포인트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단 66분간의 경기력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24년 2월 13일 영국 버밍엄 세인트 앤드루스. 주인공은 백승호였다. 그리고 머릿 속에 잠들어있는 기억이 떠올랐다.
사진캡쳐=연합뉴스
#2012년 8월 전남 강진
승호를 처음 본 것은 2012년 전라남도 강진이었다. 강진 축구 전용 구장에서 한국 중등축구연맹회장배 겸 전남도지사배 국제대회가 열렸다. 기자들이 전남 강진으로 달려갔다. 백승호 때문이었다. 이 대회에 바르셀로나 15세 유소년(카데테 A)팀이 참가했다. 15세의 백승호는 그 팀의 일원이었다.
중등연맹 선발팀과 경기를 펼쳤다. 백승호는 중앙 미드필더로 나섰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중심이었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같은 포지션이었다. 당시 현장에서 지켜봤다. 그에 대한 느낌은 간결함이었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근처에 있는 동료들을 잘 활용했다. 패스를 주고난 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빠져들어갔다. 다시 패스를 주고 빠졌다. 바르셀로나 특유의 '티키타카'가 몸에 배어 있었다. 결승골을 백승호가 넣었다.
"5년 계약에는 백승호가 훌륭한 선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있는 것이다.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겠지만 대형 선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줄 것이다."
당시 팀을 데리고 한국으로 온 산 후앙 엔리케 알바레스 바르셀로나 카데테 A 감독의 말이었다. 백승호는 2009년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후 2년 동안 가능성을 점검받았다. 그리고 2012년 5년 계약에 사인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백승호의 잠재력을 인정했다.
15세의 백승호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이니에스타와 같은 선수가 되겠다고 다부지게(동시에 귀엽게) 말했다.
"볼을 공격진에 잘 분배해주고 스스로 공격적인 모습도 보이는 선수가 이니에스타예요. 그렇게 되려면 더 적극적으로 뛰고 자신감도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2017년 1월 포르투갈 리스본
5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백승호를 만났다. 포르투갈 리스본이었다. 그 해 여름에 열릴 20세 이하 월드컵을 앞두고 20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고 있던 신태용 감독이 백승호를 포르투갈로 불렀다. 당시 그는 청년으로 자라있었다. 5년 전 앳된 모습은 없었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여러가지 일들 겪은 후 더욱 단단해졌다.
2014년 '사건'이 터졌다. 바르셀로나가 유망주들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FIFA 규정을 위반했다는 고발이 들어왔다. 바르셀로나는 CAS에 항소했지만 기각당했다. 선수 등록도 금지당했다. 경기를 뛰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성장의 시기였다. 기량이 멈출 위기에 처했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해결책을 찾았다. 영주권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2010년 2월 스페인으로 이주했기에 영주권 취득이 가능했다. FIFA의 징계를 피할 수 있었다. 다시 나아갈 발판을 마련했다.
바르셀로나의 1군 훈련에 계속 참가했다. 리오넬 메시, 네이마르, 이니에스타와 함께 훈련하며 기량을 쌓았다. 2016년 여름 바르셀로나 B와 프로계약을 맺었다. B팀과 1군을 오갔다. 그러나 녹록치 않았다. 디렉터, 헤라드 로페스 B팀 감독, 당시 에이전트 그리고 백승호까지 오해가 있었다. 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백승호는 에이전트와 계약을 해지했다. 오해는 풀었다. 그러나 경기 출전은 쉽지 않았다. 로페스 감독은 당장 B팀의 성적을 위해 어린 선수들을 키우기보다 20대 중반의 선수들을 기용했다. 백승호는 계속 외면받았다. 그 와중에 루이스 엔리케 바르셀로나 감독의 눈에 들어 계속 1군으로 콜업됐다. 그런 사이 리스본에서 백승호를 만났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가 기억에 남았다.
"힘든 시기가 오니까 생각이 바뀌었어요. 외부보다는 나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볼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알게 됐습니다. 작지만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요즘 조금은 축구선수가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소년티를 살짝 벗은 백승호는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
#2019년 9월 독일 다름슈타트
2년 반 후 백승호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독일 다름슈타트였다. 다름슈타트와 뉘렌베르크의 분데스리가2 5라운드 경기가 열렸다. 백승호는 독일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2017년 여름 백승호는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팀 당 세 장 밖에 없는 라 리가의 비유럽 쿼터 때문이었다. 바르셀로나 인근 지로나로 떠났다. 2017~2018시즌 지로나의 2군팀인 페랄라다에서 1시즌을 뛰었다. 선발을 꿰찼다. 34경기를 뛰면서 경험을 쌓았다. 맹활약하며 페랄라다의 주전으로 거듭났다. 지로나도 백승호를 주목했다.
2018년 여름 지로나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시 비유럽 쿼터가 발목을 잡았다. 당초 지로나는 비유럽 쿼터 중 하나로 백승호를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변수가 발생했다. 지로나의 모구단인 맨시티가 끼어들었다. 여름 이적 시장 마감 전날인 8월 31일 더글라스 루이스를 지로나로 임대보냈다. 맨시티로서는 루이스의 워크 퍼밋을 해결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위성 구단인 지로나로 보냈다. 백승호에게 불똥이 튀었다. 백승호는 지로나 소속이었지만 비유럽 쿼터 때문에 실전은 2군 팀인 페랄라다에서 뛸 수 밖에 없었다.
겨울 1군에 자주 콜업됐다. 비유럽 쿼터 선수들 중 부상이나 결원이 생기면 올라갔다. 소집 명단에는 들었지만 출전 불발이 이어졌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와의 코파 델레이 경기 그리고 친정팀인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한 리그 경기 등에 출전했다. 가능성은 보였다. 그러나 운이 정말 따르지 않았다. 지로나는 강등됐다. 2부에서는 비유럽 쿼터가 2장으로 줄어든다. 백승호와 지로나는 2019년 7월 지로나와 계약을 맺었다. 더 이상 페랄라다에서 뛸 수도 없었다. 결국 이적을 택했다. 비유럽 쿼터가 없는 땅. 독일로 향했다. 다름슈타트. 3년 계약이었다.
백승호의 다름슈타트 데뷔전이었다. 60분을 뛰었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그를 만났다. 스타일을 이야기했다
"스페인과는 스타일이 달라요. 좀 더 저돌적입니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4년 2월 영국 버밍엄
독일 무대 이후 5년만에 백승호를 만났다. 역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백승호는 다름슈타트에서 2시즌을 뛰었다. 첫 시즌인 2019~2020시즌은 성공적이었다. 29경기 중 19경기를 선발로 나섰다. 교체는 10경기. 2골-3도움을 기록했다. 그러나 2020~2021시즌 입지가 줄어들었다. 전반기 16경기(선발 10경기)에 나서 1골-3도움을 기록했다. 안팡 감독이 갑자기 백승호를 외면했다. 1월말부터 거의 뛰지 못했다. 백승호로서는 힘든 시기를 맞이했다.
이적으로 돌파구를 만들었다. 전북에 둥지를 틀었다. 경기 출전, 대표팀, 여기에 병역 문제 등을 모두 고려한 결정이었다. 3시즌을 뛰었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는 브라질을 상대로 골을 넣었다.
2023년 12월 김천 상무에 입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았다. 김천 상무로 갈 이유가 없어졌다.(갈 수가 없게 됐다.) 유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전북과의 계약도 끝난 시점이었다. 이적료없이 팀을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버밍엄시티에서 오퍼가 왔다. 백승호를 계속 원했던 토니 모브레이 감독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백승호는 잉글랜드로 날아왔다.
2차례의 원정 경기에 출전했다. 모두 교체였다. 그리고 홈경기 출전을 앞두고 있었다. 선발로 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둘러 버밍엄으로 향했다. 백승호는 선발이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고자 했다. 한국 선수이기에 더욱 촘촘한 잣대를 들이댔다. 과연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까. 66분 후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챔피언십 레벨이 아니다. 조만간 프리미어리그에서 볼 것만 같다.
https://tv.kakao.com/v/444630323
백승호의 첫 경기는 인상적이었다. 볼터치는 간결했고 군더더기 없었다. 압박 당하기 전 볼을 처리하고 공간으로 향했다. 볼을 쉽제 찼다. 개인적인 경기력의 템포도 상당히 빨랐다. 계속 저 레벨의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프리미어리그 팀들이 탐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경기 후 백승호를 만났다. 그는 차분했다. 2012년, 2017년, 2019년 만났던 백승호와는 또 달랐다. 차분한 가운데 속이 꽉 차 있었다.
https://tv.kakao.com/v/444632979
"오늘도 생각보다 한국분들이 정말 많이 와주셔서 너무 든든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고요. 앞으로 적응 잘해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테니까 가능하면 많이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백승호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https://v.daum.net/v/3cHuGYloFl?x_trkm=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