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반도체 인력 양성, AI 시대의 글로벌 리더십을 향해
유회준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 책임교수)
AI 시대의 도래와 반도체 기술의 중요성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Chat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이하 LLM)’의 발전으로 AI 기술의 파급력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ChatGPT는 단순한 질의응답을 넘어 사람과 같이 대화하며 학습하는 능력을 갖췄으며, 이는 산업적, 사회적으로 엄청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얼마 전 출시한 삼성전자의 갤럭시 S24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모바일 기기 최초로 클라우드에 의존하지 않고 기기 내에서 AI를 구동하는 ‘온 디바이스 AI’ 기술을 선보였다. 갤럭시 S24에는 삼성전자의 자체 개발 경량화 LLM을 탑재했으며, 모바일 기기에서도 거대한 LLM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러한 변화는 고성능 모바일 반도체 기술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더욱 부각하고 있다. 트랜스포머 모델을 포함한 LLM 기술이 산업의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을 구동하기 위한 구체적인 하드웨어로서 AI 반도체가 필수적이며, 따라서 AI 반도체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AI 시대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세계 기업들의 AI 패권 다툼
AI 기술과 산업은 승자독식이 특징이어서 AI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선두 주자가 되기 위한 각 국가와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은 날로 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경쟁은 기술 자체의 발전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의 제품 개발과 시장 선점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엔비디아의 주가 상승 소식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엔비디아는 2020년의 매출액이 110억 달러였지만 ChatGPT의 출현에 따라 2021년에 1.5배, 2022년에는 2.5배로 증가했다. 엔비디아에서는 기존의 게임용 GPU 중심을 벗어나 2022년 AI 연산을 위해 특화된 GPU인 H100을 출시해 서버용 GPU의 매출이 150억1천만 달러로 전체 매출의 55.5%를 점해 생성형 AI의 이용 확대에 따라 더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메모리 반도체 중 고대역폭 초고속 메모리 반도체인 ‘HBM(High Bandwidth Memory)’을 엔비디아에 주로 공급하고 있으며, 대만 기업인 TSMC의 경우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첨단 패키징 공정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SK하이닉스, TSMC, 이 두 회사의 실적 상승은 곧 엔비디아의 실적과 직결되어 있다.
반면, 엔비디아의 독점을 막기 위한 움직임도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자체적인 AI 반도체 개발을 통해 AI 반도체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또한 ChatGPT 개발사인 오픈 AI의 행보도 심상치 않은데, 현재 오픈 AI는 무려 9천조 원(7조 달러) 규모의 펀딩을 추진하며 AI 반도체 개발은 물론 AI 기술의 판도를 변화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처럼 AI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AI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업 간의 경쟁은 더욱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각 기업은 전략적인 동맹 형성 및 경쟁을 통해 AI 기술을 기업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 하고 있으며, 따라서 높은 시장 점유율은 기업 목표의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기업들도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 수립이 필요하며, 국가적 지원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한국 AI 반도체 분야의 현재
LLM과 같은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고성능 반도체 처리 시스템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동적메모리(DRAM), 플래시 메모리와 같은 ‘메모리 반도체’뿐만 아니라 그래픽처리장치(GPU), 신경망처리장치(NPU) 등의 ‘비메모리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AI 기술 진화의 파급력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의 발전은 필수적이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며, 글로벌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국은 PIM(Processing-In-Memory) 반도체 기술 개발에 힘을 쓰고 있다. PIM 반도체는 한국이 AI의 큰 흐름에서 세계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으며, 이는 미래의 AI 기술과 접목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규모가 593조 원에 달하며 급성장하는 가운데 한국은 NPU 개발과 같은 비메모리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는 현실이다. 국내에서는 리벨리온, 사피온 및 퓨리오사 등의 벤처 기업들이 KT, SK 및 NHN 등과 협력으로 데이터 센터용 NPU를 개발하고 있으며, 리벨리온의 경우 세계 최고의 반도체 학회인 ISSCC 2024에서 엔비디아(NVIDIA)를 능가하는 칩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는 등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로서 맹추격 중이다.
또한 최근 급속히 관심을 끌고 있는 온-디바이스 AI에 있어서는 저전력이 중요하며, 엔비디아도 대응을 할 수 없는 분야이다. 이러한 AI 기술의 발전은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확보한 글로벌 주도권을 비메모리 분야까지 확장하는 데 큰 기회가 될 것이라 예상된다. 특히 한국에는 스마트폰 대기업이 존재하며, 국내의 여러 벤처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술을 선보이고 있어 온-디바이스 AI에서는 한국이 세계를 주도할 수 있을 가능성도 보인다.
AI 기술의 발전은 메모리,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크게 영향을 줄 것이며, 특히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AI 반도체로 새로이 개편될 전망이어서 이 분야의 경쟁력 강화는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AI 반도체 시장에서 ‘반도체 강국 한국’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AI 반도체 분야에서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기 위한 총력 투자가 필수적이다.
해외의 과학기술 인재 양성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반도체 산업의 확대와 함께 과학기술분야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재 개발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경우, 스탠퍼드대학교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UC버클리) 등이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산업 요구에 맞춘 교육 과정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이 현장감 있는 학습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특히 스탠퍼드대학교 인공지능연구소(SAIL)는 AI 반도체 설계와 관련된 최신 연구 주제에 대한 세미나와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개최해 학생들과 산업계 전문가들 사이의 교류를 촉진하도록 돕고 있다.
중국에서는 정부의 ‘반도체 굴기’ 기조에 맞추어 AI 반도체 분야의 인재 양성을 위한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 2021년에만 칭화대학교, 베이징대학교 등 14개의 대학이 반도체 대학원을 신설해 인력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대만이 우리에게는 주목 대상인데, 세계적 반도체 제조 기업인 TSMC가 현지 대학들과 협력해 반도체 설계 및 제조 기술에 대한 대학원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으며, 반도체 엔지니어들의 급여를 대폭 인상해 타국으로의 인재 유출을 방지하고 있다. 또한 TSMC는 자체 연구소를 통해 개발된 최신 제조 기술을 TSRI(Taiwan Semiconductor Research Institute)를 통해 대학의 커리큘럼에 통합시키고, 학생들에게 실제 생산 라인에서의 인턴십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졸업 직후 바로 산업계에 투입될 수 있는 고급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이렇듯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많은 나라들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의 중요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과학기술 인재양성에 힘쓰는 상황이다.
한국의 반도체 인력 양성 사례 ①PIM 반도체설계연구센터
한국도 이에 뒤처지지 않도록 반도체 시장 내 경쟁력 확보를 위해 경쟁자들과 차별화되는 초격차 기술 확보를 목표로 인력 양성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는 프로세서와 메모리를 단일 칩으로 통합하는 ‘Processing-In-Memory(PIM)’ 기술이 주목받고 있는데, PIM 기술은 메모리 반도체에 계산 기능을 추가해 AI와 빅 데이터 처리를 위한 데이터 전송 병목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신기술이다. 이는 데이터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향상하고 에너지 효율을 개선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미래의 컴퓨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기술이다.
2022년에 개소한 PIM 반도체설계연구센터(AI-PIM)는 이러한 혁신적인 기술의 연구 및 개발을 선도하며, 고성능 반도체 처리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전문 지식과 실무 능력을 갖춘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연구소는 ‘PIM Elite’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자들이 PIM 기술의 기본 원리부터 시작해 IP 설계, 관리, 활용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집중적인 단기 강좌와 장기 교육 과정을 통해 이론과 실습을 겸비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산업 현장과 긴밀히 연계된 프로젝트를 진행해 참여자들이 실제문제를 해결하는 경험 제공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PIM 반도체설계연구센터는 메모리 및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미래를 주도할 전문 인력을 양성하며,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기술 지배력을 유지 및 발전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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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9일, PIM 인공지능반도체사업단 출범식 모습 ⓒKAIST PIM 반도체설계연구센터 |
한국의 반도체 인력 양성 사례 ②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
PIM 반도체설계연구센터에 이어 2023년에 개원한 KAIST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은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이끌 전문 인력을 더욱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기술의 결합에 필요한 교육과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첨단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 테스트, 최적화에 이르기까지 반도체 생산의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대학원은 특히 인공지능 반도체의 고성능화, 저전력화 및 미세 공정 기술의 발전을 목표로, 학생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실제 기술개발 과정에서의 문제 해결 능력과 함께 필요한 기술적 스킬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반도체 설계와 제조에 필요한 전문 지식을 습득하고 팀워크, 프로젝트 관리, 혁신적 사고 등 연구에 필요한 스킬을 키워나갈 수 있다. 대학원은 현대적 교육 방식과 실습,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 산업계 전문가의 멘토링 시스템을 통합해 학생들에게 깊이 있는 학습 경험을 제공하며, 반도체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혁신을 이끌어갈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처럼 PIM 반도체설계연구센터와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의 노력은 대한민국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기술 지배력을 확보하고 미래의 혁신을 주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의 인재 양성을 위한 지원 강화
대한민국의 미래는 AI 반도체 시장에서의 위치를 어떻게 자리 잡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어떻게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지원하느냐가 중요한 핵심이다. 현재 PIM 반도체설계연구센터와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과 같이 우수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모범 사례들이 있지만, 경쟁국들과의 차별화된 기술 선점을 위해서는 정부, 산업계, 학계 간의 협력을 더욱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현재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은 5년간의 정부 지원만이 약속된 상태여서, 이런 단기적인 지원을 넘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인재를 양성해야 할 것이다. 특히 반도체 연구 생태계를 구축하고 산학연 연계 플랫폼을 개선해 학교 교육 내용과 산업계 실무 내용 간의 괴리를 줄여나가야 한다. 또한, 인재 유출 방지를 위해 엔지니어의 처우를 개선해 국내 유수 인재 들의 반도체 산업계로의 유입을 촉진해야 하며, 반대로 외국의 우수한 인재도 유인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AI 반도체의 세계 시장 규모가 향후 10년간 6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의 핵심 강점인 메모리 기술에 더해 AI 반도체 설계 기술을 융합해 ‘패스트 팔로워’에서 ‘패스트 무버(First Mover)’로의 전환을 이루고, 기술을 선도해 세계 시장을 주도하기를 바란다.
※ 이 원고는 월간 <과학과기술> 5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