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긴수염고래/ 김연아
내가 늙어 눈이 깊어질 때
나는 돌아가리라, 우리가 태양을 묻어버린 곳
바다 중의 가장 검은 바다로
거기엔 세상에서 잊혀진 이름들, 수많은 범선과 닻이 녹슬고 있으리라
고래좌의 별들이 물속에 잠길 때
멀리서 오는 바람은 사향 냄새를 몰고 온다
그러나 내 속의 상한 쓸개냄새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일은 어느 금요일에 일어났다
외눈박이 이끼 낀 수염고래 한 마리
턱 아래 늘어진 푸른 주름을
모래톱에 부려놓고 밭은 숨을 쉬고 있다
빛이 사라지는 지평선
바다를 토해내던 숨구멍으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붉은 나비 떼
포경선에 쫓기며 너는 물 위를 떠돌아다녔지, 사막의 낙타처럼 햇볕에 혹을 말리며. 먼지와 얼음알갱이, 토성의 고리였던 시간을 지나, 빙하가 우는 산에서 너는 자랐지. 몬순의 비가 내리면, 달과의 약속을 지키려 떼를 지어 이동하는 크리스마스 섬의 붉은게처럼, 시큼한 바다로부터 여기까지 헤엄쳐왔다. 안데스의 이회토, 히말라야 석회암에 묻혀 있는 조상의 뼈. 그 속에 흐르던 낙타의 피. 난바다곤쟁이를 쫓아 남빙양 바다 밑을 잠수하던, 늑골 속의 숨 주머니. 그 허파는 지금 독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침내 너는 일흔 살이 되었다. 몸이 관(棺)이 되어 은수자처럼 떠돌려는가. 지평선 없는 세계 속으로 흩어지려는가. 이제 바다 거품으로 몸을 헹구고, 해저 동굴을 울리던 노래는 마리아나 해구의 침묵 아래 놓아두어라.
시든 눈으로 황혼이 떨어진다
태양을 향해 머리를 돌리고 너는 마지막 숨을 거둔다
기도하는 손처럼 지느러미를
하늘로 들어 올린 채
- 시집 『달의 기식자』(문예중앙,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