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요한17,17).
*스페인 사라고사의 필라르 대성당은 화려한 타일장식을 갖춘 둥근지붕이 11개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성당의 이름인 필라르는 스페인어로 기둥이라는 뜻이며 야고보에게 신앙을 전하기 위한 성모발현과 고야가
그린 프레스코 천장화 '레지나 마르티룸', 스페인 내전시 성당 지붕에 떨어진 불발탄등도 볼 수 가 있다.
제8절 여덟째 계명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된다(탈출20,16).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마태5,33).
2464여덟째 계명은 타인과 맺은 관계에서 진실을 왜곡하는 것을 금한다.이 도덕적 계명은 진리 그 자체이시며 진리를 바라시는 자기 하느님의 증인이 되어야 할 거룩한 백성의 소명에서 유래한다.진실을 어기는 것은,말이나 행실로써,도덕적 정직을 지키기를 거부하는 것이다.진실을 어기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기본적인 불성실이며,이런 뜻에서‘계약’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Ⅰ. 진리 안에서 살아라
2465구약 성경은 하느님께서 모든 진리의 근원이심을 증언하고 있다.하느님의 말씀은 진리이다.하느님의 법은 진실하다. “하느님의 성실은 대대로 이어진다”(시편119,90). 하느님께서는 “진실하신”(로마3,4)분이시기에, 하느님 백성의 지체들은 진실하게 살아야 마땅하다.
2466하느님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모두 드러났다.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그분께서는 “세상의 빛”(요한8,12)이시다.예수님께서는 진리이시다.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예수님의 제자들은,그들을 성화시켜 주고,자유롭게 해 주는 진리를 알고자 그분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다.예수님을 따름은,성부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파견하시고,“모든 진리 안으로”(요한16,13)이끄시는 “진리의 영”으로 사는 것이다.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진리에 대한 절대적 사랑을 가르치신다.“너희는 말할 때에 ‘예’.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마태5,37).
2467인간은 그 본성상 진리를 찾기 마련이다.인간은 진리를 높이 평가하고 증언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개인적 책임을 지고 있는 모든 인간은 진리를 추구하도록 이끌리며 또 그 진리를 추구할 도덕적 의무를 지닌다.또한 깨달은 그 진리를 따르고,자신의 온 삶을 그 진리의 요구에 맞추어야 한다.”
2468인간의 행실과 말이 올바르다는 뜻의 진리는 정직,성실 또한 진솔함이라고도 부른다.진리 또는 진실은,인간이 자신의 행동으로 참된 것을 보여 주고,자신의 말로써 참된 것을 드러내며,이중성과 위장과 위선을 피하게 하는 덕이다.
2469“상호 신뢰가 없다면, 곧 서로에게 진실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사람들은 더불어 살 수 없을 것이다.”진실한 사람은 타인에게 마땅히 알려 주어야 할 것을 알려 준다.진실은 말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비밀 사이에서 올바른 중용을 지킨다.진실은 성실과 신중을 내포한다.정의에 따라,“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성실하게 진실을 밝혀 주어야 한다.”
2470그리스도의 제자는‘진리 안에서 사는 삶’을 받아들인다.곧 주님의 모범을 따라 단순하게 살며 주님의 진리 안에 머문다.“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1요한1,6).
Ⅱ.“진리를 증언하여라”
2471그리스도께서는 빌라도 앞에서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고 선언하셨다.그리스도인은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2티모1,8)한다.그리스도인은 신앙을 증언해야 하는 상황에서,바오로 사도가 재판관들 앞에서 보인 모범에 따라,신앙을 분명하게 고백해야 한다.그리스도인은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언제나 거리낌 없는 양심을 간직하려고 애를 써야”(사도 24,16)한다.
2472교회의 생활에 참여해야 할 의무에 따라서,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증인이 되며,복음에서 유래하는 의무들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이 증언은 말과 행실로써 신앙을 전달하는 것이다.증언은 진실을 밝히거나 알게 하는 정의의 행위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디에서 살아가든 삶의 모범과 말의 증거로 세례를 통하여 입은 새사람을 드러내고 견진을 통하여 굳세게 해주시는 성령의 힘을 드러내어야 한다.(선교 교령,11항)
2473순교는 신앙의 진리에 대한 최상의 증거이다.순교란 죽음에까지 이르는 증거를 가리킨다.순교자는 자신과 사랑으로 결합된 그리스도,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한다.순교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와 그리스도교 교리의 진리를 증언한다.순교자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죽음을 참아 받는다.“나를 짐승들의 먹이가 되게 놔 두십시오.나는 짐승들을 통해서 하느님께 이르게 될 것입니다.”
2474교회는 목숨을 바쳐서까지 자기의 신앙을 증언한 분들의 유품이나 그분들에 관한 기록을 직극한 정성으로 수집하였다.이것이 ‘순교자들의 행적’이다.이 행적들은 피로 쓴 진리의 기록이다.
이 세상의 매력도 현세의 왕국도 내게는 소용이 없습니다.내게는 이 세상 끝까지 통치하는 것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하기 위해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그분을 나는 찾으며,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그분을 나는 원합니다.그분 안에서 내가 태어나게 될 때가 가까웠습니다. .....
주님,저를 그날과 그 시간에 합당한 자격이 있는 자로,당신의 수많은 순교자들 중에 들 만한 자로 여겨 주셨으니 당신께 찬미 드립니다.... 거짓이 없으시고 진실하신 하느님,당신께서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이 은총과 모든 것에 대해,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시며,영원한 천상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당신을 찬미하고,찬양하며,당신께 영광을 드립니다.성부와 성령과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이제와 항상 영원히 영광 받으소서.아멘.(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로마인들에게 보낸 서간)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발췌-
(화재 후 인왕산 기차바위 능선 05/11)
내게서 모두 물러들 가라, 나쁜 짓 하는 자들아.
주님께서 나의 울음소리를 듣고 계신다.
주님께서 나의 간청을 들어주시고
주님께서 나의 기도를 받아들이신다.
(시편 6,9-10)
“내게서 모두 물러들 가라”는 말은 이 시편에서 전환점을 이룬다.시인의 기도가 응답을 받아 그의 탄식이 기쁨으로 전환된다.“나쁜 짓하는 자들”은 병들어 죽어가는 시인을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라고 말하며 그를 괴롭히는 자들로 볼 수 있다.예수님은,집주인이 문을 닫아건 후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이들에게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모두 내게서 불러가라,불의를 일삼는 자들아!’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루카13,27)라고 말씀하셨다.
9절과 10절에서 시인은 하느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두 번이나 말한다.시인은 주님이 들으셨다고 확신한다.그는 기도나 사제를 통해 위로의 말을 듣고 확신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하느님이 시인의 편이 되셨다.여기서 사도 바오로의 말을 떠올릴 수 있다.“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로마8,31ㄴ)
시편6편의 전체적 의미:시편 6편의 시인은 죽을병에 걸려 죽음과 저승에 가까이 와있으면서 탄식하고 밤마다 울음으로 잠자리를 적신다.그는 병과 죽음을 거부한다.왜냐하면 자신이 죽으면 하느님을 찬양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는 병들어 죽게 된 가운데 하느님의 부재를 깊이 느낀다.하느님은 그에게 죽음의 고통을 주고 떠나셨다.죽을 지경에 이른 시인을 보고 원수들은 좋아했을 것이다.시인은 그의 뼈들과 영혼이 떨리는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주님께 구원해 달라고 매달린다.그는 ‘죽으면 주님을 기억할 수 없고,저승에서는 주님을 찬송할 수 없다’(6절)면서 주님이 자신을 구원해 주시길 간구한다.그는자신을 버린 것 같은 하느님 앞에서 많은 눈물로 하느님의 은총을 구한다.시인은 그를 떠나신 하느님께 “돌아오소서”라고 간구하고 원수들에게는‘물러가라’고 외친다.결국 그는 하느님의 응답을 확신하고 믿음으로써 나쁜 짓하는 자들을 물리친다.이 시인은 우리에게 하느님이 떠나버린 것 같은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기도하게 한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시편1-41편/전봉순 著)
코헬렛에 따르면 행복을 모르는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아무리 자식이 많고 오래 산다 한들,나날의 삶이 고통의 연속이라면,인생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느냐는 것이다.
구약성서는 사람이 지혜를 가져야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누릴 수 있으며,현실을 올바로 알아야 지혜롭게 잘 살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현인들은 한 인간이 훌륭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가능한 지식과 정보를 젊은이들에게 제공하고 합리적 조언을 제시함으로써 젊은이들로 하여금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가르침을 되풀이하였다.(성서 지혜문학 입문,42쪽/박요한 영식 신부 著)
사랑할 적엔 누구나 순례자가 된다고,
그 사람을 찾아서
어디든지 가고 싶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늘 설레이며 사랑하고 살 수 있도록 기도 합니다.
아멘.
늘 행복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