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이효석(李孝石·1907∼42)이 ‘메밀꽃 필 무렵’도입부에 그린 강원도 봉평 ‘5일장’의 풍경이다.
5일장은 장돌뱅이와 서민들이 빚어내는 공간이다.대전의유일한 5일장(4·9일)인 유성장.수수한 옷차림의 떠돌이장수들이 골목길에 빼곡히 좌판을 깔아놓고 옷과 생선 등을 판다.
![]() 5일장에는 없는 것이 없다.콩,깨,조,수수 등의 곡식과 사과,배 과일에서부터 이불 등 공산품까지 즐비하다.봄이 와서인지 지난 19일 유성장에는 유난히 호미와 낫 등 농기구와 묘목,난(蘭)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6·25 이후 50년간 칼을 갈아 왔다는 할머니는 “예전에는 손님이 많았는데 요즘엔 돈이 흔해서인지 이빨 빠진 칼을 다듬어 다시 쓰는 이들이 별로 없다”면서도 넉넉한 웃음을 지었다.
시골에도 자동차가 늘어나고 주변에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5일장이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90년 73곳에 이르던 충남지역 5일장이 현재 52개로 30%가까이 감소했다.전국적으로도 87년 750곳에서 30% 정도줄어 지금은 526곳만 남았다.
30여년 전만 해도 나무를 파는 시골 사람들이 5일장에서자주 눈에 띄었다.나무를 한 짐 지고 장터로 나가 팔아 명태를 한 꾸러미 사가지고 해질녘에 돌아오고는 했다.대장간에는 칼이나 쟁기를 만들려는 이들로 붐볐다.
또 국밥 집에선 구수한 김이 인정처럼 모락모락 피어 올랐고 서민들이 모여 세상과 이웃들의 얘기로 꽃을 피웠다.정보망이 없던 그 시대의 5일장은 시골의 유일한 ‘열린광장’이었다.
장이 끝나면 객줏집에서는 술판과 투전판이 벌어지고 작부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당시의 5일장은아빠,엄마가 고무신과 꼬까옷을 사줄 수 있는 날이어서 꼬마들도 손꼽아 기다리며 덩달아 신바람이 났었다.
충남도 관계자는 “요즘 5일장은 예전 같은 맛은 나지 않지만 이마저 갈수록 줄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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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가을은 풍성하면서 결실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한여름의 뙈약볕에서 그렇게 무더운 날씨에도 농부들은 비지땀을 흘려가며 농사일을 했으니 결과물에 대한 기대가 삶의 낙이었던 것이다. 보릿고개의 기나긴 터널을 지나기 위해서는 추수를 끝내고 부터 허리춤을 졸라매야 했으며 아무리 먹을것이 없어도 내년에 뿌릴 종자씨앗만은 남겨두었으니 배고픈 아이들이 몰래 한알 두알 따먹던 기억이 새삼스레 스쳐간다. 우리들의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며 현재의 풍족한 시간을 반성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
걸려 있는 옥수수 는 내년 봄 농사지을 씨앗이고 호박은 며느리 손자 낳으면 부운 얼굴 부기 내리라고 준비한 것 일테지요.
여인네 볼처럼 예쁜 복숭아가 탐스러우니 따먹고 싶네요
옆에만 있어도 마음이 설레이는 보금자리지요. 사랑하는 연인과 들어가면 그냥 나올수 없을테니 하나의 역사를 만들고 한편의 시도 쓰고 점말 한번쯤 들리고 싶어집니다.
그저 걱정이 없어 보이는 정감이 있는 풍경이지요? 한적한 들판에 노인과 소의 조화 옆에서 쫄랑쫄랑 엄마를 놓칠세라 쫓아 다니는 어린 송아지가 정겹습니다.
꿈과 희망이 자라나던곳 그곳은 나의 한적한 산골마을이엇지요. 봄이면 갯버들 꺽어 버들피리 불며 노래불렀고 여름이면 강가에 나가 은어며 피라미를 잡으면서 세월을 보냈지요. 가을이면 수확하느라 눈코 뜰새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눈내리는 겨울이면 동네 사랑방에 모여 새끼꼬며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 뒤돌아보면 흔적은 아득한데 저무는 태양처럼 땅거미가 스멀거리며 |
첫댓글 아주 정겨운 모습들입니다.
고향의 봄을 보는것 같네~~
보는순간 고향에 다녀온 느낌............................
우리 고향 풍경 그대로입니다 ㅎㅎ
감솨~.
잘 보겠씁니다.
봉진의의 내면을 보는듯 정감이 넘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