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라면 누구나 던지는 구종이지만 조성민은 슬라이더와 인연이 각별하다.그에게 슬라이더를 가르쳐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고,그때마다 성적도 좋았다.
그가 처음 슬라이더를 배운 것은 신일고등학교 때다.당시 그를 단순히 공만던지는 선수가 아닌 진정한 투수로 만들어준 사람이 재일동포 장명부였다.지금까지 잃어버리지 않은 팔의 스윙 등 가장 기본적인 폼을 배웠다.고교선수로서는 신체조건이 엄청 좋았던 조성민은 장명부의 지도속에 ‘초고교급 투수’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때 그에게 슬라이더를 가르쳐준 사람이 있었다.장명부와 함께 신일고등학교 선수들을 지도했던 성낙수씨.
그는 고교야구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투수다.경북고 시절 대통령배대회 결승에서 광주일고의 김윤환에게 같은 코스의 공을 고집스럽게 던지다 3연타석홈런을 맞았던 비운의 주인공이다.
성씨가 알려준 슬라이더가 유난히 손에 잘 익었던 조성민은 그 공으로 고교야구를 제패했다.당시 서울의 라이벌이었던 휘문고 임선동을 누르고 황금사자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고교 시절 무려 26승을 거뒀다.“그때는 원하는 대로 슬라이더를 던졌다.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혔다”는 조성민이다.
그러나 고려대에 진학한 이후 조성민에게서 슬라이더가 사라졌다.갑자기 던지는 포인트를 잃어버렸다.공이 밋밋해졌다.결국 대학 4년간 커브와 싱커,포크볼만 던졌다.슬라이더를 멀리했다.그래도 충분했고 조성민은 96년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던 그에게 지난 97년 두번째 슬라이더가 찾아왔다.스승은 당시 주니치의 선동열.마치 직구처럼 손 끝으로 공을 찍어서 던지는 선동열의 슬라이더(일본의 매스컴은 직구와 슬라이더의 합성어인 ‘맛슬라’라고 불렀음)를 보고익혔다.
역시 결과는 좋았다.97년 소방수로 자리를 잡았고 98년 전반기에는 대뜸 요미우리의 기둥투수가 됐다.그러나 두번째 슬라이더도 오래 가지 못했다.팔꿈치 부상을 당한 이후 평범한 공으로 전락했다.
올해를 선수생활의 마지막으로 여기고 다시 마운드에 오른 조성민은 이번엔아와노 2군투수 코치에게서 새로운 슬라이더를 배웠다.사흘 전이었고 9일 이스턴리그 롯데전에서 구위를 확인했다.
공이 좋았다.마음먹은 대로 갔다.타자들의 헛스윙이 계속 나왔다.“던지기가 편하다.이 정도면 충분한다”는 조성민 스스로의 진단이 경기 뒤 나왔다.
아와노 투수코치는 긴테쓰 시절 그 슬라이더로 퍼시픽리그를 제압했다.89년요미우리와의 저팬시리즈에서 먼저 3승을 거두고도 4연패를 당했던 비극의시리즈에서 그는 에이스로 뛰었다.그때 긴테쓰의 사령탑이 오기 감독이었고,4차전에서 만루홈런으로 시리즈의 운명을 바꾼 사람이 하라 다쓰노리 지금의 요미우리 감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