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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 대국이 시작됐다.
정만석과 한송이의 대결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이다. 더군다나 남녀의 대결이 아닌가.
상제단바둑대회 사상 첫 남녀 결승전이다. 이런 빅 이슈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남산에는 통신용 비둘기가 많이 있다. 수 백 마리의 비둘기가 전통을 매달고 각 지역으로 날아갔다. 곧 조선팔도는 상제단바둑대회 얘기로 들끓기 시작했다.
오후 4시.
한송이의 얼굴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사내는 여는 남자완 느낌이 달라. 최소라가 한 눈에 뽕 갈 만하군.)
한송이는 방년 18세. 한창 피어나는 꽃다운 나이다. 건강미와 원숙미에서 나오는 色氣(색기)는 뭇 남성을 황홀지경에 빠지게 했다. 비단 천으로 가려져서 갸름한 얼굴 윤곽만 보일뿐이다. 새빨간 입술과 양 볼은 가려진 천으로도 감지할 수 있어 묘한 신비감을 주었다.
정도령의 흑번.
좌상 귀 소목에 흑 한 점이 까마귀처럼 날렵하게 착지한다. 우하 귀 고목에 백 한 점이 바람에 날린 한 송이 백합처럼 사뿐히 내려앉는다. 두 사람의 바둑 두는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온 善男善女(선남선녀)의 모습 그대로다. 구경꾼들 모두 넋이 나간 모습이다. 자연 응원도 패가 갈렸다. 남자는 모두 한송이를 외쳤고, 여자들은 모두 정도령을 외쳤다. 여기저기서 내기가 벌어진다.
“자, 자 판돈을 거세요.”
“정도령은 왼쪽에.”
“한송이는 오른쪽에.”
“옛수, 한송이에게 10냥 걸었수.”
“난, 정도령에게 5냥 걸거유.”
“자, 자, 빨리 거세요, 50수 안에 걸어야 되요.”
흑은 좌상귀와 우하귀를 차지하고, 백은 우상귀와 좌하귀를 차지하며, 각자 변으로 벌리니, 초반 포석이 이미 완료되었다. 한송이는 정도령보다 한 수 위였다. 한송이와 겨루었던 상대들이 제풀에 꺽겨 절름발이 당나귀 꼴이 돼버려서 그렇지 한송이의 실력은 이미 조선최고의 기사에 들었다. 9세에 기방에 입문하여 바둑을 필수로 익혔지만, 실력은 그만그만하였다. 겨우 사대부들과 수담을 나눌 정도의 碁理(기리)를 익혔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날, 중국에서 온 왕신수라는 비단 장수가 송도 기방에 들렀다. 왕서방은 기생 명월에게 완전 빠져, 가지고 온 돈과 비단을 모두 날리고 기방에서 불이나 때고 물이나 길어주며 밥을 빌어먹었다. 그러나 기실 왕서방은 바둑의 고수였다. 어느날, 명월이와 한송이가 바둑 두는 것을 마당을 쓸면서 안 본척하며 곁눈질하고 있다.
한송이는 한숨을 쉬며 장탄식을 한다.
“네, 언제 언니만큼 바둑을 둘 수 있겠수.”
“이리 맨 날 지기만 하니, 열 받아서 더 이상 언니랑 바둑을 안 두겠소.”
토라져서 얼굴에 쌍심지를 켜고 치마를 척 하고 말아 쥐고선 응덩이를 흔들며 가버렸다.
왕서방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묘수가 생각난 것이다.
“한송이를 이용하면 명월에게 탕진한 돈을 되찾을 수가 있겠군.”
다음날 늦은 밤.
한송이는 잠이 안와서 창문을 열고 보름달을 쳐다보며 장탄식을 하고 있다.
“내 명월이 언니보다 못하는 것이 있다면 오직 바둑실력뿐인데...”
“바둑만 잘 두면 송도 한량들을 모두 내손에 쥐고 흔들 텐데...”
“아씨, 그리 바둑을 잘 두고 싶으셔유.”
송이가 흠칫 놀라며 소리를 지른다.
“깜짝이야, 거기서 내말을 다 엿들은 거요.”
“지나는 길에 우연히 들었습니다요.”
“왕서방, 바둑 잘 둬요.”
“그저 곁눈질해서 웬만큼 碁理(기리)를 터득했지유.”
“그래요, 명월이 언니를 이길 수 있나요.”
“음, 그 정도야, 뭐.”
“그럼, 나 좀 가르쳐 주세요, 내 용돈을 후이 줄 테니.”
“용돈은 필요 없구, 그저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됩니다요.”
“그래요, 그럼 당장 시작해요.”
매일 밤, 삼경.
왕서방은 송이에게 바둑을 가르쳐 주었다.
한송이는 워낙 영특했다.
석 달이 지나자 기방 최고의 실력자인 명월의 바둑실력을 넘어섰다.
“송이 아씨, 이제 명월이 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이 되었네유.”
“축하드립니다요.”
“고맙소, 그런데, 나한테 부탁하겠다는 것은 무엇이요.”
“곳간에 있는 내 비단 백 필을 찾아주셔유.”
“그건 이미 명월 언니 것인데, 어찌 내 맘대로 준단 말이에요.”
“내기 바둑을 둬서 이기면 됩니다요.”
“그렇다 해도 내겐 비단 백 필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어요.”
“내게 인삼 백 돈짜리 어음이 있습니다요.”
“그런 돈이 있으면서 기방 집에서 빌어먹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건 비단 백 필이 있어야만 찾을 수 있는 약속어음입니다요.”
“송도 만상이 요동 절도사에게 준 것입니다요.”
“좋아요, 네 비록 아녀자지만 一口二言(일구이언) 하면 안 되죠.”
다음날 송도 사또가 입회한 자리에서 명월과 송이는 내기 바둑을 두었다. 거문고 산조의 선율이 흐르고 춤과 노래가 어울려지면서 한쪽에선 술판이 벌어지고 있다. 축제의 한마당이 벌어졌다. 동네 아녀자와 어린아이들도 관아에 들어와 구경을 했다. 애들은 바둑 자체엔 관심이 없고, 이런 분위기가 그저 좋았다.
떡메에선 연신 인절미를 떡, 떡 치고 있고, 가마솥에선 국물이 삶아지면서 연신 국수를 말아서 쟁반에 담아 나르고 있다. 애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술래잡기도 하고 다방구 놀이도 하며 웃고 떠들고 싸우며 재잘거렸다. 도대체 모두들 내기바둑의 승패에 대해선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이긴 사람이 2할을 떼서 비용으로 충당하면 되니까 참가한 모든 사람은 그저 신나게 놀면 그뿐이다. 이런 빅 이벤트는 일 년에 한 두 번 있을까 말까 하다.
명월은 결국 7집을 졌다.
그러나 송이가 실력이 향상된 것이 자기 일처럼 기뻤다.
“너, 언제 실력이 이렇게 늘었어.”
“이제 내가 도저히 못 당하겠어.”
“정말 열심히 바둑 공부했구나.”
“고마워, 언니, 다 언니 덕분이야.”
“그리고 비단 백 필은 이제 왕서방에게 돌려줘.”
“사실, 왕서방에게 배운거야.”
명월은 깜작 놀랐다. 왕서방이 바둑고수였다니.
그동안 깔보고 구박한 것이 부끄러워졌다.
첫댓글 애구 ㄸ 끈어전내 감사함니다 ㅈ제미가 솔솔 ^^^^^^
그거 언제풀기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