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지는 ESG 그린워싱 규제, 투자시장 영향은?
정다솜 선임연구원
호주 연방법원, 글로벌 자산운용사 뱅가드의 그린워싱 혐의에 유죄 선고
유럽증권시장감독청, ESG·지속가능성 펀드 명칭 규정 가이드라인 발표
ESG 펀드는 논란성 무기, 담배 업종 및 화석연료 산업 등에 투자할 수 없어
KT&G, 풍산, LIG넥스원, 한국전력 등 한국 기업들도 투자 배제 대상에 해당
그린워싱 규제는 장기적으로 ESG 투자 시장의 지속가능성 위해 필요
'그린워싱'에 관한 UN의 규정은 간단하고 단호하다. "환경/기후위기 관련 주장이나 행동 뒤에 숨어있는 기만적인 전술." 그린워싱은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데 큰 장애물이다. 그린워싱은 기업이나 정부, 지자체, 혹은 특정 단체 등이 실제보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대중을 오도함으로써, 기후위기에 대한 잘못된 해결책을 조장하여 구체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행동을 방해하고 지연시킨다. 다른 지역에 비해 기후위기에 대한 대처에서 앞서나가는 유럽은 ESG 관련 펀드의 그린워싱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지난 5월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이 발표한 ESG·지속가능성 펀드 명칭 규정 가이드라인 최종안에 관해 ESG 전문 리서치/평가기관인 서스틴베스트의 정다솜 선임연구원이 그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최근 호주 법원은 글로벌 자산운용사 뱅가드가 ESG 펀드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그린워싱을 저질렀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그린워싱은 지구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태도이며, 이제 각국은 사법적 규제를 통해 이를 막고자 하고 있다. / 사진=UN
호주 법원, 세계 2위 자산운용사 뱅가드의 그린워싱 혐의에 유죄 판결
지난 3월 28일, 호주 연방법원은 세계 2위 자산운용사 뱅가드가 ESG 펀드로 화석연료에 투자하는 그린워싱(green washing)을 저질렀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뱅가드는 약 8,764억 원(10억 AUD)에 달하는 ESG 채권 펀드를 운용하면서 화석연료, 알코올, 담배 등과 관련된 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안내했으나, 실제로는 석유 메이저 기업인 셰브론에 투자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여러 석유 프로젝트와 관련된 채권 자금에도 투자함으로써, ESG 펀드 관련 투자설명서 및 마케팅 자료와 다른 내용으로 소비자에게 허위 또는 오해의 소지를 주었다. 이런 그린워싱은 ESG 투자 시장 활성화에 중요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며, 각국의 규제기관은 적극적으로 ESG 펀드의 그린워싱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유럽은 ESG 펀드의 그린워싱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지난 5월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은 이를 해결하고자 ESG·지속가능성 펀드 명칭 규정 가이드라인 최종안을 발표했다. 지속가능성, 전환 등 ESG 관련 키워드를 펀드 이름으로 사용할 경우,
①자산의 80% 이상이 환경·사회적 특성을 보유하거나 지속가능한 투자목표를 충족해야 하며
②키워드에 따라 투자제한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지난 2023년 9월 미국 증권위원회(SEC)가 개정 도입한 명칭 규칙(Names Rule)과 ‘80% 이상의 지속가능성 관련 자산 보유’ 기준은 똑같지만, 유럽의 기후변화 벤치마크에 따른 투자제한 기준이 추가되어 더욱 엄격한 규칙이 적용되었다.
ESMA는 ▲전환 ▲사회(S) ▲지배구조(G) ▲임팩트 ▲환경(E/ESG), ▲지속가능성 6개 카테고리별로 상이한 기준을 설정했으며, 그 기준은 [표 1]과 같다. ESMA는 가까운 시기 내 가이드라인 번역본을 웹사이트에 게시할 예정이며, 게재 3개월 후 가이드라인이 발효된다. 신규 ESG 펀드는 발효 즉시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하며, 기존 펀드는 6개월의 전환기간이 부여된다.
[표 1] ESMA의 ESG·지속가능성 펀드 명칭 규정 가이드라인 최종안
출처: ESMA, 서스틴베스트 정리
[그림 1] EU 지속가능금융 로드맵 및 지속가능금융이행계획
출처: Intereconomics, 산업은행
EU 지속가능금융이행계획의 연장선
ESMA의 펀드 명칭 규정 가이드라인은 EU의 지속가능금융이행계획(Sustainable Finance Action Plan)과 연계되어 있으며, 지속가능 금융에 대한 여러 정책 패키지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특히, EU 역내 펀드의 공시를 규정하는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정(Sustainable Finance Disclosure Regulation, 이하 SFDR)과 많은 부분 연계되어 있다.
2021년 3월 시행된 SFDR은 금융기관에 투자 자산의 지속가능성 위험 및 사회·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ESG 펀드는
①ESG 특성을 홍보하지 않는 Article 6(일반),
②지속가능성 촉진을 목표로 하는 Article 8(Light green),
③지속가능성 투자를 목표로 하는 Article 9(Dark green)
등으로 구분하여 관련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다만, SFDR은 펀드의 명칭 자체에 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즉, Article 6, 8, 9의 펀드별 공시 규제와 이번에 확정된 명칭 규제는 별도로 운영된다. 하지만 ESG나 지속가능성 펀드 자산의 80% 이상의 SFDR Article 8 또는 9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이 명칭 규제에 포함되어 있어 서로 기준을 공유하고 있다([표 2] 참고).
[표 2] ESG 펀드 명칭 규정 가이드라인과 연관된 SFDR 조항
출처: European Commission, 서스틴베스트 정리
또한, ESMA는 ‘EU 벤치마크 규제(EU Benchmark Regulation, 이하 BMR)’ 상의 기후변화 관련 벤치마크인 CTB(Climate Transition Benchmark)와 PAB(Paris-Aligned Benchmark)의 투자제한 기준을 준용하여 EU의 금융정책 패키지와의 연계성을 높였다.
BMR은 2018년 도입되어 일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금융지표는 금융거래의 벤치마크로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2년 8월에는 ESMA가 그린워싱 방지를 위해 ESG 벤치마크 라벨의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 부분은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표 3]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BMR의 기후변화 관련 벤치마크는 굉장히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EU 역내의 모든 ESG 펀드가 논란성 무기·담배 관련 업종 및 글로벌 가이드라인 위반 기업에 투자할 수 없게 되며, ‘임팩트’, ‘환경’, ‘ESG’, ‘지속가능성’ 키워드를 명칭에 포함할 경우 화석연료 산업에 투자할 수 없게 되어 시장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표 3] EU 벤치마크 규제의 기후변화 관련 벤치마크
출처: European Commission, 서스틴베스트 정리
ESG 펀드의 대규모 포트폴리오 조정 불가피
강도 높은 ESMA의 펀드 명칭 규정, 특히 화석연료 활동 관련 투자제한은 유럽 ESG 펀드의 포트폴리오 변화를 요구한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EU 전체 펀드의 15%인 약 4,300개의 펀드가 펀드 명칭 규정에 적용을 받으며 그중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는 약 2,500개로 집계된다. 이 2,500개 중 1,600개 이상(64%)의 펀드의 포트폴리오가 PAB 또는 CTB의 투제제한 기준을 위반하고 있다.
이들 펀드가 현재 이름을 유지하려면 쉘(Shell), 엑손모빌(Exxon Mobil), 웰스파고(Wells Fargo & Co), 셰브론(chevron) 등 총 400억 달러(55조 원) 상당의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매각 대상에 해당하는 주식의 약 42%는 미국 주식이었고, 프랑스(17%), 중국(12%) 순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국내 기업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KT&G, 풍산, LIG넥스원, 한국전력 등 담배, 무기제조, 화석연료 관련 기업들이 투자 배제 대상에 해당될 수 있다.
[그림 2] CTB/PAB 투자제한 기준을 위반한 EU ESG펀드 현황
출처: Morningstar
문제는 투자 배제 대상 기업을 제외하고 포트폴리오를 재설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기존 펀드 수익률 및 전략을 유지하면서 포트폴리오를 변경하려면 상당한 수고가 들어간다. 펀드매니저들은 그린워싱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포트폴리오 재설계 및 투자자 공시를 하는 대신 펀드명에서 ESG 관련 키워드를 삭제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기존에도 자금 순유출 추세를 보이던 ESG 펀드 시장이 축소되며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ESG 투자시장의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 고민 필요
국내에서도 그린워싱을 규제하기 위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환경부와 공정위는 2023년 환경 및 친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금융시장에서는 금감원이 2023년 10월 5일 ‘ESG 펀드 공시 기준’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펀드 명칭에 ‘ESG’ 또는 ‘지속가능’을 포함하고 있거나 투자목적·전략 등에 ESG를 고려하고 있음을 표시·기재하는 펀드는 증권신고서에 ESG 연관성을 사전 공시하고 자산운용보고서를 통해 정기적으로 운용경과를 보고해야 한다.
현재 국내에는 명칭 규제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ESG 명칭을 사용하면서 관련 정보를 공시하지 않을 경우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어떤 펀드가 ESG 명칭을 사용해도 되는 펀드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부재한 상황이어서 그린워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린워싱은 ESG 투자시장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크게 해치는 걸림돌이지만, 이에 대한 규제는 상당한 규제 준수 비용을 발생시켜 단기적으로는 ESG 투자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장기적인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그린워싱을 방지하고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투자를 차단할 수 있는 규제가 있어야만 한다. 사모펀드 사태를 떠올려보자. 규제 완화 또는 부재는 시장 규모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는 있지만, 시장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ESG 투자시장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