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 프란시스코의 금문교라는 다리를 공사할 때의 일입니다. 다리가 너무나 높고 위험하므로 기술자들의 마음이 늘 불안했습니다. 일을 하다가 밑을 보게 되면 현기증이 일어나 불안과 공포심이 생겼습니다. 그뿐 아니라 다리도 부들부들 떨리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공사 도중에 다섯 명이나 다리 아래 바다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시 당국에서는 기술자들의 안전을 지켜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생각했습니다. 그 방법들 중의 하나가, 공사가 진행되는 아래쪽에다가 철사로 만든 그물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공사장 아래쪽에 그물을 치고 나니까 신기하게도 그물 위에조차 떨어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물이 쳐져 있으므로 일하는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뒤부터 일도 잘 할 수 있었고, 다치는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렇게 우리를 진정으로 죽이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입니다. 만약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죽음의 공포 속에 떨면서 살아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혈병에 걸려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은 여인에게도,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또 회당장의 딸도 비록 죽어있었지만 아버지의 믿음으로 부활합니다. 예수님은 통곡하는 이들에게 그 딸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비웃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곧 생명임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내쫓으십니다. 그럼으로써 죽은 이는 다시 생명을 얻고 그리스도를 믿기를 원치 않는 이는 생명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 중 아담의 탄생을 그릴 때 하느님과 아담이 서로 손가락이 마주치는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그 두 손가락을 비교해보면 아담의 손가락은 힘이 없이 축 늘어져있고 하느님의 손가락은 힘 있게 곧게 펴져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모든 에너지와 생명은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혈병을 앓던 여인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손을 뻗어 그분의 옷자락을 잡은 자신의 손을 통해 자신 안에 퍼진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매 순간 결코 그분의 옷자락에서 손을 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