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채 안 거치고 입사 성공한 임성윤·서성민·김재홍씨
소니코리아 임성윤씨 고객 1000명 데이터 분석 실전마케팅 능력 보여줘
CJ제일제당 서성민씨 매장서 밤새우는 열정 애사심·성실성 인정받아
㈜스포티즌 김재홍씨 '한복 골프' 아이디어에 회사가 먼저 "일해달라"
'공기업 행정인턴', '중소기업 청년인턴', '대기업 하계인턴'…. 대학가(街)에는 신입사원보다 이런 인턴 모집 현수막이 더욱 많이 눈에 띌 정도다. 형식적인 '일자리 채우기'식 인턴 모집도 있지만 잘 살펴보면 취업의 문을 열어주는 '알짜 인턴'들이 많다.외국계 기업 소니코리아의 임성윤(28)씨, 대기업 CJ 제일제당의 서성민(26)씨, 스포츠마케팅업체 스포티즌의 컨설턴트 김재홍(27)씨.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공채가 아닌 인턴 과정을 통해 입사했다는 것이다. 취업대란 속에서 인턴이란 우회도로를 통해 입사에 성공한 이들은 하나같이 "인턴은 스펙(자격조건)보다 진짜 실력으로 진검 승부를 할 수 있다"며 '인턴 예찬론'을 폈다.
임씨는 영어나 일어 실력 대신 현장감이 살아 있는 마케팅 실력 하나로, 서씨는 인턴이지만 밤샘 근무를 마다하지 않는 열정으로, 김씨는 프로 뺨치는 전문지식으로 각각 정식 채용에 성공했다.
- ▲ 임성윤·서성민·김재홍(사진 왼쪽부터)씨는 모두 인턴으로 승부를 걸어 취업에 성공했다. 이들은“인턴을 하더라도 사장을 꿈꾸는 자세로 도전하면 나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창의적 마케팅에 놀란 회사
임성윤씨는 소니코리아에서 인턴의 전설(傳說)로 통한다. 신제품을 대상으로 본사 마케팅팀도 못했던 잠재 고객 1000명의 취향 등을 정밀 분석했기 때문이다. 영어나 일어 실력도, 화려한 경력이나 봉사활동도 대단하지 않았던 그가 소니 코리아에 입사한 이유다.
그의 전설은 대학 4학년(광운대 경영정보학과)이던 2007년으로 거슬러 간다. 소니의 신제품 카메라를 홍보하는 '알파마스터' 공모전에 참가한 그는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돌려, 연봉이나 거주지역, 이용 교통수단 등과 함께 소니 카메라 사용 경험이 있는지, 경쟁사 제품을 갖고 있는지 등 50개 항목을 묻고, 분석했다.
그 결과 강남에 살고, 연봉 4000만원 이상 전문직, 2호선 지하철 이용자 등이 이번 제품의 주된 소비층이 될 것이란 보고서를 제출했다. 분석 프로그램은 대학 시절 교내 전산시스템을 관리했던 아르바이트 경험을 살려 직접 만들었다. 회사는 깜짝 놀랐다.
회사에서 브랜드가 아닌 카메라에 대한 구체적인 시장 분석은 처음이었다. 그는 공모전 1위를 차지했고 1년 인턴을 거쳐 지난 2월 입사했다. 임씨는 "그동안 외국계 마케팅 기업에 지원해 서류 통과도 힘겨웠는데, 인턴은 내 능력과 장점을 직접 보여주면서 검증받을 수 있어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회사측에 그의 특채를 요청했던 소니코리아 배지훈(35) 팀장은 "인턴을 통해 확실한 개개인의 능력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형식의 채용을 늘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밤 새우는 열정으로 회사 사로잡다
서성민씨도 스펙 없기로 따지면 매한가지다. 서씨의 주무기는 열정이었다. 대학(충남대 법학) 졸업반이던 지난해 중반까지 그는 3점대 중반의 평범한 학점에 낮은 토익 점수로 취업 고민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 CJ 제일제당 인턴 공고를 접했다. 인턴 성적 우수자는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조건이었다. 성실성과 열정만은 자신 있던 그는 인턴에 '올인'하기로 결심했다. 인턴 합격을 위해 교내 스터디 그룹부터 만들었던 그는 마침내 인턴으로 뽑힌 뒤 본격 승부를 걸었다. 그에게 주어진 기간은 6주였다. 보통 인턴들이 배치 부서에서 선배(멘토)를 따라다니며 업무를 배우다 정시 퇴근을 했다면, 그는 가방에 반팔 티셔츠부터 3~4장씩 챙겨 넣었다.
매장에 나가면 와이셔츠 대신 티셔츠를 입고 식품 매장을 누볐다. 어떤 물건이 어떤 곳에 있을 때 잘 팔리는지 유심히 살폈다. 자사 제품을 진열할 때는 함께 땀을 흘리며 물건을 날랐다. 추석을 앞두고 매장에 진열할 때는 선배들이 퇴근한 뒤에도 끝까지 남아 꼬박 밤을 새우는 열정을 보였다. '유기농 올리브유'의 고급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판매대 대신 와인 거치대에 올리자는 아이디어를 내 채택되기도 했다.
서씨는 80명의 인턴 중 1위의 성적을 기록했고 회사는 그를 신입사원으로 채용했다. 서씨는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물어보고, 1시간이라도 더 일하겠다는 자세로 6주를 보냈다"고 말했다. CJ 강진희 부장은 "밤을 새우는 열정을 보여준 인턴은 서씨가 유일했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먼저 "입사해달라"
김재홍씨는 스포츠마케팅 업체 ㈜스포티즌 전략기획팀 컨설턴트다. 그는 스스로 지원했다기보다 회사가 그를 불러 채용한 경우다. 회사가 그의 능력을 알아볼 수 있었던 계기 역시 인턴이었다.
2007년 8월부터 2개월 동안 그는 한 골프대회의 조인식을 준비했다. 그가 낸 아이디어는 '한복 입은 골프대회'. 김씨는 "유럽에서만 열리던 대회를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한국이 가져온 만큼 '한국'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 홍보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청담동의 옷 가게에 서양인 체격에 맞는 두루마기를 직접 주문했다. 하지만 조인식을 위해 한국에 도착한 유럽의 골프협회 관계자는 키가 190㎝가 넘는 거구였다. 한복 아이디어를 포기하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김씨는 조인식 당일 새벽부터 옷 가게를 돌아다니며 옷을 수선해 한복 입은 조인식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김씨는 3년 동안 뉴질랜드에서 살며 배운 영어실력을 맘껏 발휘하며 통역도 도맡아 해결했다. 아이디어와 실력으로 무장한 인재를 회사에서 놓칠 리 만무했다. 지난해 3월 스포티즌은 입사 지원도 하지 않은 김씨에게 먼저 "입사해 달라"고 제안했다. 임우택 스포티즌 전략기획팀장은 "실력으로 검증을 받은 인턴은 스펙만 화려한 구직자들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