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 일정으로 전북 정읍(井邑)에 다녀 왔습니다. 제가 둘러 본 곳은 태인향교 - 피향정(披香亭) - 태인동헌(東軒) - 규당 김영채 고택 - 김명관 고택 - 김개남 장군 묘 - 무성서원(武城書院) - 태산선비문화사료관 - 무성리 삼층석탑과 석불입상 - 남고서원 - 정읍시립박물관 - 내장산 내장사 - 정읍사(井邑詞) 공원 - 송우암(宋尤菴)수명유허비 - 충렬사(忠烈祠) - 보화리 석조이불(二佛)입상 - 손화중 장군 묘 - 망제동 석불입상 - 천곡사지 칠층석탑 -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 만석보(萬石洑) 터 - 만석보혁파비 - 말목장터 - 전봉준 장군고택 - 백운암 석불입상 - 구파 백정기의사기념관 - 은선리 삼층석탑 - 은선리고분군 - 지사리 고분군 - 운학리 고분군 - 장문리 오층석탑 - 남복리 미륵암 석불 - 남복리 오층석탑 - 두승산 유선사(遊仙寺) - 후지리 탑동석불 - 용흥리 해정사지 석탑과 석불입상 - 고부관아터 - 고부향교 - 군자정 - 고부역사문화관 등 입니다.
정읍에는 이야기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동학농민혁명, 동학의 3대 인물(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고부(古阜), 두승산, 고부주변의 고분군(古墳群), 무성서원, 최치원, 상춘곡(賞春曲), 정극인, 보천교, 강증산, 차경석, 김홍규, 탄허 스님 등등
# 정읍(井邑)
정읍은 조선시대에는 고부군(古阜郡), 정읍현(井邑縣), 태인현(泰仁縣)의 행정구역이었다. 특히 정읍현은 고부군의 속현(屬縣)이었으나 조선 선조 22년(1589)에 정읍현이 되었으며, 그 초대 현감으로 이순신이 파견되었다. 당연히 고부군이 중심이었으나 고부군이 동학농민혁명의 발생지였기 때문에 1914년 일본이 의도적으로 고부군이었던 지역을 인근 3개 군(정읍, 김제, 부안)에 분산 및 흡수시키고 고부군을 일개 면으로 축소개편한 것이다
고부군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라도에서 전주성 다음으로 넓은 행정구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인근 28개 촌락을 관할하면서, 줄포만의 풍부한 해산물과 동진강 상류의 넓은 들판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함께하는 고장이었다.
태인(泰仁)에서 고부(古阜)로 연결되는 옛날 국도인 태고선(泰古線)의 도로를 중심으로 발달한 교통의 요지였던 고부와 태인은 1914년 호남선 철도가 이리역(익산역)부터 김제, 신태인, 정읍역을 통과하게 되면서 점차 기능을 상실하였다.
# 고부(古阜) 주변에는 고분군과 석탑, 석불들이 많다.
고부를 대표하는 산은 두승산(447m)으로 백두대간 호남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자락이다.
# 민족종교
동학·증산교·원불교 등 민족종교는 전라도 땅에서 일어났다. 동학혁명의 전봉준은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고, 증산교의 교주 강증산도 정읍 사람이다. 원불교의 소태산은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전북 익산에 본부를 두고 활동했다. 대종교의 교주 나철 역시 전라도 사람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걸쳐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민족종교는 왜 연고가 모두 전라도일까?
특히 전북 정읍의 입암산(笠岩山) 아래에 본부를 두고 있었던 보천교(普天敎)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민족종교 단체였다. 한때는 신도가 300만 명에 육박하기도 하였다. 보천교 교주는 차경석(車京石·1880~1936)이고, 차경석의 부친은 전봉준의 핵심참모였던 차치구(車致九)였다.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하면서 호남지역에서는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었고,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던 호남 인심을 다독거리면서 비전을 제시한 인물이 바로 차경석이었다. 경상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입암산 아래로 이사를 왔고, 독립운동가들도 비밀리에 보천교의 자금지원을 받았다.
근래에 독립훈장을 추서 받은 탄허(呑虛) 스님의 부친 김홍규는 원래 보천교의 5대 요직 가운데 하나인 목방주(木方主)를 맡았던 인물이었다.
# 강진 김씨 규당圭堂 김영채金永采 일가一家
정읍 산외면 평사리에는 강진 김씨 규당 김영채의 고택이 있습니다. 이곳은 평사낙안(平沙落雁, 기러기가 내려 앉는 명당)이라는 명당이라고 소문이 나서 조선말ㆍ일제 강점기에 전국에서 모여든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려 셋방 얻기도 힘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각지에서 모여들다 보니 이곳은 각기 다른 성바지가 모여 사는 마을이 되었고 그래서 생긴 이름이 ‘8도촌’(八道村)이었다고 하네요. 규당 김영채 일가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돈은 벌기도 어렵지만 쓰기는 더 어렵다고 한다. 통쾌하게 쓰기는 더욱 어렵다. 돈을 통쾌하게 쓰려면 평소에 생각을 다듬어 놓아야 한다. 사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철학이 부재한 상태에서 재물만 홀로 축적되면 바로 졸부(猝富)가 되는 길 아닌가.
이 집안의 돈을 쓴 역사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통쾌하게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규당 김영채의 조부는 김기혁이다. 이때는 천석군으로 불릴 만큼 상당한 부자였다.
일제 강점기인 1928(戊辰), 29(己巳)년은 이 지역에서 ‘무기(戊己) 대흉년’으로 일컫는 대단한 흉년이었다. 2년 연속 흉년이 드니 당장 먹을 양식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세금이었다. 산외면 면민들은 도저히 호세(戶稅)를 낼 수 없었다. 이때 김영채(金永采·1883~1971)는 산외면 면민들의 전체 호세를 대신 내주었다.
영채의 아들인 윤술(金允述·1903~1958)도 역시 집안에 내려오는 적선의 가풍을 이어갔다. 현 정읍시 칠보면에는 섬진강 상류의 물길을 동쪽으로 돌려 1945년에 완공된 칠보발전소가 있다. 1만5,000kw의 발전 용량을 가진 칠보수력발전소는 해방 당시 남한 전력 수요의 3분의 1을 감당할 정도로 큰 발전소였다.
그러나 이 발전소의 전기는 외부 지역으로 송출되었기 때문에 정작 현지 주민들은 전기 혜택을 볼 수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김윤술은 “발전소 옆에 사는 사람들이 호롱불만 켜고 산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면서 전기 시설에 드는 비용 일체를 부담해 칠보발전소에서 산외면 정량리에 이르는 7km 구간에 송전선로를 가설하였다. 그 가설 비용으로 논 100마지기, 즉 2만평의 사재를 내놓았던 것이다.
양반의 자손은 평소 행동에서도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는 집안의 훈도가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소고당(紹古堂) 답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김환재 옹에게 질문을 던졌다.
“돈만 많고 법도는 모르는 졸부를 옛 어른들은 어떻게 표현하였습니까.”
“‘부한’(富漢)이라고 했지. ‘부자 상놈’이라는 뜻이야.”
6·25 때 이 일대의 여러 부잣집들이 착취계급이라고 여겨져 불에 탔지만, 소고당은 어른의 집이라고 여겨져 불에 타지 않았다."
# 무성서원과 최치원 그리고 대륙백제
무성서원(武城書院)은 신라말 유학자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년~?)이 태산(태인)군수로 재임 중 쌓은 치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전라북도 내 유일의 서원이다. 또한 이곳은 면암 최익현과 둔헌 임병찬이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듬해인 1906년 일제침략에 항거하기 위해 호남의병을 창의한 역사적 현장이다.
최치원은 당나라의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해 당 희종(僖宗)에게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았던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그런데 『삼국사기』「최치원열전」에는 우리가 주목할 내용이 있다. 최치원이 당나라 태사시중太師侍中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 내용이 있다. 일부를 소개한다.
伏聞東海之外有三國 其名馬韓.卞韓.辰韓
馬韓則高麗 卞韓則百濟 辰韓則新羅也
高麗 .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蠹 隋皇失馭 由於征遼......
『三國史記』「崔致遠列傳」
"듣잡건대 동해 밖에 세 나라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마한ㆍ변한ㆍ진한인데, 마한은 고구려, 변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입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기 때 강한 군사가 백만이어서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북연幽燕과 제齊, 노魯를 어지렵혀 중국의 큰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수나라 양제가 망한 것도 요동정벌에서 비롯된 것이며......"
『삼국사기』「최치원열전」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있다고 배워 온 고구려,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 있다고 배워 온 백제가 지금의 중국의 북경 유역에서부터 양자강 유역까지 중국 동해안 대부분의 지역을 백만 군사로 침입하여 중국의 큰 우환이 되었다는 말이니 혼란스럽지 않은가?
오월(吳越)은 장강(長江, 양자강)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강소성(江蘇省)과 절강성(浙江省) 지역, 유연(幽燕)은 북경과 천진 지역, 제노(齊魯)는 현 중국의 산동성(山東省)과 하남성(河南省) 일부를 포함하고 있는 지역을 말하는 것이니 어찌 충격적인 내용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대륙백제설은 『삼국사기』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중국 역사기록을 보자. 여러 문헌에 나타나는 아래의 기록들이 분명히 일관성 있는 맥락을 이루고 있는데, 모두 백제가 기병 수십 만을 동원한 대륙국가 북위(北魏)를 물리친 기록으로서 백제가 대륙에 있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東城王 十年(488) 魏遣兵來伐 爲我所敗
『삼국사기』 「백제본기」
永明六年(488) 魏遣兵擊百濟 爲百濟所敗
『자치통감』 「帝紀 三」
(백제)동성왕 10년(488), 북위(北魏)가 침공했으나 백제가 이를 격퇴하였다.
『삼국사기』,『자치통감』
是年庚午年(490) 魏虜又發騎兵數十萬 攻百濟入其界 牟大遣將 沙法名 贊首流 解禮昆 木干那 率衆襲擊虜軍 大破之
『南齊書』「百濟傳」
이 해(490)에, 북위(北魏)는 기병 수십 만을 내어 백제를 침입하였고 모대(동성왕)는 장군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를 파견하여 침입군을 쳐서 크게 이겼다.
『남제서』「백제전」
같은 남제서(南齊書)에서, 동성왕은 이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자신의 장군들에게 관직을 내려줄 것을 청하고 있다.
건무(建武) 2년(495, 동성왕 17년), 모대(동성왕)가 사신을 보내 표문을 올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建武二年, 牟大遣使上表曰 臣自昔受封 世被朝榮 忝荷節鉞 <중략> 今邦宇謐靜 宜在襃顯. 今假沙法名行征虜將軍邁羅王, 賛首流爲行安國將軍辟中王, 解禮昆爲行武威將軍弗中侯, 木干那前有軍功 又拔臺舫 爲行廣威將軍面中侯. 伏願天恩特愍聽除
『南齊書』「列傳39 百濟傳」
"신은 봉작(封爵)을 받은 이래 대대로 조정의 영예를 입었고, 더욱이 절부(節符)와 부월(斧鉞)을 받아 모든 변방을 평정하였습니다. <중략> 지금 천하가 조용해진 것은 이들의 꾀이오니 그 공훈을 찾아 마땅히 표창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사법명을 정로장군 매라왕(假行征虜將軍邁羅王)으로, 찬수류를 안국장군 벽중왕(假行安國將軍辟中王)으로, 해례곤을 무위장군 불중후(假行武威將軍弗中侯)로, 목간나는...광위장군 면중후(行廣威將軍面中侯)로 삼았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천은(天恩)을 베푸시어 특별히 관작을 제수하여 주십시오"
『남제서』「열전39 백제전」
여기에서 말하는 매라왕·벽중왕·불중후·면중후 등의 관작은 단순한 계급의 승급이 아니고 제후(諸侯)를 분봉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들이 봉(封)해진 지역은 모두 오늘날 대륙의 산동(山東)과 강서(江西), 절강(浙江)과 복건(福建) 등에 걸치는 광대한 지역이라는 연구가 있다.
또 다른 중국의 역사기록인 『북사北史』와 『주서周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自晉宋齊梁據江左右 亦遺使稱藩 兼受拜封
『北史』「백제전」
自晉宋齊梁據江左 後魏宅中原 並遺使稱藩 兼受拜封 『周書』「백제전」
이 내용은 송ㆍ제ㆍ양ㆍ진(宋齊梁陳)으로 이어지는 중국 남북조 시대(317~554)에 백제가 중국 장강(長江, 양자강) 하구의 좌ㆍ우 지역을 점거하여 스스로 칭번(신하로 자처함)하면서 남북 양조(兩朝)에 모두 사신을 파견하였고 외교적으로 안정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명명백백하게 대륙백제에 대한 역사기록이 많은데, 현재 대한민국 강단 역사학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언급도 안 하고 있다. 그런 반면 조작ㆍ은폐ㆍ윤색으로 가득찬 위서(僞書)인 일본서기(日本書紀)의 내용에 대해서는 입에 거품을 물면서 역사적 사실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자신의 모국에 유리한 역사 기록은 무시하고 불리한 기록은 사실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들이 마음에 품고 있는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 '매국노(賣國奴)'라는 단어 말고는 적합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
출처
1. <정읍별곡> 전성군, 2012
2. <두승산 유선사> 김기덕 외, 2016
3.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이덕일, 2011
4. <오사카의 여인> 곽 경, 2015
5. <전북의 역사문물전 VI 정읍> 국립전주박물관, 2006년 기획특별전
6. <조용헌의 명문가> 조용헌, 2009
7. [조용헌 살롱] 차길진 법사 - 조선일보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9/05/2006090560391.html
8. 조용헌의 주유천하(44)민족종교와 전라도 - 농민신문 - https://m.nongmin.com/plan/PLN/SRS/284883/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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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답사후기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