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학 집에 올릴 글
(동시와 시조 1편과 수필 1펀)
아기 다람쥐
돌샘 이재영
다람쥐야 다람쥐야
아기 다람쥐야
나무 타고 조르르
바위 타고도 조르르
너는 너는 곡예사
귀염둥이 재주꾼
요리조리 오르다가
바라보는 눈빛 반짝반짝
그 모습 바라보면
내 마음은 천사
너도 나도 귀염둥이
아기 다람쥐
초승달
돌샘 이재영
해가 진 서산 머리 떠오르는 눈썹달
그 옛날 절세가인 아미 마냥 고와서
눈앞에 초롱초롱 생기 도는 조각달
갓 시집온 새 새댁 친정 부모 그리워
눈물 쏟는 날이면 잠깐 만나 달래는 달
오라비 만난듯 기뻐 미소지어 맞는 달
고향에서 보던 달 시짒 설음 매운 날 와
잠 시 위로하고 떠나기엔 아쉬운 듯
애절히 손 흔들면서 서산 머리 넘어간다
내 인생의 외도(外道) 2
. 돌샘 이재영
나는 1차 사랑 외도에 힘입어서 2차 외도를 또 시도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내가 외도에 재미를 아니 늦 바람이 나도 톡톡히 났다. 늦게 배운 도적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하더니 내가 바로 그쪽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났던 내 성격은 과학교사요, 화학교사였기 때문이라 누가 봐도 답답했다.
그러한 내가 괘도를 한 번 이탈하여 외도를 해보니 즐겁고 재미있어서 자신감이 생겼다. 하나 더하기 둘은 셋이 된다는 것만 알던 내가 이젠 다섯도 되고 열도 된다는 문학 쪽으로 변절했다. 이것은 완전한 외도다. 그러나 나는 그 외도가 너무나도 아름답고 신나고 즐거웠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여성 앞에 서면 나는 가슴이 뛰고 숨이 막혀 생각도 굳어져 말 한 마다도 못 하는 노이로제가 있었다. 그러던 내가 어릴 때 한 교실에서 1년 간 공부한 아란을 늦게 만나 처음으로 마주 보면서 이야기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장장 다섯 시간을 연속 대화를 끊지 않고 즐겁게 나눈 적이 있다. 그것도 반세기 후에 만나 처음 말을 해보는 첫사랑 친구인데도 말이다. 나도 내 능력에 깜짝 놀랐다. 사랑은 기적을 낳는다는 말 그날 비로소 실감했다.
그녀는 내가 승무, 국화, 해, 진달래, 초혼, 산유화 같은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긴 시들을 4월 말 신록이 꽃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청산유수로 암송했다. 그녀는 나보고 "너는 문학에 감수성이 뛰어난다."하며 시인이 되라며 애독하던 시집을 주고 시인이 되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리석은 나는 그 말을 진심으로 믿고 큰 힘이 되어 그녀와 나의 만남을 시와 수필로 명문을 써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남기고 싶었다.
퇴직하자 그때부터 중앙도서관에 개설된 시 강좌 반과 수필 강좌 반, 한비문학의 시조 강좌 반에 등록하고 본격적인 외도를 하기 시작했다. 외도는 내가 본래부터 내 적성이 이쪽에 맞았고 좋아하는 쪽이나, 한국 전쟁 직후라 문과는 직업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가라 취업이 잘 된다는 농화학과를 택했으나 시골 농고에는 화학 교사가 없어서 3학 년 말 교사가 와서 한 달간 교과서 입문만 하다가 말았기에, 경북대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교수님 강의가 이해가 안 되어 공부하는데 죽을 곤욕을 치렀다.
2학년 전공과목은 모조리 C학점이라 부끄럽고 창피하여 자살할까도 생각했지만 죽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같은 과 동료들 도움으로 3-4학년 성적은 +B학점 정도로 무사히 졸업했다. 첫 직장이 농촌 지도 직 공무원으로 박정희 대통령 새마을 사업 초창기라 출장으로 밤낮이 없었다. 나의 학과의 경우 대학원 2년만 졸업하면 대학으로 이직할 좋은 기회였다. 그때 마침 고려대학교에 계절대학원이 생겨서 방학 때 4학기만 들으면 석사를 딸 수 있는 절효의 기회가 왔다. 그래서 꿈을 품고 1년 후 농촌 지도직 공무원 사표를 내고 대구시내 어느 사립 여자 중 고등학교로 이직했다.
그때 아버지께서 장티푸스로 거동이 불편하시고 정신이 흐려지셔서 여러 동생들 취업 결혼 학교 등등 매사가 내게 돌아왔다. 살림까지 내놓고 나니 내 아이들 자랐지만, 아무 준비도 못했으니, 기회만 노리다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아쉽게 끝났다. 나는 그 울분을 잊기 위하여 산을 좋아했다
산은 내 친구요 스승과 같았다. 산에 가서 안기면 번거롭던 마음이 일시에 가라앉고 평온을 찾아 많은 깨우침을 얻곤 했다. 산에 있는 나무와 풀꽃 바위 물 산새들이 다 내 친구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대화하고 노래 부르면서 대구 근교의 산성산, 앞산, 대덕산, 팔공산, 비슬산, 화왕산을 문전 드나들 듯하면 꿈을 이루지 못한 울분을 달래면서 심신을 수련했다.
나는 문학과 서예 생활을 하면서 심신을 닦으면서 외도한 세월이 강산이 두어 차례나 변하면서 문학의 세계로 완전히 외도의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방학 때는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덕유산 속리산 관악산 북한산 내장산 문경새재 화양계곡 선유동계곡 쌍곡계곡 등등 전국 명산대천을 휩쓸었다.
그 후 무릎 관절염으로 나는 좋아하던 산을 오르지 못하니 수필과 시 시조 등 문학과 서예에 깊이 심취했다. 이젠 이것이 외도가 아니요, 주객이 전도라고나 할까 본업이 되었다. 그런 세월이 산수(傘壽)의 중반을 훌쩍 넘겼으니, 이젠 끝마무리를 잘하고 떠날 준비를 하기에 바쁘다.
젊을 때는 선망(羨望)의 사랑은 환경도 안 되었지만 용기가 없어서 꿈도 못 꾸다가 환갑 진갑 다 지난 후에야 용기 내어 어릴 때 짝사랑한 벗을 그리워하다가 기적 같은 만남으로 아름답고 예술 같은 사랑도 해 보았으니 무슨 회한(悔恨)이 있으리! 나는 참 행운아요 행복하게 잘 살았다 하리라. 이재 남은 할 일은 시작해놓은 제2 시집, 제4 수필집, 회고록이나 마무리하고, 글씨와 문인화로 병풍 한 점 만들어서 남겨 놓으면 세상에 온 보람이라 하리라.
이제 서예는 서울 부산 네 대회 초대작가가 되었고, 대한민국 서예대전(일명 국전)에 입선했고 서울 향토문화 미술 대전 한국. 중국, 미국 국제대전에 중국 사람이 심사 위원장인대도 내 작품이 대상을 받았으니 무엇을 더 바라리요. 나에게 문학과 서예의 꿈을 심어서 성취시킨 첫사랑 성 아란에게 은혜를 꼭 갚고 떠나야 하는데 아란은 소식이 묘연(渺然)하고 남은 세월과 건강도 좋지 않아 내 마음이 암연(黯然)히 수수(愁愁)롭다
첫댓글 이 선생님,
혹시 문협 기관지 월간 '대구문학'에 수록을 희망하는 작품이 아닌지요?
만약 그러하시다면,
선생님은 현재 문협 수필분과에 등록되어 있으시기에
편집국의 정기 원고청탁서를 받으시고
해당 분과 작품인 수필 작품만을 daegumh99@daum.net 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