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라의 문물을 계승한 유학자들은 주역이 유가의 사상이라는 것을 극구 강조하고 자랑하여 왔다. 이 강조의 정점이 명나라 때 호광이 편찬한 "주역전의대전"이며 줄여서 "주역대전"이다. 명나라 조선의 과거시험 교과서가 이 책이다. 해서 이 책은 지금도 주역의 완성으로 칭송되고 있다. 허나 이 책은 사실 위진현학의 계승이다. 정확히 위진현학자 왕필의 계승일 뿐이다.
1990년 초반에 대만과 홍콩에서 교수로 활동한 진고응이 책을 출판했고 1980년대 동양철학 최고학자로 인정되던 그의 책은 1996년 예문서원에서 번역 출판되니 『주역 유가의 사상인가 도가의 사상인가』이다. 1990년대말까지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학자들은 이 논쟁을 하거나 할 수도 있다. 정말 어리석고 부질없는 논쟁이며 학자들의 수준을 알 수있게 하는 어리석은 논쟁이다.
주역대전은 정호 정이 형제의 주역해설서에 주자의 주역본의를 갖다붙혀 만든 책이다. 정호 정이 형제와 주자의 학설을 합쳐서 정주학(程朱學)이라고 한다. 주자가 정호 정이의 사상을 계승발전 시키고 자기 사상의 직계가 정호 정이라고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성리학의 성립은 철저히 짬뽕철학이다. 도교의 사상을 이어받은 책이 태극도설이다. 주돈이의 태극도설은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으로 시작한다. 즉 노자의 복귀어무극(復歸於無極)을 이어받은 도교의 연단술을 마치 유학인양 뻔뻔스레 포장을 한 책이다. 도교 수련서가 유학으로 둔갑을 한다. 성리학 초기에 도교 사상을 계승한 이들이 주돈이 장횡거 소옹이다. 현대학자들은 이들을 도가사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말이 안된다. 이 구분법은 도교라는 종교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도가라는 표현이다. 구지 그럴거면 위진현학의 계승을 도가라고 봐야 한다. 왕필을 필두로 하는 위진현학이 바로 노자의 無를 형이상학적 실체로 만든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위진현학은 삼국시대 위나라 조조 치하에서 현학이 나왔다는 것이다. 삼국연의의 조작 때문에 천년이상 간신의 표본으로 묘사되는 조조의 치적 중 하나가 중국역사상 최고의 철학자 왕필을 발굴했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성리학은 한편에서는 노장사상 그 중 도교 연단술을 이어받은 태극도설과 도참설의 발전인 소옹의 황극경세서 등 도교철학이 베이스가 되고, 다른 한편 정씨형제의 주역사상(이천역전으로 대표)과 철학 및 조사선을 베이스로 만들어진다. 이 세가지를 짬뽕한 이가 남송의 주희이며 우리는 그를 주자라고 부른다. 여기서 제일 웃기는게 조사선과 정씨형제의 철학이다. 둘 다 왕필을 스승으로 하고 있다.
필자는 조사선의 어버이 축도생과 승조가 왕필의 제자이며 후일 임제의현의 삼현삼요가 왕필 사상의 계승임을 증명하였다.
<임제의현 삼현산요 비판 1편 2편 참고 https://cafe.daum.net/Wahrheit/LpDV/79 https://cafe.daum.net/Wahrheit/LpDV/80 및 기타 불교학 방 글들과 조사선 아버지 축도생 https://cafe.daum.net/Wahrheit/LpDV/128 참고 >
조사선은 이미 왕필사상이며 노장사상이라는 것을 불교학방 글들로 증명하였다. 위진현학이 조사선으로 둔갑한다. 여기서 주역 역시 둔갑술을 벌이니 이른바 이천역전이다. 정이의 이천역전은 특히 조선에서 최고로 숭상되었는데 의리역(義理易)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이 이천역전은 왕필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책이다. 왕필의 주역주(周易注)를 계승발전 시킨 왕필사상이며 결국 노장사상서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에서 살아남은 주역은 점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춘추좌전 국어 등의 역사서에 보면 공자 역시 점을 친 사실이 드러난다. 해서 한나라 때 유학자들 즉 한유(漢儒)들은 대다수가 점치는 방법으로 출세를 하였다. 한고조 유방이 점술사들의 도움으로 왕이 되었기 때문인데, 그 유방한 장자방이 바로 주역점 관상 등등 점술에 능통한 역술인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주역점들은 전부 한나라 때 만들어 졌고 후일 그것을 계승발전 시킨것이 현대 주역점이다. 한마디로 한나라 선비 유학자들은 죄다 점쟁이에 역술인 이었다. 이것이 팩트다. 남송의 소옹(소강절)이 점술에 능하고 황극경세서를 쓴 이유다. 한나라 주역을 한역(漢易)이라고 부르는데 후일 이들을 상수학파(象數學派)라고 불렀다. 주역의 역사를 크게 상수학파와 의리학파로 나누는데 그 상수학의 비조가 한대(漢代) 유학자들이다. 그리고 의리학은 바로 왕필로 시작한다. 위나라 조조의 신하였던 왕필은 하안(조사선 및 법정스님 무소유 사상의 창시자)의 추천으로 말단 벼슬아치가 되어 노자주와 주역주를 저술하였는데 중국 학술사를 뒤바꾸는 절대적 존재가 된다. 왕필의 노자주는 조사선 철학의 아버지가 되었고 주역주를 비록한 주역약례 등은 의리역의 비조가 된다. 필자가 불교학에서 누차 강조한 것이 조사선 1조 노자, 2조 장자, 3조 왕필, 4조 축도생, 5조 승조, 6조 혜능이다. 중국철학에서 왕필의 철학이 절대적 역활을 하였다.
왕필은 한대 역학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주역을 문란하게 하여 무당 수준으로 주역을 파괴하였다고 주장하며 노장의 철학으로 주역을 재해석 하였다. 즉 통발의 비유로 득의망상(得意忘象 뜻을 얻으면 상을 버린다.)을 주장하였고 주역의 장차(章次)를 임의로 바꾸었다. 주역 원문 해석인 십익중 단전 상전 문언전을 잘라내서 64괘 괘효사에 각각 집어 넣어 버렸다.
십익'이란 경문을 돕는다는 뜻으로 경문의 해석을 말한다. 단전(彖傳) 상·하 2편(1괘의 종합적 해설), 상전(象傳) 상·하 2편(64괘의 해설), 계사전(繫辭傳) 상·하 2편, 문언전(文言傳:乾坤 2괘의 윤리적 해석),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64괘 배열순서의 설명), 잡괘전(雜卦傳:서로 대립하는 괘의 설명)의 7종 10편으로 이루어졌다.
왕필은 단전 상전 문언전 만이 주역에 가치가 있고 나머지 계사 설괘 서괘 잡괘는 모두 점치는 것으로 보고 폄하하였다. 이 왕필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 정씨형제의 이천역전이다. 남송의 주자가 이천역전에 불만을 가지고 평생을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 "주역본의"다. <우수회원 방 점(占)의 철학 세션 필자 논문 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나라때 호광(胡廣)이 여러 학자들과 편찬한 "주역전의 대전" 줄여서 주역대전은 왕필의 주역 편차를 그대로 답습하였다. 즉 우리가 현재 보고 읽는 주역은 왕필의 편차 방식대로 되어 있다. 주역의 역사에서 주자는 왕필을 제거히려고 무진 애를 썼다. 왜냐하면 노장 사상을 유학에서 지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서 주역본의를 만들었지만 후대 유학자들은 모두 정이의 손을 들고 이천역전을 최고로 치며 오늘날 주역 전공 교수들도 이천역전을 최고로 친다. 결국 왕필의 승리다. 주역은 왕필에서 시작하고 왕필의 철학으로 대변되어 왔다. 역사에서 패자는 주자이며 주역본의다.
성리학(주자학)의 모토인 존천리멸인욕(存天理滅人欲)과 조사선의 궁극 무자화두는 모두 왕필의 득의망상(得意忘象)의 다른 표현이며 결국 노자의 복귀어무극(復歸於無極)으로 끝난다. 중국 철학의 알파와 오메가 최종 승리는 노자다. 조사선의 1조다.
진고응은 『주역 유가의 사상인가 도가의 사상인가』에서 말도 안되는 애를 쓰고 있다. 계사전이 도가 사상가 즉 노장사상가들이 만든 거라고 강조를 하고 있는데.....ㅎㅎ 계사전은 유학자들이 만든 게 맞다. 즉 십익은 공자와 그 제자들이 만든 게 맞다. 논점이 안맞는 글을 썼다. 헛짓 뻘짓을 해버렸다. ㅋㅋ 그리고 공자와 제자들은 점쟁이들이다. 점을 천의(天意)를 파악하는 도구로 보았고 한대 유학자들 역시 그러하다. 한대(漢代) 이전과 당시 유학자들 중 점에 빠진 유학자들을 맹비난 하는 유학자들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한대 유학의 점술 숭배가 남송대 소강절 등에 이어지고 주자는 천리(天理) 파악의 도구로 주역을 해석하려고 했으나 왕필을 계승한 이천역전을 이기지 못했다. 진고응의 모든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ㅎㅎ 의리역 자체가 왕필사상이라고 하면 끝날 일을 구지 계사전이 노장사상이라고 주장하고 글을 쓰니 이상한 책이 되고 말았다. 십익은 문헌학자들에 의해서도 유학자들의 작품으로 규정 받는다. 한대 유학자들 즉 한유들의 작품이라는 설과 공자 제자들의 첨삭이 가해져 진나라 초엽 혹은 전국시대 말엽에 이루어 졌다는 설이 있다. 결론은 유학자들의 작품이다. 왕필 이후 유학자들의 점(占)이 부끄러운 것으로 정의 되었지만 한나라 말엽까지 점은 선비의 출세수단이었다. 심지어 명대(明代) 래지덕은 『주역집주(周易集註)』를 저술하여 만력(萬曆) 23년(1595) 특별히 한림대조(翰林待詔)에 제수되었다. 착종(錯綜)과 호괘(互卦)로 주역점법을 간단히 정리한 천재다. 즉 상수학의 완성자이다. 래지덕의 착종법과 호괘는 지금도 쓰이는 주역점법이다. 필자도 활용하였었다. 10년 전부터는 모든 걸 천안통으로 파악하니 쓸 일이 별로 없다.
래지덕은 주자를 맹렬히 비판하였다. 주자가 주역은 점치는 책이라고 선언하고 주역본의를 만들었으나 주역본의는 의리역이지 점과 상수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래지덕은 주자가 못한 일을 자기는 해냈다고 큰소리쳤는데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주역본의(周易本義 : 주역의 참뜻)는 래지덕의 점법이 구현하였다. 주자의 주역본의는 주역은 점치는 책이라고 선언하고 출발하였으나 결국은 의리역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주역대전"은 의리역의 집대성일 뿐이다.
중국철학의 최종 승차는 노자와 왕필이다. 유불도 삼교는 원래 애초부터 모두 노장사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좃사선 조사들과 고승들의 사기와 성리학의 사기술로 혹세무민하였던 것이다. 해서 명나라때 고승들과 도사들은 모두 유교 불교 도교 삼교는 하나라고 삼교일치를 주장한 것이다. 아무리 연구해도 같은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ㅋㅋㅋ 이 머저리들은 그 이유도 모르고 석가모니와 공자 노자는 똑같은 사고를 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주장하였다. 왕필의 철학으로 불교를 해석한 이가 축도생 승조이고 그것을 정교하게 만든 천재 사기꾼이 6조 혜능이다. 축도생에서 6조혜능까지 이어지는 종교사기술로 만든 것이 조사선이다. 그리고 불교 자체가 되었다. 성리학자들이 불교비판에 실패한 이유가 맹자의 심성론을 베이스로 만든 사기철학이 불교자체인 조사선이니 불교비판을 비판하다가 자가당작에 빠진다. 자아(공맹=공자 맹자)비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ㅎㅎㅎ 머저리 성리학이다. 조사선을 벤치마킹한 사상이니 그나물에 그밥인 비빔밥 짬뽕이다. 중국불교는 그냥 노장사상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성리학은 도교 연단술을 태극도설로 받아들여 성리학의 우주론을 만들었고 이기론은 화엄사상의 이사무애관을 표절한 것인데 어차피 화엄사상의 이사무애(理事無碍)는 노장사상과 맹자 심성론의 결합이다. 중국 화엄사상은 맹자 심성론으로 만든 유교이다. 해서 이기론은 불교 이사무애의 표절이 아니라 원래 맹자 심성론이다. 위진 현학 자체가 노장사상을 베이스로 맹자 심성론과 주역을 결합하여 만든 것이다. 화엄사상 역시 맹자 심성론과 주역과 노장사상의 결합이다. 위진현학과 동일하다. 용어만 불교용어를 썻다. 화엄사상은 화엄경과 무관하다. 천태사상 역시 법화경과 무관하다. 도저히 연결점이 없다. 결국 위진현학의 불교버전이다. 불교의 탈을 쓴 위진현학이다. ㅋㅋ 결국 모든 중국 철학의 근본은 노자와 노자의 無 하나만 있을 뿐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며 무물(無物)이며 일물(一物)이다.<자세한 건 불교학방 필자글들 읽어보기 바란다>
無만이 있다. 형이상학적 실체는 오직 無이다. 중국철학은 노자에서 시작 노자로 끝났다. 노세노세 노노자....놀자 놀자 야놀자~~ 야놀자???
2022년 12월 15일 紫霞仙人 遊於世間
첫댓글 야놀자 ㅎㅎ
하루종일 고민해야겠어요..감사합니다..
이 추위에도 꾸준하게 매일 손님 있어 감사하고 며칠 여유가 생기니 감사하고요.
늦잠도 자고요..^^
8시쯤 떠오르는 태양
감사합니다